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45
제 145화
“음, 이런 느낌이구나.”
그렇게 양 손목을 묶은 수갑을 파훼하고 이제 족쇄 차례가 되었다.
“스승님이 만든 족쇄가 문제군. 원리가 비슷하기야 하겠는데 제갈가는 기관진식으로도 유명하니…….”
이걸 풀어내는 것도 하나의 지적 유희가 되리라.
진천희는 손가락을 우드득 풀었다.
그리고 각을 잡고 철사를 넣으려는데 문이 드르륵 열렸다.
“형, 식사 시간…….”
죽을 들고 온 여하륜과 진천희의 눈이 그대로 마주쳤다.
“…….”
죽을 천천히 내려 놓는 여하륜에게 진천희가 급히 말했다.
“야, 나 다 나았어! 그리고 손가락! 손가락 봉합해야지!”
“아, 그치.”
“나 다 나은 거 너도 알잖아.”
“그런데 형. 언제 그런 잡기를 배웠어?”
진천희가 환하게 웃었다.
“살다 보면 배울 날이 있어.”
“……형에게 자물쇠가 그리 중요치 않다는 건 알겠어.”
다음번에 묶일 때는 그냥 통쇠사슬이 되는 건 아닐까.
진천희는 두려워졌다.
“일단, 손가락부터 봉합하자. 그게 가장 걱정이다.”
검수에게 손가락만큼 중요한 게 어디에 있나.
거기다가 강자존의 마교다.
여하륜이 약해졌다는 소식을 달가워할 마두들이 한둘이 아닐 터였다.
“그리고… 나 때문에 손가락 거는 건 하지 마.”
“형.”
“나 속 썩는다.”
그 말에 여하륜이 진천희를 빤히 바라보았다.
저 검은자위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진천희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알았어. 생각해 볼게.”
* * *
그날 밤. 스승님이 들어오셨다.
인피면구를 쓰고 머리카락을 검게 물들이신 스승님은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그는 진천희와 인사를 나누는 대신 손목을 잡아채서 진맥을 했다.
“다 나았구나.”
“다행인 일이죠.”
“불효막심한 녀석 같으니라고.”
“헤헤헤…….”
진천희는 일부러 넉살 좋게 웃어 보였다.
진천희가 그렇게 웃으니 제갈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내가 꼭 그 꼴이구나. 다친 널 보며 엄히 혼내겠다 결심했는데 이렇게 웃는 걸 보면 또 마음이 풀리는 걸 보니 말이다.”
스승님은 열쇠를 꺼내서 진천희의 족쇄를 풀었다.
철컥-
“감사합니다. 스승님.”
“할 이야기는 많지만 그건 돌아가서 하자꾸나.”
벌써부터 돌아가는 길이 두렵다. 진천희는 나중의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대신 발목만 열심히 주무를 뿐이었다.
그런 진천희 뒤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쯧쯧. 불쌍한 놈. 어쩌다가 저런 괴물 놈에게 찍혀서…….”
혈생노괴였다.
진천희가 봉합 수술을 한다는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만사 제치고 마교 분타에 들렀다.
흑전의각은 마교와도 친분이 있는 곳이니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제갈린은 그런 혈생노괴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무하십니다. 괴물이라뇨.”
“그러면 제정신이냐. 백린아.”
그러고는 혈생노괴가 진천희의 머리를 쓸었다.
“거기다 천살성까지 얹혀서 너도 진짜 참 기구하구나. 그러니 처음부터 내 제자가 되어 흑전의각에 들어왔으면 이 꼴은 안 봤잖니.”
진천희가 고개를 저었다.
“어느 분이 스승이었든 저는 변하지 않을 겁니다.”
어쨌든 아이를 구한다는 건 변함이 없을 터였다.
그 말에 혈생노괴가 답했다.
“아니, 내가 강시술을 가르쳐 준대도? 너도 강시 여럿 데리고 가서 시령괴마랑 쌍방 죽빵 때리면 되잖냐! 나도 강시 잘 만들어!”
그랬다. 혈생노괴는 현대로 치면 그야말로 실천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한창 강시술에 관심 많은 자라나는 어른이라 할 수 있다.
진천희가 아무리 강시에 관심이 있다 하여도 그건 어디까지나 퇴치에 관한 가설을 입증하고 그에 따른 논문을 써서 이론을 정립하고야 말겠다는 학자적 학구열 때문이지, 등 뒤로 점핑하는 시체들을 통통 달고 다니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거기다 쌍방 강시 전투라니. 포켓몬도 아니고…….’
뭔가 아득한 영역이었다.
“스승님, 일단 손가락은 무사한 거죠?”
“걱정하지 말렴. 너를 걸고 하는 약조인데 허투루 할 수 없지. 특별히 신경을 써서 갓 자른 것처럼 신선하단다.”
“…….”
혈생노괴 탓할 게 아니다.
스승님도 훌륭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였다.
이 미친 자들 속에서 진천희는 홀로 제정신을 유지하기로 했다.
“하륜아. 형이 꼭 치료해 줄게.”
“형…….”
여하륜은 그런 진천희를 보며 깊게 감명을 받았다.
* * *
‘허허허…… 정말로 신선하네.’
냉장고의 신선함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진천희는 갓 자른 듯 생기가 도는 손가락을 보고 있으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잘린 부분 역시 깔끔하여 무슨 ‘꽃을 잘랐는데 살아 있네.’ 같은 만화의 경지를 보는 것 같았다.
‘이게 활검인가…….’
단면을 봐도 스승님의 경지가 좀처럼 이해가 가질 않는다.
덕분에 봉합 수술 자체는 무척이나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원래라면 혈관과 신경, 근육을 잇기 위해 무척이나 고생을 해야 하건만.
거기다가 이렇게 이어본들 복원이 안 되는 경우도 허다했기에 장담하기가 어려웠다.
진천희의 옆에서 스승님은 계속해서 진천희를 보조했다.
‘신경 봉합은 바늘이 중요하지.’
나머지는 현원전단신공과 양의심공으로 때운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된다.
가느다란 모세혈관과 신경을 잇기 위해서는 특별한 바늘과 실이 필요했다.
여기서 진천희가 사용한 것은 우모침. 사천당가의 바늘이다.
직경 1mm 이하의 혈관을 잇기 위해서는 머리카락보다도 훨씬 가는 바늘이 필요했다.
사천당가의 우모침은 이러한 미세 접합 수술에 쓰기 적합했다.
“이걸 어떻게 잘 구해 오셨네요!”
진천희가 놀라서 혈생노괴에게 묻자 그녀가 답했다.
“치료하러 갈 일이 있었는데 다짜고짜 본좌에게 쏘더구나. 후후후. 좋은 걸 선물해 주었으니 잘 보관해 놨지.”
생사의 갈림길에서 저항하느라 쐈던 모양이었다.
과연 이름 모를 당가의 그분은 치료를 당하셨을까?
알 수 없었으나 진천희는 묻지 않기로 했다.
실은 진천희가 직접 내단에 금생기를 사용해 뽑아냈다.
단사(單紗). 얇은 한 가닥의 실이다.
장력은 복합사보다는 약할 것이나 가늘기가 이를 데 없어 미세 봉합에 쓰기 적합했다.
“수술이 끝나면 한동안 손가락은 움직이면 안 돼.”
“왜?”
“터진다.”
뭐가 터지는지 진천희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표정과 말투로 보았을 때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알았어. 형.”
여하륜은 그런 진천희를 믿었다.
진천희는 수술 전에 마음을 다잡는 데 무척이나 고생을 했다.
동생 놈의 손이다. 그것도 무인의 손.
스승님은 정 걱정되면 자신이 대신 해줄 수 있다 하셨지만 여하륜이 원한 건 형인 진천희다.
그랬기에 무리해서라도 직접 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명상하기를 수차례.
그래도 어찌저찌 마음을 잡을 수 있었다.
절진을 유지하는 것은 혈생노괴의 역할.
그녀는 이 수술에 참관하는 대신 그녀만의 절진을 준비해 수술이 끝날 때까지 지켜 주기로 했다.
“혈생진이다. 강시를 만들 때 시체가 썩지 않게 도와주지. 반대로 환자에게 부술을 펼칠 때도 도움이 된단다. 아해야.”
제갈가의 오행진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이 또한 참고할 만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마침내 진천희는 손상된 모든 곳을 봉합해낼 수 있었다.
인고의 시간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깨어난 여하륜이 자신의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움직이려고 하려다가 진천희가 한 말이 생각났는지 멈추었다.
“잠깐만. 잘됐는지 검사를 하고.”
진천희는 손가락 감각이 정상적으로 연결되었는지 확인하고 진맥으로 혈액순환 상태를 살폈다.
“됐다. 이제 깁스 하면 되겠다.”
진천희는 그대로 깁스를 준비했다. 여하륜이 말했다.
“지금이라도 바로 검을 들고 싸울 수 있을 것 같군.”
진천희는 이 미래의 천마 놈을 향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랬다가는 터진다고. 거기다 앞으로 계속 지켜봐야 해. 통증 상태도 봐야 하고.”
“음.”
여하륜은 못마땅한지 입술이 한일자를 그렸다.
진천희가 말했다.
“영단실이니까 완전히 다 나으면 운기하면서 녹여서 흡수하면 돼. 그때까지만 참아.”
그 말에 여하륜이 말했다.
“형이야말로 너무 걱정하지 마. 설령 잘못돼도 괜찮아. 어차피 이 손가락은 형한테 바친 거니까.”
“……널 봐서라도 앞으로 함부로 몸 굴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내가 이긴 거네.”
여하륜은 까만 눈을 들어 진천희를 올려다보았다.
‘그리도 걱정이 되었던 건가. 이 녀석은…… 자신을 걸어서라도.’
현대인으로서는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운 사고방식이었다.
진천희는 혀를 내둘렀다.
“나도 몸 조심할 테니 너도 몸 조심해.”
“응.”
“참, 이제 다 끝나서 하는 말인데 의형제 하고 싶다는 애들이 좀 있어.”
“그게 무슨……?”
여하륜이 한쪽 이마를 찌푸렸다.
* * *
진천희는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대략적으로 말했다.
거기서 첫 번째 동생 대기자인 천우, 두 번째 동생 대기자인 사마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여하륜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하나부터 열까지 진천희가 하는 말을 차근차근 들었다.
“그러니까 살려 주니 형으로 모시겠다고 하는 건가.”
“비슷해.”
“형. 속지 마. 그놈들 다 형의 의술을 노리고 수작질을 하는 거니까.”
“너도 그 의술로 목숨을 구했잖아. 하륜아.”
“나는 다르지. 나는 형이 먼저 제안했잖아. 시작부터 그놈들과는 달라.”
여하륜은 두 놈들이 하는 짓은 어디까지나 의선의 의술을 노리고 하는 수작질이며 자신이야말로 근본 있는 우애라 주장하였다.
진천희는 그런 여하륜을 보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알았어. 너 싫으면 없던 걸로 하지 뭐.”
“뭐?”
“싫다며. 싫은 일은 안 해.”
“꼭 시켜 달라는 거 아니었어?”
그 말에 진천희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니야. 하륜아. 그건 어디까지나 천우와 사마현이 요청했기에 네게 물어본 거지, 나는 네 의견이 최우선이야.”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진천희 입장에서는 두 아이가 의동생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아쉬울 건 없었다.
친우로서 우정을 계속 이어 나가면 되고 필요하면 서로 도우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형인 진천희가 쉽게 알았다고 하자 정작 여하륜은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
새카만 눈동자를 찌푸리며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다.
“…난 마교야. 형. 의형제가 되었다는 게 알려지면 자칫 무림 공적이 될 수도 있어.”
“알고 있어.”
“그래. 형은 알면서도 내게 손을 내밀었지.”
여하륜은 다시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
“놈들이 형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다면 그때 생각해 보도록 하지.”
“그게 무슨 뜻이야?”
“훗날 나를 직접 만나게 되었는데도 흔들리지 않고, 또한 형을 지킬 수 있을 만큼의 무력이 있다면 그때 허락해 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