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42
진천희는 이를 꽈악 깨물며 생각에 잠긴다.
‘예상한 것보다도 더욱 큰 참사가 이어지고 있겠어.’
생각이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문제가 있다.
생각은 이렇게 홍수가 되어 불어나는데 그것을 처리하는 자신은 결국 평범한 범인(凡人)에 불과하지 않던가.
스승님이라면 그 홍수조차도 너끈히 감당하여 넘어가겠지만 진천희는 다르다.
‘어린이 도서관’이 제아무리 정보들을 주워다 준다고 해도 진천희 자신이 그 정보를 검토하고 처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으니.
‘현원전단신공을 극성으로 돌리는데도 쉽지 않군.’
어찌 되었건 이 일을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한다.
단순히 홍수뿐만 아니라.
주술에 사용될 대가가 얼마나 클지 짐작이 되지 않으니까.
‘혈선교가 어찌 이런 일을 벌이는지는 알 수 없어. 결과적으로 그들이 말세를 원하는 것은 알고 있으나, 뭔가…… 그것만 가지고 있는 듯하진 않고.’
삼절추호가 보내온 암호문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혈선교 모두가 바라는 것은 말세.
정확하게는 세상이 종말한 뒤를 원한다고 했다.
모든 것이 절멸하고 난 이후.
그것을 원한다고.
허나, 그 이후에 무엇이 이루어지는지는 기억이 두서가 없어서 해석해 내기 쉽지가 않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십천군들 사이에서도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다르다고.
‘그래. 이 지랄이 계속되다 보면 확실하게 오기야 하겠군.’
한두 번까지는 어찌저찌 사람의 지혜로 극복해 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다음은 어떨까?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다 쓰고 난 후.
인간이 버틸 방법이 있을까.
‘질문을 바꿔 보자. 그들이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건가?’
의원은 시점을 바꾼다.
결과만 보지 않고 현상, 그 ‘본질’을 관측했다.
북해빙궁에서의 일.
진주언가에서의 일.
어인족과의 일.
귀곡문에서의 일.
도원향에서의 일.
그 밖의 자잘한 만남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았다.
‘그들이 그동안 이 짓을 몰라서 안 했을 리는 없다. 못 했었던 거지. 그게 가능하게 된 이유가 단순히 천기가 어그러졌기 때문인가?’
[불가(不可)].‘어린이 도서관’이 곧바로 답을 내린다.
맞는 말이었다.
단순히 천기가 어그러졌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면 진즉에 시행했을 터.
거기다 위치도 항주 같은 인구 밀집 지역에 이런 미친 홍수를 만드는 쪽이 훨씬 더 멸망을 앞당기기 좋으리라.
‘거기다 어차피 내버려 둬도 지금 자연재해와 싸우고 있지.’
지난번 가뭄처럼.
가만히 놔둬도 홍수, 역병, 가뭄. 삼관왕이 다 오고 있다.
다만 하늘이 내린 시련은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좀 더 자연스러웠지.’
연필로 쭉 그린 것처럼 그 한 곳만 비가 퍼붓는 형태는 아니었다.
‘인위적이지. 지금은.’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 지금 혈선교가 일을 벌일 수 있는 이유.
그 이유란 게 있었으리라.
수없이 흘러가는 정보의 홍수 속.
그때, 진천희는 보잘것없이 흘러가는 나뭇조각 하나를 붙잡는다.
기억의 나뭇조각.
‘내 생사를 제쳐 놓고, 이 세상 전체에 가장 위험했던 일을 꼽아 본다면…….’
어인족 사건이 가장 위험하지 않았나?
사마현이 지니고 있었던 태고의 광기도 물론 위험했으나-
‘그것은 사마현이라는 [문(門)]을 통해서 무언가가 넘어오는 느낌이었지, 고대의 신이 바다를 불어나게 만들어 직접적으로 세상을 멸하는 것과는 달랐어.’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앞으로 세상을 모두 물로 채워 필멸자를 절멸시키고, 나의 아이들을 위해 다시 만들겠노라.
-그런 네게 상을 주고자 한다. 축복을 받겠느냐?
-그대. 물속으로 들어가라.
진천희는 저도 모르게 목을 문지른다.
익사는 꽤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보았던 물속 풍경은 어땠던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쿨럭.
저도 모르게 기침이 나왔다.
‘이 폭우 역시 어떤 거대한 계획의 시작일 뿐이라면. 이미, 어인족의 신과 같은 무언가가 깨어난 것이라면?’
그 순간.
“!”
마치 오셀로를 하듯 순식간에 무의식의 흑돌이 표층 의식의 백돌로 뒤집히며 수십 가지의 경우의 수가 떠오른다.
최악부터 최선까지, 수많은 작은 진천희들이 조잘거린다.
진천희는 천우를 돌아보았다.
“천우야. 가자. 일단 성도로 가야겠어.”
“예. 형.”
천우는 형의 머릿속은 모른다.
다만 그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임은 알고 있다.
그리고 아마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을 거라는 예지 같은 확신까지도.
호남성의 성도 장사(長沙).
“그곳에 가면 단서가 있을까요?”
“단서라기보다는 증거에 가깝겠지.”
“?”
천우는 형이 무슨 뜻으로 말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일단 가자. 네 말대로 가면 단서가 많을 거야. 성도이기 때문에 금의위, 동창의 정보원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아, 네네.”
“또한 이 지역은 사도련의 영역이므로 개방도들의 조력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하오문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평소보다 말이 빠르다.
천우는 형의 푸른 눈이 점멸하듯 깜빡이는 것을 본다.
마치 뇌우 속 번개가 반짝이는 것 같았다.
‘대체 형은 무엇을 찾은 걸까?’
저 푸른 눈에서 시선을 돌리고 싶었다.
“…….”
하지만, 도망칠 곳이 없었다.
도망칠 이유도 없었고.
그러니 천우는 형을 따르기로 했다.
“가죠. 형.”
“응!”
* * *
푸학.
피를 한 바가지 토하는 중년인.
중년인은 기묘하게도 팔 한쪽이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시체가 세 구 정도 더 있다.
그런 중년인이 일그러진 얼굴로 앞을 보며 말했다.
“네놈은 대체 누구냐…! 혈선교라고 해도… 우리를……. 양산박에 속한 우리를 이리 다룰 수 없거늘……!”
그런 그 사람 앞에.
사람의 팔 한 짝을 잡아챈 상태로 히죽거리고 있는 사내가 하나.
“하하하핫!”
그 사내는 온몸에 피를 묻히고는 어딘가 나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느린 움직임 때문일까?
사내의 눈물점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그의 옷은 시뻘건 피로 물들어 있었는데.
폭우가 퍼붓는 와중에도 그 피는 좀처럼 씻기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이 사내의 이름을 말하자면-
“백천군.”
“뭐?”
“이 몸으로 말하자면, 그 씹어먹을 천기에 의해서 모든 것을 잃고 방황하는 방랑자. 낙원을 찾아 떠도는 여행객. 혈선교의 백천군이라고 합지요.”
그는 흡사 경극을 하듯 박자가 있는 어조로 말을 뱉었다.
그러고는 마찬가지로 경극에서 인사를 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손에 들고 있던 것은 눈앞 중년인의 팔.
그 팔을 악력만으로 으스러뜨려 과즙을 짜듯 피를 짜내더니 옆으로 훅 던져 버렸다.
“천기순행……. 옛날부터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작자들이었단 말이죠~ 그래서 기쁘답니다! 그간 잘도 숨었는지 찾을 수 없었는데 이리 떡하고 나타나 주시다니! 아아~♬”
“이 사악한 것…! 네놈은… 사람의 목숨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
그 말에 백천군의 미소가 순식간에 메마른다.
장난기가 사라지니 그의 목소리가 조금 변한다.
“……타인이라고 생각하지. 타인. 타인. 타인! 무미건조하고, 상관없으며, 연이 없는 자들. 그렇지 않나?”
그 기묘한 어조에 중년인은 생각한다.
‘정신이 망가진 건가.’
가끔 마공의 영향으로 이렇게 망가진 놈들이 존재하곤 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마공을 익히면 늦든 빠르든 저렇게 되기 마련이니까.
기묘한 것은 저 정도 지경에 이르면 정기신의 균형이 깨져서 중년인이 이렇게 당하지는 않았을 터.
‘정신이 저토록 망가졌는데 어찌하여 정기신(精氣神)이 온전한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벅-
이윽고 백천군이 중년인에게 다가와 쭈그려 앉는다.
그와 눈높이를 반듯하게 맞추고는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또 다른 목소리다.
“천기순행. 그으 잘난 천기를 지키기 위해서 희생한 사람의 기분을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어. 그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봐 봐. 지금 네 앞에 있잖아아?”
흡사 한 사람 몸에 수없이 많은 타인들이 꾹꾹 차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큭. 이… 이익……!”
콰득!
그 순간 백천군이 중년인의 턱을 한 손으로 붙잡는다.
이다음이 어찌 될지는 안다.
중년인은 눈동자만 굴려서 옆을 본다.
하나같이 머리통이 터져 있었다.
“자아……. 이제. 잘 시간이야? 좋은 꿈 꾸라구?”
꽈드드득.
단말마를 지르기도 전에.
백천군은 그렇게 천기 순행의 절세 고수 셋을 순식간에 으깨 버렸다.
그것은 비유가 아닌 물리적인 의미 그대로.
백천군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먼 곳을 바라본다.
그곳에는 빗줄기의 벽밖에 존재하지 않을진대,
그럼에도 마치 다른 것이 보이는 듯 백천군이 말했다.
“우리 ‘가가’께서 오셨으려나~?”
사내는 즐겁다는 듯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간다.
빗줄기가 좋았다.
특히 이런 비가 가장 좋았다.
모든 것을 삼킬 빗줄기가.
* * *
장강을 따라서 내려와서 처음 마주한 도시는 악양(岳陽)이었다.
동정호에 인접한 유명한 도시 중 하나이며, 그중에서도 악양루(岳陽樓)가 아주 유명하다 할 수 있겠지.
유비, 조조, 손권이 다투던 삼국시대.
오나라의 유명한 지장(智將) 노숙이 만들었던 누각이었는데.
그것을 개보수해서 악양루라고 이름을 바꾸고 객잔 형태로 개축한 것.
이후, 문인들이 시를 읊는 명승지가 되었다고 한다.
그 악양루 역시 당연히 물에 잠겨서 지붕만 겨우 보일 뿐.
그런 악양을 지나서 진천희는 동정호를 따라 남하.
당연히 동정호 인근은 전부 물에 잠긴 상태라 할 수 있겠다.
“사람의 흔적은 없으나 시체는 제법 자주 보이는군.”
“네. 칼 맞아 죽은 시체도 있고, 익사한 시체도 보이네요.”
그 난장판 상태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법했다.
진천희는 시신들을 살피더니 이렇게 말했다.
“놀랍게도 이 많은 자들이 한순간에 죽었구나. 사망 시간이 비슷해.”
“네? 정말요?”
천우가 놀라서 물었다.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누군가가 정보를 조작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이걸 가장 잘하는 십천군은…….”
역시나 다시 한 명이 떠올랐다.
‘백천군.’
처음에는 단순히 근거 없는 가설일 뿐이라고만 생각하였으나.
왜인지 탁하고 걸려서 자꾸만 그쪽이 신경 쓰인다.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천희는 천우를 바라본다.
“만약에 말이야, 천우야. 네가 알던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나쁜 짓을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쌍둥이 같은 건가요?”
“음…….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 다르다고 해야 하나.”
진천희는 거기까지 이야기하고는 말을 흐린다.
사마현의 의사를 무시하고 이야기를 할 것인가.
아니, 그 전에-
‘천우가 어찌 받아들일 것인가.’
진천희는 일단.
그나마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시신들은 한데 모아 두었다.
그 수가 너무 많다 보니 화장까지는 어려울 듯했다.
대신 떠내려가지 않도록 단단한 암반이 있는 고지대에 시신을 옮기고 암반 속을 파내서 거대 관짝 비슷한 것을 만든 게 진천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
‘예상 이상으로 피해가 더욱 심각하군.’
그래서 진천희는 출발한 지 며칠이 지나서야 호남성 성도 장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장사가 반 정도 물에 잠긴 것을 보게 되었다.
‘성도가… 물에 잠기다니.’
장사는 동정호 남쪽으로 난 장강의 하류 중 하나, 상강(湘江)에 위치해 있다.
애초에 강에 붙어서 생성된 곳인데…….
강이 넘치면서 지대가 낮은 반절 정도가 전부 물에 잠겨 버린 것.
“처참하구나.”
“그동안 강호를 다니면서도 이런 일은 처음 보네요. 혈사와 수해가 한꺼번에 밀려오다니.”
“그래.”
“유민들에게 끔찍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어요.”
“…….”
진천희는 곧바로 황구를 타고 장사로 달려갔다.
* * *
장사에 도착했다.
그 입구 성벽 어디에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진천희의 표정이 굳었다.
“형, 왜 그러죠?”
“병사가 없어.”
“그게 무슨 문제…….”
“성도는 무조건 성벽에 관군이 있어야 해. 여긴 호남성의 성도니까 호남 도독부의 관군이 주둔하고 있어야 한단 말이지.”
“아. 그게 없다는 것은…….”
“큰 문제가 생겼다는 거지.”
역시 누군가가 정보를 조작하고 있다.
‘황궁이 알아낸 게 용할 수준이군.’
지존천마 세계 그대로였으면 불가능했을 터였다.
실버 없이 골드 혼자 일을 처리해야 하고 외세와도 싸워야 해서, 그만큼 등 뒤가 비어 있었을 테니까.
“헝.”
그때 천우가 한곳을 가리켰다.
사람의 환영이 촛불처럼 흔들리다가 훅 사라졌다.
“유령일까요?”
그곳으로 가니 꽃이 한 송이 놓여 있었다.
수국 한 다발.
마치 연인에게 선물하는 듯 곱게 잘려 있는 수국 다발에는 달콤한 향기가 가득했다.
향기가 얼마나 강한지 빗속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비에 젖은 수국이라니, 꽤 고급진 초대장이네. 우리가 오길 기다렸나 봐.”
“네. 형을 무척 좋아하는 모양이군요.”
초대장, 그것도-
살의(殺意)의 초대장이라고나 할까?
“…….”
“천우야. 이거 알아? 수국은 사실 향이 거의 없는 꽃이야.”
“그러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