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07
다음 날.
그렇게 푹 자고 일어나니 밤은 어느새 푸른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느끼며 진천희는 잠에서 깨었다.
‘스승님이 안 계시네?’
꽤 이른 시간임에도 보이지 않는다.
진천희와는 달리 스승님께서는 회복된 후에는 아침잠도 챙겨 주무시는 편이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밖으로 나가니.
그제야 가공할 기운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우우웅-
‘와앗, 엄청난 기세.’
시선을 돌려서 보니 그곳에서는 선존과 스승님.
두 분이 대련을 하는 게 보였다.
두 고수가 풍기는 기세에 살갗이 따끔따끔해질 정도.
그런데 선존은 무공을 쓰는 게 아닌 것 같아 보였다.
하늘에 부유한 채로 주변에 부적 같은 것들이 날고 있었다.
그 부적들이 빛을 내면서 번개를 뿌린다.
콰르르릉!
부적이 만들어내는 섬광은 뇌격부에 비할 바가 아니었고,
그 번개가 만들어낸 빛 하나하나가 가공할 의념을 품고 상대를 향해 파고든다.
‘스승님, 위험……. 아.’
반면 스승님은 그저 부채를 휘둘러 번개를 옆으로 흘려보낸다.
“호오, 번개를 벨 줄 알았는데 흘려보낸다?”
선존의 말에 제갈린이 말했다.
“옛부터 번개란 하늘의 분노로 상징되는 강력한 힘 중의 하나이지요. 특히나 뇌공으로 유명한 남궁세가가 있으니 말입니다.”
“추켜세우는 주제에 손은 여유롭군.”
“반면 유도가 잘 되는 것 또한 뇌공 아니겠습니까. 고작 약간의 수기(水氣), 금기(金氣)만으로도 알아서 달라붙어 주니 이 얼마나 편합니까.”
“그게 쉬었다면 창천남궁이 지금과 같은 자리에 오르지 못했겠지. 쯧쯧, 이것 참. 허망하군. 제법 자신 있는 초식이었는데 말이지.”
“무학이란 본디 그런 법 아니겠습니까. 이쪽도 슬슬 갑니다.”
그 순간, 스승님은 허리춤에서 연검을 뽑아 순식간에 공격하는데, 강기가 마치 살아있는 용처럼 달려 나가는 게 아닌가!
“무슨 속도가?!”
그 순간, 선존이 손을 내뻗어 용강기를 붙잡는다.
카가가각!
얼핏 보면 맨손으로 붙잡는 것처럼 보이나, 선존의 손바닥에는 부적이 빼곡하게 붙어있었다.
“크윽! 방금 십 년 치 공덕이 날아갔네.”
“저런, 아쉽게 되었군요.”
“……진심을 일 할이라도 넣어 보게나. 위로를 받는데도 모멸당하는 기분이니 원.”
그 투덜거림에 진천희는 생각했다.
‘아니다. 스승님은 진짜로 모멸하고 계시는 거야. 선존은 어렴풋이 스승님의 진심을 간파해냈다. 하지만 설마하니 삼존이나 되는 자신을 대놓고 모멸하고 있겠나, 생각하고 있는 것뿐!’
진천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나저나 스승님의 검이 이제 입신의 경지에 다다르고 남았구나.’
방금의 뇌격은 그저 스치는 것만으로도 한 줌 핏물이 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허나, 그 사이에서 유유히 부채로 빗겨내는 스승님.
겉으로 봤을 때는 한가한 꽃놀이라도 온 듯한 모습이지만 실은 그 반대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연검. 비처럼 내리는 뇌격 사이를 모두 피하고 정확하게 검로를 찔러 넣었어.’
미리 예고하고 검을 뽑으신 것을 보니, 손속에 사정을 매우 두셨던 것 같다.
“슬슬 그만하세나.”
대련은 거기까지.
선존은 지상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정말 괴물이로군. 본 도가 수행을 한 지 그럭저럭 백 년도 더 넘었는데도…….”
“과찬이십니다. 선존께서도 전력을 다하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핫! 물론 그렇긴 하네만. 자네는 정말… 앞으로 무엇을 하려고 그러나?”
“글쎄요. 여러 가지를 생각 중인지라. 희야. 깨어났느냐. 곤히 자기에 진법을 펼쳐 두었단다.”
“네. 나오자마자 두 분께서 만들어내신 엄청난 기세에 이 제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 말하며 예를 표한다.
꼬르륵-
그때 선존의 배꼽에서 소리가 들린다.
선존은 살짝 쑥스러워했다.
“음, 그래. 몸을 움직였더니 배가 고프군.”
그렇게 세 고수는 함께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은 제갈린과 진천희가 함께 만들었다.
정확히는 사제(師弟)가 함께 먹을 밥을 제갈린이.
선존께서 드실 아침 식사를 진천희가 차린 셈.
“호오, 선식이군.”
“네네. 아무래도 수행을 하시는 분이라 최대한 도가에 맞게 차렸는데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콩죽만 먹다가 밥다운 밥을 먹는구만.”
‘콩죽이라.’
스승님도 제자를 들이기 전까지 매일 벽곡단만 씹으셨다 들었는데.
이쪽도 만만치 않다.
선존은 선식을 먹더니 눈을 감고 깊게 감동했다.
“내가 무슨 복이 있어 이런 음식을……!”
‘아니, 그럴 거면 콩죽 말고 다른 선식을 만들어 드시면 되지 않나?’
진천희가 궁금해져서 물으니 선존이 답했다.
“어차피 음식은 최소한만 먹어도 상관없는 게 바로 현경의 경지 아닌가. 직접 요리해 먹을 생각을 하니 거기까지는 귀찮더군.”
‘하긴. 혼자 먹을 밥 차리는 게 가장 귀찮지.’
남이랑 같이 먹을 거면 그거라도 핑계 삼아 힘을 내보는데.
나 먹을 거에 그렇게까지는 힘쓰기 싫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렇다고 해도 세끼 내내 콩죽만 먹는 것도 좀 광기 아닌가.’
제갈린이 말했다.
“희야. 밥이 식겠구나.”
“네네!”
스승님께서 제자에게 만들어 준 것은 맑은 완탕이다.
조개로 국물을 내서 시원하니 그지없었다.
스승님은 예의상으로라도 선존에게 같이 들겠냐는 소리를 안 하셨다.
선존께서도 스승님이 만든 건 입도 안 댈 모양인지 진천희가 만든 것만 열심히 젓가락질을 했다.
기묘한 식사.
진천희는 불편한 듯……하지만 두 분은 편안한 식사 자리에서 조용히 젓가락을 놀렸다.
‘아, 체할 것 같다.’
그때 선존께서 작은 서책을 꺼냈다.
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공과격(功過格).
“어디 보자. 제갈린에게 가르침을 주었으니 선업이 10점이고. 제갈린을 칭찬해서 선업이 1점. 도합 11점인가.”
‘아니, 뭐 저렇게까지 기록한단 말인가!’
초등학교 알림장도 이것보다는 덜 꼼꼼한 듯싶었다.
선존은 서책을 탁 덮고는 식사를 마저 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난 후.
선존은 책을 하나 더 꺼내주었다.
“어제의 것으로는 아무래도 값이 모자라다는 게 내 계산이네. 그래서 이것을 주지.”
우우우우웅-
이번 책도 무시무시한 기운이 휘몰아친다.
진천희는 선존에게 차를 따르다가 솜털이 곤두서는 기분을 느낀다.
선존이 담담하게 말했다.
“진서(眞書)인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이라는 책이네. 후한 시절에 결국 선인이 되지 못한 위백양(魏伯陽)이라는 이가 만든 것이지. 단약에 대해서 제법 여러 가지가 적혀 있으니 도움이 될 게야.”
‘혹시 선존은 황금 고블린인 건가?’
진천희의 눈이 커진다.
“고, 고맙습니다.”
혹시라도 마음이 변할세라 바로 챙긴다.
‘대체 나랑 몇 마디 대화 나는 게 무슨 득이 있다고 이렇게까지 계산을 남겨주는 거지?’
선존이 말했다.
“허허. 이렇게나 욕심이 없으면서도 탐욕스러운 놈은 또 처음 보는구나.”
“이렇게 막 주셔도 되는 겁니까?”
“?”
선존은 스승님을 쓱 바라본다.
“…….”
스승님은 조용히 찻물만 마신다.
“이놈은 선계에서 본인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전혀 모르는 건가?”
“제가 공덕을 많이 쌓은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것도 네 녀석의 가치에 막대한 기여를 하고는 있지. 하지만 그것뿐은 아니고…….”
그때, 제갈린이 찻잔에서 입을 뗐다.
“…선존께서 기분이 좋으신 모양이십니다. 굳이 할 필요 없는 말씀을 다 하시고 말입니다.”
닥치라는 뜻이었다.
누구도 선존에게 이따위로 말하는 자는 없다.
하지만 왜일까.
제갈린의 말에는 거부하기 어려운 위협이 있었다.
‘아니, 진짜 힘을 조금이나마 엿보았기 때문인가.’
원래라면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할 괴물.
태어난다 하더라도 천형으로 죽었어야 할 괴물.
그런 괴물이 끝내 살아남았다.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닌 건가.’
선존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입을 뗀다.
어린아이의 몸뚱이로 턱을 한 번 문지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진천희 자네, 스승 때문에 고생이 많겠군.”
“네?”
“내가 관상을 볼 줄 아는데 스승 때문에 앞길이 팍팍해질 상이야.”
“……뭐, 그런 소리 많이 듣긴 합니다만. 저희 스승님께서 좀 모난 데가 많으셔서 그리 보이는 겁니다. 알고 보면 정이 많으세요.”
삐익?
그 말에 뇌진이 무슨 미친 소리를 하냐는 듯 진천희를 바라보았지만, 진천희는 모르는 척 시선을 돌린다.
“사제 간에 사이가 아주 돈독하군그래.”
하지만 천하의 선존도 부럽다는 소리는 안 했다.
제갈린의 관심을 받을 바에는 혀 깨물고 자결하는 게 낫지 않나? 싶은 표정.
그것을 현원전단신공으로 읽은 진천희는 기가 막혔다.
‘아니, 우리 스승님이 왜, 뭐, 왜?’
어째서 나이 지긋한 분들은 하나같이.
진천희 자신을 천하의 불쌍한 놈 보듯 하고 있단 말인가.
* * *
그렇게 아침을 먹고 선존과 헤어졌다.
“다음에 또 볼 일이 있을 걸세.”
왠지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이대로 진천희를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선골(仙骨)을 가진, 심지어 자신이 쌓아 올린 공덕 정도는 가볍게 찍어 누르는 놈이다.
이런 인재가 혈린광살에게 있는 것은 낭비다.
거기에 이놈은 필시 거물이 될 자.
‘그 길을 조금이라도 닦아준다면 훗날 받을 공덕이 얼마나 크겠나!’
이상한 탐욕(?)에 불타는 선존을 보며.
진천희는 멍하니 생각했다.
‘그때에도 내가 여기를 찾아올까, 아니면 선존께서 세상으로 나오실까.’
원래라면 등선을 하지 않고 버티기 위해 태산에 기거하게 된 상황.
하지만 천기가 무너지고 있는 앞으로는 어떨까.
멀리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선존이 그 자리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작은 어린아이의 몸뚱이.
허나, 그 안광은 노인보다 깊었다.
제갈린이 말했다.
“이번 초대는 꽤 얻은 게 많구나. 진서(眞書)가 두 권. 그리고 원래라면 실패작이라고는 하나, 신선이 만들었다는 보패가 하나.”
맞는 말이었다.
이만한 소득을 쉽게 얻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특히 보패는 만약 제대로만 구동된다면 바이러스 백신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겠군.’
실패작?
꼭 인간을 호리병에 가둬서 술로 만들어야만 성공작인 건 아니잖나.
아니, 현대 지구인 시선에 그런 위험한 물건은 만들어서도, 유통해서도 안 되는 겁니다요.
이 정도가 딱 좋다.
‘지구인 입장에서는 이게 성공작이지.’
사람 녹인 술을 뭐에 쓰려고?
어쨌든.
출장비치고는 참으로 호사스러운 선물들이다.
진천희가 말했다.
“스승님께서 대련을 하시다니 처음 봤어요.”
“그러냐? 가끔은 유호와 대련을 한단다.”
“네? 진짜요?”
생각해 보면 백린의각에는 숨겨진 곳들이 많다.
오늘만 해도 진법으로 인해 스승님과 선존이 싸우는 엄청난 소리, 그 기세를 못 느끼지 않았나.
유호와의 대련도 제법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백린의각에서는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겠지.’
진짜 힘을 개방하고 싸우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그럭저럭 대련을 하는 정도라면 하고도 남음 직하긴 했다.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으면 솜씨가 녹이 스니 어쩔 수 없지. 그나저나 이번 여행은 제법 알차구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스승님”
그리 대화하면서 사제(師弟)는 산을 내려갔다.
그렇게 느긋하게 내려간 지 얼마나 되었을까?
산 아래에 사람들이 보였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었다. 입구를 막고 있는 군이 있었으니까.
허나, 복색이 군부의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동창.
“어라?”
진천희가 당황한다.
스승님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나저나 황상께서 마중 나올 사람을 보낸 모양이구나. 이리될 줄 알았지.”
“예?”
“산을 오르게 되면 필시 황궁에서 너를 부를 것 같긴 했느니라. 다녀오거라.”
“스승님께서는요?”
“일전에 말했잖느냐, 나는 다른 볼일이 있다고.”
스쳐 지나가듯 하신 말씀이라 크게 생각지는 않았다.
그게 단순히 방금 선존을 만나는 데에서 끝난 게 아니었나.
그때 동창 하나가 진천희와 제갈린을 발견하더니 제독태감에게 알렸다.
“아이고오!”
곧바로 제독태감이 경망스럽게 달려왔다.
“드디어 일이 다 끝나신 모양입니다!”
‘아니, 이놈의 형님들은 제독태감까지 보내서 아우를 데려오게 할 참이었나 보네.’
그냥 칙서를 내리는 것도 아니고 이런 호사스러운 가마까지 준비해서 대기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는 스승님과 진천희를 번갈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 촌부, 진 태수님께서 내려오실 때까지 아주 목이 빠져라 기다렸습죠! 짐작하시겠지만 황궁으로 입궐하라는 황명이 내려왔사옵니다요!”
대체 뭔 일이야?
‘설마 또 만두 만들어 달라는 건 아닐 테고.’
선존에 이어 황상이라.
진천희가 말했다.
“제가 몸이 안 좋아서 거동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쿨럭, 쿨럭!”
그 말에 제독태감이 으헉,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그건 다른 동창들도 마찬가지.
천하의 황상이 가마까지 대령해서 부르는데 이런 소리를 할 줄은 상상도 못 한 모양.
‘멀쩡하게 두 다리로 산을 타는 게 빤히 보였거늘!’
그야말로 미쳐도 보통 미친 소리가 아니었으나,
천하제일 만두 숙수(feat. 의원) 진천희는 생각했다.
‘황상도 잘만 쓰면 보물 고블린이 되기도 하지.’
하지만 이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