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48
제 148화
022. 온돌
의각에 돌아오니 모든 것들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분타에서 온 백린의각 연수생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수하고, 각 분타에서 들어온 치료 케이스들을 분류했다.
남는 시간은 무공 수련에 사용했는데 전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이 갑자가 넘었으니 내공 제어가 가장 우선이겠지. 희야.”
진천희는 가부좌를 하고 앉아 스승님의 설명을 들었다.
“우선 너는 네 나이에 비해 너무 빠른 성취를 이루었고, 그걸 생각하더라도 보통 이보다는 내공의 제어가 뛰어나긴 하지. 그건 오행공을 초기부터 차근차근 기초를 만들어 왔기에 가능한 성과란다.”
“네.”
“하지만 그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이번 전투로 깨달았을 거라고 생각되는구나.”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등을 만졌다.
시령괴마와 싸운 흔적은 이제 거의 다 지워졌다. 하지만 아직 몸에는 흉터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구태여 이 흉터를 없애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싸워 온 흔적이자 자긍심이었고, 반성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손등부터 길게 이어진 흉터는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나 만져 보면 단단하게 살이 뭉쳐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이후로 습관적으로 손등을 만지곤 했다.
흉터도 옅어지는 시기가 온다면 이 습관도 사라지겠지.
그리 생각했다.
‘내가 사용한 허공섭물과 여하륜이 사용한 허공섭물은 같은 허공섭물이라도 달랐어.’
분명 지금의 여하륜보다 진천희가 더 많은 내공의 양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여하륜은 같은 허공섭물이라고 하더라도 마치 수족처럼 움직였다.
의념도 마찬가지였다.
검기의 사용과 발출, 그 밀도 조정 역시도 날카로웠고 농밀했다.
흡사 신검합일과도 같은 경지.
‘내공의 양이 승패를 가르는 게 아니라고는 해도 여하륜은 엄청났지.’
미래의 천마가 되려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건가.
어릴 때의 여하륜만 생각하다가 자기만큼 성장한 여하륜을 맞닥뜨리게 되니 그 충격이 사뭇 달랐다.
그 어떤 소설의 글귀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강인함이 있었다.
‘따라 할 수 있을까?’
웃기는 말이지만 이 내공을 가지고도 여하륜과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는 것도 사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이 내공으로 여하륜만큼의 제어력을 갖게 된다면 얼마나 더 강해질까?’
영약빨을 세우는 것도 이제 한계다.
이 이상은 추가로 영약을 섭취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터였다.
제갈린이 말했다.
“첫 번째는 그래, 이 스승과 주사위 놀이를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
“주사위요?”
“허공섭물을 이용해 원하는 면을 내면 네가 이기는 거고 지면 벌칙을 받는 거지.”
탁-
스승님이 내려놓으신 건 나무를 깎아 만든 옛날식 목제 주사위였다.
그 주사위는 한 면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 깨알같이 작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스승님, 글귀를 보니 목인에게 이 시진 추궁과혈 당하기, 왼손으로 삼재검법, 오른손으로 십보신창 이 시진 연습하기, 손 하나로 보법 없이 절벽 올라가기…… 같은 게 보입니다.”
“제대로 보았단다. 희야.”
살 떨리는군. 잘못 굴리면 그냥 지옥 훈련 가는 건가?
“여기 스승님과 바둑 두기도 보이는데요.”
“수 싸움을 하면서 허공섭물로 원하는 곳에 바둑알을 놓기가 쉽지 않을 거란다.”
진천희는 손을 탁탁 털면서 준비했다.
32면체 주사위에는 단 한 곳을 제외하고는 전부 내공, 외공을 익히는 지옥의 수련법이 적혀 있었다.
‘인권… 없어. 내 이 갑자 내공…… 없어.’
예전에도 스승님표 지옥 훈련은 엄청났었지만 이제는 더욱 엄청나져서 돌아왔다.
어찌 됐든 이 갑자 내공을 털든가 근육에 남은 에너지 한 방울까지 털어 버리든가 둘 중의 하나였다.
“후우.”
“자, 굴리렴. 희야.”
스승님은 밝고 명랑하게 말씀하셨다.
‘아무리 봐도 제자 굴리는 걸 가장 좋아하시는 것 같단 말이지.’
하나뿐인 제자 놈 살을 바느질하시면서 무시무시한 결심을 하신 모양이다.
진천희는 주사위를 굴렸다.
그러고는 허공섭물을 이용해 주사위의 방향을 잡았다.
진천희가 원한 것은 단 한 칸의 ‘휴식’.
각도와 모양을 제어하고 그대로 떨어뜨릴 생각이다.
그러나 한 끗 주사위가 비틀렸다.
탕!
“아, 희야. 주사위를 던질 때 내가 방해할 거라는 이야기는 안 했구나. 최대한 실전에 맞게 해야 수련의 의미가 있지 않겠니?”
[유호의 목인을 이용해 추궁과혈 이 시진]제, 젠장!
스승님은 제자의 표정을 음미하듯 지켜보며 웃었다.
“걱정하지 말렴. 네가 수련하는 동안 나 역시 수련하고 있을 테니. 너 혼자 고통을 받는 게 아니란다. 유호!”
유호가 그런 스승님 뒤에서 후광이라도 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특별하게 개량한 목인입니다, 도련님. 막아내실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하지만 추천하기로는 그냥 편히 누워서 추궁과혈을 받는 것이 좋을 겁니다.”
“누가 쉽게 당할 줄 알고!”
“참, 희야.”
“네?”
스승님이 진천희의 손목과 어깨에 점혈을 했다.
탁, 타탁!
“이 갑자 내공을 발현하기 힘들게 제약을 걸었단다. 이 상황에서 내공을 운용하면서 피해 보렴.”
중력 10배의 무게가 밀려온다.
진천희는 그렇게 유호에게 끌려갔다.
“으아아악—!”
* * *
스승님의 매지컬 주사위에는 정말 많은 고문 수단들이 들어 있었다.
유호의 강력해진 목인은 진천희의 혈을 가차 없이 팼고, 진천희는 팔다리로 중력을 느끼면서도 허우적거리며 피했다.
‘아홉 마리야. 미친, 목인을 아홉 마리나 만들어 놨어!’
이것을 막기 위해서는 단 한 점의 내공도 허투루 움직여서는 안 된다. 최단 거리로 내력을 움직여 공격을 피해내야 했다.
그러나 첫날 진천희는 반 시진 정도 피한 후에 배를 처맞고 9마리 목인에게 무자비한 추궁과혈을 당해야 했다.
맞은 만큼 외공이 증가했다.
둘째 날에 던진 주사위의 결과는 백미와 현미 분리하기.
“눈으로 보고, 분리해 나가는 게 요체지. 그동안은 검같이 큰 것만 운용하기 위해 내공을 움직여야 했을 터이니 이제는 아주 소량의 내공만으로 하나씩 분리해야 한단다. 참 지루한 작업이지.”
“쌀과 조를 분리한다거나 하면 안 됩니까. 그쪽이 식사에 더 도움이 될 거 같은데요.”
“하하하, 희야. 그랬다가는 네가 두 곡식의 무게를 이용해서 분류하지 않겠니. 그건 풍운기만 섬세하게 제어하면 되니 편하게 하겠지.”
‘…역시 눈치채셨군.’
제갈가의 사제는 피차 서로에 대해 잘 알았다.
“참, 백미와 현미는 미묘한 무게의 차이 정도야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풍운기를 썼다가는 아수라장이 될 거라는 건 네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단다. 희야.”
스승님은 방긋 웃으며 진천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호, 현미는 희에게 밥을 지어 주도록 하게나. 한창 수련 때이니 이때는 현미가 더 좋겠지.”
“알겠습니다.”
유호는 그리 답하며 진천희를 힐끗 바라보았다.
진천희는 그런 유호를 보며 생각했다.
‘요즘 다시 유호를 부려먹고 있는데 저 녀석 생각보다 안 지치네.’
이쪽이 성장한 만큼 저쪽도 성장할 일이 있는 건가.
알 수야 없었다.
“자, 그러면 도련님. 완료되시면 불러 주십시오.”
“문 세게 열지나 마요.”
“음, 그것도 수련의 일환이지요.”
망했군.
백미와 현미를 분리한 다음에 유호가 곳간 문을 벌컥 열 때를 대비해서 오행진기로 고정을 시키든 허공섭물을 섬세하게 익혀 붙잡고 있든 해야 하는 모양이다.
그렇게 스승님과 유호가 곳간 밖으로 나갔다.
진천희는 홀로 남아 어린이 명작 동화 100선 콩쥐와 팥쥐를 떠올렸다.
‘나는 도와줄 동물 친구들 없나. 젠장. 아니다……. 황구고 뇌진이고 불러 봐야 다 엎어 버리기만 하겠지.’
그리고 그런 편법을 써 봐야 수련에 도움도 안 될 터였다.
‘그래. 이런 것이야말로 내가 나태해졌다는 증거지.’
진천희는 단전에 좁쌀만 한 내공을 일으켰다.
이런 어두운 곳간에서 현미와 백미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현원전단신공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 상태로 풍기를 쓰든 허공섭물을 쓰든 최소한의 내공으로 하나씩 분류해 나가야 한다.
‘이거 힘드네.’
차라리 아홉 마리 목인들에게 구타나 당하는 게 마음은 더 편하리라.
진천희는 그렇게 쌀알을 분리해 나갔다.
* * *
‘이번에는 바느질하기군.’
단단한 소가죽에 바늘을 집어넣어 자수를 넣어야 한다.
이건 외과의가 봉합 연습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 살을 제대로 봉합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수없이 많은 연습이 필요했으니까.
문제는 손에 닿지 않고 내공만으로 자수 넣기를 해야 하는 게 문제지.
‘가죽이 안 찢어지게 하려면 한 번에 박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검기를 미약하게 바늘에 담아서 꽂아야 하는 건가?’
이렇게 된 거 즐기기로 했다.
‘음, 여하륜과 동생들에게 선물이나 만들어 줘야겠군.’
무엇으로 보낼까. 진천희는 고민에 빠졌다.
의각에 돌아온 이후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안부 편지도 보내야 했고, 여하륜이 차량 충돌 테스…… 아니 ‘천하제일 의동생 선발 비무. 부제 : 동생이 되려면 죽어라.’ 비슷한 것을 열게 되었다는 서신도 보내야 했다.
‘무당파에 유골함도 보내야 하는데 음, 이건 직접 전달하는 게 보기가 좋겠지.’
강호는 칼 밥 먹는 유교 사회다.
만나서는 안 될 두 가지가 만난 것 같지만 또 오묘하게 조화되어 살고 있다.
전전대 장로님 유골함을 표국 소포로 보냈다가는 무슨 욕을 먹을지 진천희도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다는 건 정말로 모른다는 뜻이다.
진천희가 봤던 무협지 중에 그렇게 은원만 쏙 빼먹고 유골을 택배 보낸 소설은 본 적이 없다.
차라리 아예 나쁜 놈 할 거면 장례식을 안 치렀으면 안 치렀지, 어중간한 선행이었다.
‘이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으니 직접 멋있게 들고 가서 짠! 해야겠지.’
무림인은 아니어도 현대 사회생활 짬바가 그러라 시키고 있었다.
진천희는 고민하다가 세 동생들에게 털가죽으로 목도리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의각에 돌아온 후 수련을 하며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다.
진천희가 자랐던 만큼 동생들도 자랄 것이고.
한창 클 때이니 얘들이 얼마나 자랐을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넉넉하게 잘라서 양면으로 꿰매서 만들면 오래오래 쓰겠지.’
진천희는 그렇게 유호에게 늑대가죽, 담비가죽, 토끼가죽을 받았다.
“최고급 모피라 재료값이 많이 비쌉니다, 도련님. 망해서 새 가죽 받아 가시게 되면 그때는 월봉에서 재료값 제하겠습니다.”
꿀꺽-
그 말을 들은 진천희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바늘 끝에 내기를 모았다.
푹-
유호의 그 경고는 집중력이 오르는 최고의 주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