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5
제 15화
모든 공손검법이 빠른 건 아니었다.
어떤 것들은 보통 검보다도 느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전에 적합지 못하다는 이유로 굳이 깊게 배우지 않았다.
그녀의 검이 빨라지는 것과 동시에 느려지기 시작했다.
모순이었다. 그러나 자연스러웠다.
그것은 마치 무한하게 이어지는 솔잎과도 같았다.
무아에 접어드는 그녀를 바라보며 진천희는 가만히 서 있었다.
‘이야…… 이게 깨달음 현상인가. 소설 볼 적에 존잼이더니만, 실제로 봐도 존잼이네. 그나저나. 이걸로 흑송운검값을 했으려나? 뭐, 사실 나중을 위해서 빚 하나 달아 두려는 의도가 더 컸지만서도.’
그렇게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급하게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면사를 쓴 여인.
저런 사람은 여기서 공손현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진천희가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쉿’이라고 했다. 그러자 공손현이 우뚝 서더니 두 손을 모아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진천희는 그 모습에 마주 포권을 하고서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진천희가 떠난 자리를 공손현이 와 지키고 선다.
공손영을 지키는 공손현을 뒤로한 채 진천희는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 * *
긴 무아(無我)의 시간이 끝나간다.
공손영의 세계는 과거에서 현재로 천천히 나아간다.
그녀는 자신을 잊고, 배워 왔던 모든 것들을 잊었다.
새소리와 풀 내음을 잊었다.
모든 것을 잊은 그 저편에서 한 소년의 속삭임만이 그녀를 도왔다.
그러나 그 소년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누구였더라?
상관없었다. 이미 자신의 이름조차 잊어버린 후였으니까.
고요한 무아가 그녀를 지배할 뿐이었다.
그녀의 검은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일 초.
다른 이보다 느린 일 초에 그 답이 있었다.
쾌가 어째서 쾌였을까.
느린 일 초가 모든 것을 뒤엎을 이 초가 되기 위해 쾌를 연마해야만 했던 것이었다.
‘나는 숲이 아닌 나무에 취했구나. 아름다운 것은 숲인데…….’
그녀의 검무는 마지막으로 향한다.
마침내 일섬이 그녀의 손에서 펼쳐졌다.
공손검법
청송반회검
일섬(一殲)
적의 검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나아가는 검로가 그녀의 손끝에 피어났다.
그녀의 검기가 공터의 거대한 흑강암을 뚫고 지나갔다.
부순 것이 아니었다. 깬 것도 아니었다.
그것을 무처럼 베고 지나가기 위해서는 아득히 높은 검의 깨달음이 있어야 했다.
그녀의 검은 베지 않았다. 응축된 검로가 점이 되어 공간을 찔렀다.
선은 점이 되었다.
그리고 점은 선이 되었다.
그 모습은 마치 솔잎과도 같았다.
“후우우–”
무아의 끝에서 그녀는 아쉬움을 느꼈다.
무인이 평생 한 번 얻을까 말까 하는 시간이 바로 무아의 시간이었다.
그것을 잡았고, 성취를 이루어냈다. 하지만 더 얻어내고 싶었다.
그것은 무인으로서의 욕망이었다.
‘더…….’
그 순간, 그녀의 검이 변한다.
검기는 마침내 검사(劍絲)가 되었다.
아지랑이의 형상에서 기가 실처럼 얇게 줄기줄기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실이 끊겼다.
그 순간, 끊긴 실이 수십 개의 직선을 그으며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콰차차창—!
진천희가 봤으면 경악을 할 광경이었다.
‘반격의 문제를 넘어 건드리면 그냥 죽여 버리겠다는 뜻인데?’라며 소리를 질렀으리라.
무아가 드디어 끝났다.
그녀는 이 검로에 무슨 이름을 붙여야 할지 고민했다.
두 번의 깨달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절정 고수의 반열에 들었음을 체감했다.
“공손가의 홍복이구나.”
목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공손현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공손가의 무인들이 호법을 서주고 있었다.
“언니.”
“절정 고수가 된 것 축하한다.”
다른 이의 눈을 의식해 딱딱한 목소리에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언니의 뺨에 서린 홍조만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의 뺨은 여느 때보다 기쁨으로 붉어졌다.
그녀의 말을 따라 공손가의 무인들이 저마다 이야기를 했다.
“경하드립니다! 아가씨!”
“세상에, 경하드립니다.”
“경사입니다. 어서 세가에 알려 드려야겠어요.”
각자 재잘거리던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한번 보더니 이윽고 동시에 외쳤다.
“절정 고수가 되신 것을 경하드립니다!”
공손영이 손을 저었다.
“이것은 모두 진천희, 그 아이 덕분입니다. 흑송운검으로는 갚을 수 없는 빚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어디 있죠?”
흑송운검을 쓰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조르더니, 도리어 큰 기연을 주고 갔다.
검으로는 갚을 수 없는 이 큰 은혜를 갚아야 했다.
은이든 원이든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것.
그것이 공손영의 협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공손영의 몸이 휘청이더니 쓰러졌다.
보통 검도 아니고 무아의 검이었다.
무아의 경지에 있는 동안 깨달음을 얻기 위해 몸의 모든 진력을 탕진한 탓이었다.
한나절을 꼬박 검기를 담아 휘둘렀다.
일반적인 무인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체력이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
놀란 언니, 공손현이 소리쳤다.
“부축해라. 어서! 아, 아니. 본녀가 직접 부축하겠다.”
주변의 시선도 잊고는 공손영이 직접 동생을 끌어안아 부축했다.
‘가야, 가야 하는데…….’
한계에 다다른 육체 속에서 공손영의 의식이 천천히 점멸해 갔다.
* * *
공손영의 깨달음으로 공손가가 뒤집히는 동안, 진천희는 리틀 천마, 여하륜을 만났다.
만났다고 해도 대단한 것은 하지 않았다.
또래 아이들처럼 맛있는 것을 나누어 먹고, 잡담이나 하면서 보냈다.
여하륜은 혈고에 대한 진천희의 비책을 알고 싶어 몸이 달아오른 모양이지만 별수가 없었다.
물어봐 봤자 진천희는 서두를 필요 없다는 말과 함께 능청스럽게 웃기만 할 테니까.
둘은 표국을 몰래 빠져나와 장터로 향했다.
화로에는 참새 꼬치를 팔았다.
참새를 잡아 내장을 빼내고 구웠다.
굽는 동안 간장 양념을 발라서 맛을 낸 모양인데 육질이 쫄깃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맛은 더할 나위 없었다.
“어릴 때 먹었던 참새보다 맛있네.”
“지금보다 어릴 때면 얼마나 어릴 때지?”
진천희의 말에 여하륜은 가당치 않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표정으로 질문을 던져 왔다.
그 질문에 진천희는 피식 웃었다.
“그러게. 얼마나 어릴 때일까…… 이젠 못 먹을 줄 알았는데.”
살아서 먹지 못한 것을 죽어서야 먹다니, 사람 인생 참 모르는 거라고 진천희는 생각했다.
“돈 없지? 계산은 내가 할게.”
그 말에 여하륜의 어린 뺨이 수치로 붉어졌다.
표국행에 함께 따라가기 위해 모든 은자를 다 썼다.
진천희는 무심하게 여하륜에게 참새 꼬치를 건넸다.
“용돈 왕창 받았거든. 요즘 표국 어르신들이 나만 보면 뭔가 못 줘서 안달이더라. 형이 쏘는 거니까 동생은 먹기만 해.”
단지 예의 바르고 귀여운 소년의 행세를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진천희가 없었다면 죽었을 사람들을 진천희 덕분에 구할 수 있었다는 것.
천하의 백린의선도 살릴 수 없었던 사람을 살려냈다.
구명지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 은혜는 강호의 사람들에게는 지독하게 무거운 것이라는 것을 진천희는 잘 알고 있었다.
살아난 사람의 가족들이, 그 본인이, 그리고 그들의 친구와 동료인 운룡표국의 사람들이 진천희를 호의적으로 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하륜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것을 진천희는 깨달았다.
“형이라고……?”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답하는 여하륜.
아직 어리지만 잘생겨서 미래가 기대되는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진천희는 어쩐지 심술이 났다.
“내가 형 하기로 했잖아. 그리고 형이 하는 일이 이런 거고.”
“으윽, 하지만…….”
역시 완전히 납득이 가지는 않는 모양이다.
여하륜은 물끄러미 진천희가 건네준 참새 꼬치를 바라보다가 결국 한입 먹었다.
녀석의 눈이 커지더니 결국 다음 한입, 다음 한입, 아구아구 먹기 시작했다.
‘그래그래. 천애고아가 된다는 건 참 힘든 일이지.’
살아오면서 한번쯤 바라 왔던 일 아닌가.
다른 애들처럼 가족이 있었으면 하는 거.
동생에게 맛있는 것을 사 주는 누나나 형을 보면서 참 부럽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다.
진천희는 여하륜의 등을 툭툭 쳤다.
“열심히 살아. 인마. 기죽지 말고. 형이 있으니까.”
“내공도 없으면서?”
“그게 뭐 대순가. 야. 여기 사람들 봐 봐라. 다들 내공 없이 잘 살잖아. 무림 놈들은 이게 문제야. 내공이 없으면 사람 취급을 안 해. 무공이 있으면 밥 안 먹고 살 수 있다든? 집 필요 없냐? 옷은 벗고 다녀?”
진천희는 뻔뻔하게 답했다.
처음에는 개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진천희의 말을 듣고 있으면 또 뭔가 그럴 듯하게 빠져드는 게 있다.
“아, 탕후루다. 저거 사 올 테니까 잠시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진천희는 여하륜에게 줄 탕후루를 몇 개 샀다.
산사 열매에 물엿을 씌운 것이 절로 입에 침이 고였다.
“여기 돈이요.”
이 세계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진천희는 계산에 능숙했다.
해외 자원봉사를 다닌 경험 덕분일까? 진천희는 노점 주인이 얼마라고 말하기도 전에 빠르게 동전을 건넸다.
그때 뒤에서 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 애새끼야!”
싸움 소리에 탕후루를 들고 달려가니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 한복판에는 여하륜과 장정들이 붙어 있었다. 딱 봐도 뭔가 시비가 붙었던 모양이다.
‘저런 어린애랑 시비가 붙다니, 저 새끼들도 참 막장이네.’
어딜 가나 쓰레기는 있는 법이다. 그건 여기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래도 검은 뽑지 않은 걸 보니 최후의 양심은 있나 보다.
장정 하나가 여하륜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여하륜의 잔상이 사라진다.
슥-
그러고는 바로 놈의 뒤에서 나타났다.
빠악!
내공이 실려 있지 않은 가벼운 발차기인데 어른의 허리가 휘었다.
“이게 무슨……!”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여하륜은 세 놈을 모두 빠르게 쓰러트렸다.
이겼다.
전투라고도 할 수 없는 싱거운 싸움이다.
사람들도 놀라서 수군댔다.
“저 삼견(三犬) 놈들을 쓰러뜨리다니, 어디 명문세가의 소공자신가?”
아니나 다를까, 별명에 개가 붙어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가판 엎고 할머니 때리고 하는 새끼였는데, 속이 다 시원하구만.”
‘헤헤헤, 제 동생입니다.’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다.
이제 탕후루를 하나씩 나눠 먹고 돌아가면 되겠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그때였다.
여하륜이 쓰러져 있는 삼견 중 하나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그 팔을 반대로 꺾었다.
우드드득-
“끄아아아아악!”
비명 소리가 처절하게 울렸다.
여하륜은 개의치 않고 놈의 다른 다리도 꺾었다.
우드드드-
“크아악! 크아아악!”
그러고는 올라타서 주먹으로 놈의 안면을 후드려 패기 시작했다.
두개골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린다.
집요하다 싶을 만큼 잔혹한 손속에 행인들이 얼어붙었다.
진천희가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