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59
제 159화
모든 준비를 끝내고 수술실 안으로 들어갔다.
은왕야는 수술 전 정해진 절차를 끝낸 후, 준비된 탕약을 먹고 시침과 점혈을 받아 잠이 들었다.
단 하나, 얼굴에는 가면을 여전히 쓰고 있었는데 진천희와 백린이 있는 한 누군가 그 가면에 손을 대는 일은 없을 터였다.
의각원들은 각자의 정해진 포지션을 완벽하게 해나갔다.
개복 전 소독까지 바로 착착 시행하는 것을 보고 진천희는 감탄했다.
‘예전에는 다들 어리버리했는데 말이지.’
백린의각에서 첫 수술을 했을 때가 떠올라서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왕각연을 치료할 때 다들 불안해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맞는지조차 알 수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이런 건 지구와 같았다. 의원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환자가 기다려주는 게 아니었다.
의원이 병아리든 병아리가 아니든 환자는 실려 온다.
그때의 병아리들이 이제 자라서 한 명의 부술당 의원이 되었다.
뿌듯한 마음에 진천희가 말했다.
“오우, 이제 다들 각이 잡혀 있네요.”
얄미울 정도로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환자 앞에 섰다.
“아시다시피 이번 수술은 특별히 난이도가 높은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변수가 있을 수 있다는 게 문제네요. 음. 거기다가 환자가 애초부터 위와 장에 손상이 가 있는 상황이라는 게 문제고.”
독살을 당할 뻔한 이후로 약해진 위와 장은 수시로 염증이 생겼다.
약과 침술로 어찌저찌 가라앉혔다고는 하나 완전히 장담할 수는 없다.
“뭐. 사람은 사람의 일을 하도록 하죠. 그 이후는 하늘에 맡기고요.”
인간은 신이 아니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두 다리가 있다.
진천희는 이 다리로 오늘도 인간의 일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왕야의 배를 갈랐다.
“개복(開腹).”
* * *
진천희는 곧바로 종괴를 찾을 수 있었다.
좌측 하행 결장에 암 덩어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악성과 양성이 함께 공존한 상황.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는걸.’
은왕야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감히 생각하기 힘들다.
진천희는 각오를 다지며 바로 다음 판단으로 넘어갔다.
‘임파선을 파고들었는지 지금 상황에서는 알 수가 없는 게 가장 문제군.’
육안으로 그것을 확인하는 건 불가능.
어차피 연필 점 하나 크기의 아주 작은 악성 덩어리라도 다른 곳에 퍼지게 되면 그곳에 다시 뿌리를 내리고 커질 터였다.
마치 버섯의 포자와도 같다.
문득 과거 유랑후의 다리를 변연절제술 하던 당시에 화기를 보내 염증 위치를 찾았던 게 떠올랐다.
‘어쩌면 그런 방식으로 악성 종양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종괴에 직접 접촉해야 하는 거니 수술 도중만 가능하나 그 자리에서 몇 기인지 알 수 있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옛날이면 불가능했겠지.’
당장 불과 작년만 해도 꿈도 못 꿀 경지다. 그러나 지금의 극한으로 단련한 경지라면 그러한 미세한 감지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염증 감지하는 것과는 또 다른 난이도이긴 하지만…….’
곧바로 손을 뻗어서 내기를 보냈다.
종괴는 수기가 적합하다.
원래 화기보다 수기가 이럴 때 쓰기에 더 어렵다.
하지만 상대는 피막이 없고 조밀한 덩어리.
수생기를 보내 진맥을 시도했다.
“…….”
무슨 일인가 싶어 스승님이 제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한마디도 묻지 않고 진천희가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이유 없이 그럴 제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윽고 진천희가 손을 뗐다.
‘상행 결장에도 조금 번졌지만 원격 전이는 없어 보이는데? T1~2 정도로 보여.’
T는 Tumor, 종양을 뜻한다.
쉽게 말해 1기~2기 중반 정도의 예후가 좋은 상태.
진천희도 처음 해 보는 일이니 확신할 수는 없었다.
후에 돼지나 소를 상대로 실험을 해 보면 정확하게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진맥으로 느낀 감각은 변연절제술 때와 비슷하였다.
수생기가 장막을 뚫고 종괴를 타고 움직이다가 어느 한곳에서 멈춘 것이 느껴졌으니까.
“뭔가 깨달았구나.”
“확신할 수 없어요.”
“기뻐 보이는구나.”
“제 깨달음이 맞다면 환자는 더 오래 살 수 있으니까요.”
손을 뗀 진천희가 말했다.
“좌반 절제.”
‘ㄴ’자 모양으로 결장을 절제해 붙이는 방식이다.
악성 종양은 양성과 다르다. 최대한 넓게 도려내야 한다.
의각원들이 모두 집중해서 진천희와 제갈린을 바라보았다.
‘반(反)은 치료가 불가능하다 들었는데 그게 된단 말인가.’
잘라내고 닦아내고 다시 봉합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들.
장의 연속성을 살려야 하는 게 최우선으로, 장이 절제된다 하더라도 환자는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진천희의 움직임에 따라 제갈린은 계속해서 보조를 맞추었다.
진법을 유지하며 진천희가 필요한 것들을 계속해서 건네주었다.
“이번에는 스승님이 봉합해 보시겠어요?”
“흠. 솔직히 봉합은 내가 너보다 더 잘하는 것 같구나.”
제갈린의 너스레에 진천희는 작게 웃었다.
“당연하죠. 누구 스승님이신데.”
그 말을 끝으로 두 사제는 다시 집중했다.
* * *
황제는 꿈을 꾸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꿈이었다.
풍하은과 풍하금.
하나는 말로써 행동을 조종하고, 또 하나는 접촉으로 기억을 읽고 조작했다.
둘의 능력이 밝혀지고 난 후 모든 황자, 황녀들, 그리고 그들의 외가에서 둘을 죽이기 위해 무슨 짓이든 했다.
두 사람 중 하나라도 황위에 올라서게 되면 어찌 될 것인가.
어머니가 하은의 손을 붙잡았다.
“지금부터 황자께서는 이 어미와 함께 죽은 겁니다.”
까만 피를 뱉으며 모후가 말했다.
“풍하은은 이 어미와 함께 독배를 나눠 마시고 사망한 겁니다. 아셨습니까?”
“어머니…….”
“은아. 더는 말하지 말거라.”
그 자리에 풍주하는 없었다.
그녀는 먼 곳에서 생사를 건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군신(軍神)이 자리를 뜨는 사이에 벌어진 모략이었다.
“그러니 둘 중 하나라도 도망치거라. 이 어미의 관 속에 들어가 있으면 이 넓은 황궁을 벗어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리 말하고 어머니는 숨이 꺼져가는 마지막. 그 마지막 기력을 다해 촛대를 넘어뜨렸다.
기름에 젖은 이불보가 빠르게 번져갔다.
형제는 비명을 질렀다.
풍하은은 그런 형제를 붙잡았다. 바동거리는 형제의 온몸에는 피멍과 할퀸 자국이 가득했다.
둘 중 하나는 황성을 나가라고 했다.
관짝은 하나이고, 둘 다 나가는 것은 아무리 어미라도 불가능했기에.
누군가는 이 관짝이 황성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지켜야 하기 때문에.
하은과 하금, 누가 나갈 것인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결정은 그리 길지 않았다.
어머니의 관짝은 어머니의 것이었다.
마침 어머니가 미리 준비해두신 불탄 시체는 하은이로도 하금이로도 될 수 있었다.
두 아이는 서로가 되기로 했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자.
한 명은 정략을 하는 동안, 다른 한 명은 암살을 하자.
우리 둘 중의 하나라도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이 짓을 멈추자.
화염이 모든 것을 불태우고 쌍둥이의 이성도 함께 불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한 명이 더 필요했다.
삼인성호(三人成虎).
세 사람이서 짜고 치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고 했다.
둘의 힘만으로는 있던 사람을 없애는 것도 어려운 일.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수렁 속.
누군가는 두 사람을 제어해줄 수 있어야 했다.
그때 모후의 부고를 듣고 풍주하가 다급히 돌아왔다.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이 살아서 모습을 드러내자 그녀는 울면서 주먹을 날렸다.
다행히 힘은 조절했는지 죽지는 않았다. 죽을 만큼 아픈 건 사실이지만.
풍주하는 이 미친 황궁 속에서 유일하게 미치지 않은 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 유일한 황족이기도 했고.
정상인에게 미친 짓을 하자고 권유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고인의 유언과 의지, 그리고 지긋지긋한 혈육의 정이 함께라면 멀쩡한 사람도 광대로 만들 수 있었다.
두 쌍둥이가 건 것은 목숨.
언제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목을 치고 네가 앉으라는 맹약이었다.
세 사람(三人)이 그렇게 완성되었다.
이제 호랑이를 만들(成虎) 때였다.
* * *
꿈은 더욱 옛날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갔다.
아주 옛날.
선황께서 살아 계시고 세 아이 모두 힘을 자각하기 전의 시절.
풍하은은 황제가 되고 싶은 적이 없었다. 그것은 풍하금도 마찬가지였다.
괄괄한 누이와는 다르게 두 사람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내리는 빗줄기를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둘이 합쳐지면 그것만 한 것이 없었다.
소나기가 내리는 날에는 풍경 소리가 예쁜 방에 앉아서 벽에 등을 기대고 책을 읽었다.
종류는 상관이 없었다.
어머니는 복숭아를 먹었다.
먹고 나면 얼굴이 빨개지면서 숨쉬기를 힘들어했지만 다른 이들이 어머니에게 복숭아를 그리 먹였다.
독살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복숭아이니 예법에 어긋남도 없었다.
멍청한 시비들이 자꾸만 가져다주었을 뿐이었다.
왜 이리 시비들은 복숭아를 좋아하는지, 만두에다가도 넣었는데 엄히 회초리질을 했는데도 끝나지가 않았다.
‘황궁이란 그런 곳이란다.’
모후는 그리 말하면서 두 쌍둥이를 쓰다듬었다.
‘제가 힘이 생긴다면 시비들의 기억력이 더 좋아질까요?’
‘힘이란 물리적 힘을 말하는 게 아니란다. 사람을 끌어서 만드는 힘이지. 그래. 아마도 그리된다면 시비들의 기억력이 더 좋아지겠지.’
당시에는 아직 선황이 살아 계셨고 세 아이는 힘을 자각하지 않았던 시절.
풍하은과 풍하금은 이 황궁을 떠나고 싶다고 간절하게 생각했다.
그런 두 아이는 울적해질 때면 언제나 무림에 관련된 책을 읽곤 했다.
그들은 자유로워 보였다.
한걸음에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이루기에 주저함이 없어 보였다.
황족의 이능과 무공은 전혀 다르다.
둘 모두 가공할 만함 힘을 가졌으나 한쪽은 핏줄로 전해지고, 다른 한쪽은 노력과 적성으로 정해졌다.
어느 정도는 운이 필요하다는 건 둘 모두 같았다.
그럼에도 어째서 이런 다른 모양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은이 말했다.
‘언젠가 황성을 나가서 무림으로 가는 거야.’
‘이능은?’
‘자각 못 할 수도 있지. 그러면 평범한 사람처럼 살 수 있을지도 몰라.’
그때는 그렇게 믿었던 순진한 나이.
‘나중에 황궁에 몰래 침입해서 복숭아나무는 다 베어버리는 거야.’
‘아. 그거 좋겠다. 이기어검으로 다 썰어버리자.’
‘다들 난리 나겠지?’
‘응. 난리 날 거야. 그러면 시비들 기억력이 계속 나빠도 괜찮아. 어차피 복숭아는 없으니까.’
쌍둥이들은 복숭아를 증오했다.
이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과일을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코 복숭아를 고를 수 있을 터였다.
힘이 없는 모후란 그런 것이었다.
빗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간간히 들리는 풍경 소리가 마음을 안심시켰다.
두 쌍둥이는 책을 읽어 나갔다.
지식은 맛있었다. 그게 어떤 종류의 지식이든 그랬다.
닥치는 대로 읽다 보면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책으로 도망친 아이들은 비 내리는 섬에서 복숭아를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때는 그게 평생 이어질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