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76
제 176화
명길 진인이 나간 후 진천희가 천우를 향해 말했다.
“괜찮아?”
“당연하죠. 오히려 감사할 정도인걸요. 그런데 가르칠 때는 무척 무서우셔서 형이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도리어 천우는 진천희가 못 견디고 쓰러지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눈치였다.
“걱정하지 마. 형 강해.”
“그러면 다행인데.”
‘뭘 하든 유호가 패는 것보다는 낫겠지.’
제갈린은 애정을 담았지만 유호는 증오를 담았다.
이미 지옥 훈련의 끝을 본 진천희였다.
고통에 대한 내구는 누구보다 강했다.
“뭐 먹고 싶니?”
“형도 쉬어야죠.”
“아냐아냐, 무당 밥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내 거 만드는 김에 같이 짓는 거야.”
진천희의 솜씨에 덩달아 천우도 같이 입맛이 올라가고 있다.
“도울게요. 형.”
“뒷정리 해 주는 게 어딘데. 어제도 깔끔하게 치웠더라.”
“그래도 잔손질이라도 도울게요.”
천우는 그리 말하면서 뭔가 큰 결심이라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형도 많이 드셔야 해요. 너무 말랐어요.”
“……네 옆에 있으면 누구라도 말라 보일 것 같구나.”
거대한 키에 전신 근육질. 거기다 안대까지.
진천희는 천우랑 살면서 매일매일 깜짝깜짝 놀란다.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쉽지 않다.
* * *
둘째 날.
진천희는 무당파의 기본 무공을 익혔다.
“태극권과 소청기공, 소청검, 유운보. 속가제자와 직전제자 모두 이걸 기본으로 익히지. 공통 무공이라는 것이다. 그다음에 속가제자는 이다음인 순양공, 소청신공 같은 중위 무공까지 허한다.”
“그렇군요.”
“이미 제갈가의 기본 무공이 탄탄한 데다가 내공도 어디 가서 꿀릴 일 없는 네놈에게 이걸 가르치려고 하니 나도 참 귀찮구나. 허나 그래도 가르치는 이유를 알 것 같으냐?”
“…….”
진천희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걸 해야 양의심공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기 때문 아닌가요?”
진천희의 말에 명길 진인이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다.
“맞다. 맞다! 역시 똑똑한 놈은 달라도 다르구나. 어째서 그리 생각했지?”
그 질문에 차분히 답했다.
“무맥(武脈)을 나무라고 한다면 양의심공은 열매로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뿌리를 알아야 그 열매가 어떻게 열리는지도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요.”
“옳거니! 알고 있구나. 이걸 바로 익힌들 네 무공이 바로 성취되진 않을 게다. 허나, 양의심공을 성취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
‘더 많은 환자들을 살릴 수 있겠어.’
수술에서 양의심공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말해야 입이 아플 수준.
더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흐음? 넌 어째 무인처럼 기뻐하지는 않는구나.”
늙은 생강이 감도 좋다.
명길 진인은 진천희가 기뻐하는 이유를 감으로 짚어 냈다.
진천희는 숨기지 않았다.
“새로운 치료법을 생각하고 있어요.”
“내 참…… 양의심공을 가지고 사람 고칠 생각을 하다니, 천상 의원이구나.”
진천희는 웃기만 했다.
“어쩌다 이런 놈을 공동 전인으로 두었는지 모르겠지만… 좋다. 지금부터 시연을 해 볼 터이니 지켜보거라. 천우야.”
“네. 스승님.”
천우가 두 걸음 앞으로 나왔다.
“시연을 보여 보거라.”
천우는 검을 들지 않았다. 천우가 보여 준 건 권.
태극권이다.
노인과 애나 배우는 기체조라 비웃는 태극권을 천우는 진중한 표정으로 그려 나갔다.
음과 양이 태극을 그리며 이어 나간다.
인간의 희로애락이 조화를 이루었다.
유능제강(柔能制剛)의 묘리가 천우의 권 끝부터 시작해 느리지만 확실하게 이어졌다.
‘이상하다…… 나뭇잎 하나 못 찢을 것 같은 권인데…… 왜 이리도 시선을 잡는 걸까.’
진천희가 그동안 보아 왔던 태극권과 천우가 그리고 있는 태극권은 뭐가 다른 걸까.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진천희는 그 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이윽고 태극권은 유운보로, 소청검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태극권의 부드러움은 유운보가, 그 맑음은 소청검이 되었다.
그 모습을 진천희는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
마침내 시연을 전부 끝냈을 때는 해가 지기 시작한 때였다.
“제자, 드디어 마쳤습니다.”
“지난번보다 훨씬 좋아졌구나.”
“스승님께서 잡아 주셨던 부분이 머리에 남아 고민했는데 다행입니다.”
천우도 뭔가 진전을 이룬 모양이었다.
후련한 표정이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 따라 할 수 있겠느냐?”
진천희가 자신을 가리켰다.
“제가요? 태극권을요?”
“모든 동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현원전단신공으로 능히 할 수 있으면서 요망하게 자꾸 못 하는 척 뺄 게냐?”
그 말에 진천희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천우와 명길 진인 앞에 섰다.
“으…… 틀리면 혼내실 거죠?”
“당연히 혼내야지. 그러려고 배우는 거니까. 거기다가 나는 꽤 엄격한 스승이니 각오해야 할 게다.”
어젯밤 너덜너덜해진 천우가 떠올랐다.
그 체구가 그렇게 걸레짝이 되려면 보통 굴렀던 게 아닐 터.
‘뭐, 지옥 훈련은 익숙하니까. 그리고…….’
천우의 동작을 보면서 떠오른 게 있다.
진천희가 넉살맞게 웃었다.
‘뭐, 날 제자로 거두신 건 할아버지니까. 이 정도는 알아서 참으시겠지.’
진천희는 특유의 뻔뻔한 마이페이스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태극권 초식 자세를 취했다.
“헛?”
천우가 놀라서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천우의 자세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거울 같았다.
그 말은 동작은 똑같았으나 좌우가 바뀌었다는 뜻이었다.
“크음…….”
명길 진인은 호되게 야단을 칠지 말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어떻게 하는지 일단 보자. 만약 못 하면 혼날 줄 알아라!”
일부러 놀리는 것인지 아닌지는 보면 알 터.
* * *
진천희는 태극권을 이어 나갔다.
음과 양, 유능제강의 묘리를 담은 움직임이 원을 그리며 이어졌다.
이상한 것은 중간에 움직임이 하나 빠지거나 아니면 보태지거나 한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법도 장법도 엉키는 법이 없이 물 흐르듯 이어지고 있다는 것.
‘처음 보는 태극권…….’
무당파 사람을 붙잡고 태극권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진짜로 태극권이 맞냐고 묻는다면 말문이 막힐 것이었다.
천우는 한쪽 눈에 안력을 집중해 진천희를 뜯어보았다.
내기를 다루고 감지하는 것은 무당파의 후기지수들 중에서 천우가 제일이었다.
‘아……!’
내력 운용 방식이 달랐다.
진천희는 태극권의 묘리를 흡수하였고 그것을 운용하는 법도 깨달았으나 그것을 자신의 방식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천우야. 너는 저게 무엇으로 보이느냐?”
“오행으로 태극권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천재는 천재구나. 그것을 고작 한쪽 눈으로 파악했다는 게지?”
명길 진인은 천우의 재능이 기뻤다.
도명을 받은 후기지수가 이만한 재능을 가졌다는 것은 무당 도인으로서 지극히 기쁜 일.
거기다가 그 성정 역시 무인으로서 살기 부족함이 없기에 더욱 마음에 들었다.
“과찬이십니다.”
“무슨 소리냐. 저걸 보고 한눈에 오행으로 태극권을 쓴다고 누가 맞추겠느냐. 장문인 정형도 한참은 고민해야 할 거다. 그걸 넌 직관으로 맞췄다는 것 아니겠느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크크큭. 진짜로 그리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입은 바르구나. 그래. 그런 게 필요하지. 이 썩은 무당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정도의 대화는 할 줄 알아야지.”
진천희의 행보는 이제 태극권에서 다음으로 이어졌다. 유운보가 아니었다.
소청검.
유운보를 건너뛰고 소청검을 썼다.
스르릉-
목검일진대 청아한 소리가 났다.
굳이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목검에 수기(水氣)가 스며들었다.
물은 태극의 음(陰)에 해당했다.
소청검의 묘리에는 맞았다. 그러나 수기.
이번에도 동작 하나가 더해지거나 빠지면서 물 흐르듯 소청검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문득 천우가 물었다.
“제가 천재라면 사형은 무엇입니까. 스승님.”
“기재(奇才)지. 검수는 검을 써서 무위를 보여야 하고, 자연히 비정해야 하지. 검수로서 오성이 뛰어난 아이는 아니지. 보거라. 저렇게 청아한 기를 두르고 사람을 죽일 것 같으냐?”
그 말에 천우가 고개를 저었다.
“나무나 바위는 벨 것 같습니다만 어쩐지 살인은 상상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상한 거지. 분명 네 초식을 보고 그 묘리를 알았고, 자신의 방식으로 바꾸는 데까지는 능히 해냈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기 위해 검을 쓰는 게 아니야.”
“의술 때문인가요?”
천우의 말에 명길 진인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뜨렸다.
“양의심공을 의술 때문에 배운다는 말이 정말이었나 싶을 지경이다. 농인 줄 알았거늘.”
진천희의 검이 굽이굽이 태극을 그렸다. 화기가 수기를 스쳐 호를 그린다.
양(陽)이다.
이번에도 누군가를 베는 상상보다는 나무나 풀을 절단하고 다친 부위를 불로 지지는 모습만이 떠오른다.
“이리도 예기(銳氣)가 선연한데 왜 무섭지가 않을꼬.”
“십 년은 수련한 것 같습니다.”
“그래. 도가 경전을 읽은 것으로 도의 깨달음을 얻고, 네가 시연한 것을 현원전단신공으로 기억해 나름대로 주해본을 만든 셈이지. 쯧쯧쯧.”
혀를 몇 번 차더니 궁시렁거렸다.
“이러니 제갈가를 다들 꺼리지.”
이윽고 진천희가 모든 초식을 마쳤다.
진천희의 반개한 눈이 천천히 떠졌다. 망막 위로 푸른 깨달음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무언가 작은 성취를 이루어 낸 모양이었다.
“천재와 기재. 허리가 휘겠구만.”
명길 진인은 보란 듯이 허리를 몇 번 두드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꾸준히 기본공은 연마하거라. 그래야 양의심공의 오의에 접근할 수 있을 터이니.”
그 말에 진천희의 눈이 커졌다.
“허먼…….”
“그 태극권 같지도 않은 태극권과 소청검 같지도 않은 소청검을 인정해 주겠다는 뜻이야. 유운보는 처음부터 하고 있었더구나.”
“네. 네!”
“흰 기린이 널 어떻게 가르쳤는지 모르겠구나. 벌써부터 버겁기 시작하니.”
그리 말하고는 돌아섰다.
“참, 나도 밥 좀 얻어먹자. 그래도 스승인데 너희만 먹기냐?”
“식당 쪽은……?”
“네가 더 잘하더구나. 널 따르는 영물 놈들도 네가 해 준 것만 먹던데.”
멍멍! – 주인, 밥! 밥 주는 거야?
삑, 삐익! – 필요한 거 있으면 빨리 말해. 죄다 잡아 올게!
그렇게 진천희의 음식에 중독된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
명길 진인이 말했다.
“그리고 쟤들이 배울 만한 것도 하나씩 가르쳐야지.”
“영물도 가르치실 수 있나요?”
“못 할 게 뭐 있느냐? 주먹을 앞발이라고 생각하고 날개라고 생각하면 되지. 형(形)이야 어쨌든 일단 잘 패면 되는 거 아니냐.”
그게 된다고?
명길 진인도 기인은 기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