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13
진천희는 울컥 목에서 핏물을 느낀다.
놈의 힘을 더는 버티기가 쉽지 않다.
“맹인…으로 사는 것도 익숙합니…다……. 크윽…….”
그의 스승이 제자에게 맹인으로 사는 법을 하나하나 ‘훈련’시키지 않았던가.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진다면 그 또한 거기까지이고, 운명이라는 말을 하면서.
설마하니 신통이 있어 예지를 하신 것은 아니겠으나,
최소한 이런 자가 자아를 뒤섞어 겁박을 하려 할 때.
인간이고자 한다면 인간을 지킬 수 있도록.
언제든 그 눈알을 파내서라도 버텨낼 수 있도록.
스승님.
‘언제나 선택은 내 몫이군요.’
그저 원하는 순간에, 필요한 안배가 되어 있을 뿐.
어떤 결정을 할지는 오롯이 자신의 의지여야 한다.
그것이 제갈린의 방식.
진천희는 스스로의 의지를 느끼며 다시 피를 토한다.
적어도 놈들의 세뇌에는 굴복당하지 않을 수 있다.
‘아아, 지독하군. 내가 가려는 길은 이런 길이었어.’
스승님은 어디까지 가늠하신 걸까.
그래도 다행이었다.
보지 않는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진천희도 ‘안다’.
지팡이 하나만 있으면 족하리라.
우득-
기경팔맥을 돌려 안구에 내공을 불어넣고, 제 안구를 뽑으려고 손끝에 힘을 주는 순간.
응룡이 말했다.
“그만!”
“…….”
“힘을 거두마. 그만하여라. 내가 졌느니라.”
“컥, 커억. 컥…….”
시뻘건 핏덩어리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진다.
아득한 존재가 만들어낸 광휘에 저항하다가 심마가 치밀어 기경팔맥이 크게 상한 모양.
“꺼허어억.”
“그 정도로 내 지배를 피하는 것이냐. 미친놈.”
“…….”
허나, 진천희는 답하지 않는다.
그저 울컥울컥 피를 뱉으며 소매에서 장침을 꺼내 스스로의 몸을 쑤실 뿐.
용각생사침(龍角生死鍼).
과연 무림의 지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생기가 파고들며 가까스로 심마를 멈춘다.
거기에 재생공이 움직인다.
이러기 위해 재생공을 배웠다.
가장 안정적인 내공만을 익혔다.
‘이런 존재와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평생의 준비들을 다 쓰는군.’
제거하거나 죽이는 게 아니다.
그저 앉아서 하는 대화일 뿐.
심지어 응룡은 진천희에게 호의를 가진 자가 아닌가.
그럼에도.
의원은 배워 왔던 모든 지식들을 다 써야만 했다.
응룡은 기가 막힌다는 듯 물었다.
“왜 거절하는 것이냐.”
“그것은…… 옳지 않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옳지 않다?”
아아, 스승님.
저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겁니까.
스승님께서 가르쳐준 모든 지식들은 그저 존귀한 것과 대화하는 데 쓰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안구를 뜯어버리기 전에 끝났다는 것 정도.
그 또한 응룡의 호의였을 뿐.
만약 작정한다면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괜찮다.
그렇기에 더욱, 더욱 저 존재가 진천희의 말을 들어주려고 하고 있다.
만약 굴복하여 발에 입을 맞추었다면 그대로 영원히 인형이 되어 살아갔겠지.
그러니.
더더욱 기회였다.
진천희는 통증을 참으며 핏물을 삼킨다.
새빨개진 이빨과 입술로 하나하나 억지로 발음했다.
“……저는 황제가 될 그릇도 못 되거니와… 끄윽…… 단 한 번도 그런 자리에서 권력을 탐해 본 일이 없습니다.”
황제가 된다면 자신은 두 번 다시 예전처럼 움직일 수 없으리라.
지금처럼 소중한 사람을 곁에서 지키기 어렵거나.
아니, 지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응룡이란 존재의 애완동물로서일 뿐.
결코 인간의 ‘의지’가 아닐 것이니.
“의지라는 것이 그리도 중요하느냐.”
“네. 중요합니다.”
“자유는 없다 하더라도 안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니냐.”
“…….”
의원은 눈을 감는다.
도원향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행복했다. 비록 목장의 돼지나 소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행복하게 살아갔었다.
허나, 결국 그것은 모래 위에 쌓아 올린 행복이었고.
누군가의 변덕으로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평안이었다.
“말세를 이기는 것은 오롯이 인간의 의지여야 합니다.”
“하핫, 나는 그리 악신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에게 온화한 편이지. 나쁘지 않은 대우일 것이니라.”
“괜찮……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핏물을 삼키고, 또 삼켰다.
손상당한 기경팔맥이 주화입마까지 안 가도록 진정시키는 데 최선을 다할 뿐.
“너는 인간에 대해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같구나. 인간은 지배를 받으며 편안해하고, 그 안에서 안정을 취한다. 자유라고 해 봐야 점심에 무엇을 먹을지 고를 수 있는 정도면 만족하는 자들이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낱 의지를 믿는다 하는 것이냐.”
“네.”
“한 알의 희망으로도 인간은 엄청난 일을 하기도 하니까요.”
문득 최근에 만난 한 소저를 떠올렸다.
무학의협, 무학대협이라고 불리는 자였다.
진연.
그녀는 양민이어도 불 속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가 보기에는 별거 아닌 희망이었고, 한 줌의 자유였다.
인간은 자유 속에서 생각했다.
오독문에서 진천희를 지키기 위해 달려든 양민들은 어떻던가.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달려갔다.
어떤 보상도 없으리라는 것이.
그저 돌팔매가 타인에게서 나에게 온다는 사실만이 확실할 뿐이었음에도.
그럼에도 우리는 한 줌의 의지로.
미래가 나아지리라 믿으며 몸을 던지지 않던가.
“강하기 때문에 의지가 있는 게 아닙니다.”
의원은 믿는다.
힘이 모든 것을 갈랐다면, 이 세계는 좀 더 다른 색이리라고.
쿨럭-
의원은 핏물을 뱉으며 웃었다.
“의지가 있기에 강한 것입니다.”
“하핫, 하하하핫!”
응룡이 웃을 때마다 기묘한 파동이 밀려온다.
그 파동이 스칠 때마다 진천희는 내장이 꼬이는 통증이 밀려왔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적어도 그에게 세뇌당하는 일은 없으니까.
의원은 오히려 감각을 예민하게 세워 통증을 받아들인다.
죽을 것 같다.
아파서 죽을 것 같다는 게 이런 뜻이리라.
하지만 한 줌의 의지는, 이제 한 홉의 의지가 되었다.
의지란 결국 나아가면서 커지는 것.
‘마치 촛불 하나가 산을 불태우듯.’
그것은 인간이 어둠 속에서도 나아갈 수 있는.
천만 번의 자정을 지나.
천억 번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게 해 준 방패였다.
“내 호의를 베풀어 너를 위해 근사한 사육장을 만들 예정이었거늘……. 뭐어, 됐다. 발버둥 치는 것을 보는 것도 꽤 즐겁긴 하겠지.”
그는 역시 ‘사람’이 아니다.
그와 같은 존재들에게 인간은 한낱 유흥거리.
최고의 호의란 결국 애완동물 정도이리라.
그렇기에 더더욱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다.
그곳에는 결코 낙원은 없을지니.
마침내 응룡이 의지를 거둔다.
단순히 후광을 거두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의지까지 사라지자 압박감이 사라지고 진천희는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감사합니다.”
“하하핫,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기묘한 놈아. 거기다… 쌍둥이 이무기 녀석들도 확실히 쓸 만하니까. 봉선 의식을 치르고 나면 제국을 지키는 데 더할 나위 없을 터.”
“봉선 의식을 치르는 건가요?”
“그렇다. 때가 무르익었으니. 두 녀석이 봉선 의식을 치르고 진정한 황제가 되어 주지 않으면 곤란하니까. 그만 물러나거라.”
진천희가 억지로 일어나려는데 응룡이 손가락을 흔들었다.
“상처는 치료해 줄 수 없다. 감히 내 ‘호의’를 거절했으니까, 허나, 네가 보여준 그 의지는 오랜만에 옛 생각이 나게 하는구나. 그러니…….”
빛이 서리더니 진천희의 눈앞에 비단 주머니가 나타났다.
“들고 나가 보거라.”
“이것은?”
“너라는 ‘인간’에 대한 내 경의라고 해두지. 의지, 인간의 의지라고 하였느냐.”
응룡은 한참을 곱씹는다.
“기뻐하거라. 이 세상에서 내 주목을 끄는 인간은 태초부터 극히 드물다는 것을. 너는 그중 하나가 되었다.”
…좋아해야 할까?
허나, 응룡이 준 선물들 중에 쓸모없는 것은 없었다.
진천희는 그것을 받아 밖으로 절뚝이며 나간다.
그 모습을 응룡은 한참 바라본다.
“고작 인간이, 신의 의념을 정면으로 저항한 건가.”
마음에 들어 힘을 조금 풀어 탐내어 보았는데…….
인간 중에 그걸 저항할 수 있는 자가 있을 줄은 몰랐다.
특히 눈알까지 파내서 버티려는 모습은 그야말로 광기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런 발상은 누구에게 배운 것일까.’
정말로 그의 스승?
‘스승이란 자가 제자에게 그 짓까지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그 스승은 대체 어떤 심상을 가진 자이기에.
“…….”
응룡 같은 ‘높이 있는 자’가 짐작하기에도 제갈린은 기묘한 부분이 있다.
필멸자답지 않은.
‘그렇기에 빨리 죽었어야 할…….’
허나, 장님이 된 후를 안배하였다 하더라도, 진짜로 그것을 파내는 것은 다른 문제.
진천희는 굴종을 하느니 그 선택지를 골랐다.
그게 더 놀랍다.
‘볼수록 가지고 싶군.’
만약 여기서 더 의념을 발휘한다면 저 반짝이는 걸 두 번 다시 보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 같은 존재에게 썩 아쉬운 일이었다.
저 녀석이 빛날 수 있는 건 그 정신, 즉 본인이 그토록 말하는.
‘의지’ 때문이다.
왜 천계에서 이놈 가격이 올라가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 * *
진천희는 절뚝이며 천관대 밖으로 나왔다.
허벅지는 점혈을 하여 피가 멎었으나 그래도 그동안 흘렸던 피들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다.
의원이 걸어갈 때마다 핏자국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훅, 후욱……. 크윽…….”
응룡의 힘에 저항하느라 힘을 너무 소진했다.
때문에 탈진하여 의식을 잃을 것 같았지만 억지로 버틴다.
여기는 황궁.
어찌 보면 믿을 자는 아무도 없다.
심지어 피로 이어져 있는 황상까지도.
용각생사침이 없었다면 걷기는커녕 이미 고꾸라져서 정신을 놓았을 터.
‘이러라고 만든 건 아니지만, 요긴하게 쓰고 있네.’
한때 팔이 부러졌던 늙은 장인의 혼이, 그 의지가 의원을 걷게 만들었고.
그 의지를 받아 의원은 억지로 뼈와 근육을 움직인다.
걷고, 걷고, 걸어가다가.
정원의 바위에 걸터앉아서 잠깐 호흡을 고를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진천희는 피 묻은 용각생사침을 만지작거린다.
우웅-
의념이 깃들어 있는 침.
무골이 아닌 몸뚱이에 있어 이것은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생각해 보니 황상들이 빙정검을 회수하지 않은 것처럼 용각생사침도 회수하진 않았군.’
이 또한 어느 정도의 안배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은왕야… 아니 금왕야의 방식에 가깝다.
‘역시 황궁답게 음모가 질척이는군.’
의원은 그것을 잘 챙겨 넣고는 다시 몸에 응급조치를 한다.
“후욱.”
심마가 터진 것은 어찌저찌 봉합했다.
현경지독이 잠잠한 것이 다행이었다.
황궁에 그걸 풀었다가는 목숨이 날아갔을 터이니.
간단하게 운기를 하고 드디어 응룡이 준 선물을 돌아볼 시간이 되었다.
비단 주머니를 여니 희고 작은 무언가가 보인다.
‘뭐지? 뼈? 아니……. 이빨?’
용의 이빨이다.
그것을 꺼내려고 하니 사람보다 더 거대해지려는 게 아닌가.
진천희는 급히 도로 주머니에 넣으며 생각했다.
‘응룡의 송곳니라니……?’
비늘에, 보옥에… 이제는 이빨까지.
그야말로 만능의 재료.
그동안 만들어왔던 물건들을 생각하면 신물(神物)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이 탄생할 터.
하지만…….
‘이걸 어디다 쓰지?’
인간이 이런 재료를 다룰 수 있을 리가 없다.
신의 몸뚱이가 아닌가.
‘유호에게 보여주어야겠군.’
후우.
한낱 인간의 목숨값치고는 꽤나 호사라고 하겠지만.
진천희는 전처럼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확인을 받았고.
앞으로의 일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뿐.
‘정사대전이나 정마대전을 걱정하던 시절이 그립군.’
이제는…… 앞으로 이 세계가 어떻게 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대부분의 인간의 일이 그렇지 않던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진 것을 모두 다 펼쳐야 하니까.
“나, 더 움직일 수 있나?”
의원은 가볍게 내공을 주천하면서 몸을 점검하고.
빙정검으로 찔렀던 허벅지를 진맥한다.
“아프긴 해도 걸을 수는 있겠다.”
그러면 되었다.
이 눈은 별을 볼 수 있고.
아직 다리는 미래를 향해 걸을 수 있으니.
그것으로 감사한 일이다.
절뚝, 절뚝.
“크크크큭…….”
웃음이 나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응룡을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그 자아가 산산이 부서졌을 터.
그곳에서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은 한계를 시험하고, 시험하는 일.
“크큭.”
의원은 계속 웃는다.
여기서 울어버린다면 심마가 치밀 것 같았으니까.
“크헤헤헤헷!”
먼 곳에서 기다리던 환관이 진천희를 보고 경악한다.
피투성이로 다리를 다쳐 절뚝이는 의원을.
그럼에도 실성한 놈처럼 계속 웃는 의원을.
소문을 듣고 경악한 내관이 한둘이 아니었으나-
“…….”
결코 그 소문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일은 없었다.
그게 구중궁궐, 제국의 심처(深處).
황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