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70
제 170화
“하하하.”
천우의 웃음소리가 울렸다. 천우가 팔을 들어 진천희를 막아서듯 앞으로 나왔다.
“형. 형은 손님이잖아요. 여독도 안 풀렸는데 그런 걸 할 필요는 없잖아요. 맞죠?”
그 말에 천경 사형이 먼저 말했다.
“물론 그렇지. 하지만 우리 같은 젊은 무인에게 타 명문의 무공을 견식할 기회가 귀하잖느냐. 거기다가 과거 지워질 뻔했던 제갈가의 무공이다.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구나.”
지워질 뻔한.
돌려 말하기는 했으나 무인답게 어설프다.
아니, 일부러 그리 말한 걸 수도 있겠다. 일부러 그리 말한 거라면 확실했다.
‘도발이군.’
진천희는 천경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러나 어째서 이런 행동을 하는 건가.
등에 지고 있는 유골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천희의 사고가 흘러가는 동안 천우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면 저랑 대신 비무하죠.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그 말에 무당파 사형들이 흠칫 놀라서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저런 반응을 보니 천우의 무위가 상당한 모양인 것 같고.’
비록 제갈린의 은으로 인해 무당파에 들어오긴 하였으나 기존에 있던 수련생들 입장에서는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 형국이다.
그럼에도 바로 화를 내지 않고 눈치를 보는 걸 보면 천우가 한칼 하는 모양이었다.
천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형 내버려둬요. 사형들.”
사형이라는 말에 힘이 들어갔다.
“아니, 난 괜찮아. 천우야.”
진천희는 그런 천우를 뒤로 물렸다.
“형?”
“나도 한번 무당파의 무공을 견식해 보고 싶거든. 젊은 무인들의 교류, 좋지. 안 그래요?”
과연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 건지 진천희도 궁금해졌다.
* * *
연무장으로 가며 천우에게 전음으로 대충 사정을 들었다.
우선 천우와 천경은 나이는 다르나 같은 항렬로 도명을 받았다.
진천희가 아쉬워했으나 무당파는 강호 명문이다.
무협지마다 설정은 조금씩 다르나 아무나 하고 싶다고 도명을 주지 않는다는 건 공통.
처음에는 수행을 시키다 애가 싹수가 보일 때 도인으로 받아들여 도명을 주게 되고 항렬이라고 하여 앞 글자로 기수를 구분한다.
족보 항렬과 비슷한 점이 있는 것이 역시 칼 밥 먹는 유교 사회답다.
천우는 나이를 뛰어넘어 일찍이 도명을 받았다.
그때 같은 해에 도인으로서 들어온 것이 천경이다.
천우가 사형이라고 부르며 나름대로 겉으로는 대접을 해 주고 있지만 이미 천우의 검에 사지가 한번 부러졌다.
[그래서 정광이라는 도인의 파벌이라고?] [네. 정광 장로님은 현 실세라고 할 수 있어요. 검보다는 정치를 잘하시죠.]구무협 때부터 항렬은 보통 20년 단위로 이어진다.
그렇게 된 이유가 30살의 무인이 10살 내외의 아이를 받아서 키우고, 그렇게 대를 잇기 때문이다.
신무협으로 와서 이러한 부분을 간편하게 고치기도 하는데 일단 지존천마는 구무협의 항렬 방식을 따르고 있다.
‘정(正) 자 배 다음에 중간에 다른 항렬 하나나 둘 정도 껴 있겠군. 그다음이 천(天) 자 배이고.’
정 자 배가 장문인과 현 장로의 자리에 올랐으니 직접적으로 무인들을 육성하는 항렬이 바로 정 자와 천 자 사이 중간 항렬일 터였다.
항렬이 셋만 되도 벌써 60년이다.
[그렇구나.] [흐음…… 형이야 사실상 백린의선의 직계 제자이자 소각주이니 배분으로 따진다면 제 스승님과 비슷한 항렬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시비를 거는 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요.]거기다 이 항렬도 그 문파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다른 문파들과의 교류에도 항렬을 가져다 댄다.
족보랑 괜히 비슷한 게 아닌 것이, ‘너는 돌림자가 정 자라고? 그러면 항렬이 몇 대 손인가아…… 그 집안 32대손 맞지?’ 하면서 어르신들이 손가락으로 세어 보는 그것을 여기서는 다 하고 있다.
사파는 이런 게 없는데 정파는 뿌리가 중요하다 보니 더욱 그런 문화가 굳건했다.
현대인의 감성으로는 적응이 아직도 힘들다.
진천희는 제갈린의 첫 직계 제자다 보니 항렬만 보면 40~50대 무인들과 항렬이 비슷했다.
‘뭘 하든 반쯤 먹고 들어가는 건 좋긴 한데…… 현대인은 좀 헷갈리네.’
천우 이놈도 항렬부터 계산을 마친 걸 보니 거산정파 다 됐다.
[정광이라는 도인분의 무위는 어때?] [한쪽 팔을 못 쓰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장문인님을 대신해 잃으셨다고는 들었는데 워낙 오래된 혈사라 저도 잘은…….]‘이제 조금은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군.’
파악을 끝낸 진천희가 불쑥 물었다.
[그러면 그 팔을 돌릴 수 있을지 많이 알아보셨겠구나.] [네. 고명한 의원님들은 다 힘들다고 하셨어요. 심지어 혈생노괴가 관심이 생겼는지 습격을 했는데 못 고친다고 혀 차고 간 건 꽤 유명한 사건이에요. 목격자가 많았거든요.]천우가 말을 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양의심공을 얻게 되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했어요.]‘신경계 문제인가. 그건 나도 못 고치겠네.’
양의심공에 대해 몰랐으면 모를까, 알게 된 지금 진천희는 곧바로 혈생노괴가 무엇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는지 깨달았다.
의술에 관련해서는 진천희와 혈생은 무척 죽이 잘 맞았으니까.
[팔이 세 개가 되는 것보단 낫지.]진천희는 위로차 이야기를 했다.
[정광 장로님은 그게 낫다고 생각하실걸요.]보통 성격이 아니신 모양이다.
‘양의심공을 간절하게 원하시는 정광 장로님. 그 파벌에 들어 있는 천경 도인…….’
모든 퍼즐은 얼추 맞춰졌다.
‘흠. 일단 쥐어 패볼까.’
스승님이 말하시지 않았나. 힘은 모든 것을 편하게 만든다고.
제갈린식 답은 이거다.
아마 시비를 건 선에서 저 천경의 뚝배기를 깨고 누가 달려오는지 보고, 그놈 뚝배기도 깰 터였다.
그렇게 깨다 보면 입을 털어야 할 때가 오는데 스승님이 말빨로 지지는 않지만 머리 쓰기 귀찮으시면 그놈도 깨실 거다.
그랬다.
스승님은 제갈가이고 뱀 같은 자라며 강호에서 지적인 이미지로 통하지만 그에 필적하는 야만성도 가지고 있는 분이셨다.
그리고 그건 진천희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연무장에서 천경과 진천희는 서로 마주보았다.
“규칙은 어찌할까요?”
“항복한 사람이 지는 것으로 하죠.”
여기까지는 평이한 수준이다.
“흐음. 알겠습니다. 검은……?”
“소백룡의 무위가 상당하다 들었습니다. 진검이 어떨까요?”
“…….”
원래라면 목검 수준에서 하는 게 대련이다. 진검이라는 말에 진천희는 곧바로 깨달았다.
‘끝을 볼 생각이구나. 그리고 그리하는 이유는 하나겠네.’
[형. 제가 나설까요?]천우의 전음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괜찮아.] [형.] [마음대로 하게 놔둬.]형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천우도 어찌할 수 없었다.
진천희는 말을 이었다.
“진검이라고 하셔도 저는 검이 없습니다. 해검지에…….”
“아. 그러면 저희 것을 드리지요.”
천경이 턱짓을 하자 옆에 있던 천 자 배 무인이 검을 던졌다.
웃긴 것은 보통 검을 전할 때 검집에 넣어 전하는 것이 예의인데 검날 그대로 던지는 게 아닌가.
[형. 저 새끼들 형을 도발하려고…….]진천희는 풍운기를 이용해 소매로 검을 빨아들이듯 붙잡았다.
그 기품에 모두가 숨을 삼켰다.
[뭐?] [아니에요. 형.] [싱거운 녀석.]진천희는 검을 한 바퀴 핑그르르 돌려 보았다.
‘무당의 검답게 무게중심도 잘 잡혀 있고. 탄성도 이만하면 괜찮군. 조성을 보니 합금인가. 양의심공을 담아내기 좋은 칼이야.’
검의 구조를 파악하고 나니 마음에 쏙 들었다. 이과의 마음이었다.
진천희가 말했다.
“그러면 시작하죠.”
그 순간, 천경이 먼저 움직였다.
선수필승!
첫 수부터 태극의 묘리를 담은 검격이 날아왔다.
초식
무당십팔검!
‘살수네.’
카앙!
진천희는 곧바로 검에 진득하게 묻어 있는 살기를 읽었다.
‘아, 역시. 이 녀석들 내가 양의심공을 익혔는지 궁금한 거구나. 그걸 알려면 나를 궁지로 몰아야 할 테니까. 설령 죽는다고 해도…… 음. 그래. 약함에 들어 있는 고인의 유골을 거두어가는 김에 비급도 먹을 수 있을 거고.’
카가각-
유능제강(柔能制剛)의 묘리를 이용해 검격을 흘려냈다.
웃긴 것은 전력을 다한 천경의 일격을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흘려내고는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다는 것.
‘참 신기한 일이야. 안 그래? 자기가 무당인데. 그리고 무당의 비급인데 익힐 수가 없어서 이 꼴이니…… 참으로…….’
참으로 썩었구나.
진천희의 눈에서 흥미가 가셨다.
고인은 자신의 귀로와 맞바꾸어 비급을 내주어야 했다.
집인 무당산을 놔두고 타향에서 객사한 한이 사무칠 지경이었다. 진천희는 아직도 바닥에 적힌 글귀 하나하나를 기억했다.
그것은 한 도인의 절규였다.
죽음은 아름답지 않았다.
죽음은 깨끗하지도 않았다.
생의 마지막, 돌아갈 곳에 돌아가지 못한 이는 자신의 전부를 걸었다.
양의심공.
익힐 자격이 없는 이에게 전해지는 것은 진천희도 사양이었다.
반면 천경은 당황했다.
‘이익……! 설마 소문이 정말인 건가. 무예를 배운 지 얼마 안 된 의원이 그리 강하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전자 기기가 없는 이 세상에서 대부분의 무림사 태반이 소문에 의거하여 퍼진다.
보지 못하니 믿기도 어렵다.
그리고 그 다수가 과장이 섞여 있기 마련.
허나 천경은 검을 부딪치는 순간 마치 커다란 벽을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카강, 캉!
검을 마주하고, 마주하면서 천경은 도무지 진천희의 무위에 대해 파악할 수가 없었다.
사람은 감정의 생물이고 검로에는 마음이 실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진천희 검에는 그 어떤 상념도, 심지어 작은 분노조차도 담겨 있지 않았다.
진천희는 천경을 거부했다.
천경은 그런 진천희에게 검 끝 하나 닿을 수 없었다.
그것은 지독한 굴욕이었다.
‘안 돼. 안 된다. 어떻게든 양의심공의 자취를 찾아야 해.’
그때 진천희가 미끼를 풀었다.
“이대로는 조금 심심한데, 어때요? 남은 두 분도 덤비는 건.”
받으면 안 되는 제안. 명백한 도발이다. 이러고 진다면 그 불명예를 견딜 수가 없다.
하지만 천경의 절박함이 눈을 가렸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