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39
제 139화
모래알의 한탄이었다.
그것은 검수로서 수만 번 벽에 부딪쳐 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야 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한탄이었다.
중년의 삶을 살아가며 재능 있는 이를 얼마나 많이 봐 왔을까.
왜 나는 할 수 없는지 자책을 안 했을까?
그럼에도 그녀는 동생을 찾아야 하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을 것이고.
부족한 것은 흘려 보내는 수밖에 없는 시간.
이십 년.
천하의 진천희도 이번만큼은 술은 줄이고 물을 많이 마시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다만 이렇게 말을 할 뿐이었다.
“잠이 잘 오는 혈 정도는 가르쳐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크크큭, 나한테 신경 써 주는 건 오늘 처음 만난 소형제밖에 없네그려.”
삼절추호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명치부터 울화가 자글자글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부모가 참살당하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동생을 추적하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부족한 것을 고민하고, 스스로를 우둔하다 탓하며 그럼에도 쓰러지지 않고 걸어갔다.
빛나는 신성들을 보며 남모를 질투도 했을 터였다. 그리고 그 질투조차도 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을 터였다.
그래서 그녀는 술로 버텼다.
그녀는 강호의 흔한 일이라고 일축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삼절추호는 억지로 명랑하게 말했다.
“드디어 비슷한 사건을 만났네. 물론 그때보다 훨씬 은밀하고 치밀하지만 어째서인지 같은 냄새가 나네.”
“어째서 그리 생각하시죠?”
“낭인으로서의 육감이라고 하면 믿겠나?”
삼절추호의 말에 진천희는 쓰게 웃었다.
“네. 다른 이도 아니고 삼절추호의 말이니 믿어야죠.”
그녀가 한두 사건을 해결한 게 아니라는 걸 모르는 이가 없다.
무림에서 호(虎)라는 별호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다.
진천희에게 부려지고 있는 삼살추서도 기껏해야 쥐를 뜻하는 서(鼠)가 아니던가.
“이런 낭인을 믿어 주니 고맙군.”
“동생은 꼭 찾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두 명으로 좁혀졌네요.”
진천희는 두 아이의 기록을 그녀 앞에 내밀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물었다.
“둘 중에 특별히 아픈 아이는 없나요?”
삼절추호는 한참이나 그것을 읽다가 운을 뗐다.
“경이라는 아이가 최근 고뿔로 앓아누운 건 알고 있네.”
“그러면 다른 쪽 아이겠군요.”
진천희의 말에 삼절추호의 눈이 커졌다.
“그렇군. 아픈 아이는 제사에 쓸 수 없으니. 건강한 아이로 납치하려 하겠군. 소형제는 거기까지 짐작한 건가?”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사에 썩은 과일을 올리는 사람은 없다.
그건 조상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후손은 조상에게 감사의 의미로 가장 좋은 과일을 올리려고 한다.
한국에 살지만 평생 제사를 지내 본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는 진천희다.
그런 진천희도 그건 들어서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신공양에도 건강한 자를 바치려고 한다.
‘여기까지 추론하는 것 자체가 하기 싫은 일이군.’
그래도 아이의 목숨이 달렸으니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규칙은 찾았으니 동생분 이름과 생년월일시를 알려주세요.”
삼절추호는 감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은 도백은이고 한자로는 이렇게 쓰네.”
그녀는 빠르게 동생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적고는 그 옆에 생년월일시를 적었다.
‘소설에서 도백은이라는 캐릭터는 본 적이 없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알 수 없다. 무협에서는 이름 대신 별호만 나오는 경우도 많으니.
생년월일시를 계산해 보고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사건과 규칙은 같네요.”
그 말에 삼절추호의 눈이 커졌다.
“맞군. 내 감이 맞았어. 그래… 그래. 잘됐네. 백은아…… 언니가 꼭 갈게.”
언니 도백하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것도 잠시, 눈에 독기가 서렸다.
이십여 년.
동생을 찾기 위해 헤맸던 시간이었다.
삼절추호는 몸을 일으켰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
“우선 아이들부터 구하죠.”
“그래. 미행은 잘할 줄 아나?”
“보법의 특성상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좋네. 아이의 집까지 안내하겠네.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납치 중간에 절대 개입해서는 안 되네. 그랬다가는 영원히 다른 아이들의 목숨까지 놓치게 되는 걸세.”
진천희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행법에 대해서는 가면서 전음으로 이야기하도록 하지, 소형제의 오성이면 조금만 가르쳐 주어도 금방 깨우칠 터이니.”
* * *
삼절추호는 진천희에게 미행과 추적법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은밀한 보법과 신법이네만…… 소형제를 보니 그 걱정은 안 드는군.] [다행이군요.]제갈가의 천기미리보 덕분이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진천희는 삼절추호를 쫓았다.
‘황구와 천뢰응 패밀리는 여하륜을 잘 찾아냈으려나.’
재미있게도 영물은 추적은 잘해도 미행은 쉽지 않다.
체구가 큰 동물이다 보니 멀리서도 눈에 잘 띌 뿐더러 천뢰응 패밀리는 아예 하늘을 난다.
하늘에서 새가 쫓아오면 바보라도 눈치챌 터.
이게 추격은 쉬워도 미행에는 적합지 않은 이유였다.
삼절추호와 함께 자리를 잡고 기척을 죽였다.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한참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달빛도 구름에 가려진 어둠이 적막을 깔았다.
이윽고 건물 그림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몸을 꿈틀거렸다.
흑의인이었다.
처음부터 기감을 넓혀 예리하게 감지하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놓쳤을 만큼 조용하고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놈은 집으로 들어가더니, 이윽고 보따리를 업고 나왔다.
그 안에 아이가 들어있을 게 분명했다.
혈이라도 잡혔는지 보따리에는 무게감만 있을 뿐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윽고 놈이 움직였다.
[쫓아간다!]삼절추호가 먼저 한 발 내딛었다. 진천희는 그런 삼절추호를 따라 신형을 움직였다.
* * *
놈은 도시를 벗어나 산으로 향했다.
나무를 타고 가는 속도가 흡사 사람이 아니라 산짐승 같았다.
그러나 진천희도 삼절추호도 경공에는 일가견이 있어 놓치지 않고 쫓아갈 수 있었다.
[소형제, 나무를 밟을 때는 가지가 부러지지 않도록…… 잘하고 있군.]삼절추호가 놀란 눈으로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삼재보법으로 그런 신묘한 짓이 가능한가?] [천기미리보를 익힐 때 삼재보법도 배우거든요.] [그건 알겠네. 그런데 어떻게 삼재보법으로 그게 되냐고. 삼재보법은 저잣거리에서나 배우는 보법 아닌가?] [……?] [아니 그러니까.] [되는 것을 된다고 하지, 어떻게 되냐고 물으시면……]진천희의 말에 삼절추호가 한숨을 쉬었다.
[아니, 됐네. 소형제가 기인이라는 것은 알겠네.]삼절추호는 진천희에게 뭔가 묻는 것을 포기했다.
낭인으로 살아오며 기인이란 기인은 전부 만나 보았지만 그중에서도 진천희는 상위권이었다.
물론 말이 잘 통하고 인품도 존경할 만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과 별난 것은 별개였다.
얼마나 더 쫓았을까, 흑의인의 잔상이 어느 순간 흩어졌다.
삼절추호가 추적술을 펼쳤으나 잡히지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진법이군. 이 근처에 진법을 설치했어.]역시 파악이 빠르다. 진천희가 기감을 넓히며 말했다.
[그렇군요. 제갈가에서 사용하는 진법의 형식과는 많이 다른데…….]진천희는 낙엽 서린 땅에 손바닥을 얹었다.
눈을 감고 지맥을 살피기를 한참.
이윽고 빙정검을 뽑아 어느 한 곳에 검기를 날렸다.
서컹!
바위가 흡사 두부처럼 썰려 나갔다.
굉음 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한 파괴에 삼절추호는 내심 놀랐다.
[강하군.]원래도 오행신공만으로 고목혈마를 물리친 진천희다.
그런 진천희가 이 갑자의 내공까지 얻었으니 범이 날개를 얻은 격이다.
그럼에도 진천희의 표정은 긴장으로 차 있었다.
[소형제는 그럼에도 상대가 상당한 고수라고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군.] [네. 제 예상이 틀린다면 다행이지만.]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몇 개의 돌을 더 부수고 나자 먼 곳에 사당이 보였다.
[이런 곳에 사당이 있었군요.] [나무의 모양새와 송진 냄새를 보아 제사를 위해 새로 지은 것 같군. 아마 석 달이 채 안 됐겠어.]오랫동안 낭인으로서 의뢰를 맡아 왔던 자답게, 삼절추호는 사당이 지어진 시기를 손쉽게 추측해 냈다.
진천희가 말했다.
[진법이 무너졌으니 적들도 눈치챘을 겁니다.] [바라던 바지.]그녀는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부디 저자들 중에 내 동생을 납치한 자가 있길 바라네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니 곤란해.]삼절추호는 살기 어린 웃음을 흘렸다.
진천희는 그런 삼절추호에게 충고했다.
[생포하실 생각은 포기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런 여유는 저희에게 없으니까요.] [알겠네. 소형제.]* * *
사당 입구는 검붉은 빛이었다.
마치 사람이 흘리는 피의 색과 같았다. 냄새도 흡사하여 욕지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사당 입구를 지나니 새카만 굴이 보였다.
흡사 이리로 들어오라고 유혹하는 듯한 모양새.
[다른 입구는 보이지 않는군.]그녀는 혀를 찼다.
[이 아래는 필시 함정일 것이네만…… 소형제, 괜찮겠나?] [제 걱정을 하실 건 없습니다.] [이런 위험한 일에 끌어들여 미안하네.]그녀는 솔직하게 본심을 내비쳤다.
[끝나면 차 한잔 사세요.] [술이 아니고?] [누님도 그렇게 마시다가는 말년에 고생하십니다.]함께 생사를 오가게 된 상황, 그 앞에서 진천희는 삼절추호를 누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러 주었다.
그 뜻을 알기에 삼절추호 도백하는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때는 좋은 의원을 찾아가면 되겠군.] [호오, 좋은 의원이라.] [소백룡이라는 고명한 의원이 있는데 기인이긴 해도 의술은 천하일품이지.]그 말을 끝으로 진천희와 삼절추호는 동시에 안으로 진입했다.
차차차창!
어둠 속에서 수백 개의 장침이 날아왔다.
진천희는 검풍을 펼쳐 장침을 막아냈다.
흑의인들이 진형을 짜서 두 사람을 향해 공격했다.
인간으로 만든 벽.
삼절추호는 허리에 매고 있는 장검을 뽑아 놈들에게 응수했다.
카앙!
[이자들은 내가 맡지. 소형제는 아이들을 구하게.] [알겠습니다! 위험해지면 도망치세요!] [하하하, 내가 있는 곳은 범의 아가리지만 소형제가 들어가는 곳은 범의 목구멍일세. 나야 도망친다 해도 소형제는 어쩌려고 그런 소리를 하나?] [저는 제 몸 하나 돌볼 수 있습니다.]진천희는 빙정검에 힘을 실었다.
삼재검법.
초식.
삼재개문–!
검으로 문을 연다(開門)는 의미가 들어 있는 초식.
보통은 일주일 배우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기초 중의 기초다.
그것이 오행심법과 이 갑자 내공에 합쳐져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만들어냈다.
흑의인들은 합격진의 생문을 사문으로 닫아 합검으로 대응했다.
콰앙!
놀랍게도 흑의인들의 합격진이 진천희의 검격을 이겨 내지 못하고 뚫려 나갔다.
[저게 될 줄 알았으면 나도 삼재검법이나 배울 걸 그랬군.]삼절추호가 툴툴거렸다.
[하하하, 그러면 먼저 갑니다.] [죽지 말게.]진천희는 그렇게 뚫린 합격진 속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뒤늦게 흑의인들이 검을 들어 쫓아가려 했으나 삼절추호의 고강한 검격에 밀려 진천희를 막지 못했다.
“어딜! 네놈들은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인다–!”
삼절추호의 내력이 실린 고함 소리가 석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