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83
제 1283화
아니, 선후관계가 바뀌었다.
정확히는 진서(眞書)를 사용해도 미치지 않는 유일한 인간이기에.
그 힘을 바닥까지 끌어낼 수 있는 것.
‘어째서 소각주님만이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현원전단신공의 공능인가?
‘그럴지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제갈세가는 무문(武門)이 아닌 도문(道門)에 기반을 둔 세가여야 했다.
허나, 저래 봬도 무문이다.
강호에서 책사를 가장 많이 배출했던 곳이고, 분명 그 힘은 검에 기반을 두었던 것은 맞으니까.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이야 있겠지만.
이 정도는 아닐 터.
‘은공에게는 비밀이 많군.’
이미 예상하지 않았나?
그의 주군은 강호에서 가장 괴이한 자라는 것을.
‘그보다는…… 모산파에 엉뚱한 소문이 돌겠군.’
축지술을 자유자제로 쓸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니 말이다.
설마하니 무식하게 진서(眞書)를 마구 휘둘러서 축지를 썼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모양.
‘제아무리 심지가 깊은 도인이라 하더라도 진서(眞書) 세 번만 쓰면 돌아버린다고 하던가?’
그걸 대가라고 준 선존도 제정신은 아니다.
들은 바로는 그의 성격상 공과격만 맞으면 그 후에 진서를 받은 사람이 어찌 되든 그리 알 바는 아닌 모양.
아마 보통 사람이라면 그 진서를 받고 더는 선존에게 무언가를 해주기는 어려웠을 터였다.
허나, 은공만은 그런 선존을 ‘보물 창고’라고 부르고 있다.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라 하겠지.’
감히 선존을 상대로?
하지만 은공만은 이상하게 그게 가능하다.
‘그나저나 외부로 돌 풍문은 적당히 조절해야겠군.’
무월은 그리 생각하며 뇌진을 어깨에 얹고는 소매에서 요깃거리를 꺼내서 입에 물린다.
삐빅!
당과가 입에 맞는 모양이다.
곧바로 집무실에 들어가 서신을 꺼내 쭉 읽고는, 도장을 찾아 찍는다.
쿵!
“소각주님이 황보세가와 한바탕하실 모양이로군.”
뇌진은 그걸 보더니 삐익, 소리를 내고 곧바로 창문으로 나간다.
그리고 날개 끝부터 천천히 번개로 몸을 화하기 시작하더니 빛이 되어 순식간에 날아가는 게 아닌가.
콰르르릉!
하늘을 그리는 긴 뇌전의 선.
진천희에게는 비밀이지만.
뇌진은 황구 정도는 아니어도 그 아래 정도로 상당히 격을 쌓은 상태.
그리고 유호의 도움으로 한층 더 도약했다.
천뢰응 중에서도 아주 극소수만 가능하다는 뇌화(雷化)를 체득해 낸 것.
육신을 번개로 만들어 빠르게 날아간다.
그 속도는 이미 생물체라 할 수 없었고.
어찌 보면 소리가 날아가는 속도에 비견된다 할 수 있겠지.
‘저 정도면 몇 시진이면 산동성 양산에 도착하겠군.’
무월은 길게 이어지는 뇌전(雷電)의 선에 감탄한다.
“그런데 소각주님한테는 비밀이라 들었는데…… 중간에 좀 농땡이 부리다가 들어가려나?”
뭐 그것도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별의별 것으로 재미있다 느끼다니, 나도 결국 업무에 미쳐 즐기는 자가 된 것인가.’
무월은 스스로 그만 웃고 말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상한 소리지만…….
백린의각에서 일하는 건 꽤 즐겁다.
과거 하오문에서 예인으로 일할 때와 비할 바가 아닌바.
몸은 좀 고돼도.
자신의 손짓에 많은 것들이 바뀌는 쾌감에 비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드디어 과로로 미쳐 버린 모양이군.’
무월은 생각했다.
***
“음, 뇌진은 서신 보내고 돌아오고 있겠지?”
진천희는 뇌진을 날려보낸 다음.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진법이라는 것은 본디 자연지물의 기운을 비틀어 특별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진법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축이 되는 기물들을 제작해 꽂아 넣거나.
주변 자연지물 중에 기운이 강한 것을 선별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진법사들이 처음 진법 의뢰를 받으면 일주일은 꼬박 산을 돌아다니는 것.
가지고 있는 것을 꽂아 넣는 것보다는 그래도 주변 지형지물을 찾아서 쓰는 게 몇 배는 조화롭고 진법 유지 기간도 기니까.
허나.
진천희 정도까지 경지에 오르면 이런 지리한 과정을 다소 생략할 수 있다.
우선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 중에 제법 크기가 되는 것을 선별.
“앞으로 이놈이 진법 축입니다.”
“네? 영석 같은 것도 아니고 평범한 돌인데요?”
연 학사의 말에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옳게 보셨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축이 될 예정입니다. 얄리얄리얄라성 얄라리얄라!”
“!?”
개소리를 지껄이며 돌에 양손을 짚고는 천지자연의 기운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현경의 경지에 다다르면.
천지와 교태하여 자연의 기를 받아 무한하게 내공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데에 기인한 것.
우우우웅-
“아니, 미친!”
진천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진지하게 외친다.
“내 이르노니,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교과서에 나오는 청산별곡을 외치며 자연기를 넣어 오행의 상생을 억지로 도모시켜 버렸다.
파지지직—!
“오, 오오오! 이런 것이 가능하다니!”
“후, 먼 동방의 기예입니다.”
“정말입니까?”
“평범한 돌도 진법기물(陣法器物)로 변모할 수 있는 술법이지요.”
개소리다.
그냥 현경의 무지막지한 내공을 퍼부은 것 뿐.
‘처, 철금방주께서 진 소각주님을 극진히 대우하라고 한 이유가 있군. 저 술법을 혹시 전수받을 수는 없을까?’
연 학사를 보며 진천희는 생각했다.
‘음, 역시 무월과는 다르군. 무월이 봤으면 개소리 말라고 하고 절대 안 속았을 텐데 연 학사가 참 순진한 게 귀여워~’
의원은 속으로 크헤헤헷 사악한 웃음을 터뜨린다.
“대단, 대단하십니다. 신선이나 할 법한 일을…….”
존경스러운 눈으로 진천희를 바라보는 연 학사.
이쯤 되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것 같다.
‘크크큭, 나중에 진실을 가르쳐줘야겠군. 속았다는 걸 알면 엄청 부끄러워하겠지?’
사실 진천희도 간과한 게 있다.
양민 입장에서는 현경의 조화로 하든.
동방의 신비한 힘으로 하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을.
그렇게 진천희는 쭉 진법을 설치해 나갔다.
양산지부에 우선 진법을 설치.
그리고 축을 삼은 영석을 바탕으로 보조 축을 만들고.
그 후 마을 전체를 감싸도록 진법을 설치랬다.
그렇게.
불과 한 시진 만에 마을을 감싸는 진법이 완성되었다.
“이 정도면 임시로 쓸 만은 할 겁니다.”
“영맥이 없는 곳도 가능하군요.”
“네. 오래 지속할 거면 영맥을 찾아야겠지만 지금은 그럴 건 아니니까요.”
화아아아악!
안개가 생겨나 마을 주변을 뒤덮기 시작했다.
보초를 서던 철금방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쳤다.
“이렇게 안개가 가득찼는데 마을 안에서는 밖에 훤히 보이는군.”
“대체 무슨 조화이지? 단순히 운무진과는 다른 형태인데.”
“이 정도면 망루만 설치해 놔도 충분히 우리 쪽에 유리할 것 같군.”
와아아아아!
사기가 쭉쭉 오르자 진천희의 어깨도 좀 들썩인다.
연 학사가 말했다.
“이건 대체!! 제갈세가의 진법이 이 정도로 신이했습니까!?”
‘여기 사람들은 참 반응이 좋네.’
마치 과학 실험을 처음 하는 초등학생들 같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그 시절.
하나같이 눈빛이 반짝반짝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운무난석금쇄진(雲霧亂石金鎖陣)이라는 진법이죠. 나가는 건 언제든지 가능하지만,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한 진법이에요. 여기에다가 십방귀로미혼진(十方鬼路迷魂陣)과 함께 회빙환환몽진(回憑還幻夢陳)을 깔아 두었으니 화경에 이른 고수도 들어오려다가 헤매게 될 겁니다.”
“……?”
아, 여기까지는 어렵군.
무인들 모두 뭔가 ‘잘 이해가 안가네.’라는 눈으로 서로를 힐끔 바라 본다.
허나.
“!”
당아만은 진천희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크게 놀란 기색이었다.
“대적자의 실력이 정말 놀랍구나! 두 진법 모두 강호에서도 일절로 칭해지는 진법으로, 설치하는 데 보름 이상이 걸린다 들었건만!”
연 학사도 마찬가지.
“저도 그리 알고 있습니다. 특히 운무난석금쇄진은 강호에서도 열 명 정도나 펼칠 수 있다고 하던데…….”
역시 두 사람!
리액션이 짱짱하여 해주는 사람에게 큰 보람을 주고 있다.
무인 하나가 물었다.
“연 학사님, 이 진법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오?”
“그렇습니다. 보통은 정사대전 같은 혈사를 앞두고 무림맹의 고절한 도인들이 와서 친히 산세를 보고 진법을 설치합니다.”
“진법을 설치한 후, 적들을 그쪽으로 몰아넣어야겠군요.
“네. 말씀대로 거기까지는 책사의 일이겠으나, 이 안배 과정 자체도 무척이나 오래 걸린다 할 수 있겠지요.”
“오오오!”
그제야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거기다.
정사대전이라는 말이 나오자 왠지 무인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 대단한 걸 지금 받고 있다는 건가?’
‘커, 커흠. 정사대전에서 나설 정도의 강호인이면 보통 강호에서도 손꼽히는 천하인들일 터인데……. 그런 걸 지금 우리가 전투를 앞두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군.’
상단의 호위 무인들은 정사 간의 무인들과는 좀 다르다.
정사 간의 무인들은 어찌 보면 강호의 판세를 정하는 자들로.
협객이든 마두든 그 위명이 어디서나 크게 울린다고는 하나.
상단 호위 무인들은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상단의 안위.
그리고 이러한 광산 분쟁 때 차출되는 인력이라 할 수 있겠지.
왠지 강호 풍문에나 나올 법한 대협객이 되는 기분이었다.
‘이거 참, 백린의각 소각주의 눈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실력을 보여야겠군.’
이미 칼날을 한번 갈았지만.
어서 돌아가서 좀 더 세심하게 갈고 싶었다.
그만큼 사기가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
당아가 말했다.
“그런데 말이다. 앞의 두 진법은 알겠지만…… ‘회빙환환몽진’은 대체 무엇인가? 그런 진법은 내 들은 바가 없네만.”
“아. 내가 특별히 만든 진법이야. 직접 만든 거지. 아주 달콤한 꿈을 보여 주는 진법이거든.”
달콤한 꿈?
당아가 이마를 찌푸렸다.
“그러면 좋은 거 아닌가? 악몽을 꾸게 하면 꾸게 했지, 달콤한 꿈을 꾸게 하다니! 그냥 남 좋은 일이나 시켜 주는 거 아닌가……!”
허나, 연 학사는 크게 놀라서 손뼉을 친다.
“그런 진법이……? 아주 대단하십니다!”
“?”
당아 혼자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사천당가는 진법이 전공이 아니다보니 곧장 깨닫기는 어려운 모양.
진천희가 당아도 이해하기 쉽게 말했다.
“독도 쓴 독보다 달콤한 독이 더 중독시키기 쉽잖아?”
“아아아! 그런 거군.”
만약 독이 쓴맛이 난다면, 바로 파악하고 술을 뱉으리라.
하지만 단맛이라면 좀 다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단것을 찾는 생물.
독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보통 한 모금이라도 더 마시고 난 후라고 할 수 있겠지.
“단맛처럼 계속 본인이 보고 싶은 것을 보게 되는 건가… 실로 무시무시한 환영이군. 회빙환… 어……. 이름이 뭔가 이상한 진법이지만 무척 두려운 진법이야!”
진천희가 말했다.
“크헤헤헷, 제갈세가의 후계자로서 이 정도는 해 줘야지.”
그리 말하며 가슴을 편다.
뭔가 대단하긴 한 진법인 모양이라고 강호인들은 생각했다.
진천희가 말했다.
“참, 일단 마을과 광산의 안전을 확보했으니 다음 단계를 실행하도록 하죠.”
연학사가 물었다.
“다음 단계라고 하시면…….”
“일단은 ‘대화’입니다.”
방비를 하긴 했지만, 가장 좋은 것은 평화롭게 끝내는 것.
진천희가 미친 눈으로 말했다.
“저는 평화주의자입니다.”
“네?”
강호 누구도 안 믿는 말.
허나, 현대인은 ‘평화’를 사랑했다.
“당아야, 내 회빙환환몽진에 사람을 퐁당퐁당하기 전에 대화로 풀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지 않을까?”
“…그냥 퐁당퐁당하고 대화하는 편이 더 빠르다고 보내만.”
대화도 힘이 좀 빠져야 할 수 있는 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