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62
제 162화
“처음 독을 먹은 것은 아직 어머니께서 살아 계실 때였지.”
“…….”
진천희는 그저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복숭아를 대신 먹어 드릴 생각이었다. 우리가 다 먹으면 어머니가 먹을 양이 없어지니 편해지시지 않을까 싶었어. 하지만 그 안에 독이 있더군. 우리 둘은 그때 이후로 음식을 삼킬 때면 늘 같은 고통을 느끼곤 했지. 어머니는 평생 자신을 원망하셨어. 분수에 맞지 않는 높은 곳에 욕심을 내어 너희들이 고생하게 되었구나 하고.”
그는 작게 웃었다.
“평생 자기 탓만 하셨어. 남 탓을 할 만큼 최소한의 모진 부분도 없었지. 그런 어머니 밑에서 우리 삼남매가 태어난 건 기적이지.”
그는 가면을 쓸었다.
“누이는 복숭아를 먹인 시종의 머리를 박살 냈지. 하지만 끝내 죽이진 못했어. 어머니가 자기가 맞는 것보다 더 서럽게 울었거든. 딸이 자신 때문에 살인자가 된다는 게 마음이 아프셨던 거겠지.”
“…….”
“우리 형제는 대신 복숭아를 먹으려고 했고, 누이는 원흉을 박살 내려 했지. 결국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같으나 성격이 달라 방식도 달라지더구나.”
주왕부에 눈은 계속해서 내렸다.
원래부터 눈이 많이 내리던 곳에 차가운 적막이 쌓여만 갔다.
“하인이 내지른 칼에 찔린 건 열두 살. 누군가 풀어 놓은 뱀에 물린 건 열셋. 저주를 받아 악몽을 꿔서 잠을 못 잔 건 그다음 해. 가뜩이나 밥을 먹기도 힘든 터라 무척이나 말라만 갔지.”
그때마다 주왕은 흉수를 찾아 손에 피를 묻혔다.
그녀는 예나 지금이나 자기 사람을 건드리는 걸 못 참으니까.
다만 지금과는 달리 서툴렀고 좀 더 잔인했던 시절이었다.
“이후 타고 있던 말의 등자가 부서지며 낙마로 뼈가 부러진 것은 그해 겨울이었지. 지금도 짐은 다리를 조금 절고 있단다. 그때 그대 같은 의원이 곁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군. 이제 와서는 다 쓸데없는 망념이지만.”
진천희는 그의 담담한 목소리를 잠자코 들었다.
그게 그는 퍽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아첨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의외군.”
본디 무협 소설에 나오는 황제란 아첨을 하는 자를 좋아하질 않는다.
이 사람도 주왕과 비슷한 과로, 만약 여기서 진천희가 열심히 딸랑거리면 슬픈 눈으로 ‘훗, 너도 짐의 권력에 무릎을 꿇는 것인가.’ 하며 세상을 한탄할 터.
이런 놈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승진을 시켜 준다고 해도, 금은보화를 던져 준다고 해도 목 빳빳하게 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에는 돈과 권력으로 넘어오지 않는 자도 있구나.’ 하면서 그제야 주인공 이름이나 한번 외워 준다.
진천희 역시 그랬다. 하지만 너무 건방지면 건방지다고 목이 달아날 수 있으니 적당히 청렴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리한들 그리 기뻐하실 것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만.”
“후후후. 기인은 기인이군.”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저 평안을 위해 싸워 온 나날들이었느니라. 세상 천지의 모든 것은 우리를 죽이려 들었고, 우리는 그저 살기 위해 이리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올라간 정점에는 평안이 없더구나. 왜 그런지 알겠느냐?”
진천희는 고개를 숙인 채로 조용히 대답했다.
“낙원이라 생각하고 도달한 곳은 낙원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아주 오래전.
진천희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부모의 이름을 모르고, 얼굴도 알 수가 없었다.
TV에서 가족들이 슈퍼마켓을 가는 CF가 나오면 그렇게 부럽고 속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계속 보게 되었다.
아이들은 가끔 누군가에게 입양되었다.
갔다가 돌아온 아이들도 있었으나 가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잘된 일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부러워서 어린 진천희는 무릎을 끌어안고 한참 고민하곤 했다.
정이 고팠다. 누군가가 자기를 필요로 해 줬으면 했다.
부모님이 왜 자신을 버렸는지 수없이 반문해 봤지만 쓸모없는 질문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질문을 하게 되었다.
‘왜 나는 여기에 온 걸까.’
그리고.
‘정말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걸까?’
어린 진천희는 가끔 이런 망상을 했다.
어른이 돼서 이젠 그때를 떠올리기만 해도 귓불이 붉어질 만큼 부끄러운 망상이지만 그랬다.
어느 날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와서 진천희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다.
나는 네가 필요하다고.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고.
친부모든, 양부모든, 그냥 한 부모든 상관없었다. 그래서 그 사람 손을 잡고 티브이에 나오는 슈퍼마켓에 가는 거다.
자신은 착한 아이니까 절대로 뭔가를 사 달라고는 하지 않을 거다. 대신 세제며 소금이며 필요한 것들을 챙길 거다.
바보 같은 생각인 걸 알면서도 어릴 때는 왜 그리 달콤해서 멈출 수가 없었는지 모르겠다.
보육원은 괜찮은 곳이었다. 하지만 테두리 밖으로 조금만 나가도 깔아뭉개는 사람들은 널려 있었다.
‘너 엄마 없다며?’
‘보육원 애들은 도둑질도 배워 간다던데 진짜니?’
‘반 수련회비가 없어졌다고 하더구나. 미안하지만 너부터 가방을 열어 봐도 되겠니?’
‘왜 없을까. 신발도 좀 벗어 볼래?’
‘양말도 벗어 주겠니?’
‘오늘 어디 들렀는지 여기 적어 줄래? 누구를 만났는지도 써 주렴.’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차별은 불쑥불쑥 들어오곤 했다.
공부도 수능을 의식할 때쯤 되어서야 약발이 먹히지 어릴 때는 체구가 작아 같은 아이들한테 자주 맞곤 했다.
어린 진천희는 무리에서 가장 서열이 낮은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아이일수록 더 잔인했다.
당시 국민학교는 한 학급이 50~60명인 시절이었다.
교사가 한 명, 한 명 신경 쓸 여력이 없었거니와 왕따라는 단어조차도 없던 시절이었다.
만만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기를 쓰며 살았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된 후 그 습관은 계속 굳어져만 갔다.
달리고 달린 끝에 무엇이 있는가.
결국 진천희는 몸과 머리가 고되지만 나름대로 엘리트 직군이라 할 수 있는 직업을 얻었고.
돈도 그럭저럭 풍족했다.
그럼에도 가족도 여가 시간도 없었다.
남은 것은 삭기 시작한 척추와 성에가 잘 끼는 안경뿐이었다.
그 허무함을 깨달았을 때 안식년을 신청했고 사망했다.
그래서 웃기지만 두 쌍둥이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 끝에 있는 절망감과 허무조차도 알 것 같았다.
“…….”
그는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신기하구나. 어째서인지 내 심정을 이해하고 있어.”
이능을 사용한 걸까.
여기서 ‘기억’이란 마음속의 생각과 감정적 기억도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후후후, 신기하구나. 너는 기억이 벽처럼 막혀 있기에 이해하기가 어려우나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감정의 편린은 이해할 수 있겠군.”
현대의 기억은 읽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현대의 기억을 보고 그가 어찌 생각할지, 진천희를 미친 자로 여길지, 진실로 여길지 궁금했는데 거기까지는 불가능한 모양이다.
그는 진천희가 신기한지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진천희가 말했다.
“비록 낙원이 없다 하여도 가족이 안전하고, 돌아갈 곳이 있다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가족이라.”
그는 생각에 잠기더니 작게 웃었다.
“그래. 네 말이 옳다. 만약 누이가 없었다면, 우리는 한 줌 흙이 되었거나 황족들을 무던히도 많이 죽였겠지.”
섬뜩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그가 말했다.
“신기한 아이구나. 감정의 방향도 다르고. 생각의 방향도 달라. 어느 시점부터 기억이 막혀 있어 읽기가 어려우나, 그래…… 왜 누이와 은이가 네게 호감을 가졌는지는 알 것 같구나.”
그때 달칵 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거라.”
황제의 말에 호위로 보이는 자가 나서서 만류했다.
“폐하.”
“이 아이는 얼굴을 볼 자격이 있다. 거기다가 같은 얼굴을 이미 보았지 않느냐.”
진천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똑같은 얼굴이 있었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미남자.
진천희가 치료한 것과 거의 동일인이라 착각할 정도의 사내였다.
“이미 몇 번이나 동생이 원했던 모양이니 더는 묻지 않으마. 하지만 신기하긴 하구나. 돈을 원하는데 사람은 선인이니.”
그는 작게 웃더니 이리 말했다.
“앞으로 일 년에 두 번은 은이가 치료를 받게 될 것이니라. 그러니 연을 만들어 두는 것이 좋겠지.”
그는 자신의 팔에 끼고 있던 장신구를 빼서 진천희에게 건넸다.
“용은 황가를 수호하고, 이것을 낀 자는 역참에서 군마 정도는 쉬이 빌릴 것이란다.”
“폐하.”
“음. 여기서는 금왕야라고 부르거라. 그리고 그리 어려운 물건은 아니다. 일개 왕야를 치료하고 얻은 물건치고는 과분하나,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면 그리 과한 선물은 아니지. 형식은 적당히 꾸밀 테니 들고 가거라.”
축객령.
진천희는 명대로 고개를 조아리고는 팔찌를 받았다.
“꼭 끼고 다니거라.”
나가는 진천희를 향해 황제가 한마디 덧붙였다.
웃음을 흘리는 모양새가 왠지 무서웠다.
* * *
밖으로 나오니 주왕이 기다리고 있었다.
“끝났느냐?”
“아…….”
“뭐, 어찌 알았는지는 묻지 말거라. 다 아는 수가 있으니까.”
‘이분 벽에도 눈과 귀가 달려 있는 모양이군.’
그렇다고 해도 진천희가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 기척을 숨기지 않았던가. 무슨 수로 알아냈는지 미스터리다.
진천희는 쥐고 있던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황제2가 하사한 거니 어따 팔아먹으면 안 될 거고. 차고 다니라니 차고 다니는 게 맞다.
하지만 언제나 역참에서 말을 빌릴 수 있다니?
대단하다면 대단한 기능이지만, 팔찌에 황제의 상징씩이나 등장할 만큼 대단하냐고 한다면 그건 또 영 아니올시다다.
“왜 감찰사의 징표를 네가 갖고 있는 거냐?”
“네?”
“감찰사 징표를 네가 왜 가지고 있냐고.”
감찰사가 무엇인가.
진천희는 3초간 뇌 내에서 검색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화 제국에서 어찌 통용될지 알 수는 없으나 보통 관리들의 부패를 고발하는 역할 아닌가.
“주셨……습니다?”
“……그걸 줬다고? 본인 암행용으로 만든 걸?”
“네.”
“…….”
주왕도 어이가 없는지 한참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뭘 한 거냐. 걔 앞에서 춤이라도 기깔나게 춘 거냐?”
“아뇨. 하는 말을 들은 게 전부였습니다.”
“말을 들어 줬다고 그걸 줬다고? 직속 감찰사의 징표를?”
“……일단 아우의 목숨도 구했으니까요. 어, 그 감사의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확실히… 왕야를 구했다고 받기에는 과분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고 하면 그럭저럭 납득은 될 물건이었다.
중간에 비어 있는 알리바이의 공백들은 알아서 채우시겠다고 했으니 채워지리라.
주왕은 갑자기 쭈그리고 앉아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왜 내가 침 발라 놓으면 다들 데려가려고 안달인지.”
“아,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백린의각 소속으로 절대로 어의가 될 생각은…….”
“아니 그건 아는데…….”
주왕은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구나. 남매가 사람 보는 눈이 똑같으니 결국 결론도 똑같네.”
그녀는 진천희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러고는 시정잡배처럼 물었다.
“그래도 내가 제일 낫지 않느냐. 압박도 별로 없고, 단골이고 말이다.”
과연 왕년에 놀아 보신 분답게 제대로 포스가 나왔다.
“주왕님께서는 가장 저와 오래 연을 맺으신 아주 고마우신 분이십니다.”
“제일 낫다는 소리는 안 하는구나.”
‘저도…… 살아야 하잖습니까.’
물론 이 말을 입 밖으로 낸 적은 없었다. 그저 눈빛을 담아서 봐 줬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