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78
제 1278화
그래도.
당가주님의 선택이 옳았다.
만약 당아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진자시계에 대해 알 일이 없었으리라.
후에 백린의각에서 발명했다고 해도 막상 사천당가에서는 별 필요 없다 느낄 수도 있고.
서대륙에서 수입한 태엽 시계도 그런 대접을 받았지 않았나.
‘약간… 비싼 장난감 취급이지.’
거기다가 그런 시계는 일이 년에 한 번씩 장인이 직접 점검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동대륙에서 오래 보존하기가 쉽지 않다.
‘유호 토용 시계가 괴이한 거고.’
그건 시간을 감는 진천희의 이능을 보조하기 위한 유호의 ‘응원’이 담겨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오늘 이 자리.
직접 만들어 보고, 진천희와 약간의 문답을 나눔으로써 스스로 깨달아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다.
그녀가 사천당가의 다음 후계인 만큼.
어찌 보면 무인이 깨달음을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물론 무학의 깨달음은 무척이나 중요하나, 결과적으로는 혼자만의 깨달음.’
허나.
진자시계에 대한 깨달음은-
‘다음 사천당가의 백 년을 좌우하는 깨달음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을 생각하면 꽤나 대단한 큰 자산인 셈.
‘과거 유럽이 이렇게 발달할 수 있었던 것도 진자시계의 발명 덕분이라는 이야기도 있어.’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할수록 상업과 공업, 의학과 화학까지.
‘모든 분야에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
그것이 말세를 넘을 방법.
그리고 진천희가 궁극적으로 바란 미래.
‘무공만으로는 결코 인간이 천기를 벗어날 수 없으니까.’
지존천마를 읽지 않았다면 진천희도 몰랐을 터.
‘미래를 몰랐다면 아마 나도 막연히 무공에만 집중하지 않았을까?’
“!”
진천희에게도 섬전 같은 작은 깨달음이 이어졌고-
그때 당아가 말했다.
“하지만 너무 복잡한데. 이 정도의 기관진식 기술이라니. 이걸 만들 수 있는 장인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군.”
맞는 말이긴 했다.
솔직히 진천희 자신은 장인으로서의 기술보다는 현원전단신공과 현경에 이른 강대한 무공을 이용해 우격다짐으로 만들었다 할 수 있다.
‘설계도가 있다고 해도. 일반 장인이 이걸 만드는 건……. 오차만 늘리는 일일 수도 있겠군.’
당아가 커다란 진자시계를 한참 바라보다가 진천희를 향해 돌아본다.
“어찌할 생각이냐? 백린군이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각 공방마다 부품을 따로 만들게 시키고, 조립하는 형태를 할 거야.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대량생산은 무리일 것 같고, 공방마다 측량 오차를 줄이는 게 우선이겠군.”
그 말에 당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생각해 보니 백린군은 측량법부터 하나로 고정시켜 놓지 않았나? 그게 이걸 고려한 것인가?”
‘아, 그건 세금을 정확하게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시작한 거긴 하지.’
하지만 진자시계까지 가기 위해서는 측량법이 반드시 통일되어야 한다.
당아가 다시 묻는다.
“공방 사람들을 한 가지씩 특화시킨 후에 합쳐서 대량생산 돌렸던 것도……?”
‘그건 뇌격부 싸게 찍어내려고 그런 건데.’
복잡한 공정도 이런 과정을 거칠 수만 있다면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그러면 자연 단가가 내려가게 되고.
평범한 농민도 관청의 지원금을 받아 뇌격부를 구매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치안이 안전해야 이 시계를 훔쳐 가는 이가 없을 것 아닌가? 특히나 강호인이 가장 큰 문제이니 그 안배를 위해 반드시 관청에 설치해야 할 터. 포졸들에게 무공을 가르친 것도 이 때문이었던 것일 테고.”
‘강호인들 싸움에 양민들 마을이 좀 터져야지. 사람이 씨 몰살이 되고 있는데 그러면 위정자가 그걸 가만히 두고 있겠니. 당아야.’
허나, 진천희의 생각과는 달리-
“그 모든 것이 이 시계를 만들 큰 그림이었던가!”
번뜩!
당아가 벼락이라도 맞은 표정으로 진천희를 바라본다.
‘아니, 그냥……. 아무리 내가 현원전단신공이 있어도 그렇지, 거기까지 생각하고 시작하는 건 무리지.’
하지만 모든 일에 순서가 있고.
인류의 발전이라는 것은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
“아무리 나라도 한 번에 하는 건 무리고, 철금방에 일단 협력 보낼 거야. 그쪽 장인들이랑 연계 안 하면 무릴걸?”
“철금방의 기술까지 빼가려는 것인가!”
“동업이라고. 당아야. 그냥 동업.”
“실로 사악한… 사악한 방법이구나! 나의 어둠의 대적자여! 우리 사천당가는…… 장로님들이 그냥 배 긁으면서 다 만들 수 있겠지만……. 백린군은 죽어라고 용틀임하며 만들긴 해야겠군. 힘내게!”
“…….”
……아, 이건 좀 짜증 나는군.
과연 대사천당가였다.
그날.
천진과 난만이 진천희의 전서를 매달고 하늘로 날아갔다.
***
철금방에서 금방 답신이 돌아왔다.
괜찮다면 철금방에서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고.
이쪽에서 장인들을 파견할 게 아니라.
그쪽에서 장인들이 이쪽으로 오는 게 어떠냐는 의견도.
‘오, 그러면 우리야 오히려 좋은데?’
보통 공방이 배타적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 공방의 기밀이 누설될 수 있기 때문.
그렇기에 진천희도 그쪽에서 파견 오는 쪽을 당연히 생각했다.
그래야 철금방 공방 내부가 유출되지 않을 테니까.
‘우리 쪽 장인들을 보내서 내부 비법을 견식하게 될 텐데 그래도 좋다는 건가.’
철금방이 그걸 생각하지 않을 리가 없다.
대신 조건이 있다.
진천희가 고안한 용광로가 필요하다고.
백린의각 용광로.
계곡 수차를 이용해 화력을 올리는 형태로.
과거 진천희가 이걸 만든 이후.
백린군의 선철이 유명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결국 강소성과 강으로 연결되어 있거나, 인근의 산동, 안휘 절강 지역 정도려나?’
화 제국의 영토는 넓다.
그리고 고속도로가 뚫린 것도 아니니.
성 두 개 정도만 지난다고 해도 운송비가 몇 배로 뛸 정도.
장강을 따라 운행하는 배로 운송하는 것은 그나마 육로보다는 낫지만.
그것도 성을 3개 정도 지나면 역시 운송비가 비싸지는바.
‘강소성이 농업혁명으로 사방으로 곡물을 팔고 있어도 호남성의 곡물 물가가 잡히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지.’
산적과 수적들이 상당수가 쓸려나갔음에도 그러하다.
예를 들어 보자.
조선시대에 조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통신정사로 파견되어 그 당시의 일본에 파견을 갔을 때의 일인데.
조엄 일행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육로로 이동하게 된다.
그 당시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약 1천 리가 넘는 거리였다고 한다.
km로 보면 약 400~440km쯤 되었다고.
그런 거리를 조엄과 그 휘하 관리들은 약 20일 만에 도달했다고 알려져 있다.
‘강소성의 끝에서 끝까지 거리가 서울에서 부산과 비슷하다고 친다면, 결국 화물을 옮긴다 했을 때 비슷하거나 더 걸린다는 의미지.’
강소성의 끝에서 끝까지 가는 데 이럴진대.
강소성을 지나서, 안휘성을 지난 다음.
그 북쪽에 있는 하남성을 한 번 더 지나고.
그 위의 산서성에 도착해 본다고 해 보자.
단순 계산으로만 사천 리 대장정!
1천 리 이동에 20일이라고 쳐도.
무려 80일!
이것도 단순 계산일 뿐 관도가 제대로 닦여 있지 않거나 폭우가 내리거나 하는 등의 일까지 생각하면-
‘족히 120일은 걸리겠군.’
그렇기에 급한 일은 경공의 고수를 이용하나.
군마처럼 오랫동안 계속 경공을 유지하는 자는 강호에서도 손을 꼽는다.
그리고 그 손에 꼽는 고수들 중에 표사 일을 하는 자는 더 극소수고.
‘거기다 작은 귀금속이나 단약, 서신 같은 거면 몰라도 제대로 무역을 하려면 막대한 짐을 들고 움직여야 하니 더 무리지.’
철금방의 사업 영역은 산서성, 하북성, 섬서성, 하남성, 산동성에 걸쳐 있다.
산과 산맥이 많고 광산이 많은 지역.
사실 원재료인 철광석은 저쪽이 더 싸다.
더 많이 채굴되니까.
즉.
사업적인 이유로.
‘용광로 설계도 좀 주세여. 우리 공방 기밀 좀 빼가도 괜찮아염’이라고 연락이 온 것.
진천희는 무월과 상의했다.
무월도 고민이 되는지 이마를 찌푸렸다.
“크으…. 사실 이런 기술은 독점하는 게 맞긴 합니다만… 철금방에서 작정하고 우리 기술을 빼내고자 한다면 못 할 건 아닙니다. 애초에 사천당가에서도 수차를 이용한 방식을 쓰고 있었고.”
당아가 진천희네 용광로를 보더니.
‘와! 우리 본가랑 방식이 비슷하군! 아, 진법은 좀 다른가? 그런데 우리는 세가 사람 아닌 자가 들어오면 혀를 자르고 사지를 끊는데, 여기는 월봉 받으면 아무나 그냥 들어오는 모양이군. 괜찮은 겐가? 대적자여. 그러면 고독(蠱毒)이라도 먹여야 기밀이 유지될 텐데. 아니면 못 도망치게 다리 근맥을 끊나?’
-하며 태연하게 무시무시한 소리를 했었으니까.
‘아! 그렇군. 백린의각 공방은 역사가 짧아 다른 세가들이 하는 짓까지 했다가는 장인을 모으기 어려울 테니…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인가! 힘내게! 친우여!’
“…….”
‘강호 그냥 다 같이 멸망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다른 세가에서는 장인에게 고독을 먹이고, 뭐 다리 근맥을 끊어?
좀 짜증 나지만.
이걸 보면 당아도 강호인은 강호인이다.
얘 별호가 혈편왕이라는 걸 가끔 까먹곤 하는데.
사람 별호에 혈(血)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밖에서 피를 어마어마하게 보고 다녔다는 뜻이다.
무월이 고민하다가 말했다.
“하지만, 소각주님과 각주님 말씀대로 세상이 점점 말세와 가까워진다면 제국 전체의 역량 강화가 필수겠지요. 그리고 철금방은 믿을 수 있는 동업자이고요.”
진천희가 답했다.
“네. 그거 때문에 고민입니다. 설계도를 그냥 전달하게 되면 유출이 될 수도 있고요.”
“…….”
그제야 무월은 왜 진천희가 논의를 하러 온 건지 깨달았다.
사실 답은 하나다.
무월이 생각한 것을 진천희가 생각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애초에 이 모든 것들이 말세에 대한 안배.
손에 닿는 곳.
백린군 양민들을 우선으로 지키고자 하고 있지 않나.
“……은공께서 직접 가셔서 설치하는 게 가장 좋겠군요.”
“역시 그렇죠?”
즉답이다.
‘크윽, 그러면 그동안 내가 일해야겠군.’
그래도.
이득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나.
무슨 복잡한 밑 준비 할 것도 없이 진천희가 직접 움직이는 게 열 배는, 아니 백배는 나으니까.
‘역시 내 허락을 구하러 오신 거구나.’
진천희가 직접 움직여야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속도.
진천희야 사실 철금방이 소유한 광산 부지나 용광로 설치할 장소까지 삼사일이면 갈 수 있다.
혼자서 경공으로 달려도 그렇고.
황구 익스프레스를 타도 그러할 터.
거기다 황구는 하백과의 전투에서 더더욱 진화하지 않았나!
이제 중원에서 가장 빠른 존재가 된 건 아닐까.
다들 그리 생각할 정도.
그런데 용광로 설치 기술자를 보내게 되면 가는 데만 서너 달은 걸린다고 봐야 한다.
게다가 돌아오는 데는 또다시 서너 달.
고로 진천희가 가는 게 더 나을 터.
결국 진천희는 무월과 상의 후.
설계 도면을 챙기고 출발했다.
“어이, 운명의 대적자여.”
“음?”
“나도 같이 가세나!”
‘철금방을 견학할 좋은 기회이니 당아가 놓칠 리가 없지.’
너무 노는 거 아닌가, 하던 모두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당아는 꽤나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말 그대로 견학.
신문물을 배운다는 점에서는 지금의 당아를 따라올 후계들은 없을 터였다.
“음, 일단 철금방 방주님께 허락을 구하는 전서를 보낼게.”
“그럴 거 없다. 아버님이 뒤처리는 알아서 하실 거다.”
“…….”
‘대사천당가를 상대로 대놓고 나가라고 하기 어렵긴 하겠네.’
거기다가 진천희가 직접 용광로를 설치하는 상황이면 더더욱!
‘나야 뭐, 사천당가의 제련 비법을 배울 수 있어서 이득을 많이 봤긴 하지.’
우정적인 면을 빼고, 소가주 된 자로서의 이윤을 셈하자면.
그만큼 당아는 꽤 가치가 높다.
당아가 눈을 빛냈다.
“그래서, 오늘 간식은 뭔가?”
“…….”
진천희는 오전인데 이미 간식 주머니가 황구와 뇌진, 그리고 당아로 인해 거덜 났음을 깨닫는다.
당아는 천재지만 연비가 안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