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82
제 1282화
진천희가 말했다.
“그나저나, 이 객잔이 지금의 철금방 지부겠군요.”
“네, 바로 맞추셨습니다. 이 건물이 바로 철금방의 임시 양산 광산 지부이지요.”
안으로 들어가니, 건물 형태 자체는 객잔을 의도하고 만든 듯하나, 부엌에는 음식 대신 죽간이 쌓여 있다.
탁자 역시 손님을 받기 위함이 아닌 업무를 위한 배치로.
그 외의 탁자들은 모두 구석으로 치워두었다.
그는 객실 중의 하나를 골라 진천희와 당아에게 각각 배정했다.
연 학사는 탁자와 의자들을 끌고 와 적당한 자리에 놓았고.
진천희는 차를 꺼내 두 사람에게 따라주었다.
“죄송합니다. 손님 접대가 변변치 않군요.”
“갓 시작한 광산 마을인데 당연하지요. 곧 커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걸요.”
쪼로록-
맑은 다향이 깊게 우러난다.
열양기로 끓여낸 차다.
물만 있으면 굳이 불을 피울 것도 없이 끓여내니.
연 학사는 신기하면서도 이 상황이 어쩐지 황송하기 그지없었다.
“멀리서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접 오신다는 전갈은 받았습니다만, 이리 빨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진천희가 답했다.
“황구가 워낙 빨라서요.”
“과연 견왕 황구라고 불릴 만하군요.”
“황구의 이야기가 강호에 꽤 유명해졌군요.”
“하하하, 어지간한 강호의 명사들도 황구만 못할 겁니다. 이렇게 외형이 변한 줄은 몰랐지만요.”
후릅-
당아는 차를 한잔 삼켰다.
이윽고 곧바로 본론을 꺼낸다.
“연 지부장. 대체 무슨 일이오? 황보세가는 왜 진을 치고 있는 거고?”
진천희와 연 지부장이 잡담을 할 기색이었기 때문.
그렇게 시간을 날리는 건 불같은 그녀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연 학사가 말했다.
“저도 사실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와서는 생떼를 부리더군요.”
“생떼요?”
연 지부장은 곧바로 사건 경위를 설명했다.
“철광이 발견된 것은 약 반년 전이지요. 양산에서 자라는 약초를 채집하던 약초꾼이 철광석을 몇 개 주운 것이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약초꾼과 거래하던 약방의 의원은 평소 거래하던 철금방의 상인에게 이 이야기를 했고.
진법사와 풍수사가 와서 조사했더니 철광이 있었다고.
“그래서 개발을 시작했더니… 철광맥이 제법 크지 않습니까. 그래서 본격적으로 광산도 만들고, 마을도 만들고, 광부도 모집하고.”
철금방주 철금신은 기쁜 마음에 투자를 했다.
과거 철금방이 그놈의 광산 개발을 잘못하여 망할 뻔하였다고는 해도.
‘이만한 철광맥을 내버려 둘 만큼 바보는 아니니까.’
그런데, 일이 터졌다.
“열흘 전에 황보세가에서 와서는 여기는 자기네가 땅 주인에게 샀다고 나가라고 하는 게 아닙니까?”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여기는 공지(空地)이고. 관의 허가를 받은 우리 철금방이 주인이다!
그게 철금방의 주장.
그런데.
황보세가는 이리 주장했다.
-그건 관부의 서류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 양산에는 사실 주인이 따로 있고, 우리가 그 주인에게 샀다. 공지라고 되어 있는 건 관청의 오류일 뿐이라고 하더이다.”
“허어. 골치 아프게 되었군요.”
이런 상황이 오면 으레 세가가 이기기 마련이다.
강호는 힘이 전부고.
황보세가를 상대로 당해낼 자가 몇이나 있겠는가.
하다못해 여기가 산동성이 아닌 다른 지역이었으면 이야기가 달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는 황보세가의 안방인 산동성이지 않은가!
허나.
황보세가의 상대는 철금방.
이쪽도 제국십대상단 중의 하나이며.
병장기를 팔아 세를 불려 온 곳이라 할 수 있겠다.
거기다 방주도 이미 막대한 금전을 집어넣었던 터라 이제 와서 도망치는 것은 불가했다.
“그렇게 아웅다웅한 지가 열흘이 지났지요.”
연학사는 한숨을 쉬었다.
“가운데에 껴서 악몽 같으셨겠군요.”
“네. 일단 철금방의 지부장으로서 본부에 이 일에 대해서 연락을 해 둔 상태로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며…….”
거리다 멀다 보니.
아직 이 사태를 어찌해야 한다는 명령서가 내려온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지금은 버티는 와중인 것!
“…….”
“산동성주에게 뇌물과 함께 중재를 부탁했지요.”
“!”
연 학사가 나직하게 말했다.
화 제국에서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니, 그냥 인류사에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뇌물이라도 바쳐서 이런 대치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불안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관에서 이를 해결해 줄 것 같지도 않고.”
철금방의 지부장이 쓸 수 있는 뇌물보다.
산동성의 주인 행세를 하는 황보세가에서 사용하는 뇌물이 더 많을 터.
그래도 안 바치는 것보다는 낫다.
“뇌물은 황보세가 편을 들지 말라는 의도입니까?”
양쪽에서 받아먹으면 적어도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는 게 관인의 모범적인 자세인 법.
“그 이상 뭘 해주겠습니까? 그렇다고 뇌물을 더 바친들 고작 관아가 황보세가 사람들을 오랏줄에 감을 수라도 있겠습니까. 관이 무슨 힘이 있어 강호인을…….”
당아가 말했다.
“백린군은 하던데?”
“네?”
“백린군은 방망이로 패서 끌고 가더라.”
연 학사의 눈이 커진다.
“그게 무슨……?”
연 학사가 놀라서 당아를 보았는데.
그녀의 눈에는 한 점 거짓 없이 초롱초롱하기만 했다.
아니, 그 전에 사천당가 소가주가 굳이 이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음을 연 학사도 알고 있었다.
‘소문이 허언이 아니란 말인가!’
백린군은 제아무리 강호인이 날뛰더라도 결국 법을 지킬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다들 반신반의하던 소문이 사실이었다니……!’
그야말로 자신 같은 먹물쟁이들에게는 꿈같은 일이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어찌 되었건, 관에서 더는 해줄 수 없고. 앞으로는 알아서 해야겠군요.”
“네에, 그런 상황이지요. 관무불침이니까요.”
양측에서 전부 뇌물을 주어서 지켜지는 관무불가침.
아주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진천희는 턱을 문질렀다.
‘이건… 아무래도…… 광산을 통째로 빼앗으려는 것 같은데?’
당아와 대화하며 철 외에도 구리 같은 게 나온다거나.
비동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거나 하는 가능성을 생각했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그냥 광산 빼앗으려는 양아치 짓 같은데?’
황보세가 내부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몰라도.
애초에 자신들의 행사에 관이 개입할 수 없음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터.
그렇다면.
그것에 맞게 행동해 주면 된다.
철금방은 그래 봐야 상단이다.
‘사실 무림에 영향력이 있지만…. 무림 문파라고 하기에는 애매해.’
말하자면.
관부와 무림의 사이에 적당히 걸쳐 있는 집단이라고 할까?
사실 무협 소설을 보면 일반적으로 다들 그런 식으로 서술되는 편이다.
애초에 이 시대에 장사라는 게 관부에도 사바사바를 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오륜회에 가맹한 것은 아니지만.’
백린의각의 거래처이자 주요 협력 업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겠지.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물건들을 발주하고, 발주받고 있으니.
‘백린의각 공방만으로도 요새 물건 만들기가 쉽지 않고.’
당장 진자시계를 만들기 위해 용광로도 이쪽에다가 설치하게 된 거 아니겠나.
거기다가 철금방의 전대 방주를 치료한 인연이라는 게 보통은 아니다.
‘음. 이 정도면 동맹이라고 봐야지.’
백린의각 소각주로서 어찌 움직이는 게 좋을지.
진천희는 빠르게 셈을 했다.
이윽고-
“제가 도와드리죠. 아니. 저희 백린의각이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연 학사가 화색이 되었다.
“오오……. 그래 주시겠습니까? 염치가 없습니다만. 지금 저희 지부가 위태로우니 도움을 주시면 감읍할 따름입니다.”
당아가 물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지, 대적자여?”
“수성전이지.”
“?”
두 사람 모두 무슨 소린가 싶어 눈빛만 교환한다.
진천희는 일단 종이와 붓을 받아 바로 서신을 적었다.
일필휘지로 무언가를 빠르게 적고는 뇌진의 발목에 매달아 주었다.
“서신만 전해 주고, 바로 돌아와야 한다?”
삐익!
우편료는 당과다.
당과를 물려 주고.
진서 신이경(神異經)을 꺼냈다.
힘을 불어넣고 주문을 짧게 외자 ‘팟!’하고 뇌진이 사라졌다.
백린의각으로 보낸 것으로.
파지지직–!
이 정도는 이제 능히 가능해졌다.
‘대신 일방통행이지.’
보내는 건 가능해도, 되돌아오는 건 뇌진이 알아서 해야 한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왕복보다는 편도가 낫지.
“자. 이제……. 응?”
말을 이으려던 순간 연 지부장이 ‘으에에에엑!’하며 발광했다.
“그, 그건 무엇이냐!”
당아조차도 암기를 꺼내 경계 태세에 들어간다.
“아차차, 표지만으로도 광기에 물들 수 있구나.”
어째서인지 진천희 자신은 진서(眞書)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데다가.
아무래도 백린의각에 있는 자들은 무월, 쟈시부터 해서 그 면면이 모두 보통이 아니다 보니-
‘내가 좀 무심했군.’
진천희는 곧바로 반성하며 진서를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지부장을 붙잡아 진기도인을 하여 정신을 안정시켰다.
“…….”
그렇게 얼마 후.
“후우, 세상에는 별의별 신외지물이 있군요.”
다행히 빠르게 처치한 덕분에 금방 회복되었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허허허,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런 이물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견문이 넓어진 기분입니다.”
연 학사는 완전히 회복이 되어 허허롭게 웃었다.
당아가 물었다.
“아까 그 물건은……?”
“진서(眞書)라는 건데, 힘을 가진 기묘한 서책들을 그렇게 부르더라고.”
“호오, 그런 책에 대한 설화는 어릴 적부터 듣기야 했다만 실제로 존재했단 말인가… 놀랍군.”
“맞아. 예전에 같이 봤던 짐조(鴆鳥)도 그렇고, 전설로만 알려진 것들이 영 허구는 아닌 모양이더라고.”
연 지부장이 말했다.
“진서라니……. 그런 게 있었군요. 그나저나 그 서신은 대체 무슨 내용입니까?”
“별것 아닙니다. 백린의각과 철금방은 동맹을 맺은 거라는 내용의 서신이요.”
“예?”
연 지부장은 얼빵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진천희가 담담히 말했다.
“이제부터 저희는 동맹입니다. 제 소각주의 권한으로 그렇게 정했어요.”
방금 정했다. 동맹인 것으로.
“……예에?”
연 지부장.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재차 묻는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음, 혹시 진서(眞書)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으신 건가?’
의원은 인간의 마음을 모른다.
특히 ‘중간관리자’의 마음은 더더욱.
***
같은 시간, 무월.
콰르르르-!
번개가 공간을 찢고 나타난다.
“으아악! 이게 무슨……!”
“설마 백린의각에 침입자가 나타난 것이냐!”
“무력당주님, 그리고 주술당, 주술당주님을 불러라!”
삽시간에 혼비백산이 된 하의원들과 무인들.
심지어 지나가던 모산파 수련 도사들까지,.
모두가 정신이 나가 소리를 지르자.
무월은 서늘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모두를 제지한다.
“별것 아닙니다.”
번개는 뇌진의 형상으로 돌아왔다.
푸드득-
깃털에 붙어 있는 번개를 털어내자 그제야 다들 가슴을 붙잡고 주저앉았다.
“방금은 무슨 조화입니까?”
“아, 소각주님께서 사용하신 힘입니다.”
그러자 모산파 소속 도사가 놀라서 물었다.
“공간을 도약하는 술법 말입니까? 축지법 같은 것은 도사들 중에서도 아주 드문 자들이나 가능하다 들었습니다만…….”
“……뭐 대충 그런 게 있지요.”
더는 묻지 말라는 듯 무월이 서늘하게 답하자.
그 기세만으로도 모산파 도사들이 딸꾹질을 하며 물러간다.
‘진서(眞書)를 쓴 것이라고는 다들 상상도 못 하는군. 하긴, 보통이라면 진서의 힘을 쓰는 것은커녕, 그 책을 열어서 읽는 것만으로도 미쳐 버릴 테니까.’
심약한 사람은 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타격을 입을지도 모르겠다고.
무월은 생각한다.
‘하지만 소각주님은 그런 진서의 힘을 무제한으로 끌어내는 데다가 미치는 법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