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79
제 179화
연무장에 둘은 서 있었다. 수련을 같이 하기 때문이었다.
진천희는 천우와 함께 수련하며 심무절기의 편린이나마 익혀 갔다.
‘천우는 정말 기를 빨리 파악하는구나.’
같이 수련을 하면서 느끼게 된 최고의 장점이 그것이었다.
기를 감지하고 그것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천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형, 방금 검격에서 뭔가가 왜곡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왜곡이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는 뜻인데.”
그 말에 기뻐졌다.
진천희는 초절정 고수다.
물론 초절정 고수 자체도 강호 내에서 상당히 뛰어난 검수임이 틀림없으나 스승님이나 할아버지, 혈생에 비할 바는 절대 아니다.
‘천마에 비할 바도 아니고.’
이제야 여하륜의 경지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다.
천살성의 가호로 인해 여하륜은 본능적으로 심무에 다가가고 있었다.
현경이 아님에도 본능적으로 검로가 그것을 좇고 있다는 뜻이었다.
살인 충동의 부작용이 크긴 하나 천살성은 그만큼 큰 재능.
여하륜에 대해 가늠하면 할수록 먼 곳처럼 느껴졌다.
‘보고 싶다. 잘 지내고 있을까. 하륜아.’
문득문득 그리움이 치밀 때면 서신을 보내곤 한다. 그러나 이곳은 정파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무당.
여기서 하륜이가 있는 곳까지 서신을 보낼 만큼 진천희의 간이 크진 않다.
‘지금쯤 또 엄청 강해졌겠지.’
그런 진천희가 공간을 굴절시킬 수 있게 된 건 큰 일보였다.
“양의심공과 태극혜검을 익히면서 제한적이나마 가능하게 된 것 같구나.”
“그 편린이나마 깨우쳐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건 대단한 경지일 텐데요. 보통은 현경에 도달할 정도가 아니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할 일 아닙니까.”
“그렇지.”
“그런데 왜 형은 어째 이제야 한 걸음 걸었다는 표정이죠?”
진천희가 방금 보여 준 경지는 검이라도 끌어안고 오열할 정도의 경지였다.
심무의 편린.
그러나 진천희는 당연한 것을 해냈다는 표정이었다.
“하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오르면 오를수록 더 높은 곳이 보이니.”
“형이 무섭네요.”
천우는 진심을 담아 투덜거렸다.
이리도 강해졌는데 진천희는 만족하는 법이 없었다.
“방금 쓴 이 초식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구나.”
진기를 이용해 상대의 공격을 아주 조금 구부러트리는 것이 가능했다.
단순히 구부러트리는 게 뭐가 대단하냐고 묻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효용은 무궁무진했다.
‘예를 들어 직선으로 들어오는 적의 공격을 약 10도만 틀어 버려도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지.’
범위는 검신(검의 몸체)을 기준으로 약 1척(25cm) 범위.
힘을 완전히 흘려버린다기보다는 살짝 비트는 것에 불과하지만, 검술과 함께 사용하면 상대의 검격은 진천희에게 닿지 못한다.
“같은 초절정이라고 해도 형이 압도적으로 기술적 우위에 있을 테니 형이 원하는 ‘살려서 제압한다.’가 가능하게 되겠군요.”
“그래. 팔다리 하나가 날아가도 목숨은 붙어 있으면 살아 있는 거니.”
진천희는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다가 현원전단신공과 기가 막히게 궁합이 좋거든.”
사고 가속을 이용하는 진천희는 상대와 공수를 교환할 때 전략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는데, 이과식으로 말해 이렇게 기술적으로 더 높은 기능을 가지게 되면 더 쉽게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천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투덜거렸다.
“형은 내공도 갖추고, 사고 가속도 있고, 기술도 우위를 점했으니 사실상 초절정 안에서는 형을 이길 자가 없겠군요.”
“잘된 일이지. 빠른 제압으로 평화를 가져올 수 있으니. 죽이는 건 성미에 안 맞아.”
“어째 형은 도인보다 더 도인 같네요.”
“죽이지 않는다고 했지 놔둔다고는 또 안 했다.”
그 말에 천우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더 도인 같다고요. 저 같은 놈보다.”
그 말에 진천희는 대답 대신 천우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때로는 천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의 무도한 놈을 죽여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절대적인 건 없는 법이야.”
그래도 가급적이면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무림에서 살아온 사람이면 모를까 현대인의 감각에 살인은 무척이나 무거운 일.
‘늙어서 전쟁 PTSD라도 겪지 않으려면 적당히 살아야지.’
악인의 삶의 질이야 알 바가 아니지만, 내 삶의 질은 내가 챙겨야 하지 않나.
“그나저나…… 슬슬 시간이 되었구나.”
진천희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을 보노라면 강호에 널리 알려진 말이 생각나는 진천희였다.
“그러게요. 벌써 내일이네요.”
천우가 약간은 시무룩한 얼굴로 답했다.
진천희는 그 얼굴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지. 그렇게 시무룩할 필요 없어.”
“만났던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헤어졌던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된다……. 법화경에 나온 말이잖아요. 하지만 형. 그 경전에는 ‘언제’라는 말이 빠져 있다구요.”
법화경. 불교의 경전 중 하나. 그곳에 나오는 문구로 본래는 불교의 핵심 교리인 윤회전생을 대표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는 강호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비유하는 데에도 많이 쓰였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났다.
강호인들은 만났다가 헤어지지만, 결국 다시금 만나게 된다.
그것이 삶과 죽음의 형태라고 할지라도.
“서로의 삶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래도. 건강하게 잘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걸로 만족해야지.”
천우는 조금 불만인 듯 한쪽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런 천우의 표현에도 진천희가 더욱 웃으며 검을 들었다.
“자.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우리 천우랑 지도 대련이라도 한판 할까?”
천우는 그 모습에 검을 들었다.
“그러면 부탁드릴게요. 형.”
“좋아.”
진천희는 웃으며 자세를 잡았다.
노을이 진다. 하늘이 붉다. 구름이 흐른다.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해는 뜨고 지고, 결국 삶은 흘러간다.
감성적인 기분 속에서 진천희는 무당산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무당산에 와서 얻은 것이 많았다.
두 번째 스승을 얻었고, 무당파의 무공을 익혔으며, 양의심공이 심화되었고, 태극혜검의 끝자락이나마 익혔다.
짧지만 즐거웠기에, 언젠가는 이 만남을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진천희는 맞은편에 선 천우를 향해 검을 뻗었다.
시간이 흐른 후. 지금의 순간을 더 즐거이 추억하기 위해서.
챙.
검과 검이 맞부딪쳤다.
날을 세우지 않았지만, 금속으로 만들어진 가검이기에 묵직함은 진검과 같았다.
그런 두 개의 검이 허공에서 춤을 춘다. 진천희가 뻗어낸 검은 소청검법의 검로를 따라서 흘렀다.
태청검법의 검로는 크고 호쾌하다.
그것처럼 소청검법 역시 그러한 검로를 따르고 있어서, 검의 궤적이 시원했다.
자칫 검로를 쉽게 읽힐 수 있음에도 이를 강호에서 인정하는 까닭은 검과 다르게 몸의 자세는 상대의 움직임을 압박하는 느낌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검법이란, 검만 움직이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검과 함께 몸의 움직임 역시 결정된다.
그것의 위력은 확연하다.
그리고 그런 소청검법을 익힌 두 명의 검이 어울리자, 그 움직임이 아름다워서 마치 춤 같아 보이기도 했다.
진천희가 사고 가속으로 검로를 계산해서 움직이며, 천우가 귀신같은 감각으로 그것에 따라붙는다.
그것은 지도였다.
소청검법에 대해서, 진천희가 분석한 것을 대련을 통해서 가르친다.
그리고 천우의 감각은 그것을 빠르게 흡수했다.
춤사위가 이어질수록 천우의 얼굴에 미소가 생겨나는 것을 진천희는 보았다.
무공을 배우는 것이 저렇게 즐거울 수 있을까?
무협 마니아이지만 진천희에게 있어 무공이란 필요에 의해서 익히는 것이었다.
그런 진천희에게 천우가 느끼고 있는 것은 좀처럼 알기 어려운 감각이었다. 하지만 천우가 저리 즐거워하니 형으로서 무척 기꺼웠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서로 합을 맞춘 춤사위 같은 그것은 이윽고 끝이 난다.
천천히 검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결국 멈추었다.
“하아…… 하아…….”
“잘했어. 검로 자체는 완벽하네. 게다가 임기응변과 변초도 훌륭하고. 내가 흔들기 위해서 수를 써도 아주 잘 막더라. 내가 알려주고 싶은 것도 바로 알아챘고. 훌륭해.”
“과찬……이세요, 형. 하악…… 형은. 숨도 안 차시잖…… 후우…… 잖아요.”
“나야 내공이 빵빵하잖냐. 그리고 이래 뵈도 초절정의 고수니까.”
진천희의 말에 천우는 숨을 크게 내쉬고는 그제야 호흡을 정돈하고서 섰다.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이런 거 가지고 뭘.”
“아니에요. 형에게 받은 은혜는…… 헤아릴 수가 없는걸요. 저를 살려 준 것도 형이잖아요. 무당파에 추천해 준 것도 형이었죠.”
“다른 사람이라도 네 처지를 보면 그리했을 거다.”
“그렇지 않아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이 무당파에 저 같은 녀석이 여럿 있었겠죠.”
진천희는 그런 천우를 향해 작게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천우야. 그동안 네가 너무 운이 나빴던 거지.”
“…….”
천우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어릴 때 저는 아마 다음 주에는 죽을 수 있겠구나, 다다음 주 안에는 죽을 수 있겠구나 매일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때릴 때는 개집에 들어가 잔 적도 있었죠. 이름이 없다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의미가 없다는 건 가치가 없다는 거고.”
그런 천우에게 진천희는 목숨을 살려 주고, 이름을 붙여 주고, 재능이 있다고 말해 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천우는 습관적으로 안대를 쓰다듬었다.
“한쪽 눈을 잃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 병이 없었다면 형을 만나지 못했을 거니까.”
“천우야.”
천우는 진천희의 목소리에도 그저 허탈한 표정으로 웃기만 했다.
“지금은 상상도 못 하죠. 몸도 이렇게 커졌고 그때의 흉터도 이제 거의 다 사라졌고.”
“그래. 잘 컸지. 잘생겨졌고.”
“형 덕분이에요. 그때 형이 붙잡아서 일으켜 준 덕분.”
천우는 비무장에 누운 채로 노을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붉은 기가 거의 다 없어진 하늘을 천우는 아쉬움을 담아 바라보았다.
“형이랑 헤어지기 싫어요.”
“이미 너무 오래 있었어.”
“알고 있어요.”
강호인에게 있어 이별이란 늘 있는 것. 그럼에도 아쉽지 않은 적이 없었다.
완전히 해가 저물자 천우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형, 그 여하륜이라는 사람은 얼마나 강한가요?”
“음…… 엄청 강하지.”
“제가 만약 무당의 모든 것을 익히면 어떨까요?”
“그렇게 되면 넌 최소 현경인데, 왜? 천하제일인이라도 되겠다고 하지 그러냐.”
“하하하.”
천우의 맑은 웃음소리가 연무장을 가득 채웠다.
“사실 누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큰 상관은 없죠. 형은 내 안에서는 형이니까. 그래도 그 여하륜이라는 분은 꼭 검을 나누고 싶네요.”
“…….”
“형은 엄청 싫어 보이지만요.”
“…….”
“미뤄도 돼요. 얼마든지 기다릴 거니까. 기다릴 수 있으니까.”
천우는 간절함을 담아 낮게 중얼거렸다.
진천희가 말했다.
“다음번에는 좀 더 큰 목도리로 보내 줄게. 서신도 자주 보낼게.”
“네. 형.”
둘은 웃으며 주먹을 부딪쳤다.
탁.
이별은 그렇게 찾아왔다.
* * *
다음 날 정오. 진천희는 늦은 아침을 먹고 무당산을 나서기 위해 걸음을 움직였다.
천우는 그런 진천희를 해검지까지 따라와 배웅했다.
“으, 형을 이렇게 보내야 하다니 아쉬워 죽겠네요.”
“다음에는 이거보다는 일찍 만날 수 있을 거야.”
수년 만에 만난 형이었다.
어릴 때 한 번, 강호의 기준으로 성인이 되고 나서야 한 번.
다음 한 번은 언제일까.
조바심이 나는 게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