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66
제 166화
진천희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과연, 구체적으로 정산도 끝낸 모양이군.’
오 할은 사실 좀 과하다. 삼 할은 진천희도 생각했던 적당한 액수였다.
만파곡이 먼저 오 할을 부른 것은 명분을 얻기 위해서일 터.
‘역시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단 말이야.’
풍채가 좋아 수더분한 인상에 사람 좋은 호인 같아 보여도 약재당을 위해 칼처럼 움직이는 분이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삼 할을 못 드릴 건 없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좀 아쉬운데요……?”
“허면.”
“향유를 원합니다. 비누에 향을 첨가해 보는 거죠.”
“비누 사업을 끝내 안 접으실 모양이로군요.”
사 대 당주, 거기에 스승님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진천희가 어떻게 돈을 꼬라박고 있는지 봐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 내가 고지식하긴 했지.’
전생의 진천희는 드라이클리닝이 필요한 옷은 사지 않았다.
양복처럼 어쩔 수 없이 입어야 하는 게 아니면 모두 세탁기로 세탁 가능한 것들만 샀다.
환자는 의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무리 꾸민들 얼마나 빨리 도착해서 이 긴급 수술을 해 주느냐가 환자의 생존을 좌우했다.
계절마다 세 벌 정도 옷을 샀고 그냥 돌려 입었다.
평생 독신이었으니 아침마다 셔츠를 다림질해 줄 사람도 없다.
세탁도 편하고, 구겨져도 티가 안 나고.
적당히 단정하고.
집안일은 쉬는 날에나 몰아서 했으니 자신을 챙길 여력 같은 건 없었다.
나중에 스타일러가 출시되었을 때 현대의 기술력에 눈물을 적실 정도였다.
그런 진천희에게 향수는 존재하지 않는 이세계의 문물이었고, 비누는 소독을 위한 인생의 동반자.
사람들은 꾸미는 것을 좋아하니 향유를 넣어 향주머니 대신 써 보자는 발상 자체가 진천희에게 있어 콜롬버스의 달걀 같은 것이었다.
“이건 됩니다. 정말로 될 겁니다!”
약재당주가 식은 표정으로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새로운 발상이긴 합니다만…….”
“만약 성공하면 지분의 반을 약재당에 드리도록 하겠어요!”
……성공을…… 할까?
사 대 당주들이 일말의 기대도 없는 눈으로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만파곡은 승부사이나 망한 도박판에 끼는 취미는 없었다.
그녀는 고민했다.
‘그래. 백린신단이 아닌 비누라면 하의원도 쓸 수 있다. 비용적 측면은 비할 바가 아니고. 삼 할을 얻어낼 수만 있으면 약재당에 이익이고.’
이윽고 호탕하게 웃었다.
“좋습니다! 약재당이 이번에도 함께하도록 하죠!”
진천희가 물었다.
“다른 당주님들은 함께 연구…….”
침구당주 사마병과 추나당주 주단하가 빠르게 답했다.
“……괜찮네. 많이 하시게.”
“내 두 당의 협력을 응원하겠소.”
한 점의 가식도 없는 솔직한 모습에 진천희는 속으로 칼을 갈았다.
‘내 이번에는 꼭 비누를 성공시키고 말리라. 반드시!’
그래서 다들 만파곡 약재당주님을 부러워하는 눈으로 보게 할 터.
그러나 정작 만파곡 본인도 기대가 없다.
“음, 그래서 무슨 향유를 생각하고 있소?”
여기서부터 콱 막혔다.
진천희가 아는 향이라고는 과일 향, 그리고 비누 냄새. 그러나 그 비누 냄새가 정확히 어떤 향을 첨가해야 하는지는 신경 써 본 적이 없다.
어린애들이라면 딸기 향이 먹힐지도 모르나 당장 판로를 개척해야 하는 건 어른이다.
미디어가 있는 세계에서 완구를 팔 것도 아니고 어른들이 움직여야 애들도 움직일 수 있는 거니까.
진천희는 끄응, 신음을 뱉었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해 그쪽은 잘 모릅니다. 요즘 어떤 향유가 인기가 많죠?”
그의 말에 만파곡이 살짝 놀란 눈으로 물었다.
“씻을 때 향유… 전혀 안 쓰십니까?”
“네.”
진천희의 말에 다른 사 대 당주도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왜죠?”
“아니, 과로를 한 날에도 늘 정순한 체향이 풍겨서…….”
“사실 약재당주인 저도 뭘 쓰시는지 물어볼 생각이었습니다만.”
환골탈태 이후 정순한 내공만큼이나 육체도 정순하게 유지했다. 독주나 연초를 건드리는 일도 없었고 색을 탐하지도 않았다.
여기에 오행신공을 늘 담아 대니 체향도 그에 따라 바뀌었다.
“소백룡 근처에 있으면 희미하게 약초 향이 나곤 합니다. 의식할 수준은 아닌데…….”
‘그러고 보니 황구가 나한테 영물들이 좋아하는 냄새가 난다고 했지.’
만파곡은 진천희의 표정을 읽더니 그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부술당을 책임지는 당주이자 백린의각의 후계자로서 늘 영민하고 철저한 모습만 보여 왔던 소백룡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부분에서 맹탕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 그러면 조금 한 수 가르쳐줄까 하는데…….”
“황공하옵니다.”
진천희가 과장된 표정으로 포권을 했다.
그 모습을 보니 진짜 손자 같아서 더 웃음이 나왔다.
“나야말로 잘 부탁하네. 부술당주.”
* * *
향이란 화학의 영역이면서 감성의 영역이기도 했다.
진천희는 만파곡과 함께 시중에서 팔고 있는 여러 향들을 시향했고 조합법들도 익혔다.
“향이란 민감하면서도 은근히 배타적인 부분이 있다네. 처음에는 모험을 하지 말고 상단에 물어보아 가장 잘 팔리는 향을 조합해 보는 게 어떻겠나?”
맞는 말이었다.
요리도 처음에는 있는 조리법을 가지고 시도하지 않나.
요리책 없이 자기만의 독창적인 요리를 만들어 성공시키려면 많은 모험을 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꼭 성공시키고 싶다. 더는 망하고 싶지 않아.’
침구당주와 추나당주, 심지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던 무력당주의 표정까지 모두 똑똑히 기억했다.
그것은 현대로 치면 망한 주식을 붙잡고 팔릴 거라고 ‘영차영차’를 외치는 개미를 향한 눈이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희야, 그 향은 좀 거슬리는구나. 사향을 너무 많이 쓴 것 같은데?”
스승님은 결벽증이다 싶을 만큼 향에 민감했다.
독한 향을 좋아하지 않아 이번 일은 돕지 않았으나 가끔씩 툭 던지는 조언이 금과옥조 같았다.
“내 집무실에 올 때는 그 비누는 쓰지 말고 왔으면 좋겠구나. 지난번보다 탁한 냄새가 나는구나.”
스승님은 진천희가 사업에 거액을 꼬라박는 것보다 독한 비누 향을 풍기고 오는 게 더 신경에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진천희는 강철 같은 의지로 이 말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거기까지는 참아 줄 만하구나.”
대박의 기운이 터졌다.
그리고 만파곡은 살이 빠졌다.
“내 두 번 다시 소각주와는 공동 연구를 안 하고 싶네만.”
“좋은 시간이었잖아요.”
“그래. 뜻깊었지만…… 버거운 시간이었네. 내 노파심에서 조언하네만 그렇게 살면 죽네, 소각주. 정말로 사람이 죽는 수가 있네.”
만파곡은 진심으로 진천희의 과로사를 걱정했다.
그리고 어째서 부술당에 사람이 들어가면 미친 눈이 되어 나오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의술은 확실히 는다.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다.
의원으로서 명망도 생길 터였다.
그러나 소중한 것 하나를 잃는다.
이성이나 영혼 같은 것들.
인간 메피스토 진천희가 말했다.
“이거라면 향주머니에 넣어도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이렇게 노리개처럼 보관해 두었다가 씻을 수 있도록요. 보관할 상자는 물이 빠지도록 구멍을 낸 죽통이나 갈대를 짜서 만든 통이 좋을까요?”
“음, 이건 아직도 고민이군. 그대로 쓰면 물이 새서 옷이 젖을 테니 말일세.”
만파곡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허나 이런 향이라면 나라도 당장 돈을 주고 살 수 있을 거네.”
개선해야 할 부분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통풍이 되면서도 물이 새서 옷을 젖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스승님이 참아 줄 수 있는 수준의 향.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렸던가.
“이 정도면 지난번 비누보다는 훨씬 나을 듯하군. 백린신단의 정식 판매에 맞춰서 상단에 타진해 봄세.”
“앗, 해 주시게요?”
진천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만파곡이 툴툴거렸다.
“내 노력한 게 아까워서라도 돈은 꼭 벌고 말걸세. 이 노력을 하고 적자면 얼마나 아깝겠나!”
“헤헤헤.”
진천희가 아이처럼 웃었다.
“하여간 소각주는 어느 때는 세상 다 산 사람처럼 굴다가도, 또 어느 때는 나잇값 못 하는 애처럼 보이니.”
“고맙습니다.”
만파곡은 손을 뻗어 진천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각주에게 할 행동치고는 무례할 수 있으나 진천희도 만파곡도 개의치 않았다.
‘나한테 진짜 할머니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기분이 좋아졌다.
이것으로 중요한 일들은 얼추 마무리 지었다.
‘슬슬 보류했던 일들을 처리해 볼까.’
스승님도 경계가 느슨해지셨을 테니 하려면 지금이 좋았다.
* * *
백린의각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이 계절은 다시 바뀌고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나날들이 이어졌다.
진천희는 유골의 운송을 잊지 않았다.
바로 양의심공의 비급과 함께 발견된 도인의 유골을 가져다주는 것!
‘그때 스승님께 바로 무당파 간다고 했으면 결사반대하셨겠지.’
강호출두하고 몸이 걸레짝이 되어서 돌아온 직후에 무당파로 간다고 했으면 어찌 반응하실지 뻔했다.
진천희의 몸을 기운 건 스승님이었으니까.
그러나 시간도 꽤 지났고 진천희도 상당히 강해졌다.
백린의각도 순항 중이었다.
진천희는 준비한 이야기를 스승님께 말씀드렸다.
“그래. 무당파에 유골을 가져다 드리는 것은 중한 일이지. 네 내공을 보아도 막을 이유는 없는 것 같구나. 그래. 그게 상식이지.”
왜일까. 스승님의 표정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주왕부에서 온 어의들과 의술 교류를 해야 하니까요.”
스승님이 따라갈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주왕부에서 어의들이 도착했다.
체면과 정치질이 부업인 사람들을 바람맞히는 건 어불성설.
스승 백린의선이 말했다.
“희야. 모르는 사람을 함부로 따라가면 안 된단다.”
“네.”
“모르는 아이가 살려 달라고 소리쳐도 혹시 적이 있나 두 번, 세 번은 봐야 하고.”
“……스승님, 저 이 갑자입니다. 외공 수준도…….”
“그래. 그렇지.”
세상 천지에 이렇게 강한 제자를 두고 외유를 걱정하는 인간은 제갈린뿐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황구도 데려가고, 천뢰응도 데려가렴. 새끼 둘은…….”
“여기 두고 가죠. 새끼들이 안전하게 있어야 뇌진도 안심하죠.”
“그래. 그러자꾸나.”
제갈린은 여전히 제자가 걱정이 되는 눈치였다.
그러나 무당파에 유골을 보내는 건 중한 일이었고, 진천희도 빈틈없이 준비한지라 막을 명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