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02
‘뭐, 이런 놈이니 재미있는 것 아니겠나.’
제갈린은 그런 제자가 몹시 만족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본다.
지(知)야말로 무학에 가장 빨리 다다르는 길.
인간은 무공을 배우고(學).
상대의 검로를 보며(見).
미래를 예측한다(豫).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안다는 뜻 안에 수렴된다.
知.
제갈세가야말로 가장 무학에 가까운 곳이라 제갈린은 자부하며.
하늘과 싸우기 위한 가장 날카로운 무기임을 속삭였다.
인류가 미지와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세 근도 안 되는, 그러니까 두 근하고 절반 정도 무게의(약 1.5kg) 두뇌 덕분이니까.
고작 세 근도 안 되는 뇌가 돌을 깎아 창을 만들고,
맹수와 싸우고 불을 발견하며 신화시대를 열었다.
손톱도, 발톱도, 이빨도, 근육도, 단단한 갑피도 없는 인류가 맹수와 싸우기 위해 주어진 무기가 바로 이 두 근 반짜리 뇌이고.
이것 덕분에 인류는 문자를 발명하고.
옷을 만들어 입고.
집을 지으며 제법 하계(下界)를 지배할 수 있었다.
하늘과 대적하기 위해서는 이 뇌를 계속해서 갈고닦아야 했다.
그리고 제자는 스승의 걸작이었다.
“……그런데 스승님?”
“왜 그러느냐?”
“혹시 스승님께서도 무언가를 보셨나요?”
“…….”
스승님은 말이 없다. 그저 웃을 뿐이었다.
이윽고 그는 여유롭게 부채를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선존께서 오신 듯하니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꾸나.”
그리고.
진천희와 제갈린 앞에 자그마한 사람의 형상이 허공에서 툭 떨어져 내렸다.
‘방금 전까지 전혀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기감이 예민한 진천희다.
비록 방금 천제단의 시험에 당했다고는 하나, 이 정도로 기척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건 마치 무존이나 마존 같은…….’
눈앞에 있는 것은 어린 소년.
대단히 귀엽고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눈이 깊어 안광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역시 천제단을 오를 수 있군. 와 주어서 고맙네, 반선의 씨앗 진천희. 그리고… 자네는 초대하지 않았지만 환영하네. ‘역천의 괴물’ 제갈린.”
“…….”
“하하핫, 둘 다 내가 선존이라고 하는데 놀라지도 않는군.”
“아, 아닙니다. 놀랐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진천희를 보며 꼬마 아이가 말했다.
“에잉. 자네 제자는 거짓말을 잘 못하는군그래.”
소년은 안광 없는 눈과.
새빨간 입술로 웃었다.
* * *
‘저런 꼬맹이가 선존이라니. 역시 반로환동인가?’
처음에는 근골역용술인가 싶었는데 사마현의 어깨너머로 배운 바로는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강호에는 무공이 별처럼 많으니 내 눈마저 속일 만큼 엄청난 역용술이 있을 수야 있겠지만.’
처음부터 다른 곳에서 만나서, 선존이라는 걸 감추려는 것도 아니고.
피차 서로 정체를 아는 마당에 굳이 그럴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반로환동이라고 하더라도 기이하긴 하지.’
반로환동이라 하더라도 완전히 아이로 돌아가는 일은 드물다고 들었다.
몸이 가장 무위를 펼치기에 좋은 나이대로 되돌아가는 것.
그것이 반로환동의 요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린아이는 무학에 적합하지 않다.
그 팔과 다리의 길이는 어른에 비할 바 없이 짧고, 피부와 뼈는 부드럽기 그지없으니까.
선존이 걸을 때마다 그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나부낀다.
마치 그 혼자 물속을 걷는 것과 같았다.
이 모습은 마존과도 같았다.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의념으로 지배하는 경지라고 할 수 있겠지.
‘아, 어쩌면 혹시……?’
진천희는 왜 어린아이인지 한 가지 가능성을 유추해 냈으나.
“…….”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자칫 큰 결례가 될 수 있기 때문.
그런 진천희를 제갈린은 이채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음, 도착했군.”
선존이 안내한 곳은 어느 작은 초옥.
벽은 진흙과 돌을 쌓아 만들었고.
지붕은 여러 종류의 풀과 나뭇가지 그리고 이파리를 얹어 만든 형태였다.
천제단 바로 아래에 만들어진 작은 초옥이 선존의 거처라 할 수 있겠다.
‘이분도 기인은 기인이다.’
하늘을 지붕으로 삼는 무존이나, 거대한 마교 복마전이 지붕인 마존처럼.
선존은 다 쓰러져 가는 초옥을 자신의 집으로 삼고 있었다.
달칵-
초옥의 문을 여니 중앙에 화로가 보였고, 그 화로에는 걸쇠에 걸린 주전자가 하나 놓여져 있었다.
바닥은 놀랍게도 그냥 흙으로 된 바닥이다.
그나마 지푸라기 방석 네 개가 놓여 있었는데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삭은 냄새가 났다.
선존은 자연스럽게 그중 하나에 앉았다.
“누추하지만 좀 참게나.”
선존의 안내에 따라 스승님이신 제갈린이 선존의 바로 앞에 앉고.
진천희는 그런 스승님 옆에 앉았다.
선존이 말했다.
“자, 그러면 제대로 소개해 볼까. 본 도의 도명은 유허자(有虛者)이며, 이름은 갈선(葛仙)이라고 하네.”
“백린의각의 각주로 지내고 있는 제갈린이라고 합니다. 강호에서는 백린의선이라고들 불러 주고 있지요. 이쪽은 저의 제자인 진천희로, 본 의각의 소각주입니다.”
“무림말학 진천희가 인사 올립니다.”
그는 허공섭물만으로 물을 데워 차를 끓이고는 곧바로 진천희와 제갈린 앞에 찻물을 따른다.
“결례를 이해해 주게. 직접 따르기에는 팔다리가 짧거든.”
그렇게 말은 했지만, 진천희는 왠지 귀찮아서 의념을 쓰는 거라는 확신 아닌 확신이 들었다.
이 세계에서는 보통 시동들이 차를 따르는 일을 한다.
현대와 달리, 차를 끓이고 따르는 것은 보통 어린아이가 하는 역할.
짧은 팔다리로도 하고자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터나 그냥 안 하는 거다. 이건.
“그러면 감사히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스승님께서 차를 마시자, 제자 역시 찻잔에 입을 댔다.
후릅-
깊은 풀 향이 났다.
비싼 찻잎은 쓰지 않았다.
산야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풀을 말려서 만든 차였고.
정성이 들어갔는지 제법 좋은 맛이 났다.
선존은 작게 미소 지었다.
“차는 괜찮은가?”
“네네, 맛있습니다.”
“긴장할 필요는 없네. 본 도가 자네를 초청한 것은 거래를 하고자 함이니까. 우선은 이곳까지 오게 한 값부터 치르지.”
[선업을 쌓음이 이 태산에서도 보이니, 한번 만나 보았으면 하네. 태산으로 한번 방문해 주게.먼 거리를 오라고 하는 것이니, 방문한다면 보답하겠네.]
그가 보낸 서신.
‘보답이 값을 치른다는 거였어?’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선존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꽤나 두툼한 두께의 서책으로, 표지를 보아하니 무공이 아닌 주술에 관련된 것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작은 흉통에서 저렇게 커다란 책을 꺼낸다는 것이 말이 안 되었다.
분명 옷에서 표가 났을 테니까.
‘선존은 양력처럼 공간에 관한 술법을 익힌 모양이군.’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눈 한 번 깜빡일 정도의 찰나.
그런데.
그렇게 튀어나온 두툼한 서책에서 무시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우우우웅-
그 서책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손등의 털이 곤두섰다.
피부가 따끔따끔할 정도의 기운에 진천희는 이마를 찌푸린다.
“그건 대체 무엇입니까?”
그 말에 선존은 고개를 갸웃했다.
웃기게도, 아니, 외람되게도 그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존이 말했다.
“흐음……. 진서(眞書)에 대해서 모르나? 제갈세가에는 진서가 남아 있었을 텐데?”
제갈린이 답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선존. 허나 제갈세가가 멸문할 당시 전부 전소되었지요.”
“단순한 불에 탈 수 없… 아아. 그렇군. 망실(亡失)되었다, 그거로군. 알겠네. 그래서 자네 제자가 처음 보는 거로구먼. 허면 그것도 정말 신기한 일이로군. 진서도 없이 반선지경에 이르게 만들 수 있었다니. 정말 놀랍군그래.”
반선지경은 현경을 뜻하는 건가.
망실(亡失).
보통은 잃어버렸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세가가 불타는 사이에 누군가가 가져갔다는 뜻인가.
그리고 진서(眞書)?
대체 무슨 뜻인가 싶어 스승님을 바라보니 스승님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해주었다.
“희야. 너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보기만 해도 정신이 사로잡히고, 그것에 빠져들어 버리는 서적에 대한 이야기다.”
“마공서가 보통 그렇다고 들었는데요. 그 내용이 위험해서 그런 게 아니었나요?”
“아니란다. 서책 그 자체가 ‘의념’을 품고 있는 경우이지. 예를 들자면… 그래. 선존의 머나먼 선조인 선인 갈홍의 저서 포박자(抱朴子) 원본(原本)이 그러하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선존이 말했다.
“아직 모든 것을 전수한 것은 아닌 모양이로군.”
제갈린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아직은 알 필요가 없는 지식들이었지요.”
“지금은 때가 되었다는 건가?”
선존의 질문에 제갈린은 부채를 탁, 접었다.
“그렇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더욱 잘되었다. 이곳에 와 준 값으로 이것을 주마. 진서 중의 하나인 동방삭(東方朔)의 >신이경(神異經)>이다.”
동방삭!
삼천갑자 동방삭으로 잘 알려진 선인!
‘그가 직접 저술한 진서(眞書)라니.’
선존이 말했다.
“이런 진서들은 무림지보나 다름없는 귀한 것들이지. 이것은 동방삭이 직접 만든 것은 아니나, 그 제자가 공을 들여 원본과 동일하게 만든 진서라 할 수 있네. 이 서책이라면 충분한 값을 치르고도 남을 터.”
우우우우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서책.
진천희는 억지로 시선을 돌린다.
겨드랑이가 땀으로 축축해졌다.
“제가 이곳에 온 것만으로 이런 귀물을 받는 것은 어쩐지 과한 것 같습니다만…….”
선존이 제갈린을 보며 물었다.
“자네도 그리 생각하나?”
“저의 제자는 자신의 가치를 때때로 낮게 보고는 하니 저러는 겁니다. 사실 적당한 값이 맞지요.”
‘아니, 내 출장비가 동방삭의 신이경이라니!’
충격 속에서 진천희는 생각했다.
‘나 꽤 쉬운 사람인데!’
경악하는 진천희를 향해 선존이 말했다.
“역시 제갈세가의 가주로군그래. 진천희. 반선의 씨앗아. 네가 선한 것은 알겠으나, 스스로의 가치를 제대로 계산하지 않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네 스승이 미쳐 날뛰는 꼴을 보고 싶지 않거든 잘 처신해야 할 것이야.”
“귀한 가르침을 주시는군요.”
스승, 제갈린이 동의한다.
선존이 그런 제갈린을 향해 눈웃음을 지었다.
“네 녀석에게 빚을 지워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진천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어렴풋이 깨달았다.
선존.
‘이 사람은 모든 것을 대가로 계산한다.’
그간 만났던 아비 스님이나 무당권제님과는 확실히 다른 형태의 도인이었다.
어째서?
선도를 수행한다는 게 선(善)과는 또 다른 느낌인 것은 알고 있다.
뭔가 주고받는 것을 계산하는 것이 선(仙)에 오르는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약간 혼란스럽게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선존이 웃음을 터뜨렸다.
“본 도가 이상해 보이는가? 하지만 그리 이상할 것은 없네. 본 도는 공과격(功過格)으로 선도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니까.”
“!”
공과격(功過格)!
곧바로 현원전단신공이 공과격(功過格)에 대한 정보를 퍼 올렸다.
“과거 사라진 선도 수행법 아닙니까?”
“역시 척하면 척이군. 그것을 아는가? 보통의 강호인이라면 알기는커녕 듣자마자 비웃을 이야기인데.”
선존의 입가에 미소가 스민다.
그것은 과거 진주언가 가주가 진천희를 보며 지었던 미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진천희가 뺨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술법과 주술에 대해 조금 배운 게 있습니다.”
“과연, 과연, 과연!”
그가 말했다.
“이런 인재가 저런 혈린 밑에서 배우고 있다니, 돼지 목에 진주, 아니 호랑이 목에 진주도 유분수지.”
제갈린이 말했다.
“하하하, 과연 선존께서는 오래 사셔서 괴팍하신 면이 있으십니다.”
번역하자면-
‘노망났냐?’
하지만 선존의 귀에는 제갈린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소각주, 좀 더 자세히 말해 보게. 공과격(功過格)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지?”
이거 답해도 되는 건가?
진천희는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