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25
그렇게 순회를 돌고 나서.
그 기금을 사용해서. 소아마비 같은 난치병 환자의 치료비를 충당하는 것!
물론.
“상대가 난치병 환자라고 해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에게만 적용할 것이며, 이를 위한 정보 조사는 하오문과 개방의 도움을 받는 체계라…….”
무월에게 들어갔다 나온 지 일각도 안 지났다.
그사이에 이미 구체적인 금액까지 정해서 하나하나 말하는 제자를 보니 제갈린은 그만 웃음이 나왔다.
고작해야 복도 끝에서 끝까지 걸어갈 정도의 시간 아닌가.
제갈린이 말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할 줄은 몰랐구나. 참 재미난 계획이야. 그리고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고.”
특히 제자가 예측한 액수와 이야기를 들으며 제갈린이 예측한 액수가 비슷하다.
진천희가 눈을 빛냈다.
“그렇죠?”
“그래서. 이제부터 돌아다녀 볼 생각인 게냐?”
“그래야죠. 일단 주왕부 먼저 갈까 하고요. 그다음에는 선존께 다녀오고 화, 황궁에도 한 번 더 가고요.”
황궁에 다시 간다고 스스로 말을 꺼내놓고는 목소리가 살짝 떨린다.
역시 본인 허벅지 칼로 쑤시고, 본인 눈 뜯을 준비 하면서 내 말 좀 처들으라고 응룡에게 농성한 기억이 어디 가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 녀석은 할 생각이다.
‘두려워하는 걸 보면 무감하지 않은데 그럼에도 나아간다는 건가. 참으로…….’
저 감정을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용기(勇氣)’라고.
‘용기’는 광기의 형제이자 이란성 쌍둥이로 한날한시에 태어나,
비슷한 색으로 타오른다.
왜 응룡이 진천희를 그때 놓아주었는지 제갈린은 생각한다.
그들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할 수 있는 자들.
단순히 육체를 원하는 것이라면 언제든지 가능할 터.
허나.
영혼은 다르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신(精神).
무릇 ‘정신’이란 타고난 천성과 겪어온 기억이 합쳐진 고도의 무언가로.
제아무리 신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정신까지 복제할 수는 없으니까.
‘이 녀석의 정신만큼 희귀한 게 없긴 하지.’
처음에는 모종의 세뇌가 있는 건가 싶었을 만큼 독특한 성격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탐을 내고.
‘의외로 유호는 그 정신이 다소 손상당한다 하더라도 생명을 구하는 쪽이긴 하지.’
그것은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다.
‘존귀한 자’들은 보통 선택하지 않을 것을-
‘…유호만은 골랐다는 뜻이니.’
재미있는 현상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제갈린이 말했다.
“그래. 해 보려무나.”
“!”
스승님의 허락이 떨어졌다.
진천희는 주먹을 불끈 쥐고는 밖으로 두다닥 달려나갔다.
문도 안 닫고 나가는 것을 제갈린은 빤히 바라보다가 의념만으로 문을 탁 닫는다.
그런 제갈린 뒤로 유호가 나타난다.
“저럴 때만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요.”
“그런 아이지 않던가? 그나저나 그 ‘송곳니’는 잘 가공되고 있나?”
“쓸 만한 것이 만들어질 겁니다.”
“호오. 자네같이 깐깐한 자의 입에서 ‘쓸 만한 것’이라는 말이 나오다니.”
제갈린은 잠시 말을 줄이고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겠어.”
* * *
그렇게 얼마 후.
“난치병 치료 선덕기금(善德基金)?”
황궁.
풍하금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풍하금은 황좌에 앉은 채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다.
그 위압감이란 어마어마했다.
그야말로 황제의 권위 그 자체가 하나의 의념이 되어 세계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
아니나 다를까.
주위의 환관들도 진천희를 힐끔 본다.
몹시 공손하고, 황송한 표정이었으나 당혹감을 감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허나, 진천희는 하늘을 우러러 한 줌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제가 이번에 공과격이라는 걸 배웠는데……. 아니! 이게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황상께서도 선업 좀 쌓으시라고 제가 이렇게 방법을 가져왔습니다!”
“내 외부 저잣거리에 나가 본 일은 많지는 않으나, 네 녀석이 약 파는 소리 한다는 것은 알 것 같다. 그래. 그놈의 활인을 위해서 환자 고치겠다고 그러는 것이겠지?”
“물론입니다!”
진천희는 주먹을 불끈 쥔다.
금왕야는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하아아… 네 녀석은……. 돌아간 지 얼마가 되었다고 불쑥 튀어나와서는…….”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는 말 밖에 나오질 않는다.
하지만 도원향을 겪은 진천희 입장에서는 수없이 많은 타인의 목숨을 갈아다가 ‘존귀한 자’가 되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물론, 천문관으로 가서 응룡을 볼 생각은 죽어도 없다만.
‘한동안 다시 권유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응룡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진천희가 말했다.
“환자는 치료받아서 좋고. 저는 환자를 치료해서 좋고. 황상께서는 은덕을 내리시어 선업을 쌓으실 수 있으니 좋고. 상부상조입니다.”
금왕야가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잘도 그런 것을 가져오는구나. 좋다. 그리하라.”
문득 금왕야가 말하려다가 감추는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진천희는 굳이 묻지 않았다.
대신-
“성은이 망극하옵니다아아! 아. 돌아가기 전에 치아 검진하고 갈게요!”
황상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넙죽 받고 거스름돈을 돌려줄 뿐.
풍하금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대체 이 녀석은 사고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남과 다르기에 기이한 것들이 총애를 하는 걸 수도 있겠다.
본인에게는 결코 축복이 아니겠지만…….
“피투성이로 퇴궐한 놈들 중에 내 명령도 없이 이렇게 빨리 자발적으로 입궐한 놈은 네놈이 처음이다.”
“뭐, 필요한 일이니까요.”
방글방글 웃는다.
저 미소는 천성일까.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갑옷일까.
“…….”
원한다면 그의 이능으로 약간의 감정 정도는 가능할 터.
허나 풍하금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하거라.”
“!”
젊은 환관들이 놀란 눈으로 서로 바라본다.
‘황상께서 역정 한 번 안 내고 순순히 허하다니.’
‘심지어 돈을 내놓으라는 안건 아닌가!’
‘대체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군.’
그 속에서.
제독태감만이 그저 작게 미소 지을 뿐이다.
* * *
선존의 어깨로 기운이 유형화되며 찰랑이기 시작했다.
우우웅-
어린아이의 몸뚱이인 것은 변함이 없으나, 숨을 쉴 때마다 공기가 의념에 반응하여 마치 공간 전체가 맥동하는 듯했다.
‘엄청나군. 천마님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물론 밖에 나왔으니 힘을 어느 정도 숨기셨을 터.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선존의 모습이 결코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탈각하여 신선이 되면 이런 모습이 되는 걸까? 아니면 그다음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거지?’
진천희의 손등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대단하군. 실로…….’
예전보다 훨씬 선(仙)에 가까워진 모습.
그런 선존에게 진천희가 다가와 말했다.
“다시 뵙습니다. 그런데… 선업이 모여든 효과인가요?”
그 말에 선존은 대답 대신 다른 이야기를 했다.
“되게 빠르게 재회하게 되었구먼? 이럴 거라고는 생각한 적 없는데…….”
대답하고 싶지 않은 건가.
확실히 선존은 다른 삼존들처럼 숨기는 게 많은 자다.
‘그러니, 눈앞에 보이는 모습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면 안 되는 것이지.’
‘보물 고블린’이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해도.
진짜로 그렇게 취급할 수는 없다는 뜻.
그는 틀림없는 강자이며 삼존이고.
이미 오랜 시간을 살아온 자다.
진천희는 더는 묻지 않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강호를 주유하게 되었습니다요. 사안이 사안이라 서신으로 퉁 치기도 애매하고요.”
선존의 눈이 가늘어졌다.
“흐음, 새로운 거래를 제안하러 온 건가? 지난번 자네 스승과 했던 거래는 썩 만족스러웠지. 그래서 무슨 일인가?”
진천희의 입이 초승달을 그렸다.
“좋은 사업이 좀 있어서… 직접 소개시켜 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렇게 말하니 꼭 무슨 사기꾼 같구먼.”
“어허! 들으면 다르실 겁니다.”
“……더 미심쩍군.”
진천희는 그런 선존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했다.
그 이야기를 다 들은 선존은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영락없는 노인의 습관이나 몸뚱이는 어린아이의 그것이다 보니 그저 애늙은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선존은 진천희를 보며 내심 작게 경탄했다.
‘고작 이립 된 놈이 이렇게 살아간단 말인가.’
엄청난 공덕의 냄새가 났다.
이윽고 선존이 말했다.
“자네. 정말 대단한 놈이었구먼. 허허허. 그래. 좋네. 내 수익의 절반을 그 난치병 치료 선덕기금에 넣도록 하지.”
“좋은 선택이십니다. 이름도 앞 열에 빵빵하게 박아 드리겠습니다!”
“허허. 네놈은 이 짓을 거의 이십 년을 했다는 거지?”
“어…. 굳이 정확하게 세지는 않았습니다만 대충 비슷할 겁니다.”
“우공이산에 비할 바도 아니군. 이러니 천기가 찢어지지…….”
진천희가 물었다.
“그런데 선존께서는 언제 등선하실 예정이신가요?”
“멀지 않았네. 내가 원하는 바 정도는… 이제 곧일세. 다만…… 내가 등선하고 나면 다른 둘이 어떨지 모르겠군.”
그 말의 의도를 진천희는 곧바로 파악해낸다.
“마존과 무존. 두 분 말씀이시군요.”
선존은 눈을 감았다.
“무존이야 무공이라는 욕망에 워낙 충실한 자. 그런 자이기에 역으로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일으키지 않을 걸세…….”
“…….”
“하지만 마존. 그 녀석은 나처럼 순순히 등선하려고 들지는 않을 수도 있으니까. 그거 아나?”
진천희가 물었다.
“어떤…….”
“자네 덕분에 나도 이제 산을 내려가도 된다네. 무존과 같지. 그리고… 마존. 그 녀석도 그럴 것이야.”
“아…….”
그 정도로 천기가 흩어진 것인가.
선존이 손을 젓는다.
“나야 속세에 관심이 없다만……. 마존은 그렇지 않을 걸세.”
“마교가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는 뜻입니까?”
“음……. 그건 알 수 없지.”
“그걸 알려면 천마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겠군요.”
그 말에 선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바로 통찰해내는군. 하지만 세상천지에 누가 마존이 원하는 바를 알겠는가.”
“…….”
진천희는 생각에 잠긴다.
-천살성. 나의 제자가 된 꼭두각시야. 아마도 천기역행의 아해가 함께하겠지. 여(余)가 하늘의 괴뢰(傀儡)에게 전언을 남기노라.
-너에게 명하노니. 다른 소교주들을 모두 잡아먹고, 내 앞에 서라. 그것이 너의 운명이니… 그러면 기다리고 있겠노라.
그녀의 욕망은 다른 삼존의 욕망보다 훨씬 복잡하다.
단순히 무학을 원하는 것도, 그렇다고 더 높은 선(仙)에 다다르는 것도 아니다.
놀랍게도.
‘무림일통도 아닌 듯하지.’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이들을 죽이고, 죽이고, 죽이며.
대체 그녀는 어디에 서려는 것인가.
그리고.
‘그런 자가 어째서 내게 천마신공을 전수하였을까.’
푸른 눈이 수십 가지의 가능성을 순식간에 도출해냈으나-
“…….”
어느 쪽이든 곤란하다.
선존이 물었다.
“그래서, 건네준 진서(眞書)는 잘 쓰고 있나?”
“네. 몹시 대단합니다.”
“자네에게 은(恩)을 얻었으니, 그 또한 셈해야겠군.”
“?”
선존은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