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53
대충 점혈이 풀릴 시간쯤 눈을 뜬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철창.
양옆에 있는 여인들은 죽기 싫다며 엉엉 울부짖었고.
신기하게도-
“하백이시여. 저를 바치겠나이다.”
진심으로 하백을 믿고 몸을 던지려는 자들도 보였다.
하지만 여기 모인 대부분은 당연히 곧 닥쳐올 죽음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도 이 일의 원흉인 하백교도들과 멀리 떨어져서 그들을 피하고 있다.
하백교의 경비가 있는 상황에서 차마 때리거나 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눈에는 원망이 담겨 있었다.
그럼에도 하백교의 신도들은 계속해서 기도를 하거나.
자기들 나름의 노래를 불렀다.
눈빛이 맑은 것이 다른 의미로 참 두려웠다.
‘이게 광신이지. 광신이야.’
진천희는 그들에게 슬쩍 다가갔다.
“고, 곧 강에 빠져 죽을 텐데 두렵지 않으세요……?”
“…….”
신도들은 진천희를 바라본다.
그들이 보는 진천희의 눈은 떨림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아마 우리를 원망하고 있겠지.’
눈앞의 여인은 눈이 크고 무척 맑았다.
티 한 점 없는 눈동자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이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이니 필시 하백께서 기꺼워하시겠구나.’
얼굴이 아름답다는 것은 하백교에서 꽤나 중요한 요소였다.
하백은 용모가 아름다운 처녀를 무척이나 좋아했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눈앞의 여인은 하백님의 좋은 신붓감이었다.
그리 생각하며 신도들이 하나둘 입을 열었다.
“무서워할 게 무엇 있겠어. 하백님의 신부가 되는 것뿐인데.”
“맞아. 그리고 우리는 하백께서 계셨기에 태어났다 할 수 있는걸.”
그리 말하며 신도 한 사람이 자신의 팔을 보여주었다.
비늘이 돋아나 있었다.
“허억, 이게 무슨……! 세, 세상에 팔이 왜 이러는 거죠?”
놀라서 어깨가 파르르 떨린다.
‘저런, 그래. 공포에 떨 만도 하지.’
진천희는 육체와 안면 근육을 완벽하게 통제하여 몸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기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진천희는 속으로-
‘음,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 것 같은데. 내가 납치당한 척해서 온 간자면 어쩌려고 이렇게 중요한 기밀들을 막 말해 주는 거지? 너무 경계심이 없는 것 아닌가.’
자신의 공주 연기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신도들은 두려워하는 진천희를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인간과 하백님 자손 사이에서 태어났어. 하지만 너희 인간과 거의 똑같으니까 두려워하지 마.”
“하백님 품에 안기면 우리 모두 ‘자매’인걸!”
“자, 자매?”
“하백께서 우리를 완전하게 만들어 주실 거야.”
그리 말하며 진천희가 안심할 수 있도록 교리에 대해 이것저것 말을 했다.
큰 눈동자의 여인은 두려워하면서도.
신도들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되묻거나 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많은 정보들을 내뱉었다.
‘하백의 신부. 확실히… 난봉꾼이라 여성을 제물로 받아서 자신의 첩으로 맞이한다고 하긴 했지…….’
‘하지만 첩을 들인다고 부활이 빨라진다는 건 말이 안 맞는데?’
‘단순 인신 공양이 목적이면 굳이 미모의 처녀만 찾을 필요는 없지.’
‘눈치를 보니 공물들에 대한 처우가 나쁜 건 아니야. 그냥 모아 놓았을 뿐. 식사와 잠자리 모두 잘 되어 있어.’
머리 한켠에서 작은 진천희들이 속닥인다.
하지만 진천희의 육체는 제대로 주인의 명령에 따라 눈물 한 방울을 도로록 흘렸다.
“흑, 그거 그냥 죽는다는 뜻이잖아요!”
목소리가 얼마나 맑은지 모두가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
‘아, 방금 연기 너무 튀었나?’
진천희가 뜨끔하려는데.
“괜찮아. 죽는 게 아니야. 신부가 되는 것이래도?”
그리 말하며 진천희를 달래기 위해 더 많은 정보들을 풀어주는 게 아닌가.
‘뭐지? 왜 이런 정보를 술술 부는 거지? 보통은 고문을 해도 말할까 말까 하는 정보들인데.’
신도들도 생각보다 의심이 없는 것 같았다.
왠지 진천희는 못마땅했다.
‘에잉, 이딴 놈들에게 관군들이 당했다고?’
생각보다 대충 산다.
관군도, 악당도, 사이비 신도들도.
현이가 오늘도 2승했다.
그렇게 진천희는 편안하게 하백교의 교리에 대해 자칭 ‘예비 신부’들의 입으로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찬송가까지도.
‘묘하게 사람을 몽롱하게 만드는 음계군.’
이걸 듣는 와중에서도 진천희는 직업병이 올라왔다.
‘흐음, 이렇게 많은 정보를 토설하는데도 제지하는 놈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원래부터 이런 분위기란 뜻인가. 어차피 죽을 놈이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책사의 직업병.
마교와 사파뿐만 아니라 무림맹과도 멱살잡이를 해왔던 과거들이 스쳐 지나갔다.
심지어 어떤 신부는-
“우리 친하게 지내자. 죽고 나서 너는 분명 하백님께 총애를 받을 테니까.”
‘진심인가? 사후세계의 친목을 다지기 위해 오늘 처음 본 나를 신경 쓴다고?’
의념을 보니 놀랍게도 이자들 모두 진심이었다.
그들은 진실로 죽고 나서의 인맥을 걱정하여.
진천희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했고-
“……?”
진천희는 사이비 뇌 구조 참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 * *
하루 후.
그들은 여인들은 모두 돌돌 묶은 후에 장사성 물에 잠긴 지역으로 이동했다.
끌려가는 여인들 중에 사이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울음을 터뜨리며 죽음을 직감했고.
진천희도 안면 근육을 면밀하게 통제하여 몹시 슬픈 표정을 지었다.
얼마나 슬퍼 보였는지.
“이걸 주겠다.”
“네?”
“안 아프게 죽을 수 있다.”
경비 무인이 준 것은 독한 수면제였다.
‘…내가 사이비한테 동정까지 받고 있어?’
이놈들 너무 헐렁한 거 아닌가.
초일류 살수라면 진천희처럼 안면 근육을 조절하여 사람을 속이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니다.
‘이놈들, 그래. 내 변변치 않은 연기에 속아 넘어가다니.’
다만.
사마현 때문에 연기 기준이 높아졌다는 게 좀 문제다.
‘아무리 나라도 현이만큼 연기를 하진 못하지.’
그런 진천희의 눈에는 이 사이비 놈들이 그저 어설퍼 보였다.
이런 놈들에게 관군들이 변변한 대처도 하지 못했다는 게 태수로서 속상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대충 산다.
이윽고 선두에 있던 도사 같은 사람이 뭐라뭐라 주문을 외우자-
그그그그극!
강물이 스스로 갈라져 통로를 만들어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원통형 통로가 물 아래로 생겨난 것만 같았다.
‘황토물만 아니면 아쿠아리움이었겠군.’
진천희는 이들의 실태를 하나하나 관찰하며 기억한다.
방금 도사가 썼던 술법 주문을 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중원어는 아닌데, 고대 잊혀진 방언 같기도 하고.’
하백교도인 뱀 인간들이 후열에서 재촉했다.
“어서 앞으로 가라!”
인정사정없는 놈들이었다.
“사, 살려 주세요! 제발, 집에 가족이 있습니다. 제발 나으리!”
“잔말 말고 어서 움직여!”
그들이 창끝으로 여인들을 찌르자 어쩔 수 없이 모두가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아악! 찌르지 마세요. 제발!”
지금은 제물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찌르는 시늉만 하고 있지만, 말을 듣지 않으면 본보기로 한 명 찌를 것이 분명했다.
‘미친놈들이군.’
놀랍게도 광신도들의 의념은 신념으로 가득했다.
이런 짓을 하는 데 한 치의 의심도 없는 모양.
강바닥을 걸어가며 물이 갈라진 길을 쭉 따라간다.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기를 한참.
‘사당이 있네?’
강 아래 하백을 모시는 사당이 보인다.
물 위에서 보았던 사당과 구조는 비슷하게 생겼다.
신기하게도 사당은 평범하게 나무로 만들었는데도 썩은 곳이 하나도 없었고 은은한 향까지 나며 제물들을 맞이한다.
‘기묘하군.’
사당에 도착하니.
그 중심에 높이가 일 장(약 3m) 정도 되는 석상이 있었다.
꽤나 사실적인 석상으로 상체는 사람이고 하체는 뱀.
사람 부분은 잘생긴 미남자가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기묘하게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한 손은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대고, 얼굴은 왠지 피곤해 보인다.
보자마자 진천희는 이자가 하백의 진체(眞體)를 묘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굉장히 사실적이군. 마치 예에게 화살을 맞고 요양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야. 설마하니 저 석상이 하백 그 자체인 건 아니겠지? 깨어나면 저 석상이 하백이 된다거나…….’
시험 삼아서 아무도 안 보는 사이에, 탄지천통으로 강기를 담아 쏘았다.
탕!
주술로 보호받고 있는지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진천희는 순식간에 저 주술의 실체를 깨닫는다.
‘하백이 자고 있는 동안은 절대 건드리지 못하도록 만든 것 같군.’
물리력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형태의 주술.
신의 힘으로 정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자고 있는 동안은 오히려 안전하다.
그렇다면 고작 필멸자인 인간이 깨어있는 하백을 죽일 수 있는가?
그것이야말로 한없이 불가능한 일일 터.
‘와, 빈틈이 없구만.’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주변에 있던 여인들 몇이 비명을 지른다.
“끄아아악! 내 머리에 소리가! 끄아아아악!”
“사,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살려! 살려! 살려! 살려! 살려! 살려! 살려! 살려! 살려! 살… 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죽여!!!!!!!!!!!!!!!!!!!!”
몇몇이 그 석상을 보는 것만으로 발작을 하기 시작했다.
피를 토하기에 진천희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속도로-
탕!
점혈을 시켜 강제로 기절시켰다.
그때 앞쪽에서 여인들을 향해 창을 찔렀던 무인 하나의 머리가 터진다.
퍼엉!
핏물이 튀며 비명 소리가 울린다.
“위를 보지 마라! 석상을 절대 보면 안 된다!”
그 말에 여인들이 공포에 질려 머리를 감싸 쥔다.
다행히 모두 고개를 숙이긴 했다.
자신들을 괴롭혔던 사이비 신도들이라고는 하나.
‘눈앞에서 머리가 터졌지.’
저 석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찌 될지 상상하는 것조차 두렵다.
진천희 역시 겁에 질린 척 머리를 숙인다.
‘여기까지는 대충 예상한 대로인가.’
제사장으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어서, 어서 이번 의식을 집행하자! 팔십이 번째 의식!”
“팔십이 번째 의식을 시작하랍신다아아아!”
‘그동안 이렇게 여자들을 잡아다가 81번이나 죽였다고? 제정신인가?’
그때 석상에서 푸른빛이 올라오더니 진동하기 시작했다.
“하백께서 응답하셨나니!”
“하백취부(河伯娶婦)를 진행하노라! 악공들은 연주를 시작하라!”
그 말에 뱀 인간으로 이루어진 악공(樂工)들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음악이 물속 공동을 타고 흐르기 시작하자.
“……아……아아…….”
그 음악을 듣는 여인들 모두가 표정이 몽롱해졌다.
심지어 공포에 젖었던 자들까지 몽롱한 표정으로 입을 벌린다.
섭혼술!
그 순간.
하백의 석상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처녀… 예쁜 처녀들을 데려왔구나… 아아……. 기운이…… 난다…….
기묘한 음성이 사방에 울린다.
‘중국 신화의 하백과 한국 신화의 하백은 이름만 같고 서로 다른 신이라 들었는데 진짜네.’
인품 자체가 둘은 다르시다.
동명이인 중원표 하백 석상이 꿈틀하고 움직였다.
그러고는 가장 먼저 맨 앞의 여성을 향해 손을 뻗는다.
“아악!”
여성이 죽음을 직감하며 눈을 질끈 감는다.
그때-
“오우, 굿모닝!”
무당파 십단금이 석상의 손과 충돌한다.
콰와와와왕!
폭발이 일어난다.
진천희는 그제야 석상 표면에 나타난 미세한 실금을 파악한다.
“역시 깨어나면 주술이 풀려서 공격이 가능하군요우.”
-설마 내가 완전히 봉인이 풀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자고 있지도 않은… 상황을 노린 건가? 교활하군.
“네. 제물 받는 그 순간만큼은 당신도 빈틈이 생기겠죠. 대충 플랜 D 정도 됩니다.”
그런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진천희는 빙정검을 꺼낸다.
“이 무슨 일이냐아아아아!”
총채주이자 천기순행인 황강이 분노하는 사이.
진천희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도어사 진천희다! 사교 활동을 하는 자 모두 항복하면 선처할 것이나 반항한다면 즉결 처형하겠다! 양민들은 모두 빠져나가도록 하라—-!!”
우르르르릉!
현경에 이른 진천희의 음공에 사방이 뒤흔들렸다.
그리고 여성들을 묶은 포승줄이 전부 잘려 나간다.
절묘하고 신이막측할 정도의 솜씨!
음공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자는 진천희 외에는 천하에 아무도 없으리라!
“……!”
여성들은 섭혼술에서 깨어나 당황한다.
진천희가 점혈로 잠깐 기절시킨 여인들조차도 그 음공에 깨어난다.
“모두 도망치세요!”
이번에는 의념을 담아 크게 외치자.
여인들이 급하게 밖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사, 살려 주세요!”
“모두 도망치자아아아아—!”
“막아, 막아라아아아아아!”
황강이 다급하게 소리를 지르자 뱀 인간 사교도들도 함께 움직인다.
진천희는 반대로 그런 사교도들을 막기 위해서 두 손을 늘어트려 번개처럼 휘둘렀다.
진천희의 두 손이 기관포처럼 탄지천통을 쏟아내려는 찰나.
우르르르릉!
퍼퍼펑!
위쪽의 물로 된 벽이 폭발하며 두 개의 거대한 짐승이 떨어져 내렸다.
물보라를 떨어트리며 나타난 두 마리의 거대한 그것은 개와 매의 형상을 하고 있다.
커커컹!
삐이이익!
“황구! 뇌진!”
진천희가 놀라서 둘을 부르짖는다.
‘내가 분명 돌아가서 숨어 있으라고 했는데?’
파직, 파지직.
콰르르르르르르—–!
뇌진의 전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