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67
제 1267화
형의 스승.
백린의선을 생각하면 절로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다.
그나마 권제님과 의선의 인연 덕에 천우가 깨달음에 닿을 가르침이나마 전수받은 거지.
생면부지의 인간이었으면 이미 죽고 유골 새외행이다.
“…그냥 형 스승님께 많이 배웠어요.”
“오옷! 역시 우리 스승님! 단기간에 무학이 심상에 닿다니, 과연 가르치는 것도 천재적이시지?”
……그걸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꽃으로 치면 벚꽃에 피는 방법을 가르쳐준 후.
지금 당장 펴 보라고, 못 피면 반으로 쪼개 버리겠다는 꼴 아닌가.
어쨌든 천우 꽃은 가까스로 피었다.
“네… 그런 가르침은 생전 처음 받아 보았네요. 과연 형 스승님의 명성은 허언이 아니더라고요.”
거짓말은 안 했다.
“그럼 그 도복도 새것이니?”
“네. 재질이 뭔지는 모르겠지만요.”
신기하게도 이번 전투 내내 찢어지지 않았다.
‘신의 힘을 정면으로 받았는데도 버티는 옷감이라니 들어 본 적도 없군.’
진천희가 말했다.
“과연 스승님이시다. 스승님 안에 권제님이 아직도 살아계시는 거야. 보기보다 정이 많으셔.”
살아 있으니까 받을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죽였으면 이 옷은 어떻게 처분할 예정이었을까.
‘처음부터 내게 줄 모양이었던 것 같은데.’
무당의 다른 무인을 생각하고 준비했을 리가 없다.
의복 자체가 무골인 천우의 키에 꼭 맞았으니까.
권제님과의 인연을 잊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인 모양.
하지만 그 방식이 보통의 은(恩) 갚기는 아니니.
또 참 기묘한 사내였다.
천우의 복잡한 속도 모르는지 진천희가 방긋 웃는다.
“그나저나 네 심무절기, 선(仙)을 막을 방패를 만들어 내다니 꽤 놀라워.”
“형은 선(仙)을 가를 검을 완성하였죠.”
“하하하. 별거 아닌데 뭘.”
천우의 눈에는 그런 형이 더 대단해 보였다.
단순히 천재적인 것을 뛰어넘어서-
‘형은 대체 그 새끼 성격을 어떻게 참아 주는 거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어려웠지만, 형이 따르는 사람이니 의당 이유가 있겠거……니-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군.’
아무튼 형 스승이니 그 나름의 존중은 해야 할 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진천희가 말했다.
“네가 가진 권은 너를 지키고 사람을 지키는 일권이지. 수많은 강호인들이 처음 무학을 배울 때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배우나, 결과적으로 살검이 되고, 심상 역시 그리 따라가게 된다. 천우 너처럼 끝까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한 권을 펼친 이는 극히 소수야.”
“…….”
형 덕분이라는 말을 하려다가 왠지 목에 탁 걸렸다.
그 순간, 하백이 만들어 낸 물의 창이 덤벼오는 순간.
천우는 그리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순간을 넘어야 한다는 것.
다치지 말았으면 한다는 것.
인간으로 가지고 있는 생존 욕구까지.
무인으로 가지고 있던 그 모든 것들이 폭발하는 기분이었다.
태극은 의외로 깊게 자리 잡진 않았다.
권제님을 다시 보고 싶었으나.
사십구재 마지막 꿈에서 보았던 그 갈대숲이 눈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천우에게 했던 이야기와.
그 거칠거칠한 주먹이 도통 사라지지가 않아서.
천우는 주먹을 내지르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기묘하게도 죽음이 목전인데 조급하진 않았다.
마치 운명처럼 심상을 그리며 투로를 엮어냈을 뿐이었다.
권제님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분을 너무 일찍 보게 되면 왠지 면목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뜻을 펼쳤는가.
아직 남아 있었다.
천우는 진정으로 자신의 뜻을 펼친 적이 없었다.
그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진천희는 생각했다.
‘그때 천우의 심상은 완성되지 않았지.’
패도적인 부분을 한번 억누른 심상이다.
본디 천우의 권은 폭력 그 자체로 유명했고.
진천희가 보았을 때도 그랬다.
그것은 어찌 보면 타고난 기질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무당답게 최강의 수비를 얻었다고는 해도 억누른 폭력성은 어떤 식으로든 표출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진천희는 굳이 그 부분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무당도 변하기 시작했다고 들었어.”
“아, 네. 파문된 무당의 도인들이 워낙 많다 보니 개혁을 하기로 했어요.”
“흑선(黑仙) 일을 했던 네 역할이 컸겠구나.”
“네.”
“더 엄격해진 거니?”
천우가 턱을 쓸며 말했다.
“아니요. 그 반대입니다.”
“?”
진천희의 눈이 살짝 커진다.
도문이란 본디 그런 일이 생기면 계율을 엄히 세워 점점 더 빡빡하게 나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반대라니.
그것은 천하의 진천희라도 미처 계산하지 못할 이야기였다.
천우가 말했다.
“아직 외부에는 발설하지 않았으나, 무당의 독문무공을 익힌 도인이 약간이라도 실수를 했을 시에 가해지는 벌이, 오히려 도인의 일탈을 부추기는 사례가 많더라고요.”
“음, 뭐 그렇지.”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잘못이 맞기야 한데, 이게 무슨 놈의 사지 근맥을 끊고 뇌옥에 가둘 일이냐?’ 싶은 일인데 노빠꾸 직진을 하는 경우가 있다.
“무당의 독문 무공은 이미 파문된 도인들로 인해 암암리에 퍼졌습니다. 양의신공 같은 것들이야 무당에서도 익힌 도인이 손에 꼽으나 당장 십단금의 경우에는 마교까지 퍼졌지요.”
“파문된 도인이 마교로 간 모양이구나.”
“네. 제 선대의 일입니다.”
“…….”
하긴 황궁 비고에 가니 ‘왜 이런 곳에 이런 귀한 무공이?’ 싶은 무공서들이 꽂혀 있었더랬다.
도인이 군문에 들어가서 무공을 황상에게 바치거나.
또는 황상이 잡아다가 고문한 게 아닌 이상에야 파문된 도인들이 입을 털었을 가능성이 높겠지.
“가장 많은 파문 이유는 의외로 별거 아니더군요.”
“음?”
“연정(戀情)입니다.”
“아, 아아아아…… 그건 그렇지.”
무당산은 깊고 험하다.
그런 곳에서 가혹한 수련을 이어가는 자들이다 보니.
의외로 돈이나 권력을 좇다가 파문을 당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물론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정상적인 도인이라면 큰 유혹이다 싶을 정도는 아닌 것.
그게 아니었다면 무당산은 파문 제자로 남아나지 않아야 했다.
허나.
진짜 큰 적은 따로 있다.
강호 초출을 나가 누군가와 눈이 맞았을 때.
그때는 어쩔 것인가.
정상적인 절차.
즉, 환속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의외로 그 수는 지극히 적다.
거기다가 무당의 정식 제자로 받아들여 제대로 된 독문무공을 익혔을 때는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고.
“연정이란 게, 욕심이나 원한 같은 마음보다 강하더군요. 예전이라면 몰랐겠지요.”
천우는 흑선 일을 하면서 파문한 많은 도인들을 보았다고 했다.
개중에는 산적이나 수적으로 변절을 하거나.
낭인이 되어 권력자와 손을 잡고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일도 있었지만-
“평범하게 아이 둘과 밭을 갈고 있는 사형도 계셨지요. 한 번만 살려 달라고, 아니면…… 적어도 아내와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할 시간이라도 달라고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니? 설마 죽…….”
“……형. 저라고 그 정도 융통성이 없지는 않아요. 그냥 밥 한 끼 얻어먹고, 술잔이나 조금 나누고 작별했죠. 어차피 그 사형이 익힌 무공은 이미 알 만한 세가에서는 입수한, 딱 그 정도 무공이었으니까요. 뭐, 태극혜검 같은 것이었다면 단전을 파하는 정도는 했어야겠지만.”
천우는 눈을 감고 바람을 느낀다.
“도인이라면 마땅히 모든 것들을 절제하며 살아야 한다고 배워 왔습니다. 하지만 권제님께서 마지막에 말씀하셨지요. ‘그게 과연 옳은 길인가?’ 하고요. ‘희로애락을 잊는 게 과연 도인의 길인가. 그것은 그저 인간에서 멀어지는 것일 뿐이 아닌가.’ 하고.”
“…….”
“저는 도인도 혼사가 가능한 길을 열어 주고 싶어요. 대신 독문무공을 익힌 경우 따로 무당산 아랫마을에서 사는 정도로 했으면 합니다. 그 정도만 돼도 외부에 무공을 발설할 일도 거의 없습니다.”
“꽤 구체적이네.”
그만큼 진지하게 생각해 왔단 뜻이겠지.
“네. 뭐, 양의신공, 태극혜검을 익힌 수준이라면 무당산 외곽에 따로 자리를 만들어 살긴 해야겠네요. 아이는 태어나면 5세까지는 키우게 하고, 그 이상 자라면 처가나 친척에 맡긴 뒤 가끔씩 내려가서 보는 형태겠지만요.”
‘과거 무조건 단전을 폐하고 뇌옥에 가두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낫긴 하네.’
그리고 그 정도 무공을 익힌 도인이 아비나 어미라면 애를 함부로 대하는 것은 불가능할 터고.
“그게 흑선이 된 네가 느낀 것이구나.”
그것은 ‘자비’였다.
더 엄한 벌로는 결코 사람의 연심을 막을 수 없음을 천우는 깨달았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도 맞는 말이야.”
“그러면 현실성이 있는 편이 좋겠지요.”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우는 무당의 장문인이 되어도 되겠구나.’
물론 본인은 싫어하겠지만.
지도자로서의 안목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무척이나 드문 인재다.
거기다 그 무력.
천우가 현경을 목전에 앞두고 무당을 상징하는 심상을 펼쳐내는 데에 성공했다.
당장 무당에서 천우 나이에 천우만큼 무력을 펼친 이가 있긴 하나?
적어도 지금 대에서는 없을 것이 확실했다.
천우가 말했다.
“아, 형. 그리고 제가 상대했던 백천군이라는 자 말인데요.”
“……!”
“처음 맞닥뜨렸을 때는 사마현을 가장한 초일류 살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자는 다시 하백 앞에 나타났죠.”
“그으……래.”
“사마현의 쌍둥이 같은 건가요?”
“…….”
진천희는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
“비슷하지만 달라.”
“피가 이어져 있나요?”
“……혈액형이나 DNA는 같…겠지, 아마?”
무슨 개소리일까.
천우는 그런 진천희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사마현 본인한테 물어도 되는 일인가요?”
그 말에 진천희의 눈빛이 살짝 편안해졌다.
“응. 오히려 네가 직접 묻는 게 나을 일이다. 나도 일단 현이와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 같고.”
“알겠습니다. 그러면…….”
천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결국. 형은 그 백천군이라는 자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지 않는군. 이건… 따로 알아봐야겠지.’
그렇게 형제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 호남성을 떠났다.
‘내가 이렇게 강해졌는데, 여전히 형의 눈에는 어린아이로 보이는 걸까?’
하지만 대놓고 말할 수도 없었다.
형이 그때 보여 주었던 아득한 심상.
하백조차도 경악했던 그 천재성.
거기까지 다다르기 위해-
‘아이로 보인다면, 내가 지금보다 더 강해지면 될 일이다.’
천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
천우와는 호북성에서 헤어졌다.
호북은 무당파 영역이니 당연하기도 했고.
진천희는 곧바로 장강을 따라 황구를 타고 달렸다.
중간에 사마현과 이 일에 관해 서신을 나눴는데.
본인 얼굴로 무림맹 비밀 분타를 박살 내는 사고를 쳤으니 꽤 피해가 막심할 터.
이 일을 묻으려면 상당한 인맥과 재화가 필요할 것은 자명했다.
그렇기에 현이가 노발대발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차분했다.
-이미 사태는 보고받았어. 그놈이 형의 목숨을 구한 건 의외네. 물론 하백을 쓰러뜨리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만…….
-그보다 형, 몸은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