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80
제 180화
진천희가 말했다.
“용봉지회 나오니? 도명도 받고 스승님이 정해졌으니 나올 법한데.”
“아, 형이 온다면 저도 신청할게요. 물론 신청한다고 다 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아마…… 가능할 거예요.”
“그래?”
“네. 무당 내의 후기지수들을 모아 놓고 비무대회를 하거든요. 3등 안에 들면 용봉지회에 출전할 수 있어요.”
확신의 표정이다.
진천희도 할 말이 없긴 했다.
‘그래…… 무당 권제의 직전제자씩이나 되어서 순위 안에 못 들면 그만한 망신이 없지.’
그 할아버지 성격에 천우를 담가 버릴 것이었다.
여기서 담근다는 말의 의미는 물리적으로 지옥 훈련에 담가 버린다는 뜻으로, 3위 안에 못 들 바에는 죽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다음번 용봉지회에는 나도 스승님을 따라서 갈 예정이야. 이제 내 나이면 시비 털 놈들이 많지 않을 거고.”
“으음…… 이 갑자라 허락하시는 거지, 아마 시비 털 강호 놈은 많을 거예요.”
“아니, 왜 의원한테 시비를 털어?”
“백린의선이 제자 자랑을 얼마나 하는지 강호 후기지수들이 받는 내상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형, 형은 모르죠? 그래요. 모를 거예요. 원래 이런 건 본인만 모르는 거니까.”
천우는 아련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번뇌와 해탈이 한 번에 담겨 있는 얼굴에 진천희는 스승님이 대체 얼마나 자랑을 하고 다녔던 건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천우가 말했다.
“어쨌거나 백린의선께서 이제 와서 무위 욕심이 있으신 것도 아니고 형이 출전할 것도 아니니 적당히 잘 끝나겠지 싶긴 해요.”
“그래. 나도 보다 다양한 응급 외상 환자들을 치료하는 경험을 쌓고 싶었거든. 무엇보다 갈수록 인력이 부족해서 어서 나를 데려와야 한다고 사 대 당주님들이 요청하셨고.”
외상으로 인한 부술은 진천희의 영역이다.
오히려 제갈린이 차일피일 미뤄서 늦게 파견되는 셈.
천우가 말했다.
“어째 형은 무공 이야기보다 의술 이야기에 더 눈을 빛내네요.”
“그러냐? 하하하.”
사람을 구하는 건 힘들지만 보람이 있다.
환자가 다 나아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다.
더 나은 수술법을 발견하고 옛날이라면 절대 치료하지 못할 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지구에서나 이곳에서나 그 기쁨은 진천희의 원동력이었다.
두 사람은 이별의 포옹을 했다.
“잘 있어라.”
“용봉지회에서 봐요. 형.”
“그래.”
* * *
진천희는 무기를 돌려받고는 그렇게 산을 내려갔다.
‘이제 일전에 회수 못 한 영약이나 좀 더 캐 볼까?’
천우, 그리고 사마현에게 보낼 생각이다.
비무를 하며 느꼈는데 둘에게 부족한 건 역시 내공이다.
‘형으로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을까.’
위를 보니 벌써 해가 중천.
뒤를 돌아보니 무당파 입구에서 천우가 아직도 진천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번에는 불타지 말았으면 좋겠다. 권제 어르신도 이번에 깨달음을 얻으신 데다 제자도 생겼으니까 좀 더 이승에 미련이 생기시겠지.”
진천희가 작게 중얼거리자 뇌진과 황구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대답했다.
삑삐익! 컹컹!
이것으로 권제 어르신이 훗날 자연사를 하시든 우화등선을 하시든 좀 더 기간을 미룰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더 미룬 건지는 몰라도 강호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갖는 의미는 크다.
거기다가 보약이 아닌 내상약(?)을 사분지 일씩 복용하도록 시켰으니 더 버티실 거다.
틈틈이 무료 치료를 빙자해 무당파 사람들에게 백린신단의 효용과 백린의각의 의술에 대한 광고도 좀 했고.
‘나 정말 많이 일했네.’
짧은 시간, 실력 증진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을 바꾼 진천희였다.
* * *
컹! – 주인 배고프다!
삑삐익 – 근처 마을이 있으니 들르자, 들르자~ 응?
진천희는 무당파 아래 마을에 들러 우선 여행을 위한 물건들을 하나둘 구입했다.
‘건량과 육포, 후추도 다 떨어졌고. 버터 만들게 산양유도 좀 더 구해야겠다.’
그렇게 잔뜩 사고 나니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여기서 자자.”
컹컹컹!
찬성이라는 말을 꼬리로 표현하는 황구였다. 뇌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진천희는 그렇게 객잔을 잡아서 국수를 먹고는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컹! 크릉! 컹컹! 왕!
삑, 삐이이익! 삑, 삑!
황구와 뇌진이 짖는 소리가 잠을 깨웠다.
“왜 그……래? 무슨 일이지?”
기감을 넓혀 보았지만 수상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황구가 진천희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컹! – 주인, 밖이 이상하다.
황구가 잡아당기는 대로 창문 쪽으로 가니 창밖이 붉었다.
화염이었다. 붉은 화염이 무당산을 물들이며 집어삼키고 있었다.
“어……?”
진천희는 순간 사고가 멈추었다.
‘무당파가 불타는 건 최소 몇 년은 더 있어야 하지 않나……? 권제 어르신이 우화등선하신 이후. 그때 아니었냐고!’
화마는 무심하게도 모든 것을 잡아먹고 세를 불려만 가고 있었다.
무당이, 무당이 불타고 있었다.
* * *
그때와는 다를 것이다.
지금의 무당파는 원작처럼 썩기 전이고 권제 어르신도 살아 있다.
하지만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진천희는 그저 달렸다.
마을에서 무당까지의 거리는 그래도 꽤 되는 터라 경공으로 달려도 시간이 다소 소요된다.
경공 실력에 있어서만큼은 어디 가서 지지 않을 진천희였으나 지금만큼은 자신의 발이 한없이 느리게 느껴졌다.
컹! – 주인, 낯선 냄새가 난다!
황구가 진천희에게 빠르게 정보를 알렸다.
덕분에 진천희는 달려가면서도 바로 칼을 뽑을 수 있게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무당산 입구.
가장 먼저 보인 건 문지기의 시신이었다.
도인과 복면인들의 시신들.
그 속에 펼쳐지는 아비규환…….
그 순간, 진천희의 목에서 잠깐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진천희는 이를 악물었다.
‘여긴 내가 죽었던 전쟁터가 아니야. 강호다. 나는 싸울 수 있고…… 아무튼 괜찮……아!’
전생에서 죽었던 그 공포가 진천희를 한순간 강타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조차도 눈앞의 참극 앞에서는 사치였다.
진천희는 빠르게 스스로의 정신을 재무장했다.
‘무너지면 안 된다. 강호나 지구나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건 똑같지 않나. 뭘 바랐던 거냐. 꿈과 낭만?’
그 순간, 흑의인 하나가 진천희를 향해 눈먼 칼을 날렸다.
카앙!
일합에 진천희는 검을 막아내고 이합에 반격했다.
흑의인의 검이 부서지며 팔이 기이한 방향으로 뒤틀렸다.
우드드득-
이제 흑의인은 두 번 다시 팔을 쓰지 못할 터였다.
‘무당에 습격이라니 간도 크군.’
그러나 무림사를 통틀어 명문정파의 혈사는 의외로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도 했다.
이런 짓을 할 만한 흉수가 둘 떠오른다.
그중 하나가 심증상 맞아 보였으나 진천희는 판단을 유보했다.
대신 다른 식으로 사고의 방향을 뒤틀었다.
‘우선 권제 어르신이 있는데 무당파를 침범했다는 건 권제 어르신을 상대할 비책이 있다는 거겠지?’
이만한 짓을 벌일 세력이 그런 기본적인 계산도 안 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내가 무당파를 도울 수 있을까. 아니, 하지 않으면 안 돼. 사람을…… 사람을 구하는 게 내 일 아니던가!’
이 화마를 보고 있으면 전쟁터가 떠오른다.
죽었던 그때의 감촉이 선연하다.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며 도망치고 싶고 잊고 싶은 기억이지만 현실은 잔혹한 법.
손이 떨린다.
‘괜찮아. 할 수 있어. 구할 수 있어.’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찰나 바로 목소리가 울렸다.
“크으…… 소……백룡이시오?”
잔해 속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울렸다. 진천희가 잔해를 치우자 그곳에서 낯익은 도인이 진천희를 향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이미 멀리 떠난 줄 알았는데……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오.”
“하정 진인.”
썩은 무당이라고는 하지만 좋은 사람들도 많았다.
하정 진인이 특히 그랬다.
하 자 배는 천 자 배 바로 윗세대.
천우가 처음 굴러온 돌이 되어 이곳에 왔을 때 하정 진인은 기꺼이 천우에게 자신의 간식을 나누어 준 사람이었다.
아무리 치졸하게 텃세를 부려도 천우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이런 진짜 도인들 덕분이었다.
하정 진인은 그런 진천희를 보더니 힘없이 웃었다.
“반갑소. 정말 반갑소. 소백룡이 와 주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오. 부디…… 부디 무당을…… 무당을 부탁…… 크아아악! 뭐, 뭐 하는 것이오?”
“점혈로 지혈 중입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의원 앞에서 유언하시는 거 아닙니다.”
진천희는 하정 진인을 빠르게 지혈하고는 응급약을 꺼냈다.
“점혈이 왜 이리 아픈 거요?”
“출혈이 이렇게 심하면 아픕니다. 지금 다친 부위도 다친 부위고요.”
진천희가 차분히 말했다.
“이 일이 끝날 때까지 살 수 있도록 목숨은 붙여 놨습니다. 더 치료하고 싶으나 시간이 없군요. 일단 사십시오.”
“…….”
진천희는 하정 진인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러고는 부풀어 오른 눈빛으로 다시 말했다.
“……사셔야 합니다.”
“내 살다 살다 유언 듣다 말고 지혈부터 쑤셔 넣는 강호인은 또 처음 보는구려…… 크크크…… 알겠소. 내 소백룡에게 한 소리 안 들으려면 악착같이 살아야겠구만.”
“약이 의식을 유지시켜 줄 겁니다. 다리는 움직일 수 있도록 조처했으니 구석에라도 숨어 계십시오. 오래는 못 움직입니다. 도망칠 수 있을 정도로만 조처했습니다.”
“움직이면 아프오?”
“응급약에 진통제가 들어있기는 하나, 그래도 많이 아플 겁니다. 그래도…… 뛰어야 살아지니까요.”
하정 진인은 진천희의 부축을 받아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통증으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움직일 수 있었다. 잠시 몸을 피할 수준은 되었다.
그렇게 한 명의 도인을 살리고 진천희는 바로 명령했다.
“뇌진. 너는 다가오는 적들을 하늘에서 확인해 줘! 잡졸은 상관없어. 강한 자를 먼저 알려줘. 그러고도 여유가 생기면 중간중간 번개를 쏘아서 엄호하고.”
삐익!
뇌진이 곧바로 고도를 높여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황구, 너는 나랑 간다. 부상자를 탐색해. 그리고 이참에 어르신이 가르쳐 준 전투법을 활용해 보자고.”
크릉!
황구가 털을 빳빳하게 세운다.
주인의 분노를 느낀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복면인 다섯이 달라붙었다.
놈들은 웬 놈이냐, 뭐 하는 놈이냐는 말도 없이 곧바로 공격을 날렸다.
그 순간, 뇌진이 먼저 움직였다.
콰릉!
뇌진의 푸른 섬광이 복면인 하나를 곧바로 구웠다.
별도 보이지 않는 새카만 하늘, 그 하늘을 가르며 내려오는 번개는 천벌이라는 말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각에서 날아온 난데없는 공격에 복면인 넷의 움직임이 잠시 멈칫했다.
그 틈에 황구가 움직였다.
콰직!
이번에는 불알이 아닌 다리.
일정 이상의 고수를 상대로 불알을 으깨는 게 쉽지 않기에 이번에는 다른 곳을 노렸다.
개는 인간보다 공격점이 낮아 인간 시야의 사각으로 파고들어 온다.
거기에 내공도 쓸 줄 아는 영물이다 보니 순식간에 다리 하나를 잃었다.
까드득-
다리를 문 황구는 치악력만으로 상대의 허벅지 뼈를 부수었다.
“끄으으윽-!”
“……그래. 아프겠지. 저건 흑전의각에서도 못 살리니 나중에 절단해라.”
마지막으로 진천희의 잔상이 느리게, 그러나 역설적으로 눈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진천희의 손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곳에서는 어김없이 사지 중의 한 곳이 반대 방향으로 꺾여 나갔고.
그들은 그런 진천희를 잡기 위해 암기를 흩뿌렸으나 그 어떤 것도 진천희의 잔상을 스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