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46
제 146화
“설마 강호의 방식으로 풀겠다는 거냐?”
“그래. 나를 이기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아. 3합을 양보할 테니 내 옷자락이라도 찢을 수 있다면 형의 인의 장막이 되는 것을 허하겠다는 뜻이야.”
인(人)의 장막(帳幕).
사람으로 만든 장막. 요즘 말로 직역하면 고기 방패를 뜻한다.
오만했다.
그리고 진천희는 곤란했다.
‘지금 내 동생이 될 자격을 검증하기 위해 천마가 직접 칼을 들고 뚝배기를 깨보겠다는 건가? 무슨 차량 내구성 테스트해? 박아서 살아남는지 보자? 뭐 그런 거냐?!’
말만 들으면 멋있다.
강호 특유의 멋이 담겨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인 진천희는 그 뒤처리를 고민하게 된다.
“그냥 의형제 하지 말자. 하륜아.”
“형. 아니야. 놈들도 얕은 각오로 형에게 의형제를 제안하지 않았겠지. 설령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그 죄는 목숨으로 갚아야 해.”
여하륜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심지어 천살성 특유의 붉은 안광도 분연히 빛나기 시작했다.
“어디 한번 똑똑히 보자고.”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진천희의 정신은 우주로 날아갔다.
‘애들이 제안 안 받겠지? 안 받았으면 좋겠는데 만약 받으면…… 장소는 백린의각과 가까운 곳이었으면 좋겠네. 아니다. 아예 백린의각 안에서 해 줘라.’
그래도 상식이 있는 애들이니 안 받을 거라고 진천희는 생각했다.
‘에이, 아무리 강호식이라고 해도 머리가 있지 그걸 왜 받아. 안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 * *
시일이 지났다.
진천희는 여하륜의 상태를 지켜보고 틈틈이 마교의 환자도 치료했다.
혈생노괴는 그런 진천희와 의술 교류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강시술에 쓰는 약초가 마취에도 도움이 되나 보네요?”
“잘만 쓰면 오랫동안 환자를 가수면 상태로 유도할 수 있지. 신진대사도 느려지게 돼서 노약자는 그대로 골로 가는 수가 있지만 말이다.”
“호오. 마공으로 몸이 변형된 환자는 어떻게 되나요?”
“마공에 따라 다르겠지. 본좌는 크게 경화형과 비대형, 연체형, 특질형으로 나눈단다.”
의외로 죽이 잘 맞는다.
겸사겸사 혈생노괴에게 암기술을 배우고 진천희가 알고 있는 지식들도 알려 주었다.
“강시를 그렇게 처리한다라. 괜찮은 방법이구나. 하지만 파훼법을 알았으니 그 파훼법의 파훼법을 본좌가 생각해 낼 것을 모르느냐?”
그 말에 진천희가 웃었다.
“설령 생각해 낸다 하신들 다른 도사들에게 알려 줄 분이 아니라는 걸 믿습니다.”
“하하하, 그런 말을 들었으니 다른 이에게 말할 수가 없군. 왜 백린이 네게 껌벅 죽는지 알겠구나.”
그녀는 연갈색 머리카락을 뒤로 젖히며 크게 웃었다.
진천희의 앞에서는 진천희 또래의 젊은 여성의 모습으로 변하는 혈생노괴였다.
혹여라도 진천희가 그녀를 두려워할까 내심 배려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진천희 입장에서는 혈생노괴가 어떤 모습을 하든 그저 괴인이고 연구를 교류하는 학우일 뿐이었다.
혈생노괴는 그런 진천희가 갈수록 마음에 들어 곤란할 지경이었다.
“참, 최근에 스스로 몸이 고목처럼 단단해지는 강시를 만들었단다.”
고목혈마.
진천희는 그 말을 단박에 알아챘다.
“그렇군요.”
“그 녀석과 내기를 했단다. 내기에서 이긴다면 더 강한 힘을 받을 것이고, 지게 된다면 내 강시가 되어 죽고 나서도 부려 먹히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널 이기고 싶은지 내기를 받았고 그 아해는 강시가 되었지.”
진천희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혹여라도 강시가 된 고목혈마를 보았을 때 놀랄까 싶어 미리 말하는 것이니 크게 개의치 말거라. 그 아해는 자신의 욕심이 파멸로 이끌게 된 거니.”
“알겠습니다.”
진천희는 고목혈마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혈생노괴가 제시하는 내기가 결코 쉬운 것일 리가 없었다.
그건 길 가던 다섯 살짜리 애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더 큰 힘에 인간은 눈이 멀고 만다.
‘졸지에 차도살인이 되었군.’
차라리 정직하게 수련해서 진천희에게 도전했다가 깨지면 그때는 단전을 폐하고 사지근맥이나 좀 망가진 선에서 끝났으련만.
이제는 영원히 혈생노괴의 시종이 되어 안식조차 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 또한 강호의 순리.
진천희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 * *
돌아가는 날이 다가왔다.
진천희는 마지막으로 여하륜의 손 상태를 살폈다.
“이 정도면 물리치료 시작하면 되겠다.”
가벼운 물리치료 요법을 가르쳐주니 여하륜은 작게 웃으며 멀리 있던 검을 허공섭물로 불러 쥐었다.
탁-
“나는 이게 수련이야. 형.”
“그래도 꾸준히 해.”
“알았어.”
“워낙 잘 나아서 별일이야 없겠지만 말이다.”
여하륜은 진천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참, 천뢰응에게는 마교 분타 위치를 가르쳐주었어. 만약 서신을 주고 싶다면 천뢰응 세 마리 중 누구에게라도 보내면 내게 바로 서신을 전달해 줄 거야.”
“……그걸 어떻게?”
“먹을 걸로 꼬시니까 배우던데.”
‘내가 영물을 키우는 건가. 돼지를 키우는 건가.’
아니나 다를까.
오랜만에 만난 황구와 뇌진, 천진, 난만은 포동포동하게 살이 잘 올라 있었다.
컹컹, 삐약! 삑삑!
세 마리가 동시에 진천희를 향해 달려들었다. 법구를 쓰지 않아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감동의 상봉을 끝내고 진천희는 짐을 어깨에 멨다.
그리고 왔던 것과 똑같이 밖으로 나갔다.
“형.”
“응……?”
여하륜이 진천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건강해야 해. 안 그러면 다음번에는 다른 쪽 손가락도 해먹을 테니까.”
“아하하하.”
진심이 담겨 있는 협박에 진천희는 식은땀을 흘렸다.
밖으로 나가니 스승님이 면사로 얼굴을 가린 채로 진천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도 잘 어울리시네요.”
진천희의 말에 스승님이 살풋 눈을 가늘게 뜨셨다.
“밖에 나오면 성가신 일이 많으니 어쩔 수 없지. 하지만 네 행색을 보니 성가신 일이 생길 수밖에 없겠구나,”
늑대……가 아니라 돼지만 한 개 한 마리. 거대한 새 세 마리.
축근공 비슷한 것으로 몸을 축소시킨다고 해도 주변에 따르는 동물이 많으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은 진천희를 데리고 객잔 밖으로 나갔다. 점소이에게 동전을 건네자 맡겨둔 말 두 필을 데리고 왔다.
두 마리의 거마다.
“하나는 면식이 있군요.”
“남궁가의 군림흑마. 그리고 녀석의 새끼란다. 명마로 잘 컸지.”
“남궁가에서 빌려 오신 거예요?”
“……그래. 고맙게도 제자를 찾으러 가겠다고 하니 가주께서 순순히 빌려주시더구나.”
절대 정상적인 대여는 아닐 것 같았다. 그러나 진천희는 시치미를 뚝 떼고는 말에 올랐다.
“편히 돌아가겠군요.”
“잘된 일이지.”
진천희는 그렇게 말목을 토닥였다.
이제 드디어 돌아가는 길.
진천희는 지난날 했던 무모한 짓들에 대해 귀에서 피가 날 때까지 스승님께 잔소리를 들었다.
* * *
“우리 희가 참 운이 좋구나. 의술로 자랑할 게 아니라 운으로 자랑을 했어야 했는데 이 스승이 그걸 몰랐구나.”
여기서 속뜻을 짚어내자면 진즉에 뒤질 상황이었는데 운빨로 살아남았다는 뜻이 되겠다.
“하필 그때 내가 추적을 잘해서 망정이었지 엉뚱한 곳으로 갔으면 어찌 되었을꼬. 아니 그조차도 운이 아니겠느냐. 과연 내 제자는 운이 좋아.”
이렇게 알아내서 쫓아온 스승님을 찬양하라는 뜻이 되겠다.
진천희는 귀에서 피가 나오지만 어쨌거나 스승님의 화를 풀어 주느라 안간힘을 썼다.
“제가 살아남았던 것은 다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이죠. 가까이 와 계셔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그치, 황구야?”
멍멍! – 수신호를 보아하니, 아. 공중제비를 돌라는 뜻. 알았다!
황구는 달리다 말고 공중제비를 돌았다.
진천희는 필사적으로 손뼉을 쳤다.
“우와, 황구가 스승님 최고래요!”
“또다시 개수작을 부리는구나. 희야.”
이번에는 진짜 개도 묘기를 부리게 했으니 개수작이 맞았다.
하지만 제자의 필사적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스승 입장에서도 화가 조금씩 풀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이치였다.
제갈린은 한숨을 쉬었다.
“평생 기연을 하나 얻어도 대단한 일인데 그걸 몇 개씩이나 얻다니, 너란 녀석은…….”
잔소리의 끝.
스승님이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다.
“헤헤헤, 스승님도 양의신공을 익히시면 좋을 것 같아요. 굳이 의술에 쓸 것까지 안 가도 두 개의 의념을 주천시킬 수 있으니 그만큼 건강에 좋으니까요. 아, 오행신공에 맞게 안정적으로 하는 법도 나름대로 개량해 봤어요.”
“무당파에서 좋아할 것 같지는 않구나.”
그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 안 하면 그만이죠.”
“하하하하, 일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넌 정말 강호인답지 않구나. 무인이라기보다는 흡사 학자나 세외인 같을 때가 있으니.”
제갈린은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생각에 잠겼다.
“네가 강호 법도에서 벗어나 있는 기인이기는 하나 분명 선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는 성격도 아니니. 그런 네가 싫지가 않구나.”
“…….”
스승님은 생각에 잠기다가 이렇게 말했다.
“좋다. 해 보자꾸나.”
진천희는 황구와 뇌진을 시켜 인적이 드문 동혈을 찾았다.
그리고 영물들을 모두 뒤로 물러나게 했다.
스승님의 표정은 평소와 같았으나 진천희는 알고 있었다.
나쁜 장난을 하는 아이처럼 약간 재미있어하시는 것 같아 보였다.
스승님은 가부좌를 하고 진천희가 말하는 구결을 따라서 내공을 주천시켰다.
그리고 마지막 구결이 끝나자 스승님의 미간이 살짝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섬광 같은 깨달음.
우우웅-
스승님을 중심으로 기의 파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스승님의 머리카락과 무복이 부풀어 올랐다.
기의 파동에 따라 오색운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깨달음의 벽을 넘어서신 건가.’
진천희는 곧바로 호법을 서기 시작했다.
깨달음의 벽을 넘을 때가 무인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제갈린이 눈을 뜬 것은 그로부터 1시진 후였다.
‘역시 환골탈태는 무리인가.’
아쉬움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스승님의 눈동자는 전에 볼 수 없을 만큼 현묘한 빛을 띠고 있었다.
“우리 희가 복덩이구나.”
“스승님, 대공을 이루신 거예요?”
“하하하, 대공까지는 아니란다. 그랬다면 벽을 허물고 전설상의 현경에 도달했겠지. 그래도 그 벽이 꽤나 허물어진 듯은 하구나. 화경의 끝자락에 도착한 느낌이구나.”
그 말은 현경에 도달하기까지 이제 정말 머지않았다는 뜻이었다.
진천희는 기쁨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단하십니다. 그 정도면 천하제일인이 되시겠는데요?”
“그 정도겠느냐. 내가 화경의 끝자락에 있다고는 해도 아직 나보다 강한 이가 무림에 셋은 더 있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