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295
제 1295화
삼학사의 목소리를 뒤로하며 진천희는 생각에 잠긴다.
‘스승님의 아버지, 선대 가주라…….’
그가 무엇을 꾸몄던 것일까?
그리고 강호는 어찌하여 제갈가를 멸문하였는가.
대체 제갈세가에서 무슨 실험이 벌어졌던 걸까.
‘그리고 스승님조차도…….’
그 실험 재료가 되셨다고 하셨지.
어차피 죽을 목숨 세가를 위해 쓰라고…….
아비가 자식을 생체 실험했다.
그 말종 같은 삶 속에서.
제갈린이라 불리는 천재는.
그때의 고통스럽던 깨달음과 지식을 변환하여 자신의 제자에게 내려주었으리라.
당연했다.
스승님은 제자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좋은 것’만을 전수하는 자고.
한번 인체 실험으로 새겨진 ‘지식’은 목숨을 걸었던 만큼.
다른 곳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귀한 것일 터이니.
어쩌면.
만약 그런 거라면.
‘……제갈세가 선대 가주가 만들어 낸 안배가 한 다리 건너뛰어서 내게 온 셈이 되는데…….’
그는 대체.
친아들까지 불태우면서 뭘 하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스승님께서는.
그때의 ‘지식’을 제자에게 전수하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오싹-
진천희의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사람들의 경탄 속에서 생겨난 소름은 오랫동안 가라앉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것이-
그 누구도 풀지 못한.
제갈세가의 ‘어둠’ 이야기였다.
* * *
강호의 어느 객잔.
강호인들은 오늘도 술잔을 기울인다.
보통 약관이 넘은 강호인의 삶이란 본디 새벽에는 깨우침을 찾고.
낮에는 타인의 피를 찾으며.
저녁에는 술을 찾는 삶이 아니던가.
그런 그들에게 술이란 하루를 넘기는 중요한 의식과도 같았고.
어느 천하신의 말을 인용하자면.
강호인의 피는 술로 이루어져 있을 게 틀림없다.
그렇게 죽엽청의 향을 음미하며 가장 나이 많은 강호인이 입을 열었다.
“자네, 그 이야기 들었나?”
“무슨 이야기?”
오늘도 낮에는 누군가의 피를 묻혔으니.
술로 씻는 시간이다.
그것은 백도건 흑도건 마찬가지.
이 시간은 양민들의 빨래터와 비슷하여 아무 이야기라도 해야 속 씻기에 좋다.
늙은 무인은 젊은 무인에게 오늘 들은 풍문을 안줏거리로 건넨다.
“황보세가에 삼존에 버금가는 현경의 무인이 탄생했다더군. 반로환동까지 했다고 들었네.”
“호오, 그게 진짜란 말인가?”
“하북팽가의 철안대도가 직접 확인했다고 하더군. 그뿐만이 아니네. 진주언가, 남궁세가, 소림사에서도 확답했다네.”
그 말에 같은 상에 앉아 있던 강호인들이 저마다 속닥인다.
“아! 그거였나? 양산의 광산을 두고 했다는 공개 비무. 그게 진짜였군?”
“그렇다네. 현경이라니… 천하삼존 이후로 아무도 없었거늘.”
“백린의각의 소각주인 천하진일광이 현경이라고 들었네만. 왜 그치는 세지 않는 겐가?”
그 말에 늙은 무인이 웃음을 터뜨린다.
“그건 사실인지 거짓인지 불분명하다는 소문이 있었거든. 하지만 이번에 황보세가의 전대 고수인 황보곤 대협을 이겨서 그 무위를 진실로 증명하게 되었다고 하네.”
“그러면. 현경이라는 경지에 이른 무인이 다섯이나 된다, 이건가?”
“그런 걸세. 천하오존이라고 불러야 할 지경이지.”
그 말에 모두가 말을 잃었다.
“하긴, 강호에 혈사가 줄어들었으니 고스란히 수련에 매진을 했을 거고, 그 성취가 이렇게 나타나는 겐가?”
“당장 화경에 이른 무인도 증가하였지 않던가. 그런 게지.”
“……커흠!”
그 말에 탁자에 앉은 강호인 모두 헛기침을 내뱉었다.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강호인들 중에는 화경에 이른 자는커녕 일류 무인도 없기 때문.
이류, 삼류 무인에게는 이러나저러나 너무 먼 이야기다.
화경의 무인이 설령 늘었다고는 하더라도.
그 기회는 자신 같은 자들에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이윽고 가장 어린 무인이 말했다.
“강호의 판도가 뒤바뀌겠군…….”
“이미 판도야 십 년 전부터 마구 출렁거리지 않았던가? 사도련만 해도 사도팔문에서 사도십이문으로 바뀐 지가 오래인 것을…….”
“그거야 그렇지만. 백린의각… 천하진일광. 무섭군그래.”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 풍파가 일어난 것이 그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으니까.
그가 말했다.
“사실…… 천하진일광이 제일 무서운 작자일세. 최근에 새로운 별호도 추가되었다더군.”
“활인천마…라는 그 별호 말인가?”
그 말에 늙은 무인이 고개를 젓는다.
“이 사람 아직 소식이 느리군. 활인광의라네. 특히 무서운 소문이라면… 활인을 위해서라면 여장을 하고 미인계도 서슴지 않는다고 하더군! 이미 황제가 그 치마폭에 휩싸여서는…….”
“헛소문이겠지?!”
모두가 눈을 뜨악하게 뜬다.
“그 말대로라면 실로 미친 새끼가 아닌가. 들리는 소문에 매일 밤 여자를 갈아치우는 파락호 색마라고 하지 않았던가.”
동정색마 진천희의 평판이 이제 여장 동정색마가 되기 시작한 때였다.
모태 솔로는 서럽지만 그들이 알 리가 없다.
진실이야 어찌 되었든 재미만 있으면 그만인 게 강호의 풍문 아닌가.
“그런 무시무시한 일이 다 있다니! 허허! 제국이 어찌 되려고……. 그런데 그게 어찌 가능하단 말인가? 그래도 남자일 텐데?”
“이 사람 소식이 늦구먼. 활인광의가 그렇게 기가 막히게 예쁘게 생겼다고 하네. 반안(潘安)과 송옥(宋玉)도 그치 앞에서는 빛이 바랜다고 할 정도야!”
“오오오오! 세상에!”
“그런 미모가 존재한다고?”
“그런데 천하신의이자 현경이자 색마라고?”
반안과 송옥.
역사 속에 초절정 미남자로 이름이 알려진 자들.
“그 정도란 말인가? 색마라고는 하나, 한번 얼굴이라도 보고 싶군!”
모태 동정남 진천희가 들었으면 가슴이 찢어질 이야기를 하며.
무인들은 좋은 시간을 나눈다.
그리고.
이 두 무인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객잔에 있는 강호인과 양민들까지 전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다.
진천희가 현경에 이른 무인임이 확실하게 강호 전역에 퍼져 나가고 있었고.
그리고.
대황보세가가 한 명의 의원에게 패했다는 사실 역시.
“곧 강호에서 모르는 자들이 없겠군.”
공개 비무 특성상 바로 그러하였다.
* * *
무림맹 심처.
맹주 창왕 악진이 자못 심유한 눈으로 앉아 있다.
그의 맞은편.
소림사 방장 신승(神僧) 원선(元善) 대사가 탁자를 가운데에 두고 차를 마시고 있었다.
다향이 그윽하기 그지없었으나.
악진의 표정은 조금도 누그러짐이 없었고.
그저 칼날 같은 입가를 보며 신승이 피식 웃었다.
이윽고 악진이 물었다.
“소식 들으셨습니까, 대사?”
“물론이오, 악 시주. 저잣거리가 이번 공증 비무 때문에 시끄럽더구려.”
“예전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사실인 모양입니다.”
“허허. 빈승이 거짓을 말해 드렸겠소. 그래도 부처께서 광명을 내려주셨으니 다행한 일이지요.”
창왕 악진이 눈을 찌푸렸다.
“진천희 소각주가 광명인지는 두고 봐야 할 일입니다. 분명 그 의지는 정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그는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갈세가의 마지막 생존자의 하나뿐인 제자이지 않소이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법이오. 전대 맹주가 지휘한 제갈세가의 건 때문에라도, 이 무림맹이 주도하는 질서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외다.”
밝혀지는 비사.
제갈세가의 멸문에 전대 무림맹주가 관여했는가!
“악 시주. 도가에서 이르기를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하였소이다. 순리대로 흐르게 두시구려.”
“불자이시면서 도가의 말도 쉬이 인용하시는군요.”
“불가의 가르침에 오히려 그런 것에 얽매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공(空)한 일이라 하지요.”
악진이 어금니를 악물었다.
“피가 흐를 겁니다. 대사. 아주 많은 피가.”
“억지로 흐름을 틀려다가 더 큰 피가 흐를 수 있음이오.”
그 말에 맹주 악진은 신승을 노려보았다.
“결국. 맹의 행사에 협력하지 않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언제나 그렇듯. 본사는 불법을 수호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할 뿐이라오. 후후, 차는 잘 마시었소.”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신승 원선.
“아미타불. 현명한 판단을 내리시기를 바라겠소이다.”
그는 부드럽게 한 손으로 반장을 하고 사뿐사뿐 밖으로 나간다.
악진만이 간단한 예조차 표하지 않고 그의 등만을 바라볼 뿐.
“…….”
신승 또한 뭐라고 하는 법이 없다.
탁-
문이 닫히고.
악진은 탁자를 딱딱 두드리며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상념에 빠졌다.
그때 누군가가 기별도 없이 문을 탁 열었다.
악진이 불편한 기색으로 말했다.
“밖에 있는 무인들에게 이야기를 해야겠군. 왜 다들 기별도 없이 들어오는 건지.”
“본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그럴 필요 없다 하고 들어왔소.”
어찌 보면 당연했다.
고작 문 앞을 지키는 문지기가 지금 들어오는 상대를 거스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방금 우격다짐으로 방에 들어온 자.
그자의 기백만으로 찻물이 출렁일 지경이니까.
바로.
공동파 장문인!
“본도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맹주.”
“기다렸습니다. 장문인.”
“그래. 결심이 서셨습니까?”
공동파 장문인의 눈에는 의기가 서려 있었다.
그런 그에게 창왕 악진은 차분히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때가 아니라는 말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정사전쟁을 시작하지요.”
“원시천존이시여……! 잘 생각하셨습니다. 맹주. 본파는 맹주를 적극 지지하겠습니다.”
무림맹 내부. 강경파인 공동파.
그러나 그런 공동파의 장문인이…….
혈선교의 ‘백천군’인 것은.
‘후후후~♫’
그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 * *
“예? 면구(面具)요? 그걸 왜 써야 합니까? 가뜩이나 숨쉬기 어려운 곳입니다만?”
“미세한 먼지요? 크하하핫! 그런 거 들이마신다고 큰일이야 나겠습니까? 다녀와서 죽엽청 한잔 마시면 그냥 크아~”
“저희는 그간 이렇게 일해 왔습니다요. 괜히 기존에 하던 것들과 바뀌면 오히려 채광에 차질만 빚게 될 수 있고 말입죠. 네에…….”
광산 마을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진천희는 광부들의 일을 한번 견학해 보기로 했는데.
그 결과-
‘그렇군. 역시나 마스크도 보호 장구도 없이 들어가서 곡괭이질을 하는군.’
경악스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하기도 했다.
여기 사람들에게 있어서 광부 일을 하다가 폐병이 올 위험 같은 것은 사실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광부들이 일찍 요절하는 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있어도.
어차피 사람이 픽픽 나자빠지는 평균 수명 삼십의 강호 랜드.
옆집 사는 강호인과 뒷집에 사는 거지가 의외로 수명 차이가 나질 않는 세계.
‘허억!’
하지만 의원 입장에서는 정신이 나갈 것 같다.
‘황보곤… 황보곤과 차라리 한 판 더 뜨고 싶다.’
이것은 마치.
엉덩이 긁던 손으로 만두를 만들던 금봉혈미의 모습을 보던 때와 같은 컬쳐 쇼크!
게다가.
광산 안쪽도 문제다.
진천희가 생각한 광산 희망 편!
1. 시옷 자로 만든 지붕으로 단단하게 천장을 지탱한다!
2. 안에는 광차(광산 내부에서 광석을 운반하기 위한 운반차)를 위한 철도가 있다!
3. 분진 가루가 폐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마스크를 쓴다!
즉. 그나마 현대 광산 비슷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현실은?
광산 절망 편!
1. 마스크,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닌데 왜 함?
2. 광차를 위한 철도? 그게 뭐임? 그냥 지게에다가 짊어지고 다닌다!
3. 천장이요? 나무판자 몇 개 직각으로 뚝딱했는데요? 무너지면 사람 목숨, 그것도 하늘의 뜻이죠.
“갸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