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32
“하하, 발음이 헛나왔군. 사랑이 아니라 ‘사량(思量)’이라네. 사량을 자네에게 가르쳐 주겠네.”
진천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량(思量)? 깊은 생각을 뜻하는 단어로 알고 있습니다만.”
“음, 그렇지. 하지만 본좌는 다르게 쓴다네.”
그녀는 털썩 좌선을 하고 앉았다.
“이리 앉게나.”
진천희 역시 무존 광무백을 마주 보고 앉았다.
무존이 말했다.
“무공을 수련하는 이들은 대다수 그 행(行)과 법(法)을 먼저 익히기 마련이지. 그러다 보니 그 이상의 것이 있음을 잘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야. 여기서 행(行)과 법(法)이 무엇인지 소형제는 알겠는가?”
“…….”
진천희는 잠깐 생각에 잠기다가 서늘한 푸른 눈으로 답한다.
“초식(招式)……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영민하군. 그동안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무공을 전수해 봤건만, 첫 문답에 바로 정답을 맞힌 이는 자네가 처음이라네.”
그리 말하며 가르치는 보람이 있다는 듯 턱을 문지르더니 말을 이었다.
“초식을 수련함은 곧 행과 법을 바로 익히는 것이라. 신(身)과 심(心)에 무공을 담기 위한 것이지. 이를 통해 정기신(精氣身) 혹은 심기체(心氣體)를 합일하면 경지에 이른다고 하지.”
거기까지는 강호의 상식.
그런데 무존이-
“자아. 그런데 말일세. 왜 누구는 정기신의 합일을 할 수 있고. 또 누구는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나?”
불쑥 질문을 던진다.
“!”
진천희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단순하게 말하면 ‘재능 차이’다.
강호의 모든 세가들, 열이면 열 모두 그리 말할 것이다.
여기서 노력을 말하는 이도 있겠지.
드물지만 재능이 있어도 노력하지 않는 자들도 존재하니까.
여기서 노력이란, 단순히 하루 천 번 상단 찌르기 같은 것을 벗어난.
말 그대로 죽을 각오의 ‘노력’을 뜻하니까.
하지만 왜일까?
‘무존께서 말하는 것은 그 이상의 것을 뜻하는 듯하다.’
그렇게 쉬운 대답이라면 묻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진천희는 살짝 상념에 빠진다.
그 모습이 썩 마음에 드는지 무존이 말했다.
“재능과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하면 꿀밤을 때려주려고 했는데 의외로군. 본좌의 꿀밤은 꽤나 아프다네.”
“……그럴 거 같아서 답을 망설였습니다.”
무존이 어깨를 으쓱였다.
“만약 자네가 다른 이들과 똑같은 답을 한다면 이렇게 되물을 생각이었네. ‘왜 살수 집단이나 마교 같은 곳에도 경지에 이른 이가 없는 것일까?’라고.”
“!”
“아아. 마교와 살수 집단을 예로 든 이유는 그쪽에는 혹독한 강제 교육기관이 있어서 그런 것일세. 강제로 수련시키고, 강제로 노력하게 만들지. 그런 곳이 어떤 곳들인지 소형제도 알지 않나?”
살막, 그리고 마교.
그쪽 산하의 교육기관이 어떻게 움직이는 모두가 알고 있다.
고아들 중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을 선별하여 학대에 가깝게 마공, 살공을 수련시킨다.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보통 ‘교재’로 쓰인다.
실전을 익히기 위해 같은 수련생들 손으로 참살당한다는 뜻이다.
여하륜도 그 고독(蠱毒)에서 살아서 기어 나왔다.
그야말로 인세의 지옥.
끔찍한 곳이나, 동시에 무존의 말이 맞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곳은 게으름을 부릴 수가 없다.
강제적으로 노력해야 하고, 살기 위해서 투쟁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정기신의 합일을 이루고 화경이라는 경지에 이르는 이를 특별히 다른 곳보다 많이 배출하나?
‘전체적인 머릿수만 본다면 많다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인구 대비로 따진다면 큰 차이가 난다고 하기 어렵다.’
무존이 말했다.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가, 없는가. 그 핵심은 바로 사량(思量)에 있다네.”
“깊이 생각하고, 깊이 헤아려야 한다는…… 말이군요.”
“실로 그러하다. 사람은 두 다리로 대지 위에 서 있기에 인(人)이라고 한다. 그러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니 이것을 인간(人間)이라! 인간이 되었기에 스스로를 자각하여 생각하게 되었으니 이는 자존(自存)일지니. 그리하여 인간은 생각하여 헤아리게(사량/思量) 되었도다.”
그녀는 그리 말하며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나는 이를 ‘사랑’이라고도 부르지. 깨달음이란 본디 사량(思量)에서 오고 사랑해서 온다.”
“…….”
실로 기묘한 말이었다.
현묘한 구절이기도 했다.
허나, 지나치게 깊은 무학인 까닭에 바로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특히나, 피상적으로만 본다면 불가의 가르침처럼 느껴질 뿐,
실질적인 무공과 연관점을 바로 찾기는 어려웠다.
그 모습에 무존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모르겠다는 얼굴이로군, 소형제.”
“예. 사량. 깊이 생각하고 헤아리는 마음. 그것 자체는 검수라면 누구라도 하고 있는 일 아닙니까?”
“정말 모두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예? 당연히 모두가…….”
멈칫-
그 순간, 진천희의 동공이 부풀어 오른다.
‘정말로 모두가, [사량]을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가?’
무존이 흥얼거리며 말했다.
“부처께서 이르시기를 고개를 돌리면 피안(彼岸)이라고 하셨지. 실로 그러하다네. 그러나 과연 모든 이들이 그러할 수 있는가? 자네는 어떤가? 고개를 돌려 피안을 볼 수 있는가, 소형제?”
“…….”
불경 같다 생각했는데 진짜로 무존은 불경 같은 가르침을 들고 왔다.
더 알기 어렵다고 생각하려는 찰나.
그녀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말을 이었다.
“이 사고(思考)한다는 것은 우리들 인간을 더 낫게 만들어 주는 근원적인 것이지만, 반대로 더 나빠지게도 만들기 때문이야. 그렇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사량인 셈이지.”
그녀는 스산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갈세가의 현원전단신공은 미친 무학이지. 제대로 익힐 수 있다면 무조건 경지에 이르니까.”
“!”
그제야 진천희는 무존이 이해하는 바를 깨달았다.
“드디어 눈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는군.”
“네. 현원전단신공이 사람에게 사량(思量)할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겠군요.”
“정답일세. 소형제.”
“그렇다면 저에게 가르쳐 주실 게 없는 건 아닌가요?”
“역시나 정곡을 찌르는군.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지.”
그녀는 몸을 일으킨다.
“후후후후. 이것은 아마도 자네 스승도 모를 것일세. 그러니 내 이리 가르쳐 준다고 하는 게 아니겠나? 자. 반 갑자의 공력만 사용할 터이니 한번 막아 보게.”
무존은 불쑥 손을 내뻗기 시작했다.
느린 움직임.
현원전단신공으로 보니 더욱 느려서 마치 세계가 정지한 것처럼 보인다.
“아, 지난번처럼 기절하면 가르침은 끝이라네.”
“후우.”
“나는 꽤나 엄한 스승이거든.”
맞는 말이었다.
무존은 진천희에게 충분히 좋은 가르침을 주었으나.
기절한 순간 전수 시간은 끝이 난다.
그리고 광무백의 일격은 비록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해도 ‘아프다’.
여기서 아프다는 뜻은.
‘죽지 않는 한도 내에서’ 뒤지게 아프다는 뜻이다.
스으으윽-
진천희는 현원전단신공을 극성으로 돌려.
손의 모양, 각도, 흔들림을 확인한다.
‘용호장(龍虎掌)이군.’
무존이 다음 수로 쓸 무공이 무엇인지 단숨에 간파했다.
종잡기 어려운 무존의 일격이지만 이쪽도 무학에 대한 조예가 있어 가능한 일.
용호장.
용과 호랑이를 흉내 낸 장법.
‘일단 손바닥의 형태로 보아 용호장의 초식 중 하나인 비호장(飛虎掌)인가.’
진천희는 작게 심호흡을 하고는 손을 뻗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반 갑자의 공력만 가지고 손을 뻗는다.
“호오. 똑같은 공력으로 막아낼 수 있으리라 보는 건가? 오만하군그래.”
그리 말하면서도 무존의 목소리는 꽤나 들떠 있었다.
그녀는 진천희를 가르치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진천희들이, 진천희 안에서 속삭인다.
‘비호장에 대해서는 이미 아는 바가 여럿 있지 않나.’
‘때문에 그를 파훼(破毁)할 수 있는 초식도 알고 있어.’
‘강호의 무공이라는 것은 이미 파훼법이 널리 알려진 경우도 있는데. 용호장도 그럭저럭 알려졌지.’
‘무존이니 변주가 있을 거야.’
‘반 갑자면 무력화시키는 게 가능해.’
그렇게 반격하는 진천희의 손이 다가가려는 순간.
비호장이 허공에서 갑자기 변하는 게 아닌가!
용조수(龍爪手)-!
“!?”
진천희가 경악했다.
‘어떻게 중간에 용조수로 바뀌지!?’
무공에서 내공을 사용하는 채로 초식을 전개한다는 것은.
해당 행동의 형태에 맞춰서 내가진기가 움직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중간에 손의 모양을 바꿀 수가 없다.
‘보통 변주를 줄 때 비슷한 초식으로 바꾼다면 모를까.’
그거라면 진천희도 강적을 상대할 때 수차레 사용한 적이 있다.
“과연 바로 눈치채는군.”
무존이 흡족하게 웃었다.
용조수는 다르다.
용호장과 용조수는 기혈에 들어가는 기운의 양과 속도 그리고 기혈의 위치마저 서로 다르니까!
만약 중간에 단번에 바꾸어 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현대인의 감각으로 쉽게 설명하면.
마치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어! 이 길이 아닌데? 하고 유턴해서 갑자기 역주행하는 것과 같은 행위!!
그런데 그걸 무존은 너무나도 쉽게 해버리는 것!
과과과광!
용조수와 진천희가 뻗어낸 무당파의 면장이 충돌한다.
원래라면 무당파의 면장이 간단하게 파훼했어야 했다.
처음 시작한 초식이 비호장이었으니까.
허나, 용조수라면 다르다.
흡사, 가위바위보에서 가위를 냈다가 바위를 내는 듯한 행위!
진천희의 손이 뒤로 밀린다.
쿵!
뒤로 삼 보 밀려나는 것을 무존이 흥미롭게 바라본다.
“여섯 보는 밀려나게 하려 했는데, 고작 삼 보인가. 더 골려 주려고 했는데 아쉽게 되었어.”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 겁니까?”
“크하하핫! 놀랐지?”
무존은 광오하게 웃었다.
“이게 바로 초월심무 사량(思量)일세. 생각하여 헤아린다! 그리하여 찰나의 순간에 무공의 진퇴마저 바꿀 수 있는 거지!”
“아니. 중간 과정이 빠진 것 같습니다만…….”
“그렇기에 초월심무 아니겠나?”
사기 가위바위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상대가 무존이면 다르다.
‘내가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찰나 시간 동안 쓸 수 있는 수가 수십 배는 증가하게 된다!’
진천희는 감탄했다.
오행신공으로 서로 다른 내공을 충돌시키는 수극화.
그 수극화조차도 준비 동작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무당파의 양의심공도 마찬가지.
한 번에 두 가지의 내공을 사용할 수 있으나.
완전히 근본까지 서로 다른 무공을 동시에 펼치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다.
양의심공이 비인부전인 이유 중의 하나.
허나, 이건 다르다.
근원부터 완전히 다른 무공을 초식 자세도 없이 동시에 사용하는 것.
‘이런 무공이 현실에 있단 말인가!’
충격을 받는 진천희.
“대단하군요!”
“그래. 자네가 싸우고자 하는 존재들에게도 한 방 먹일 수 있지.”
그 말에 진천희의 눈이 살짝 커진다.
“설마 직접 싸워 본 적 있으십니까?”
무존이 웃는다. 그러고는 긍정을 담아 여상하게 말했다.
“…그걸 자네에게 가르쳐 준단 말일세.”
이 자리에서 무존은 구명지은의 은혜에 답하기 위해.
하늘을 상대로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고자 했다.
“인간은 뭐든 할 수 있다네. 그건 상대가 선(仙)이어도 마찬가지인 것이지.”
시간조차 쪼개는.
현원전단신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