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77
제 177화
별채에서 천우와 지낸 지 이 주가 지났다.
진천희는 천우의 옷을 빨며 생각에 잠겼다.
‘기본공은 전부 익힌 셈인가? 오의까지 아직 다 깨우친 건 아니지만.’
성취는 칠 성에서 팔 성 정도.
경이적인 속도기는 했다.
‘그러고 보니 정광 장로님은 잠잠하네. 전에는 잡아먹을 것처럼 굴더니만.’
폐관 수련이라도 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장로쯤 되는 자라고 해도 수련을 위해 불쑥불쑥 어딘가에 처박히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비록 정광 장로가 한쪽 팔을 쓰지 못하는 처지라고는 해도 깨달음을 위해서 때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
무당파 내에서도 그리 걱정하는 이야기는 없다. 거기다가…….
‘정광 장로를 따랐던 다른 장로들 입장에서도 정광 장로가 자리를 뜨길 바랄 거고.’
아무리 정광이 자리를 떴다고 한들 썩은 게 한꺼번에 도려질 리가 없다. 그 사람들은 그대로 있다는 뜻이었다.
이번 장문인과 정광 장로의 싸움에서 권력에 쥐뿔도 신경 안 쓰던 명길 진인이 난입해서 장문인의 손을 들어 줬다.
이렇게 된 거 장문인 편에 붙을지 말지 주판을 돌려 볼 시간이 필요할 터.
이러니 찾지도 않는 모양이다.
‘슬슬 원시천존상 뒤통수에 붙은 비급을 챙기러 가야겠는데…….’
내부가 불안정한 데다 진천희는 이제 외인도 아니니 혼자 돌아다녀도 된다.
‘이래서 사회생활하려면 배경이 중요해.’
진천희의 후광에는 무당 권제가 있다.
어디 가냐고 호통을 치는 대신 눈을 안 마주치려고 장로 모두가 노력 중이다.
족보는 꼬였는데 새파랗게 어린 놈에게 존댓말을 할 수도 없는 기묘한 상태다.
원래라면 편히 말하시라 할 진천희지만 이번에는 놔두었다.
진천희의 뒤끝은 길다. 그리고 비급 찾으러 가야 하는 상황에 알아서 피해 준다면 땡큐다.
‘가 볼까?’
진천희는 빨래를 쭉 짜고는 의기상인만으로 물기를 팡! 털어냈다.
‘음. 내 동생은 키가 크니 도복도 크네.’
천우는 일을 도와주는 수련 도인들이 빨래를 해 주고 있는 줄 알고 있다. 하지만 진천희가 수련도 할 겸 천우의 옷도 몰래 빨아 주고 있다.
진천희는 그렇게 빤 옷을 수련 도인들이 빨래를 개어 둔 곳에 던졌다.
제멋대로 날아가던 빨래가 각지게 탁, 접혔다.
이대로 천우가 있는 별채에 빨래가 도착할 터였다.
수련 도인들의 손에 의해 도착할 테니 여전히 의심은 안 할 터.
‘넌 이제 고만 커도 되겠다.’
그걸 끝으로 그대로 사원 건물로 발을 향했다.
‘가장 낡고 큰 원시천존상이지.’
어디에 모셔져 있는지는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지만 원시천존상, 그것도 커다란 목상이 있는 곳은 단 두 곳.
진천희가 찾은 곳은 참배객들에게 공개된 장소.
외진 곳에 박혀 있어 참배객의 숫자가 적은 사원이었다.
‘여기 일주일에 한 번만 닦는 모양인데?’
세전이 많이 들어오는 곳은 자주 반짝반짝 닦아 주고 그렇지 않은 곳은 일주일에 한 번 겨우 닦아 준다.
지금의 무당파를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
‘비급. 잘 챙기겠습니다!’
진천희는 도가식으로 예를 갖추고는 향을 올렸다.
대앵-
“…….”
그렇게 1분.
눈을 가늘게 뜨고는 사람이 없는지 살폈다.
멍! – 없다. 주인!
황구는 정말 쓸모가 많다.
진천희는 황구의 머리를 슥슥 쓴 후에 바로 원시천존 뒤통수까지 기어올라 손을 뻗었다.
바로 무언가가 잡히지는 않았다. 얼마나 손을 휘저었을까.
무언가 손끝에 탁하고 걸렸다.
진천희는 그것을 꺼냈다.
스르르륵-
서책이 아닌 두루마리 형태의 비단이 그대로 끌려 나왔다.
오래된 두루마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태극혜검]“……?”
그걸 읽은 진천희가 중얼거렸다.
“황구야. 내가 눈이 나빠졌나 보다. 이게 태극혜검으로 보이는데?”
컹?
“그래. 넌 글자를 모르지. 그런데 어째 내 눈에 이게…….”
진천희는 눈을 비볐다.
“그래도 태극혜검으로 보이……네?”
지존천마는 독자들에게 불친절한 소설이다.
비급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정확히 어떤 비급인지는 원작에서도 설명하지 않았다.
원작에서 발견된 건 불타고 난 잔해에서 나온 비급.
천마혈로 때 썩을 대로 썩은 무당. 소설에서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한 도인이 무당파를 배신하게 되고 마교에 붙게 된다.
배신한 도인은 부모 같은 무당산에 불을 지른다.
화마는 수없이 많은 전각과 사원을 불태우고 그 잔해 속, 원시천존이었던 것의 뒤통수에서 비급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그리되었구나…… 그리되었어. 선현께서는 무당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안배를 하셨으나 작금의 무당에는 이조차도 과분한 것. 어찌하면 좋으냐.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어찌하여 자식이 부모를 불태운단 말이냐! 무당의 도인이 무당산에 불을 지르는 게 가당키나 하단 말이냐!
무당의 장문인이 재가 되어 버린 비급을 붙잡으며 피를 토하는 장면이 나온다. 심마가 치밀어 오른 것이었다.
어떤 비급인지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대단한 것임이 분명하긴 했다.
‘어차피 불타서 못 쓸 거 내가 먹을 생각이었는데…….’
날린 게 태극혜검이었네…….
‘이거면 심마로 피 토할 만하다.’
장문인이 그거 보고 그대로 쓰러져서 결국 자리보전도 하지 못하고 사망한다.
그때는 읽으면서 ‘이해는 하는데 그래도 장문인이잖아. 아무리 그래도 무당의 미래가 걸려 있는데 그렇게 쓰러지시면 안 되지. 쯧쯧.’ 혀를 찼다.
지금은 이해가 됐다.
태극혜검은 대다수 무협 소설에 나오는 검법 중에서도 최강으로 손꼽히는 무공 중의 하나다.
신공절학 중에서도 탑 5 안에 들어가는 검법.
그리고 신무협이고 구무협이고 할 것 없이 실전되는 경우가 이상하게 많다.
실전이 되어야 나중에 주인공이 챙겨서 기연으로 쓰기 때문이다.
지존천마는 실전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경쟁자인 소교주들이 성장을 해서 여하륜에게 발암을 줘야 하기 때문에 무당파 약화는 그를 위한 밸런스 패치 같았다.
‘일단…… 잘 먹겠습니다.’
장문인이 각혈하고 죽는 미래 하나는 막았다.
‘불타는 전각 정도는 본인의 의지로 잘 이겨 내시길.’
태극혜검 불타는 꼴은 안 봤으니 자리보전은 하셔도 죽지는 않으실 거다.
진천희는 황구에게 명령했다.
“사람이 다가오면 바로 알려줘.”
컹.
황구는 아주 작게 대답하더니 전방 경계 자세를 취했다.
주인과 말이 통한 이후로 황구도 눈치가 더욱 빨라졌다.
자세한 상황 설명도 필요 없었다.
진천희는 그런 황구를 믿음직한 눈으로 한 번 바라보고는 빠르게 태극혜검 낱장을 넘겼다.
현원전단신공을 사용해 이 모든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을 예정이다.
‘이거 어마어마한데……?’
읽고는 있으나 내용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연했다. 진천희는 이제야 무당의 기본을 익힌 수준이고 태극혜검은 무당의 절학.
그 끝을 본 이들이 더 높은 곳으로 갈 때가 되어서야 이해할 수 있는 절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진천희는 몇 번 더 반복해 읽고는 다 외웠다는 것을 확신하자 책을 덮었다.
탁-
이제 이 태극혜검을 어찌할지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태울까?’
처음부터 이 비급은 여기 없는 셈 치는 것.
깔끔하게 간다면 그게 진천희에게는 이득이다.
양의심공을 익혔다는 것만으로도 귀찮아진 전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그러려고 하니 진천희 안의 무협 마니아가 외쳤다.
‘진짜 그럴 거냐? 이 아름다운 비급 모서리를 보고도 그럴 생각이 드는 거냐? 태극혜검이라고! 리얼 태극혜검!’
태우는 건커녕 책장 모서리 접는 것도 손이 떨려서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이성의 영역이 아니었다. 덕력의 영역이었다.
‘무당의 것은…… 무당에 돌려 드리자.’
혼자서 다 먹는 건 역시 성미에 안 맞는다.
맞는다고 해도 이 아름다운 고서의 모서리에 불을 댄다는 건 무협 마니아의 세월이 멱살을 잡았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태극혜검을 익혔을 때 무당에서 눈치챌 수도 있고.’
진천희를 시험해 볼 명길 진인께서는 우화등선을 하시든 어쩌든 인간계에는 없겠지만, 진천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 근데 양의심공 비급서도 그렇지만 이것도 참 귀티가 나네. 기연이란 원래 이렇게 멋있는 법이지. 암.’
진천희는 소중히 태극혜검 표지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감촉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 * *
“그걸 혼자 안 먹고 나한테 준다고?”
명길 진인은 진천희의 말을 듣고 몸이 굳었다.
“무당의 것은 무당에 돌려주어야죠.”
“…….”
진천희의 말에 명길 진인은 감동에 벅차서 잠시 말을 잃었다.
“비급이 거기 있었던 것은 어찌 알았고?”
“고인의 유언에 담겨 있었습니다.”
원작에서 보았다는 말을 할 수 없으니 돌아가신 명덕 장로의 이름을 팔았다. 그 말에 명길 진인은 그만 눈물을 보였다.
“명덕이… 이 못난 것. 그 많은 짐을 혼자 어떻게 진 것이냐. 아둔한 것이 무당을 믿지 못하면서도…… 그러면서도 무당을 떠나지도 못하고.”
명길 진인은 명덕 장로와의 추억을 한참이나 떠올리며 회상에 잠겼다.
“태극혜검은 오래 전 맥이 끊어져 실전된 무공이다.”
“무당파 하면 태극혜검인데 실전이 되다니요?”
진천희는 짐짓 놀란 얼굴로 물었다.
“강호에도 그런 일은 흔하다. 신공절학의 전수자가 강호에서 비명횡사를 하거나, 음모로 죽거나, 주화입마에 빠지거나…… 비급은 그럴 때를 대비해서 남겨 두는 안전장치에 불과하지. 몇 대 전에 태극혜검의 전수자께서 사망하시고, 비급조차 사라졌다 들었건만…….”
“사망이요?”
“싸움이 있었다. 외부에 말할 수 없는,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횡사이지.”
명길 진인은 붉어진 얼굴로 그리 말했다.
그만한 횡사면 강호에 모르는 이가 없을 법도 한데 말하지 못한다면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태극혜검으로 싸움이 났나요?”
무당 내부에서 일어난 횡사다.
이미 무당에서 도명을 받은 이상, 돈이나 명예에 대한 욕심만으로 그 정도 횡사가 일어나긴 힘들다.
그렇다면 원인은 자연히 하나라고 진천희는 추측했다.
그리고 그 추측은 정확했다.
“양의심공만으로도 이렇게 도를 잊어버리는 놈이 나오는데 태극혜검이라고 아니겠느냐. 본문의 무공은 심성과 자질을 많이 가리기에 전수하는 것도 까다롭다. 허나, 그게 탈락한 도인에게 위로가 되지는 않지.”
“…….”
“무(武)를 위해 후사를 포기하고, 이름을 버리고, 그 모든 것을 무당에 주었는데 앞으로 태극권이나 익히라고 하면 납득하겠느냐? 태극권은 아무나 배워도 주화입마가 오는 일이 없으니 말이다.”
“그건…….”
“물론 그건 극단적인 예지. 보통은 네게 전수한 수준에 상승 무공까지는 전수해 준다. 하지만 자질과 심성이 없는 이가 그 이상 억지로 익힌들 몸과 정신이 파괴되지. 그렇기에 무당은 사람을 가린다. 그것은 도인을 지키기 위해서다.”
“납득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무당에 있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으나 한계가 정해진다는 뜻이었다.
본인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양의심공을 배운 자보다 강해질 수 없다.
태극혜검은 말할 것도 없는 문제이고.
진정한 무인이라면 차라리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익히게 해 달라 빌 것이었다.
“그게…… 무당이 가지고 있는 오랜 문제란다.”
환멸이 난 표정으로 명길 진인은 이마를 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