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12
과거 진천희가 만든 제사상 플레이트를 대접받을 때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육체.
그러다 보니 바로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응룡이 말했다.
“화신체다. 만들어낸 육체이지. 인형이나 같은 게다.”
“응룡께서 직접 천관으로 일하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슬슬 때가 다가오고 있어서 부름에 응답한 게지. 자, 앉거라.”
‘와…. 진짜 말세가 오고 있긴 하구나.’
과거 그는 진천희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이하구나. 때가 무르익지 않았음에도 이곳에 도달한 황족이 있다니.
-마지막 기회를 주기 위함이지. 그러나, 과연 때가 왔을 때에 마지막 기회를 가진다 해도. 너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말세가 왔을 때 응룡이 준다는 기회.
그게 지금 응룡이 화신체를 만들어 황궁에 거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응룡이 허공에 손을 한번 휘젓자 의자 하나가 진천희 앞에 나타났고.
기척도, 주술 같은 것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현경의 경지에 올랐지만 아직도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구나.’
인간이 이렇게 올라섰는데 아직도 응룡 같은 존재들에게 자신은 개미였다.
진천희는 작게 혀를 찬다.
어떻게 해야 인간이 바로 이런 자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선조께서 제갈세가에 남긴 답은 결국 두뇌가 아니던가.
오로지 아는 것(知)만이 인간이 대항할 수 있는 무기라고.
하지만 힘의 격차를 느낄 때마다 어쩌면 제갈량이야말로 이상가이자 몽상가가 아닌가 싶을 정도.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없는 촌 무지렁이 유비에게 직접 군사가 되어 준 것은 결국 그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지금의 제갈세가를 이루는.
심지어 스승님의 피에 흐르는 혼(魂)이었으니.
응룡이 말했다.
“그 작은 머리로 생각이 많은 모양이구나.”
진천희의 푸른 눈이 응룡을 살피고 의자를 살핀다.
그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기억에 박아두며 말했다.
“응룡께서 이리 직접 화신체를 내보내셔야 할 정도로 세계가 변하고 있는 건가요?”
과거 응룡은 이리 말했다.
-천지만물의 균형이 깨져, 세상의 주인이 바뀌는 순간을 말함이다.
-그때가 오면, 인간은 더 이상 지상의 주인이라 자처하지 못하고. 너희 인간의 피로 세상이 씻겨 나가 새로운 질서와 규칙이 들어설 것이다.
-그래. 너희 인간의 몰락이다.
인간의 상상에는 한계가 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보통 생각하는 ‘끔찍한 일’이란.
정사대전이나 숙신족과의 전쟁, 혈선교의 난립 정도.
물론 그것만으로도 끔찍한 일일 터.
허나, 현실은 언제나 그 이상이었고.
의원은-
‘그 이후에 여러 가지를 보았지.’
각종 이물(異物), 전설의 짐조, 바다를 누비며 육지를 넘보는 괴어인들.
그리고 그들이 숭배하는 무언가.
백린의각에서 인류 보건을 위하여 일하고 있는 삼청관의 삼도사들.
손오공의 권속인 성성이 요괴 연원왕.
귀곡문이 열었던 귀시에서 보았던 자들.
저 진주언가의 선조인 그녀와 도원향의 나무까지.
인간이 그동안 부정해 왔고 전설로만 치부해 왔던 무대 뒤의 존재들이 물 밖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인류는 그저 빙산의 윗부분만 보고 안심하고 있었을 뿐.
응룡이 말했다.
“이미 시작되었다. 한번 비탈에서 구르기 시작한 돌은 여간해서는 멈출 수 없으니까. 끝이 올 때까지 구르고 또 구를 뿐이지.”
그리 말하더니 응룡이 손짓을 했다.
“?”
갸우뚱하고 바라보니 응룡이 말했다.
“이 이상은 대가가 필요하다. 그래. 공물이 좋겠구나. 먹을 것을 내놓아라.”
“!”
진천희의 눈이 커진다.
‘역시 이놈도 나한테 밥을 뜯어내는가!’
어째 인간이고 인간이 아닌 자들이고, 다들 진천희에게 먹을 걸 원한다.
특히나 높은 존재일수록 진천희의 음식을 즐기는 듯하다.
‘곤란하군. 달리 거창한 것을 가져오진 못했는데…….’
애초에 입궐하면서 소지품은 압수당하지 않나.
그때 응룡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명을 내려서 네가 가져온 간식거리 좀 털어오라 시켰느니라.”
‘내 짐을…… 털었다고?’
아니, 뭐.
‘황궁 입궐인데 짐 수색은 기본적인 절차긴 하지.’
생각해 보니 이 시대 기준으로 너무 당연했다.
“따로 명을 내릴 정도면 처음부터 제 간식을 드실 생각이셨습니까?”
“네 녀석이 허락한다면.”
“그냥 드셔도 되지 않습니까?”
“네가 이런 건 잘 모르는구나. 너 같은 존재가 바치는 음식이라는 게 중요하다.”
주술적인 의미가 있는 모양.
응룡이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리자 진천희가 들고 온 간식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금귤정과 그리고 별사탕, 심지어 백린의각표 초콜릿까지.
그 외에도 수많은 간식들이 마구 쏟아졌고.
진천희는 그것들을 약간 제사상 플레이트로 장식하기 시작했다.
현대 지구에 돌아다닌다는 피자 제사상, 양념치킨 제사상이 떠오르지만 원래 사람 사는 곳은 비슷비슷하다.
‘홍동백서. 별사탕은 흰색이니까 서쪽인가?’
어동육서에 따라 육포도 서쪽에 배치하고.
‘음. 붉은 건 딱히 없고, 금귤정과가 그나마 색이 있는데 이건 동쪽에…… 놔도 되나?’
어쨌든 있어 보이게 놓아 본다.
‘아, 천일취 남았네.’
이것도 한 병 배치했다.
“저 까만 건 치워라.”
‘초콜릿? 이건 유호가 만든 건데.’
엄청 인기가 좋은 놈이다.
심지어 별사탕의 인기를 이길 정도.
울던 애도 이거 하나 쏙 입에 넣어주면 눈물을 그치며 하나 더 달라고 조를 정도.
진짜로 치우냐는 듯 바라보자 응룡이 말했다.
“저건 필요 없다.”
유호가 만든 건 공물로 안 치는 모양이다.
대충 그럴듯하게 배치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술잔에 술을 따라서 건넸다.
“흐음. 술은 오랜만이구나.”
응룡은 천일취의 향을 눈을 감고 지그시 느끼더니 홀짝이며 한 모금 마시기 시작했다.
공물이 들어갔다는 뜻.
그렇다는 것은 대가를 주고 있다는 뜻이고.
“일전 귀시라는 곳에서 요괴 정보 상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말세란 세계의 경계가 전부 없어지는 것을 뜻한다고 하더군요. 응룡께서 말씀하신 천하의 주인이 바뀌는 때라는 것이 그것을 뜻하는 겁니까?”
곧바로 질문을 던지는 진천희.
“시간 낭비는 조금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건가. 맹랑한 놈이구나. 하긴, 그러니 그 자리까지 올랐겠지…….”
응룡은 그리 말하며 천일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그렇다. 세계 전체가 격변하니 천하의 주인이 바뀌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
“어쩌면 이 와중에서도 인간이 천변하는 세상에서 다른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자존자립(自存自立)하여 생존하고 다시금 세계의 주인이 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응룡은 천일취를 홀짝이더니 말을 이었다.
“과연 고작 인간이, 거기까지 가능하겠느냐?”
응룡의 답, 동시에 질문이다.
그것은 진천희라는 ‘인간’을 시험하는 질문.
왜일까.
“…….”
왠지 여기서 잘못 답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그것은 수없이 죽어 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직감이었고.
그렇기에 진천희는 오히려 솔직하고 담백하게 말했다.
그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해내야죠. 인간이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응룡께서는 분명 저희에게 기회를 주신다 이야기하셨지 않습니까?”
응룡이 답한다.
“물론 나야 과거의 언약에 따라 너희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고, 이 화신체가 만들어진 것도 그러한 이유다.”
“황제들도 당연히 이 이야기를 알고 있겠군요.”
응룡은 금귤정과를 조금씩 뜯어 먹는다.
“당연하지. 그렇지 않았던들 내 화신체가 여기에 있을 리가 있나. 그리고 그 두 녀석은 제법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중이지.”
‘관병들. 그리고 금의위와 동창들이 강해진 것도 역시나 그 준비의 일환이군.’
처음 그렇게 강해진 것을 직접 봤을 때도 말세 때문이겠구나, 싶었는데 응룡에게 직접 육성으로 들으니 기분이 남다르다.
응룡이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여러 가지가 준비되는 중이다. 황가에 충성하는 주술사, 술법가, 도사들이 제법 있지. 혹은 황가에 대한 충성심이 없더라도 인간들을 수호하고자 모인 이들도 제법 많고. 천기순행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이름을 가진 것들도 다수 집결하고 있는 중이다.”
“!”
천기순행!
진천희의 눈이 살짝 커졌다.
과거 진천희를 습격하기도 했던 이들.
물론 그들 내부에서도 파벌이 갈려서 누구는 진천희에게 호의적이고 누구는 반대로 공격적이었다.
그리고 진천희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응룡님이 중심이신 거군요.”
그 말에 응룡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고작 몇 마디로 본질을 파악해낸 것이냐? 정답이노라. 이 몸이 여기에 거하기에, 복희의 가호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지.”
“저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호오?”
“겉으로 봐서는 황상께서 자비를 내려 저를 응룡님께 인사시키는 것으로 보이나, 당신께서 원하지 않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응룡께서 황상께 언질을 했다는 쪽이 더 아귀에 맞으리라 봅니다.”
응룡은 피식 웃었다.
“정확하구나. 그래. 아까 한 질문도 그렇고, 너는 이미 단서들을 모아 추론한 것들에 대해 확증을 얻기 위해 내게 묻는 것이구나. 이미 판의 핵심을 직시하고 있었어. 그래…… 내가 인간을 얕봤군. 아니, 너를 얕본 건가.”
응룡은 생각에 잠기다가 이렇게 말했다.
“천제단에 올랐더구나. 그리고 시험을 통과해서 자격을 얻었고. 사실, 지금 황좌에 가장 어울리는 것은 바로 너다.”
“…….”
역시 쌍둥이들은 천제단에 가지 않았다.
그때의 추론이 정답이었다.
허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저 둘이되 하나인 작은 이무기들이 아니라 네가 황좌에 앉아야 제국을 경영하고, 인간의 세계를 바로 세울 수 있다.”
이렇게 제안할 것을 황상들은 알고 있었을까.
왠지 아주 모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천희는 어째서 황상들이 진천희에게서 빙정검을 회수하지 않았는지.
‘이제 그 진의를 알겠군.’
애초에 궁 안에서 금의위도 아니면서 버젓이 칼을 차고 다닐 수 있는 이는 한 명뿐이지 않나?
‘황제.’
우우웅-
응룡의 화신체 뒤로 둥그런 후광이 맺히며, 태양과 같은 광휘가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 이건……. [그 사내]가 보여주었던…… 그 빛.’
으득-
진천희는 이번에도 그의 발에 절을 하고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
경배하라, 경외하라, 발에 입을 맞추고, 칭송하라, 종복이 되어,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가 될지니, 그것은 필멸자 최고의 영복이요, 광영이오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그에게 엎드려 빌지니-
끄드드드득-
잇새로 피가 맺힌다.
“호오, 버티는구나.”
“…….”
“그조차도 자격 중의 하나이지. 군자(君子)는 선(仙)을 앞두고도 쉽게 자아가 망가지진 않으니.”
“왜… 끄윽……. 이런 짓을 하시는 겁니까.”
진천희의 무릎이 반쯤 꺾이기 시작했다.
“절을 하고 내 발에 입을 맞추거라. 그리하면 편안해질 것이다. 그것은 너희 같은 피조물에 새겨진 본능이며. 창세 이래로 만들어진 업(業)이니라. 애초에 너희 ‘인간’은 태초의 의지로 처음부터 열등하게 만들어졌다.”
응룡이 아름다워 보인다.
존귀해 보인다.
진한 향이 심장을 잡아 누른다.
두근두근-
마음을 열고 그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고 싶어진다.
시간을 돌리고, 돌리고, 돌려 여기 왔노라고.
이 권능을 그대에게 바치고 싶노라고.
그러니 이 높은 곳에서 그의 일부가 되어 함께 영겁을 타오르고 싶노라고.
필멸자의 정신이 서서히 지배되는 감각이 밀려온다.
그것은 과거 사마현이 보여준 태고의 광기와는 다른 방식의 광기였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자식이 부모를 보는 감정과도 같았다.
응룡이 다독이듯 말했다.
“네가 황제가 되어 황좌의 주인이 되어라. 그리하면 인간의 세계를 지켜내고, 네가 원하는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만약 저 신화적인 존재와 함께한다면 두 번 다시 고통받지 않으리라.
“…….”
인간을 지키고자 하는 이 고뇌도 끝이리라.
응룡의 가호 아래에서 인류는 영겁토록 편안할지도 모른다.
만세토록 행복할지도 모른다.
해신이 세상을 바다로 물들이고, 오래된 광기가 이 세계를 불태운다 하더라도 인류는 어쩌면 살아갈 수 있을…….
“끄아아아아악!”
그 순간, 진천희는 빙정검을 들어 자신의 허벅지를 찌른다!
지독한 핏물과 함께 고통이 밀려온다.
아픈 건 싫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엎드리게 된다면, 자신이 황위에 오르게 된다면 돌이킬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한 고통이었다.
그리고 진천희는 양손을 자신의 눈으로 가져간다.
“다음에는 눈을 뽑을 생각이냐?”
“저 광휘를 보지 못한다면 지금보다는 낫겠지요.”
“독한 놈. 네놈은 고작해야 인간이다. 인간이 감히 ‘존귀한 자’를 상대로 저항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
진천희는 이를 으득 간다.
응룡이 말했다.
“신안(神眼)을 통해 보니, 진심이 느껴지는군. 대단하구나. 너는 진정으로 나를 거부하고 있구나.”
진천희가 말했다.
“제 스승께서는 일찍이 장님이 되어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제자에게 알려주셨지요.”
이 또한 안배인가.
진천희는 화점(花點)을 느낀다.
그곳에는 스승님이 미리 놓은 돌이 있었다.
과거에는 그저 포석 중의 하나였으나, 살고자 할 때.
제자가 인간으로서 살길을 찾고자 할 때.
또한, 인간으로 죽고자 할 때.
신(神)이라고 하는 주박에서 벗어나야 하는 상황일 때.
과거, 스승님은 장님이 된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희야. 한없이 자애적이고 자해적인 천재야. 너는 하늘을 넘을 수 있겠느냐.
내공을 쓰지 못하도록 폐하여 음공을 쓰는 건 불가능.
온전히 암흑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나날들이었다.
그때 놓았던 돌이 인간성을 지킬 집이 되리니.
지독하게 잔혹하고.
지독하게 냉정한.
허나, 한없이 은밀한 수였다.
“스승이란 자가 제자에게 그딴 것을 가르쳤다고?”
응룡이 기가 막혀 묻는다.
진천희는 떠올린다.
“…….”
-무학을 얻게 된다면 그때는 시력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던 ‘모든 것’ 안에는-
“네. 제 스승님은 맹인으로 사는 법까지 가르쳐주셨지요.”
‘선택할 자유’도 들어 있었을까.
응룡은 지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