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39
그렇게 환자 하나를 치료해서 보낸 후.
진천희가 다시 묻자 천우가 그제야 대답했다.
“기초적인 맥 정도는 보게 되었어요.”
“맥경(脈經)은 다 익혔니?”
맥경은 고대에 왕숙화(王叔和)가 쓴 저서로, 맥을 잡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의서다.
이걸 읽지 못하면 맥을 안다 볼 수가 없었다.
“네. 다 외웠습니다.”
“맥이 미끌미끌하고, 약한데 빠르게 뛸 때 보통 우리는 무엇을 의심하지?”
“…….”
천우는 턱을 쓸며 생각에 잠기다 물었다.
“환자의 나이는 어찌 됩니까?”
자연히 물어야 할 질문을 꺼내니 진천희는 기분이 좋아졌다.
‘질문 속 함정을 잘 파악했군.’
미숙한 아이들은 책에서 외운 병의 후보부터 좔좔 읊기 시작한다.
그러면 오답이다.
제대로 공부를 했다면 진천희의 질문이 막연하다 느껴야 했다.
“음, 육순의 남성으로 하자. 풍채는 좋은 편이고, 소변을 요즘 자주 보는 편이지. 이거 때문에 잠도 자주 깨고. 맥은… 이렇게, 퉁, 퉁, 퉁.”
진천희가 탁자를 직접 두드려 맥을 설명하자 천우가 곧바로 답했다.
“맥이 미끌거리는 것을 보니 담습(痰濕)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고, 맥이 약한데 빠른 것을 보아서는 몸 안에 기가 허한데 열이 많은 상태를 뜻하지 않습니까? 물론 이것만으로는 보기 어렵고 환자의 안색이나 평소 식습관 등 이것저것 물어보아야겠지만, 가장 먼저 소갈(消渴/당뇨)을 떠올리긴 할 것 같네요.”
“네가 맥경(脈經)을 익힌 게 맞긴 하구나. 그 외에 뭘 읽었니?”
“내경(內經)과 난경(難經)을 익혔습니다.”
“흐음…….”
진천희는 시험 삼아 천우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음, 폐병 환자 진맥 말입니까? 폐병 환자는 어떤 식으로 폐병이 왔는지 진맥을 해야 하니 보통 부맥(浮脈)을 먼저 확인한다고 공부했습니다. 염증이 차 있는지 확인을 하고, 그 후에 활맥(滑脈)을 보지요.
-일반적인 폐병일 시, 약재는…… 잘 달인 감초 물은 염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여기에 열이 높으면 마황을 넣고, 가래가 심하면 지모를, 백작약 뿌리를 조금 넣거나 아니면 청피를 가미한다고 합니다.
-백작약 뿌리는 잘못 말리면 독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대체할 만한 약재로는 백출도 있습니다. 백출을 산초와 함께 오래 끓여서 진액을 만들면 백작약 정도의 약효가 나오기도 합니다.
-몸에 화가 많아 맥이 크게 뛸 때는… 음기(陰氣)를 담아 태충(太沖)을 누르는 게 좋은데, 때로는 손바닥의 중추(中渚)혈도 괜찮다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백린의각 하의원 수준은 되는데?’
물어볼 때마다 재깍재깍 답을 하는 것이 신통방통하다.
‘책으로 읽은 건 있지만 실전은 좀… 많이 부족한 것도 하의원 삐약이들이랑 비슷하고.’
“천우야. 어쩌다 이렇게 각 잡고 공부했니?”
“말했다시피… 무림맹에서 많은 일이 있었거든요.”
“…….”
진천희는 천우가 안쓰러워졌다.
‘애가 무공 공부하기도 어려울 텐데 의술도 공부를 이 정도로 하다니. 우리 천우 현대 지구였으면 서울대 의대 갔겠다.’
무림맹은 대체 애를 얼마나 쥐어짜 냈던 걸까.
진천희는 저도 모르게 소매에서 사탕을 꺼내 산만 한 덩치의 아우 입에 물려주고는 함께 일을 했다.
“네가 입구에서 환자를 안내하면 되겠다. 경증 환자와 중증 환자, 그리고 잘 모르겠는 환자. 이렇게 셋을 분류하면 돼.”
“아, 네네.”
“어차피 내가 다시 볼 거니까 걱정은 하지 마. 중요한 것은 모르는 건 모르는 쪽에 분류해 두는 거야.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면 안 돼. 알았지?”
“네, 네네.”
왜일까.
천우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강호인이란 모름지기 무학에 대해 몰라도 끝까지 고찰하고 혼자만의 답을 내려 검로를 그려야 하지 않던가.
‘망설임이라는 것 자체가 망념(妄念)으로 치부될 텐데.’
자신의 검로에 확신을 갖는 자세가 중요했다.
그것이 무학(武學)이니까.
‘어째서 의술은 반대인 겁니까. 형?’
의원에게 있어서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게 꽤 중요한 문제 같아 보였다.
오히려 끊임없이 의심을 해야 하는 학문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망념(妄念)이 곧.
다른 길을 여는 고찰(考察)이 된다.
‘결국 서는 자리에 따라 [망념]이 되고 [고찰]이 되니, 참으로 신기하구나.’
진천희 덕분에 작은 깨달음을 얻은 천우.
천우는 그렇게 진천희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맥경이나 내경, 난경을 물어본 것치고는 의술에 대한 지식보다는 몸을 쓰는 일을 주로 돕긴 했지만.
개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형, 약재 처방전은 직접 적으실 것 없이 입으로 불러 주시면 제가 대신 써서 들려 보낼게요.”
“오! 그래 주면 고맙지.”
진천희는 그런 천우를 보며 생각했다.
‘참 희한하네.’
사람들은 천우를 사람 퍽퍽 죽이는 사파 마두로 보지만.
실상은 눈치도 빠르고 일도 싹싹하게 잘하는 녀석이라고.
이런 면을 아는 사람은 강호에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아쉽다고.
‘다들 천우를 외모로만 보지 말고 내면도 봐주면 좋겠건만… 이제는 경지가 너무 높아져서 힘들려나.’
무공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경외를 품고 천우를 볼 거고.
천우의 본질을 간파해 낼 사람은 거의 없을 테니-
‘그래도 친한 지인 몇만 알면 그걸로 족한 게 강호이기도 하지.’
진천희도 천우의 첫인상에 대해 많이 내려놓았다.
‘그나저나, 속도가 빨라진 만큼 환자들도 엄청 몰려오는군.’
잠깐 괜찮아졌나 싶었는데 다시 줄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아픈 사람이 많다는 뜻.
진천희는 문득 밖에서 또 일단의 무리가 오는 게 느껴졌다
“천우야. 밖에 누가 왔는지 좀 확인해 주라. 의원들 온 거면 이쪽으로 보내고, 아니면 좀 기다리라고 해.”
창문도 보지 않고 환자를 시침하며 곧바로 말하는 진천희.
그 모습에 천우는 내심 감탄하며 말했다.
“네. 형.”
천우가 나갔다.
이윽고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천우가 말했다.
“의원들이에요. 형!”
“아, 들어오시라고 해.”
문을 여니 백린의각 분타 의원들이 아닌가.
“소각주님!”
“와우, 제대로 오셨네요.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으시군요.”
“호남성에 비해 호북은 여유가 있습니다.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달려왔지요.”
삐익!
뇌진이 의원의 어깨에 앉아서 한쪽 날개를 쫙 펼쳐 ‘나 잘했지?’ 포즈를 취한다.
진천희는 뇌진의 부리에 커다란 육포를 물려주었다.
삑삑삑!
만족스러운지 와구와구 먹었다.
“오셨으니 다행이네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진천희는 곧바로 인수인계를 했다.
* * *
‘좋아. 의식주. 거기에 의료 지원까지. 얼추 끝내긴 했군. 이제… 남은 건 성주에게 일을 떠넘기고 호남성으로 넘어가는 것 정도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밖으로 나오니 저 멀리 천우와 대치 중인 사람들이 보였다.
딱 봐도 기도가 남다른 장년인이 한 명.
그는 장군갑을 입고 있었는데 과거 숙신족 전쟁 때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저 평범한 노인이 한 명 서 있었다.
천우가 전음을 보냈다.
[호북성주와 호북 도독부의 도독이라고 하네요.]도독.
직위로 치면 후장군(後將軍)과 동급.
제국의 장군 직위는 대장군(大將軍)이 관부의 가장 높은 직위이며, 그 밑으로 표기장군(驃騎將軍)과 거기장군(車騎將軍), 효기장군(驍騎將軍)과 같은 직위들이 있는데.
후장군은 바로 그 아랫급.
그리고 도독이라는 직위는 바로 그 후장군과 같다.
성주와 동등한 권한을 가진 이 직위는 한 개 성의 군권을 총괄한다.
그리고 진천희가 다가오자.
부리부리한 인상의 장년인의 시선이 진천희를 향했다.
그는 절도있게 진천희에게 예를 표했다.
“진 도어사를 뵈오이다. 소장은 호북 도독인 황령이라고 하오.”
호북 도독 황령(黃零)!
진천희는 곧바로 현원전단신공을 돌려 관부 인명록을 꺼냈다.
다름 아닌 궁술로 화경에 이른 장군으로.
삼국 시절의 촉 황제 유비 휘하의 노장이며 명장으로 알려진 황충(黃忠)의 후예!
황충 하면 강궁이며, 명궁수로도 알려진 장군.
그래서 그런지.
이 사람도 등에 큰 묵궁(墨弓)을 메고 있었고, 그 기도가 아주 강렬하고 예사롭지 않았다.
‘일단 경지는 척 봐도 화경. 그러고 보면… 지존천마에는 관부에 속한 고수들은 안 나오지만, 내 경험상 장군들 중에서도 상위에 있는 장군들 대다수는 화경이긴 해.’
옛날에 숙신족과의 대전쟁 당시의 대장군 육연도 그랬고.
참고로 육연은 관부 계열에서는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진 대장군이었다.
현재 화 제국에는 삼 대 장군이 있으며 이들은 각각의 국경을 방어하고 있는 중이고.
어쨌든.
‘도독이라면, 관부에서 보면 적어도 서열 10~20위권 안쪽인가?’
급으로 치면 도어사보다 반 수 아래라고 할 수 있겠지.
물론 권한은 도어사가 더 높지만!
‘애초에 감찰권을 가진 도어사는 황제 직속이라서 권력과 권한이 더 강할 수밖에 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움찔.
진천희와 시선이 마주친 두 사람 모두 은근히 피하는 게 아닌가.
‘음, 나한테 처맞을까 봐 두려워하는군.’
홍수가 크긴 했지?
도어사는 감찰기구의 왕이며, 모든 관리들의 악몽이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도 일견 이해가 되었다.
이윽고 노인이 표정을 가다듬고 진천희에게 예를 표했다.
“진 도어사를 뵙습니다. 호북성주인 권렴(權斂)이라고 합니다.”
기세는 영락없는 평범한 노인이나 입고 있는 옷은 화려한 비단 궁장.
진천희 역시 두 사람에게 예를 표했다.
“도어사이며 호부시랑의 직책을 가지게 된 진천희라고 합니다.”
그렇게 서로 인사를 나눈 후.
황령이 물어보았다.
“진 도어사께서는 이곳에 무슨 일로 오신 것이오?”
호북 도독 황령의 질문은 타당했다.
왜 남의 구역에 와서 설치는 거냐는 걸 물어본 것!
‘관리 사회에서 관할권 문제는 아주 중요하긴 하지.’
왜냐고?
나중에 문제 생기면 발뺌해야 하니까!
물론 공이 생기면 자기 거라고 우기는 것은 필수!
이것이 사바나 화 제국을 살아가는 관료의 기본 스킬이라고 할 수 있겠고.
진천희가 담담히 답했다.
“황제 폐하의 어명입니다. 호남성의 홍수 피해를 해결하라는 명이 내렸지요.”
그 말에 황령은 흠칫한다.
그리고 내심으로는 경악하고 있었다.
‘황상의 총애를 받는 것으로 유명한 자가 나타났다고 해서 혹시나 했는데 폐하께서 친히 내리신 명이었단 말인가!’
숙신족의 전쟁 때에 전선에 나가지 못했기에 황령은 진천희를 직접 본 것이 처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문은 익히 들었다.
황제의 애첩.
황제의 주치의.
현경에 들어선 절대 고수.
월하미인(月下美人).
천하제일신의(天下第一神醫) 등등…….
당금 관가(官家)에서 진천희를 모른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소문이 워낙 무성하기에 그를 잘 믿지 않는 이들도 많았고-
‘허나, 나 역시 따로 듣는 귀는 있지.’
사바나 화 제국의 도독쯤 되면 별도의 정보력이 있기 마련.
황령은 의외로 관료 중에서도 좀 열린 마인드의 관료였고.
진천희에 대한 소문을 거의 대부분 믿고 있었다.
그런 그가.
빠르게 판단했다.
‘이것은 황상의 의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물러설 수는 없다.
공식적으로 내려온 명령인가 아닌가는 황제의 의지라고 해도 나중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니까.
때문에 황령은 속으로 생각을 이어 나가며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그런 황령의 속내를 진천희는 초월심무.
인의(人義)로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오우, 머리에 짱돌 좀 굴리시네요우~’
진 교수 본인도 사람 한두 번 굴려 본 게 아닌 상황.
푸른 미친 눈으로-
‘어디 뭐라고 하는지 구경 좀 해 보실까요우?’
상대의 속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