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64
제 164화
“그러면 그리 알겠습니다.”
“오냐. 참, 후원금은 이미 네 스승에게 말해 두었다.”
대충 듣긴 했는데 어마어마한 금이 들어올 예정이다.
이 중 일부는 진천희의 포켓으로 들어오니 비누 사업과 백환후에 넣어 둘 생각이다.
‘폐하고 주왕야고 전부 호탕하시긴 했지. 황족이라 그런지 씀씀이가 커. 땡큐다. 땡큐.’
진천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입가가 느슨해지지 않도록 노력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헤벌쭉 웃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은왕야는 진천희의 다른 쪽 손목을 보았다.
금왕야가 준 팔찌…… 아니, 감찰사의 상징이다.
손목에서 짤랑거리는 팔찌를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이리 말하셨다.
“중요한 증표이니 잘 간직하거라.”
이제 한 손에는 천마 팔찌, 다른 한 손에는 황상 팔찌.
투 팔찌를 끼게 되었다.
그것도 하나는 마교를 상징하는 흑룡, 다른 하나는 황실을 상징하는 황룡이다.
쌍용 세트!
절대 모여서는 안 되는 템 두 개가 한 번에!
‘걸리적거리면 한 쪽에 모아서 차든가 해야겠네.’
“알겠습니다. 왕야.”
“그래. 믿겠다.”
말에 힘이 담겨 있었으나 그저 믿겠다는 말뿐이기에 변하는 건 없었다.
‘그래도 무겁다. 권력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이능도 주왕야처럼 산을 박살 내고, 바다를 끓게 만드는 종류였으면 모를까, 하필 저렇게 사람들이 기피할 만한 것만 타고나셔서는…….
이대로 어서 훌훌 날아가서 일 년에 두 번만 와야겠다.
진천희는 그렇게 서둘러 길을 나섰다.
* * *
함께 온 의원들은 잠시 휴가를 주었다.
기왕 의각 밖으로 나온 김에 가족들도 만나고 오라는 배려였다.
왕야의 수술 및 간호, 탕약 제조 등 긴장 속에서 살아왔던 의원들이었다.
‘쉴 때는 쉬어야지.’
의료 시스템에서 맷돌처럼 갈려 왔던 진천희는 휴식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보내고 나니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그래. 그 정도면 너치고는 많이 쉰 셈이구나.”
파란만장한 나날들이었지만 그래도 그 외에는 먹고 자고 기초 수련이나 하면서 보냈다.
마음이야 어찌 되었건 몸에는 좋은 휴식이 되었다.
진천희와 제갈린은 말을 타고 돌아갔다.
“그러네요. 스승님도 잘 쉬었나요?”
“주왕부의 설경이 절경이었지. 그리고 네가 쉴 수 있어 마음이 놓이더구나.”
그리 말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참, 스승님.”
“음? 무슨 일이니, 희야.”
진천희는 몰래 만들어 둔 그것을 꺼냈다.
백린의각에서 만들기 시작해서 스승님 몰래 주왕부까지 들고 와 만들었던 것이었다.
“생신 축하드려요.”
작은 목함.
스승님은 고삐를 당겨 말을 멈추었다.
“그걸 말 위에서 주다니 풍류가 없구나. 내 제자는.”
“풍경이 좋잖아요.”
제자가 배시시 웃었다. 그 모습에 제갈린은 결국 져 버리고 말았다.
“일단 상자를 열어야 하니 말에서 내려야겠구나.”
둘은 말을 세워 두고 커다란 나무 아래에 앉았다.
스승님은 목함을 열었다.
“희한한 포장이구나.”
진천희가 있던 세계의 포장법이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죠. 저 끈을 당기면 다 풀릴 거예요.”
“흠.”
제갈린이 끈을 풀어 포장을 열었다. 그곳에 들어 있던 것은 장갑이었다.
손목 부분은 옥으로 장식되어 있어서 퍽 멋스러웠다.
제갈린은 살짝 놀라서 그것을 바라보다가 진천희에게 물었다.
“옥에 기린 문양이 보이는 것이, 전부 네가 만든 게냐?”
“네. 약간 좀 못 깎았네요.”
“아니다.”
스승님은 고개를 저었다. 장갑 안에 손을 넣으려다가 멈추었다.
“옥이 상할까 걱정이구나.”
스승님이 이런 표정을 짓는 건 또 처음이라 진천희는 조금 당황했다.
“그러면 윗단을 한번 접으시면 돼요.”
“그래도 상할 것 같구나.”
제갈린은 마치 일생일대의 고민이라도 하는 양 미간을 찌푸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희가 매일 고심해서 만든 거잖니.”
“그렇죠.”
“내 최고의 보물은 이것 같구나.”
백린의각에 그리도 명검이 많은데 제갈린은 고작 옥과 가죽으로 만든 이것을 최고의 보물이라고 한다.
“상하면 또 만들어 드릴게요. 스승님.”
“진짜인지 궁금하구나. 내 제자가 하도 불효를 해서 말이지.”
“아…… 정말입니다. 이 사람 믿어 주세요.”
진천희가 툴툴대자 제갈린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장갑을 양손에 꼈다.
“어울리느냐?”
“네! 스승님 손에 딱 맞아서 다행이에요.”
“그래.”
제갈린은 기묘한 표정으로 한참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진천희는 그 모습에 죄책감이 들었다.
‘아, 동생들 것만 챙기지 말고 진즉에 스승님 것도 만들어 드렸어야 했는데.’
이렇게 좋아하실 줄은 몰랐다.
* * *
“뭐라고! 반을 고쳤단 말이냐!”
소식은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황제가 직접 신경 쓰고 있는 왕야를 치료했다는 말에 화주의각이 발칵 뒤집혔다.
“정확히는 당장 죽을 고비는 넘기었고, 후처치를 해 나가면서 정양할 수준이라고 합니다. 완치랄 것까지는 아닌 거죠.”
“그것을 고쳤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것아.”
총관 마진추는 짜증스럽게 말을 이었다.
“백린의선이 완치가 되지 않았다고 뒷방에 있느냐. 펄펄 날아다니면서 숙적들 머리를 깨고 다니지 않더냐.”
“그런 혈사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
“…하아. 이번에 약초방 두 곳이 화주의각에 납품을 거부했다. 이게 우연 같으냐?”
약초방은 의각이나 의방에 약초를 공급하는 곳이다.
의각이 직접 약초꾼을 부려 원하는 약초를 구하는 경우도 가끔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희귀한 약초에나 적용되고, 감초나 갈근, 곽향같이 탕약에 많이 쓰이는 재료들은 이런 약초방이 대량으로 공급해 준다.
약초꾼들은 약초방에 약초를 판다.
약초방은 그렇게 산 약초들을 약제로 만들 수 있게 세척하고 건조시키고, 부위별로 잘라 낸다.
흔한 약초들인 만큼 가공이 그리 까다롭지는 않으나 그만큼 많은 양을 매달 대량으로 공급해야 하니 쉽지 않다.
여기에 의각, 의방뿐만 아니라 상단이나 표국에서도 대량으로 구매하는데 이 또한 소속 의원들이 표사나 상인들을 위한 약을 제조하기 때문이다.
비싼 약제라면 어쩔 수 없이 의각에 의지하겠으나 가벼운 금창약 정도라면 직접 만드는 게 훨씬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거래처 두 곳이 뜬금없이 화주의각에 납품을 그만두게 된 것.
“하오문과 개방을 통해 조사를 해 보니 백린의각과의 고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만.”
“대신 상단 세 곳이 대량으로 매입한 흔적은 찾았지. 아마 장기 계약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약재는 몇 다리 걸쳐 백린의각으로 향하게 될 것이 안 보이느냐.”
허나, 증거는 없다.
백린의선이 그렇게 일을 쉽게 처리할 인물이 아니기에 더욱 답답했다.
한때는 의선과 마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놈이었으나 나이를 먹고 건강이 더욱 나빠지니 누가 옆에서 제 몫을 뺏어가든 말든 두문불출했다.
마치 한 걸음 멀리 떨어져서 세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명예욕이든 금전욕이든 삶에 대한 욕망 자체가 그리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껏 뺏어갔더랬다.
주왕부를 비롯한 황족들과 세가 장문인들과 유명 상단들을.
백린의각은 그리해도 별 반격을 하지 않았다.
미련이 없는 건지 미련한 건지 모를 정도였다.
그러던 지금.
제자를 얻어 몸을 고치고 나니 빼앗긴 것들을 하나씩 되찾아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 과정이 지독하게 은밀해서 결국 심증밖에 없지만.
“이제 왕야까지 고쳤으니…….”
“어느 왕야인지까지는 의원에게 밝히지 않는다 하였고, 설령 저들이 안다 해도 입 밖으로 못 꺼낼 거지 않습니까. 그러면 된 게 아닙니까.”
“정말 그리 생각하느냐. 황제가 알고, 치료를 받은 황족이 알고, 주왕이 아는데?”
“…….”
말문이 막혔다.
원래의 계획에 의하면 이게 아니었다.
반은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었다.
환자가 부술 도중 사망하든, 아니면 부술 이후 사망하든 어찌 되었든 판은 화주의각에 유리하게 돌아갔을 터였다.
“내가 가장 이상하게 느껴지는 게 뭔지 아나?”
총관 마진추가 묻자 다른 상의원들이 고개를 저었다.
마진추가 말을 이었다.
“백린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는 거지. 보통이라면 그 팔불출이 자신의 제자를 자랑하기 위해 의보에 세세히 실을 텐데 왜인지 닥치고 있다는 거다.”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군요.”
“그래. 그렇다는 건 둘 중의 하나다. 환자가 우리가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세가 있는 왕야분이셔서 입을 조심하거나.”
조심하거나?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고 마진추를 바라본다.
“아니면 또 화주의각을 상대로 못된 짓을 뒤로 꾸미고 있거나.”
마진추는 이마를 쓸었다.
“일단 대응을 해 나가야겠다. 어차피 거래 약초방 둘 사라진 것뿐. 화주의각이 저력이 있으니 신경 쓸 것 없다.”
“화주약선님께 보고는……?”
“내 직접 할 것이다.”
총관의 눈에 독기가 스몄다.
024. 무당파로 향하다
황궁의 일을 끝낸 후 몇 개월이 또 흘러갔다.
진천희는 다시 자리에 돌아와 집요정의 일을 했다.
환자들을 살피고, 연구를 하고, 수련을 하는 나날들이었다.
또한 주왕의 천거 약속을 랩실 노예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진천희의 19명의 배양 노예들이 눈을 빛냈다.
벼슬길!
그냥 벼슬길도 아니고 주왕의 천거다. 의료 시험이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이 시대에 황족, 그것도 황제의 신뢰를 받는 주왕의 천거는 그만큼 컸다.
“부술당주님!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는 부술당주님을 믿었습니다! 이리될 줄…… 으흐흐흑!”
“오늘도 방선균은 건강합니다!”
그랬다. 노역도 보상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진천희가 제안한 노예 임기는 3~4년 정도. 그때까지 지금 하는 대로만 하면 말단 관리직이라도 받을 수 있을 터.
백린의각의 분타주 자리는 보상이 굉장히 매력적이나 빈자리가 잘 나오지도 않는 데다가 공부가 뒤처지면 그대로 자리가 위험해진다.
게으른 의원을 가만히 놔둘 제갈린이 아니기 때문이다.
약제 하나만 잘못 관리해도 수십 명의 환자가 죽을 수도 있다.
많은 것을 받는 만큼 많이 일해야 하는 자리다.
반면 벼슬길. 그것도 주왕 천거로 들어가는 요직이면 지방 왕부에 배치된다고 한들 말단부터 시작하진 않을 터고 임기도 상당 부분 보장될 터였다.
‘이 시대 벼슬이 대기업 취업 제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하긴 한데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네.’
그야말로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소경의 눈을 뜨이는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노역질도 보상이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해서 끈을 만들어 놨는데 약발이 과하게 먹혔다.
‘잘됐다. 그래, 이래야 랩실 분위기도 좋아지고 애들도 사고 안 치고 계속 해나갈 거야.’
끝이 있다는 건 중요했다.
보상이 있다는 것도 중요했다.
힘든 일인 만큼 거기까지는 약속해 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