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49
진천희가 천우에게 말했다.
“천우, 네 말이 맞아. 그렇네. 수적들이 있었어……. 어디서 온 게 아니라 수적 놈들이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수적들은 애초에 미신 많이 믿어요. 예전에 토벌한 수적 중에는 하백의 자손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놈들도 있었고요.”
과거 흑선의 일을 하면서 산적뿐 아니라 수적도 전멸시켰던 천우였다.
“수적과 대화는 안 한다면서 제법 아는구나?”
“아, ‘대화’는 안 했어요. 그냥 일방적으로 떠들어댄 것뿐이죠.”
역시나 그렇구먼.
천우를 상대로 나름대로 폼을 잡아 본 모양인데.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삐약이 무인이었다고 해도 천우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세가 보통은 아닌바.
상당히 간 큰 놈들이라 할 수 있겠군.
진천희는 그리 생각하며 말했다.
“관아에 그런 식으로 신고가 들어온 사례가 좀 있긴 했지. 하백이 인신 공양받은 여인들에게서 난 자손이라고 주장하던 놈들이 있다고. 주술당에서는 그자들이 모이다 보면 어떤 사교의 한 축이 되어도 이상치 않다고 했었지.”
쟈시가 했던 이야기.
물론 백린군에는 수적 씨가 마른 터라 그리 우선순위가 높은 연구가 아니었는데.
쟈시가 유독 중원의 사교(邪敎)에 관심이 많긴 했지.
그 사교를 뜯어보다 보면 새외와 연관이 있을 때가 좀 많다고 했던가?
천우가 말했다.
“애초에 혈선교도 버젓이 돌아다니는 판이잖아요. 게다가 형도 아시다시피 요새 괴이한 것들이 부쩍 늘었고.”
천우와 괴어인을 겪었고.
도원향을 함께했다.
둘 다 보통 무인은 평생을 살아도 겪을까 말까 한 일이다.
그곳에서 천우는 이물(異物)의 본질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터.
수적을 의심하는 것은 꽤나 합리적인 사고 방향이다.
“형 생각은…… 어때요?”
진천희가 씨익 미소 지었다.
“응. 너와 같다. 우리 천우 제법 많이 컸네.”
“!”
그 말에 천우의 눈이 살짝 커진다.
‘아무래도 이 녀석. 나를 너무 신경 쓰는걸?’
형의 인정이 무척이나 기분 좋은 모양.
진천희 입장에서는 맞는 계산을 맞다고 답해 주었을 뿐.
뭐 이렇게까지 기뻐할 일인가 싶다만-
‘뭐, 천우가 좋다면 좋은 일이겠지.’
진천희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정보 조직을 찾아볼까 해. 하오문의 세력이 여기 있을지 봐야겠어.”
사마현에게 암호문을 보낼 생각이다.
백천군이라는 물증은 어디에도 없으나 왜인지 자꾸만 심증이 생기는 터라.
‘약간의 언질은 주는 게 좋겠지.’
암호는 현이와 늘 나누던 걸로 보내면 중간에 갈취당할 걱정은 없으리라.
천우가 말했다.
“저는 무림맹의 비밀 정보 조직을 찾아볼게요.”
“좋아.”
진천희는 천우의 등을 팡하고 때린다.
등을 때리는 것조차도 눈높이가 상당하지만.
그래도 진천희는 거칠 게 없었다.
“잘 부탁해.”
“네, 네!”
천우의 얼굴이 크게 밝아지는 것을 보며 진천희는 생각했다.
‘하여간 천우는 애 같은 면이 있단 말이야.’
형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그런 강박감이 있는 모양이다.
‘이미 지금도 대단한 무당권왕이신데.’
그때의 꼬맹이가 이렇게 성장했다니.
기분 참 이상하다.
* * *
진천희와 잠깐 헤어진 후.
“…….”
천우는 우산을 쓰고 걷고 있다.
그의 눈매는 아까와는 정반대로 웃음기라고는 조금도 배어 있지 않았다.
스스슥-
오히려 날 선 칼날 같은 살기가 맺혀 있었다.
지나가는 그를 보고 소름이 돋아 피하는 사람이 몇 보인다.
상관없다.
대부분의 강호인들은 이런 천우가 더 익숙할 터였다.
흑선이 된 이후로 천우는 보통 이렇게 다녔으니까.
‘그보다 여기는 호수와 꽤 가까운 곳인데도 피난하지를 않는군. 아니, 피난할 사람은 이미 피난하고 지금 있는 자들은 뭔가 믿는 구석이 게 있는 자들인가.’
믿는 게 그 하백 신앙만은 아닐 것이다.
이쪽은 호수가 인접해 있다고는 하나.
비탈의 위쪽에 위치해 있는바.
설마하니 여기까지 넘치진 않으리라고 믿는 모양.
‘그리고 강호인들이 많지. 이곳은.’
아무리 홍수가 난다고 하더라도 그게 막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초반이라면.
경공을 익힌 강호인이 죽는 일은 거의 없다.
그들은 그때부터 피신하면 되니까.
죽는 자들은 양민이다.
쏴아아아-
빗줄기는 무심하게 계속 내리고.
천우는 형과는 달리 기막을 펼치지는 않았으나.
내기를 은은하게 운영하여 비가 옷에 닿더라도 스미지 않고 도로록 미끄러진다.
이 빗속에도 옷 한 점 젖지 않는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털 짐승 같아 보이기도 했고.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기묘한 것은 그 거대한 체구임에도 그림자에 스민 듯 조금도 철벅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후우.”
천우가 깊게 숨을 쉬고 작정하고 기척을 지운다.
형이 가르쳐준 구결을 외우자 흡사 살수가 움직이듯 완벽하게 조용해진다.
스윽-
살기등등한 눈매조차도 신경 쓰는 이가 없다.
결과적으로.
장사성의 그저 그런 객잔 중 하나.
동정객잔에 천우는 도착할 수 있었다.
이름대로 동정호의 이름을 딴 객잔으로.
이 장사성에는 이런 이름의 객잔이 수십 개는 있을 터.
허나, 천우가 향한 곳은 동정객잔의 앞문이 아닌 뒷문.
스미듯 들어가 점소이에게 인사 한 번 하지 않고 계단을 오른다.
그러고는 객잔의 제일 귀빈을 위한 특실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빈 특실.
그곳 구석에 놓인 밧줄을 한 번 당기고.
“…….”
잠시 뜸을 들이더니 독특한 박자로 세 번을 연달아 당긴다.
드륵.
그러고는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꼬고 기다렸다.
쏴아아아아-
창밖으로는 여전히 비가 내린다.
빗소리를 들으며 천우는 짧은 명상에 빠진다.
그때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객잔의 점소이가 안으로 들어왔다.
쟁반에는 찻잔과 다과가 들려 있었다.
“무당권왕을 뵙습니다.”
찻잔을 각탁 위로 내려놓은 점소이.
그에게 천우가 말했다.
“맹의 도움이 필요하여 왔습니다. 이는 그 증표입니다.”
탁.
천우가 증표를 내밀었다.
점소이는 그저 짧은 눈썰미만으로 그 증표가 진짜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확인했습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지요.”
“홍수가 나기 전의 정보와 홍수가 난 후의 정보. 특히 저 사교도들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저들이 동정호의 수적들과 연계되어 있는지도. 만약 연계되어 있다면 그에 대한 정보도.”
“알겠습니다. 속히 준비하겠습니다. 그러시면 잠시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그리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천우는 비를 보며 기다렸다.
그때 다시 문이 드드륵 열린다.
천우가 눈을 드니 그곳에는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우연이네~ 셋째 형이 여기 있을 줄은 몰랐는데?”
사마현.
그것도 평소와 같은 모습이다.
“막내. 네가 여기에 어쩐 일이지?”
“일이 있어서 말이야~ 그런데 셋째 형이 나타났다길래 이리로 왔지. 이 객잔이 무림맹의 비밀 첩보 거점인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일이고. 가끔 협력하거든.”
“음……. 하긴 너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후릅-
천우는 차를 한 모금 삼키며 생각에 잠긴다.
그런 천우 앞자리에 사마현이 사뿐히 가서 앉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나도 방금 이 도시에 와서 보고를 받아 가지고 이리로 온 거라서 말이지. 우리 첫째 형도 와 있다고 하던데~”
“홍수를 막을 방법을 찾으러 왔…….”
그 순간.
“!?”
천우는 말을 하다 말고 굳은 표정으로 바라본다.
즉시 탁자를 발로 차면서 주먹을 내뻗는 게 아닌가.
콰과과과광!
사마현은 가볍게 탁자를 뒤집어 방패 삼아 천우의 주먹을 막아낸다.
그 충돌에 가벼운 폭발이 일어나고, 천우와 사마현 둘 다 물러섰다.
울컥-
새빨간 피가 나온다.
천우는 생각했다.
‘차에 독을 탔나……?’
강호에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을 의심해라.
이 기본적인 걸 잊고 있다니, 무림맹 물을 너무 먹은 탓이다.
눈앞의 사마현이 말했다
“이야~ 셋째 형. 사천당가의 자식이라 하더라도 쓰러질 양의 독인데 그걸 버티네~ 정말 대단한데?”
천우가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너…… 막내가 아니구나.”
“우웅? 그럴 리가~ 사랑스러운 셋째 형의 막내랍니다?”
“아니. 네가 진짜 막내라면 큰형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물어봤을 거야. 그리고 용건만 듣고 큰형 뒤꽁무니부터 쫓아갔겠지.”
“하핫, 하하하하! 지독하네. ‘사마현’은~ 하긴 그래. 내 꼴이 될 뻔한 걸 구제해 준 은인인데 나라도 그러겠지.”
천우가 묻는다.
“누구냐. 역용술을 그 정도 수준으로 쓰는 자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없건만…….”
천우는 태극권의 기수식을 취하고 기세를 끌어올린다.
“아하하하핫! 재미있네. 재미있어. 아무리 시작은 ‘나’라고 하더라도 차이점이 많이 나려나? 하긴, 그럴 수 있지! 녀석에게는 혜아가 있고. 나에게는 없는걸!”
그렇게 말한 사마현의 몸에서 우득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별 변화는 아니다.
키가 조금 커진 정도.
단지 그것뿐.
그러나.
이목구비는 달라진 바가 없음에도 나른하고 퇴폐적인 느낌이 물씬 났다.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
“반가워요, 셋째 형님. 저는 당신의 의동생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사마현이라고 합니다~♫”
‘듣던 중 가장 미친 소리군.’
천우는 우묵하게 그런 상대를 보았다.
“…….”
이자와 대화를 나눌수록 묘하게 정신이 오염되어 가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 기분은 처음 느끼는 게 아니다.
‘기묘하군.’
천우가 알고 있는 단 한 명이 이런 느낌이다.
물론 자주 그러는 건 아니다.
묘하게 상태가 이상할 때.
기묘한 우울감이나 신경증이 그 사내를 덮고 있을 때 그놈과 대화하면 이런 기분이 든다.
형은 그런 상태인 놈과 대화해도 별 느낌이 없는 모양이지만.
천우뿐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렇다.
묘하게 뒤틀려 버린 감각 속에서-
“후후후훗. 아직 첫째 형에게 저에 대한 이야기는 못 들으셨나 봐~? 신뢰받는 동생이 아닌 것이려나? 아니면, 아직도 어린아이로 보는 것일지도 모르고…….”
아아, 안 된다.
이 녀석은 그 녀석이 단순히 우울하거나 신경증이 돋아 있을 때보다 더 나쁘다.
그렇기에 천우는 주먹을 돌려서 그에게 공격을 날린다.
역시나 단순한 태극권이다.
허나, 유권이 아닌 직선경!
그것도 천우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가공할 힘에 특유의 무골이 만들어내는 짐승 같은 투로.
거기에 상대의 무공을 간파하는 눈!
그 모든 것들이 갖추어져 적을 향해 화살처럼 꽂힌다.
—-타앙!
놀랍게도 상대는 천우의 무시무시한 권격을 정면에서 받아냈다.
‘흘리는 게 아니라 받아냈다?’
무시무시한 악력이 느껴진다.
“후후후, 고풍스러운 무당의 제자로 보이나 그 권은 천박하기 그지없으니, 아, 어쩌면 하오문 출신~?”
그 순간.
천우는 진각을 가볍게 밟으며 어깨부터 팔꿈치, 손목까지 회전력을 한 바퀴 크게 돌린다.
그 힘에 놈의 몸뚱이가 빨래를 짜듯 한 바퀴 핑그르르 돈다.
원래라면 일격에 내장이 쥐어짜이며 칠공으로 피를 토해야 함이 옳다.
그러나-
“와핫!”
사내는 춤을 추듯 그 회전력을 이용해 사뿐히 바닥에 앉더니.
다시 반격을 시작한다.
가짜 ‘사마현’이 말했다.
“묘하게 공격이 얍삽한 것도 정파와 어울리지는 않네. ‘형’은 무슨 생각으로 저자를 무당으로 보낸 걸까?”
그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설마 천한 몸뚱이가 정파의 태산북두로 들어가면 씻어질 것 같아서~?”
와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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