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10
어째서 그, 그리고 그들이.
진천희에게 이런 마음을 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허나.
대충은 이해는 간다.
단순 내관도 아니고 동창.
그들은 어릴 때부터 뼈를 깎아가며 여기까지 올라왔을 테니.
‘뭐, 딱 그 정도까지 추론이고. 내가 그 이상 자잘한 개인사까지 아는 건 무리지.’
의념의 형상을 보고 짐작을 할 뿐.
상대의 속마음 하나하나 읽는 신통안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제대로 살기 어려웠을 터.
‘골드 왕야는 하고 계시지만.’
이렇게 생각하니 골드 왕야가 조오금 안쓰러워지는군.
뭐. 그래도 결국 그 왕야께서 일으키신 피바람을 생각한다면 그 마음도 다시 조오금 들어간다.
풍하은이 말했다.
“이쪽은 그 유명한 진 태수로, 자네를 상대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걸세.”
“…….”
첩형의 표정이 진중하다.
허나, 그 표정에는 결코 질 리가 없다는 단단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의원은 눈치챘다.
‘역시나 대련자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구나.’
거기서 진천희는 약간의 의구심이 일었다.
‘단순 기를 죽이는 게 목적이라면 이렇게 채비를 할 시간을 주지 않는 편이 좋을 텐데… 역시 따로 속셈이 있군. 이 황상들.’
진천희는 첩형의 태도와 은왕야의 표정.
그리고 제독태감과 다른 동창들에게서 풍기는 희미한 의념의 모양새를 순식간에 읽어냈다.
‘이거, 단순히 첩형을 시험하는 것뿐이 아니라, 혹시… 나도 시험하려는 건가.’
진천희는 현원전단신공으로 순식간에 독심술에 가까운 통찰을 해낸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 의도까지 짚어내려는 찰나.
진천희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다.
‘이 정도만 짚어내자. 더 이상 깊게 연루되어 봐야 백 프로 귀찮을 거다.’
황궁의 책략은 강호의 책략과 다르다.
좀 더 끈적하게 사람을 잡아 누르는 데가 있다.
결국 힘으로 모든 것을 결론짓는 강호와는 다르게 돌아가는 판이기 때문.
그럼에도 현원전단신공은 자꾸만 생각을 이어 나가려고 했다.
알기 싫은데 알고 싶은 복잡한 마음.
은 왕야가 말했다.
“자, 압수해 두었던 자네의 애병도 준비해 놓았네.”
내관이 황송하다는 듯 빙정검을 들고 온다.
“…….”
황실에 비치된 칼이 아닌 쓰던 칼을 건네는 것을 보니 확실히 특별예우이긴 하다.
‘이대로 내가 뒤돌아서 푹 찌르면 어쩌려고 이러시나 그래?’
그야말로 주왕 전하급의 신뢰.
아니, 주왕 전하도 이런 일은 극히 드물다.
애초에 그분이야 이능 때문에라도 무기를 압수하든 그렇지 않든 큰 차이가 없는 위인이지만, 그래도 애검이 있고 없고는 다를 터.
‘하여간, 속을 알기 어려운 작자들이야.’
진천희는 황상에게 예를 표하고 비무장으로 향한다.
뚜벅, 뚜벅-
조용한 비무장에 진천희의 신발 소리만이 울렸고.
“저자가, 그 유명한 일광인가.”
“이립도 안 되어서 현경에 도달했다는 소문이 진짜인지 궁금하군.”
“설마하니…… 그러겠나? 그래도 이립은 넘은 후일 걸세. 강호사에 전무후무한 기재(奇才)이지.”
꿀꺽-
“설마 저자도 우리처럼…….”
“쉿. 조용히 하게. 저자는 우리와 다르다고 들었네.”
다른 동창들이 그렇듯 황가에 충성을 맹세하고 축복을 받았는지 묻는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아니라는 말에 젊은 동창들 주변으로 더 얕보는 의념이 강하게 느껴진다.
“허나, 참으로 사람이 아닌 듯한 미모로군. 어찌 인간이 이리 아름다운가.”
찬 공기를 진천희의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가른다.
한 올, 한 올 반사되는 빛이 마치 천인의 후광 같다고 누군가는 생각했다.
그럼에도 눈빛에는 예기가 서려 있어서 숨결을 베어버릴 것만 같았다.
만약 무신(武神)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혹여 이런 모습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한 동창이 고개를 젓는다.
그만큼 이 사내의 미모는 매혹적이었다.
첩형이 진천희를 향해 예를 표했다.
“동창의 제사첩형(第四貼刑)인 임정(姙停)이라 하옵니다. 익힌 무공은 규화보전(規花寶典)과 한음백검공(寒陰百劍功)이지요.”
‘규화보전…이라 하면……. 설마 동방불패?’
익힐수록 몸이 여성처럼 변하는 무공이다.
관련 영화가 있을 정도로 유명한 무공으로, 눈앞의 사내가 왜 그런 미색인지 알 것 같았다.
진천희는 깊게 숨을 쉬었다.
“태수직을 맡고 있는 진천희라 합니다. 현원전단신공과 태을단선검을 익혔습니다.”
“과연. 마주 보고 서니 기세가 보통이 아니군요.”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확실하게 그는 현경이다.
‘첩형 임정인가.’
고요할 정도로 의념이 단단하고 차갑다.
규화보전…….
분명 환관만이 익힐 수 있으며, 극음으로 이루어진 무공.
‘익힐수록 아름다워진다고 했었던가. 게다가 그에 맞춰서 한음백검공이라는 무공을 쓴다면. 이것 역시 음기를 기본으로 하는 무공이겠군.’
음한지기를 주력으로 익힌 현경의 고수라…….
여기까지.
진천희는 고작 눈 한 번 깜빡일 사이에 생각해낸다.
그리고 진천희는 오만하게 말했다.
“첫수는 양보해 드리겠습니다.”
“호오, 자신 있으신 모양이군요.”
임정의 눈가가 꿈틀거린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애송이가 현경에 먼저 오르고, 이제는 첫수까지 양보한다고 한다?
이것은 명백한 도발이다.
다른 동창들도 마찬가지.
“오만하군.”
“이렇게 된 거 확 이겨 버리면 되는 일 아닌가?”
작은 소리로 수군거린다.
동창들끼리 하는 말이니 보통 사람이라면 결코 들리지 않을 만큼의 작은 속닥임이나.
현원전단신공으로 초감각을 갈고닦은 진천희만은 들을 수 있었다.
그만큼 동창들도 진천희의 태도에 발끈했다는 뜻.
‘음, 동창 전체가 오만해진 건 사실이군.’
이건 황상들의 판단이 맞다.
지금의 동창은 자신들이 최고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고.
누군가는 그 머리통을 깨줘야 한다.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임정은 탁하고 발을 떼더니 그대로 진각을 밟는다.
투웅-
분명 비무장 바닥임에도, 마치 북을 때린 것 같은 기묘한 진동!
그리고.
섬전 같은 속도로 돌진해 온다.
진천희의 현원전단신공의 가속된 세계 속에서도 그의 속도는 무척이나 빨라 진천희도 살짝 놀랄 수준이었다.
‘과연!’
그 속도는 도원향의 지배자, 삼절추호보다 빠르다!
하지만-
‘재미있군. 자만할 만도 해. 이 정도 속도를 가졌으면 누구라도 그리 생각할 거야.’
정작 진천희의 입가에 미소가 서린다.
그것을 임정도 본다.
‘이 무슨!’
임정의 첫 초식을 고작 턱을 꺾어 피해낸다.
퉁!
진천희 머리카락 몇 올이 베여 나가나 그것으로는 결코 닿지 못하리라.
그 짧은 시간.
물방울이 떨어지기도 전의 찰나 속.
그 고독한 공간 속에서 임정은 똑똑히 들었다.
“첫수로 쾌속을 택한 것은 좋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이리 얕아서는 닿지 않겠지요.”
“!”
흡사 고수가 하수를 가르치듯 답한다.
‘과연 수 싸움의 제갈세가라는 건가!’
“첫수를 양보하였으니, 이제 이쪽에서도 가겠습니다.”
그 순간-
스릉.
빙정검이 허공을 가르며 그를 상대로 선을 그린다.
순식간에, 빙정검의 잔상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임정은 본다.
카카카카캉!
스물다섯 번의 공수 교환.
임정 역시 속도로는 누구에게도 진 적이 없다.
진천희의 스물다섯 번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며 함께 공수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진천희는 느낀다.
주변의 기운이 급속도로 떨어지는 것을.
“후우.”
숨결을 타고 서리가 스민다.
혹한의 추위가 사방을 얼리기 시작했고.
오랜만에 진천희는 자신이 만들어낸 눈이 아닌, 타인이 만들어낸 눈을 본다.
“좋은 의념이군요. 당신의 것입니까.”
진천희의 질문에 임정은 소름을 느낀다.
카각, 캉!
임정은 힘껏 진천희를 밀어낸다.
진천희는 임정의 힘을 받아 막는 대신 흘려서 몸을 핑그르르 회전했다.
탕.
마치 검무를 추듯 두 사람은 얽혔다가 십 보 밖으로 떨어졌다.
“세상을 전부 얼어붙게 만드는 것이 제 의념입니다.”
“그 또한 무인으로서 좋은 심상이군요.”
그가 만들어낸 심상은 진천희가 만들어내는 겨울과는 달랐다.
환관은 영원히 계속될 겨울을 바라고 있었다.
대체 환관으로 들어온 자가 규화보전을 익히고, 어째서 이런 혹한을 심상에 담았는지는 알 수 없다.
허나, 그것이 결코 평안한 길이 아니었음을.
뭔가 사연이 있음을 의원은 읽어냈다.
‘좋은 눈이군.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리는 눈이야.’
진천희가 만들어낸 눈은 언젠가 걷힐 눈.
봄을 부르는 심상.
허나, 그가 만들어낸 것은 영구적인 동토(凍土).
작은 심상의 차이지만 결국 무학의 결론은 큰 차이로 다가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심무절기를 꺼내지 않으십니까?”
임정의 말에 진천희가 답했다.
“쉽게 꺼낼 만한 물건은 아니거든요.”
핑그르르-
진천희는 장난스럽게 검을 돌렸다가 받았다.
그 모습에서 여유를 읽고 몇몇 동창들이 어이가 없는 눈으로 바라본다.
‘설마 저 임정을 상대로, 힘을 아끼고 있다는 건가.’
‘방금의 공방은 가히 절세적이었네. 하지만 일광은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군!’
“크흠!”
몇몇 동창들이 그 사실을 깨닫자 불편한 신음을 내뱉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오래 끌 필요는 없겠지요. 오십시오.”
푸른 눈이 부드럽게 휘어지는 것을 임정은 본다.
규화보전을 익히게 되면 강력한 힘을 갖게 되나 두 번 다시 남성으로 돌아갈 수 없다.
물론, 이미 환관이니 무슨 의미냐고 묻는 이도 있으리라.
허나 그 말만큼은 모든 환관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중 누구도 원해서 환관이 되는 일은 없다.
하나 같이 팔려 오고, 버려진 아이들.
그 환관들 중에 자질을 가진 극소수만이 동창이 되지 않던가.
‘저따위가…….’
으득-
눈앞의 사내는 모를 것이다.
제갈세가에서 곱게 큰 꽃이 아닌가.
물론 보통 세가의 자제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해냈고.
더 많은 실전을 거친 것은 황궁의 정보를 통해 알고 있다.
허나, 동창의 삶만큼 그가 굴러왔나 한다면 턱도 없다.
그가 무엇을 잃고 이 경지를 손에 얻었는지 이 사내는 모를 것이었다.
임정은 저 판판한 얼굴에 찌푸림을 만들고 싶었다.
눈앞의 의원은 그 누구도 발자국을 찍어본 적이 없는 동토(凍土) 같은 자.
설원처럼 고요하고, 정갈하기만 하다.
저기에 오줌이라도 갈길 수 있다면 꽤나 즐거울 것 같았다.
스스스-
그 순간, 임정의 검 끝에서 수천의 냉기가 밀려온다.
그의 진각과 함께 쾌속의 검이 임정을 향해 날아들었고.
진천희의 입가가 비틀렸다.
아주 작은 속삭임.
그리고 아주 빠른 속삭임.
“아까 도발했던 것은 죄송합니다. 빨리 끝내야 해서요.”
“!”
태을단선검이 선(仙)을 벤다.
눈을 벤다. 풍경을 베고 의념을 벤다.
그의 심상을 순식간에 찢어발기며 찰나의 순간에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핑그르르르!
검을 쥐는 손이 바뀌는 순간. 임정은 죽음을 본다.
죽음, 죽음, 죽음!
서컹!
허나, 벤 것은 임정의 목이 아닌 머리를 묶은 끈이었다.
임정의 머리가 흘러내렸다.
“끝났군요.”
“아…….”
시리도록 차가운 태을단선검이었다.
그의 동토(凍土)로는 결코 닿지 못할 겨울을 임정은 보았다.
“……!”
일순간 끝난 비무에 모든 동창이 입을 벌린 채 눈앞을 바라본다.
임정이 누구던가.
동창 중에 현경에 오른 자가 아닌가!
처음부터 절세의 고수를 금의위로 고용하는 일이야 황실 역사상 으레 있어 왔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동창으로 데려와 키운 아해가 현경이 된 예는 없다.
그게 임정이다.
임정의 입술이 구겨진다.
“끄윽. 졌습니다.”
진천희는 여전히 설원 같은 이마로 답했다.
“저도 한 수 배웠습니다.”
의원의 표정이 흡사 마치 칼날과도 같다.
짝짝짝.
박수 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은왕야가 거기 있었다.
“엄청 빨라서 전혀 못 봤다! 하지만 훌륭한 비무였던 것 같군.”
그 순간 차가운 사내의 얼굴이 한심하게 변한다.
‘아이고, 솔직해서 좋구만.’ 하는 표정.
그러다가 문득 임정과 눈이 마주친다.
‘쉿.’
의원은 장난스럽게 신호를 보내고는 황상께 예를 표한다.
이 빠른 행동은 같은 쾌(快)의 고수인 임정 외에는 알아챌 수 없다.
그것을 알기에 보낸 것.
‘대체 이 사내는…….’
볼수록 기묘한 놈이었다.
황상이 말했다.
“그래, 임 첩형. 하늘 위에는 하늘이 있음을 이제 알겠느냐?”
“깊고 현묘하신 가르침에 이 임정, 그저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폐하.”
“더욱 정진해야 할 것이다. 특히 네 녀석은 현경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배울 점이 있을 거라 생각하여 부른 것이다.”
‘현경도 결코 같은 현경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나.’
임정은 어금니를 씹으며 예를 표한다.
상대는 괴물이었다.
지독한 괴물.
심지어 방금 보였던 도발조차도 빨리,
그리고 다치지 않게 끝내기 위한 계책이었다는 사실에 패배감이 더욱 밀려왔다.
‘어찌 이리 강한가.’
썩어 문드러지는 속을 억지로 가다듬는다.
은 왕야는 그런 임정을 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젊은 환관의 속을 모를 황상이 아니다.
하지만 하늘 위의 하늘.
그들이 앞으로 상대해야 할 존재들을 상정한다면 이건 반드시 건너가야 할 절차.
‘내 아우는 인간을 뛰어넘었으면서 아직도 인간이라 스스로 칭하고 있지.’
그렇다면.
그런 것이라면, 그의 수족들도 똑같이 사람을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도.
사람이라 칭하여야 한다.
“…….”
그때 진천희와 풍하은의 눈이 마주친다.
놀랍게도 이 녀석은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슬쩍 하고는 숨기는 게 아닌가.
‘이 와중에 졸려?’
볼수록 기가 막힌 놈이다.
반면 동창들은 그런 진천희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저 몰래 한 하품조차도 따라 하려는 기색.
풍하은이 생각했다.
‘설마 저놈들 머리를 너무 세게 깨버렸나?’
그제야 깨달았다.
눈앞의 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