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7
제 127화
방장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밖으로 나오니 보타문의 어린 검수들이 수더분하게 웃다가 진천희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서 반장을 했다.
‘이 모습을 보면 평범한 또래의 아이들 같은데 말이지.’
저 먼 곳에서는 무언가를 박살 낸 보타문의 검수가 아비 스님에게 걸려서 경내를 도망치고 있었다.
그것을 본 누군가가 함께 아비 스님에게서 도망치고 있다.
‘사매! 우리 걸렸어!’라고 짧게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봐서는 둘이 같이 사고를 친 모양이다.
아비 스님이 잡히면 둘 다 면벽 수련이라고 소리치셨다.
실로 불교 팔열지옥, 아비지옥과도 같은 얼굴이었다.
병이 나으니 보타문 모두가 활기가 넘치는 모양이다.
참 기이했다.
이 환난을 거치고도 보타문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하루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냥 검황은 아비 스님이 하시는 게 좋겠는데……?’
진천희는 생각했다.
‘굳이 후인을 봐야 할까…? 저 기력이면 반로환동도 노려봄 직할 것 같은데.’
검강을 줄기줄기 날리며 달려가는 폼이 그만큼 엄청났다.
그리고 그런 아비 스님을 상대로 전력으로 튀고 보는 보타문의 검수들도 제정신이 아니었고.
‘그랬군. 그동안 고요했던 건 다들 아파서 그랬던 건가.’
무협 소설에 나왔던 그런 사찰의 적막함인 줄 알았다.
진천희의 환상 하나가 깨졌다.
‘바다가 아무리 깊어도 섬은 가라앉는 법이 없으니.’
진천희는 그렇게 보타문의 저력을 확인했다.
* * *
진천희는 그렇게 보타산을 내려갔다.
많은 이들의 배웅이 있었다. 이제 앞으로는 보타문이 해나가야 할 터.
진천희는 보타패를 소매 안에 넣었다.
이제 진천희에게 남은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오염된 수원으로 안내해 줄래?”
컹! – 이상한 물 냄새 나는 곳 말이지? 주인!
“응.”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황구는 고개를 쳐들고 냄새를 한참 맡더니 진천희에게 따라오라는 듯 짧게 짖었다.
그러고는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진천희는 그런 황구를 따라 오염된 수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수원까지 정화하면 내 일은 끝나겠네.’
오행의 기운을 이용해 더러움을 정화시키면 된다.
스승님이라면 어렵지 않게 해내겠지만 진천희 혼자서는 시간이 좀 걸릴 터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만약 혈선교가 역병의 원인이라면?’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기에 진천희는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거기다가 자연재해로 일어난 사고와 누군가가 음해하려고 생긴 사고는 다르다.
만약 분노한 보타문도들이 절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역병 확산을 막을 방법이 없다.
가설만으로 그런 것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었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혈선교가 천뢰응을 수색하기 위해서는 보타문의 발을 묶어 둘 필요가 있어.’
정파의 검수들이 사파, 마교도 아니고 혈선교를 가만히 둘 리가 없다.
아직 무림에서 존재조차 모르는 집단 아닌가.
이런 식으로 발견되면 앞으로 수작질할 때 참으로 애로사항이 꽃필 게 분명하다.
‘내 작은 머리로는 이 가설이 참 그럴듯하단 말이지.’
가설을 검증하는 방법은 뭐다?
직접 확인해 보는 거다.
왕, 와와왕! – 주인. 여기 너무 험하다.
황구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깊고 깎아지른 산을 달리다가 마침내 목표에 도착했다.
어느 옹달샘이었다.
그 옹달샘에는 구멍이 뚫린 목함이 들어 있었고, 진천희는 그 목함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말았다.
사람의 썩은 팔이었다.
“윽…….”
목함에는 부적이 얼기설기 붙어 있었는데, 딱 봐도 섬뜩한 기분이 드는 것이 사특한 주술 같아 보였다.
“저건 직접 쥐면 안 되겠다. 황구야, 물러나. 너도 다 끝나고 발 소독해야겠다.”
컹! – 알았다.
진천희는 황구를 뒤로 물리고는 검을 뽑았다.
오행신공의 풍운공을 천천히 운기하자 예전에 스승님이 부채로 보여 주었던 바람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진천희는 부채 대신 빙정검을 휘둘렀다.
저주 받은 목함을 그대로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목함이 떠올라 진천희를 향해 날아온다.
진천희는 이번에는 빙정검을 화기로 둘렀다.
냉기를 품은 검이지만 진천희의 오행신공에 순순히 스스로를 내주었다.
검 끝도 닿지 않고 스치듯 목함 위로 검을 휘둘렀다.
화르륵-
오행신공 풍(風)과 화(火)가 만나자 젖어 있던 목함이 엄청난 속도로 타올랐다.
그것도 잠시. 진천희는 그것을 완전히 재로 만들어 냈다.
‘허공섭물은 아니지만 오행신공 풍(風)을 이용해 허공섭물 비슷한 걸 할 수 있지.’
삼매진화도 진짜 삼매진화는 아니지만 삼매진화 비슷한 걸로 했다.
‘혹시 제갈가가 사기꾼의 이미지가 있는 게 이거 때문은 아니…겠지?’
허공섭물은 아니다. 유사품이다.
삼매진화도 아니다. 유사품이다.
‘음…….’
진천희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깊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대신 옹달샘에 오행진을 설치해 정화를 시작했다.
스승님만큼은 아니어도 꽤 숙련된 솜씨였다.
그렇게 몇 시진.
진천희는 완전히 옹달샘을 정화할 수 있었다.
컹. – 주인.
“왜, 황구야.”
크응. –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썩은 고기. 마지막에 움직였었다.
크릉. – 이상한 소리인데 주인이 불태웠을 때 스스로 움직였다. 분명히 봤다.
“그게 무슨 수로 움직여?”
단순히 썩은 시체가 아니었다는 건가.
‘상대가 혈선교면 이상하지도 않을 일이긴 하지.’
보통 무협지에서 강시는 약방의 감초처럼 출현하는 몬스터가 아니던가.
혈선교는 악당이니 강시 정도는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걸?”
그렇게 말하는 진천희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오우, 나 이번에 강시 보는 거야?’
강시, 진천희가 어릴 때는 강시 관련 비디오가 많았다.
죽은 시체. 어찌 보면 좀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사지가 딱딱해서 팔을 앞으로 쭉 뻗고 통통 튕겨서 오는 시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법사가 종이 달린 지팡이를 흔들면 강시가 그 종소리를 따라 움직였던 기억이 난다.
진천희 전생 핸드폰 줄도 강시였다.
스마트폰으로 바뀌어서 결국 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서랍 한켠에는 강시 모양 작은 핸드폰 줄이 늘 놓여 있었다.
‘아니, 딱히 꼭 보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마주칠 수 있는 거니까.’
스승님이 알았다면 멘탈이 터져 나갔을 생각을 진천희는 애써 부정했다.
‘꼭 보자는 건 아니지.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무협 마니아로서의 혼이 들끓었다.
‘폰이 있었다면 사진 한 장만 남겨 두는 건데…….’
* * *
오염원을 모두 정화한 진천희는 보타문의 배를 얻어 탔다. 그리고 어부를 통해 보타문에서 보내준 서신을 받았다.
거기에는 천뢰응이 자주 출몰하는 섬의 위치가 적혀 있었다.
진천희는 누구도 볼 수 없게끔 곧바로 서신을 태웠다.
어부는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고기잡이를 해 왔던 사람으로 해류를 다루는 데 이골이 나 있었다.
복잡하게 널려 있는 암초들을 보지도 않고 비켜나갔다.
덕분에 진천희는 배에서 편히 쉴 수 있었다.
마침내 천뢰응이 있으리라 짐작되는 섬에 도착했다.
“사람이 없는 무인도이지만 그래도 어부가 쉴 수 있는 오두막은 있지요. 거기서 쉬고 있을 테니 용무가 끝나면 내려오시면 됩니다요.”
진천희가 포권을 했다.
“감사합니다.”
“소백룡께서 저희 섬에 베풀어 주신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죠. 이 촌부, 미력하게나마 도울 수 있어 기쁠 따름인걸요.”
진천희를 감사히 생각하는 건 단순히 보타문뿐만이 아니었다.
이번 괴질 환자 중에는 마을 사람들도 있었다.
진천희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모두 치료해 냈다는 걸 마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진천희는 머쓱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허나, 그냥 돌아가시면 안 될까요?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배를 띄워서 오시면 만나는 걸로 하죠.”
어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요. 이 시간에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어부는 어째서인지 진천희에게 묻지도 않았다. 그만큼 진천희를 신뢰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별일 아니라면 좋겠지만 만약 혈선교와 충돌이 일어난다면 괜히 양민이 휘말릴 수도 있으니까.’
진천희 혼자면 모를까 어부까지 지키면서 싸울 여력은 없었다.
배가 충분히 멀어지자 황구가 말했다.
컹. – 주인, 따끔따끔한 깃털 냄새를 찾았는데 그 옆에 이상한 냄새도 같이 난다.
역시. 꽤나 근접하게 찾아낸 모양이다.
‘중간에 사마현과 보타문을 무시했다면 혈선교보다 훨씬 먼저 찾았겠지.’
그러면 이런 위험도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진천희는 후회하지 않았다.
황구의 머리를 긁고는 육포 한 조각을 던져 주었다.
쩝쩝. – 우와, 맛있다! 충성충성!
“자, 그러면 황구야. 안내해.”
컹!
황구는 꼬리를 바짝 세웠다.
그러고는 냄새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진천희는 그런 황구를 경공으로 쫓기 시작했다.
* * *
얼마나 쫓아갔을까.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번개가 쳤다.
콰르르릉!
천뢰응은 영물로서 번개를 부린다고 한다.
기껏해야 지구의 전기뱀장어처럼 몸에서 전기나 뿜어내나 했는데 그 수준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야아, 하긴 전기뱀장어랑 무림 영물이랑 같은 선에서 생각하면 안 되지.’
알던 거랑 실물로 보는 건 확실히 달랐다.
마른하늘에서 질주하는 번개는 감탄이 나올 만큼 섬뜩했다.
가슴이 뛰었다.
컹! – 주인, 이 근처다.
깎아지른 협곡을 얼마나 더 갔을까.
마침내 거대한 매가 보였다.
끼아아!
진천희가 차고 있는 법구가 자르르 울렸다.
황구에게 했듯이 천뢰응의 울음소리도 번역해 주려고 하는 모양인데 아직 멀리 있어서 제대로는 번역이 안 되는 모양이다.
‘멋있네.’
원근법을 무시할 만큼 매는 거대했다.
진천희가 좀 더 접근하자 흑의인이 한 명 서 있었다.
그 흑의인 주변에는 이미 번개를 맞고 시체가 된 다른 흑의인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 옆에 또 다른 괴인이 서 있었는데, 그 괴인의 몸에서는 수증기가 모락모락 일어났다.
“크하하하, 천뢰응. 새끼가 죽는 꼴을 보기 싫으면 순순히 잡히시지!”
괴인 옆에 있는 흑의인의 손에는 새끼 새가 잡혀 있었다.
뺙! 삐삐삐삐! – 엄마. 엄마!
저 새끼 새도 영물인지 번역이 되었다.
새끼가 몸을 비틀어 보지만 우악스럽게 잡고 있는 손 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질 못했다.
‘새끼는 번개까진 못 뿜나 보네.’
삐! 삐비비삑! – 아파! 살려줘! 엄마! 엄마!
‘음. 안 들리면 모를까, 들어 버렸으니 어쩔 수가 없네.’
이러려고 유호 놈은 법구를 준 건가.
진천희는 혀를 찼다. 그러고는 수신호로 황구에게 명령했다.
킁! – 까만 옷 입은 인간. 몰래 공격한다!
과연 영물답게 진천희의 의도를 알아챘다.
황구는 낮은 포복으로 천천히 접근했다.
진천희도 본인이 명령하지 않았다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그때, 괴인이 뭔가 눈치를 챘는지 시선을 돌리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