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84
제 184화
츠츠츠츠츠.
가면인의 태검에서부터 강기가 솟구친다.
‘내공이 아주 넘쳐나네. 혈선교의 최고 간부쯤 되면 당연하겠지. 분명 최고 간부들은 내공이 기본 사 갑자라고 했었지? 사 갑자. 사 갑자라…….’
그 모습을 보다가 진천희는 자신도 모르게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
으득.
‘그래. 사 갑자. 사람을 갈아 넣은 제물로 쌓은 내공. 피로 쌓은 탑…….’
소설을 본 진천희는 진실을 안다. 그렇기에 전생에 죽은 반란군의 총탄을 떠올렸다.
피를 쌓고, 타인을 희생시키며 스스로의 부귀영화를 누리려는 놈들이다.
반군은 알량한 권력과 재물을 위해서 그랬다면, 저것들은 그놈의 혈선이라는 게 되려고 저 짓을 하는 쓰레기들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지? 얼마나 많은 피를 빨아 마셨나?
네놈들을… 네놈들을…….
흠칫.
진천희는 멈칫하며 생각을 멈추었다.
방금 전까지 일어난 감정이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
물론 화가 나지만,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험악한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쯧. 이 무당산에 와서 너무 많은 것을 봐서 그런 것이겠지.
“후…….”
한숨이 나왔다.
사람은 쉽게 죽는다.
생명을 살리는 것은 죽이는 것보다 수십 배는 어려운 일.
그 무게에, 그 사람들의 단말마 속에서 그만 자신을 잃을 뻔했다.
‘전쟁 PTSD가 이래서 무섭지.’
마음이 마모되어 가는 게 느껴졌다.
진천희는 다시 고개를 털었다.
두 고수가 다시 격돌하는 것을 보면서 무당파의 진영 쪽으로 움직였다.
두 고수가 격돌할 때마다 붉은 강기가 사선으로 이어진다. 그러자 흰색 강기가 그에 맞서서 부드럽게 움직인다.
아스라한 경지의 싸움 속에서 범인(凡人)은 범인의 일을 할 뿐.
“부상자를 뒤로 돌려라! 검진을 유지하도록!”
무당파 장문인의 말이 들린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진천희에게 와 닿았다.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당파의 진영으로 들어섰다.
서 있는 이들이 수십. 쓰러져 신음하는 이들이 또 수십이다.
진천희는 능숙하게 부상자들을 끌어당겨 뒤쪽의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지혈을 시작했다.
그사이, 권제와 가면인의 싸움은 더욱더 격렬해지고 있었다.
콰과광!
바닥에 협곡이 생긴다.
권제가 태극을 만들어 방어했다. 그것을 본 가면인이 히죽 웃었다.
“나도 할래.”
가면인의 붉은 강기가 어느 순간 곡옥의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형을 따라한들 도는 담지 못한다. 어리석은…….”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진천희의 옆에서 울렸다.
“아니요. 도가 담겨 있습니다. 음양이 바뀌어 있을 뿐.”
천우였다.
무당권제도 눈치채지 못한 것을 천우가 보고 말았다.
반가워할 정신도 없는 사이.
붉은 검강과 태극이 부딪쳤다.
고막을 찢을 것 같은 강대한 굉음이 울리고,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지축이 흔들렸다.
무당권제의 몸이 뒤로 밀려나는 것을 진천희는 보았다.
권제는 시뻘건 피거품을 토하며 삼 보를 밀려났다.
그것은 위험했다.
‘설령 상대도 태극을 담았다 하더라도 권제 어르신이 밀릴 이유는 없을 텐데?’
아무리 즉흥적으로 따라 했다고 하나, 같은 태극이면 무당의 것이 훨씬 유리했을 터.
어째서 권제의 태극이 밀렸는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천우가 말했다.
“기습이 있기 전, 독에 당하셨습니다. 누가 독을 쓴 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아마도 내부에 배신자가 있었겠지요. 진법의 정보도 배신자가 유출했을 테고요.”
천우는 굳은 음색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도 진천희는 천우가 무사하다는 사실이 기뻤다.
“무사했구나.”
진천희의 말에 천우가 화답했다.
“형은 다치셨군요.”
걱정스러운 표정을 일순 짓더니 다시 두 초인의 일격을 바라본다.
“돕고 싶어도 아득한 경지라 낄 수가 없더군요.”
현경을 앞에 둔 고수의 싸움.
이런 난전 속에서 끼어들어 봤자 발목을 잡을 뿐.
진천희는 잠시 정체된 시간을 이용해 부상자를 챙기고 옮기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이 중에서 그것을 할 수 있는 자는 의원, 그것도 응급 외상에 특화된 자신뿐이었다.
‘고수들 싸움에 쪼렙들은 쳐다만 보고 있는 무협지 장면을 늘 봐 왔지만…… 내가 거기에 휩쓸릴 줄은 몰랐네.’
경외심을 잠시 치우고서 생각하니 어찌 보면 시간제한이 있는 응급 치료 시간 아닌가.
그랬다.
강호인들이 고수의 일기토를 보며 경외감에 가득 차서 적과 대치해 있는 동안.
진천희는 뒤에서 외과의의 본분을 다하며 지혈하고 봉합을 하기 시작했다.
호사가들이 말하는 전설적인 장면 뒤에서 뭔가 인간적인 사투가 시작되었다.
“…….”
혈선교도들도 약간 미친 자를 보는 것 같은 눈으로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의원의 치료를 막기에는 두 고수의 싸움이 워낙 대단하여 자칫 휩쓸릴 수가 있었다.
‘내가 메딕이다!’
요즘 애들은 하지 않을 고급 민속놀이 유머를 홀로 생각하며 진천희는 인간 점혈 기계가 되어 갔다.
이런 상황에서 뭐라도 작은 웃음거리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정신이 버티기 힘들었으니까.
“아파도 참으십시오. 지혈합니다.”
파파팍!
“크아악!”
“일단 살고 봐야 합니다. 탈골된 곳은 맞추겠습니다. 부러진 뼈는…… 이 정도면 진기를 이용해 정복하겠습니다. 삼, 이, 일…….”
우드드득!
당장 회복하기 쉬운 환자는 몸의 기능을 조금이나마 수복하는 것을 목표로 우선 치료하고, 상태가 심각한 환자는 지혈을 중심으로 생존을 우선으로 치료해 나갔다.
인간의 능력으로 치료할 수 없는 환자는 진천희로서도 답이 없었고.
이 경우 황구가 환자의 이마를 핥아 주었다.
기적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양의심공을 이럴 때 쓰는군요.”
진천희의 옆에서 천우가 묵묵히 필요한 물건을 꺼내거나 환자를 붙잡으며 보조해 주었다.
“응. 모두는 살리지 못해도, 그래도 이 정도의 조처만으로도 죽을 사람이 산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까.”
담담히 말하는 목소리에서는 냉정한 슬픔이 배어 나왔다.
그 순간.
가면인의 시선이 느껴졌다.
“형을 보며 웃고 있군요.”
“……?”
그 순간, 붉은 검기가 진천희를 향해 내리꽂혔다.
콰과과광!
“예언에 나온 반선의 씨앗이 너구나.”
환자를 감싼 진천희가 눈을 뜨자 천우의 커다란 등이 보였다.
“형. 괜찮아요?”
“너는?”
“괜찮습니다. 진심으로 날린 게 아니니까.”
붉은 검기를 가른 건 천우가 만들어 낸 백색 검기.
음양의 무학이 담긴 검기가 사특한 검기를 파훼시켰다.
진천희의 망막이 부풀어 올랐다.
아마도 권제와 싸우던 와중이라 검기 한 가닥을 뽑아내 공격한 것인 듯했다.
실제로 둘의 싸움은 점점 흉험해지고 있었으니까.
그 순간, 권제의 잔상이 미끄러지듯 사라지며 가면인을 향해 수백 개의 권형(拳形)이 날아갔다. 그리고 그 권형을 가면인은 하나하나 다 응수했다.
“영감, 화났어? 갑자기 말이 없어졌네.”
“…….”
제자 둘이 당할 뻔하자 무당권제의 표정이 범처럼 사납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권제가 만들어 내는 투기에 피부가 따끔거릴 지경이었다.
“크하하하, 걱정하지 마. 내가 직접 저놈들을 공격하지 않을 거니까.”
“직접 해 보지 그러느냐.”
“그렇게 빈틈을 줬다가는 영감이 내 목을 따는 게 더 빠르겠지. 영감은 강하고, 나는…… 영악하니까.”
가면인은 거대한 태검을 훙 소리 나게 휘두르더니 어깨에 척 걸쳤다.
“하지만 반선의 씨앗은 꼭 가져가긴 해야겠거든. 그러니 딱 절반씩만 하자고.”
절반?
카앙!
두 고수가 튕겨 나가듯 거리를 벌렸다. 기묘한 대치 상태.
그때 가면인이 이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안녕. 반선의 씨앗. 나는 혈선 십천군의 금천군이라고 해. 예언대로 참 곱게 생겼구나? 여기서 반선의 씨앗을 붙잡게 되다니 운이 좋아.”
팽팽한 대치 상태 속에서도 그는 웃으며 진천희에게 말을 걸었다.
마치 전투 중이 아니라 놀러온 사람과도 같은 태연함이었다. 그러나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메스꺼울 만큼 살기가 진득했다.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칠공에서 피를 쏟고 토악질을 할 것 같은 살기.
진천희는 가면인을 향해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글쎄요. 운이 좋은 걸까요?”
“호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음……?”
운무가 산자락을 타고 스멀스멀 다가오는 것을 가면인, 아니 금천군은 보았다.
“무당파를 지키는 진법은 이미 회복, 가동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해지는 것은 무당이지요.”
진천희의 말에 무당권제도 놀랐는지 눈을 홉떴다.
“다쳐서 온 게 그런 이유였구나. 그런 거였어…….”
금천군의 입이 잠시 굳었다. 이윽고 금천군은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진법의 축은 금강당에서 지키고 있었을 텐데 그들을 다 물리쳤다는 거야? 거기다 그 고절한 금강혈마를 패퇴시켰다고? 고작 너 혼자서?”
“…….”
“아직 어린 용인 줄 알았는데 되게 잘 자란 성룡이네! 그렇다면…… 반드시 지금 데려가야겠는걸?”
금천군은 결심이 섰는지 태도를 한 바퀴 핑그르르 돌렸다.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권제의 신형이 백 가지로 갈라져 공격을 쏘았다.
하나하나가 음양의 무학이 담겨 있는 심무지경.
그것을 금천군이 막아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을 만큼 고절하고 빠른 공격 속에서 금천군이 말했다.
“휩쓸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길은 내가 트겠으니 반선의 씨앗을 잡아! 반선의 씨앗을 잡은 놈에게는 마혈단을 주마!”
마혈단.
그 말에 혈선교인들의 눈매가 변했다.
마혈단을 복용하면 두 번 다시 인간으로 몸으로, 인간의 정신으로 돌아올 수 없다. 그러나 비록 괴물이 될지언정 강대한 힘과 불로불사가 가능하다고 알려진 혈단이다.
혈선교에 입교한 이상, 인간의 도는 저버린 터.
불로불사와 강대한 힘이 가능한데 무엇이 문제냐고 물어볼 자들이었다.
과연 그들의 눈빛이 탐욕으로 변했다.
놈들은 곧바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권제 어르신이 곧바로 권풍을 날리려고 했으나.
금천군이 끼어들었다.
“킥킥킥, 어딜 보는 거야. 영감……!”
카가각!
그 사이. 결국 혈선교의 무리들이 들이닥쳤다.
* * *
‘진법이 가동되었으니, 시간만 끌면 우리가 이긴다는 걸 저놈들도 잘 알아. 그래서 저러는 거겠지.’
진천희는 서늘한 눈으로 공터를 보았다.
중앙의 공터에서는 두 명의 절대 고수가 혈투를 벌이고 있다.
검기와 권기는 예사고, 강기가 폭풍처럼 흔들거린다.
하수들은 감히 그 사이에 끼어들 수조차 없다.
그나마 저 치열한 혈전에 끼어들기 위해서는 최소 초절정의 고수거나, 화경에 입문한 무인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무당파에서도 혈선교에서도 그런 이들이 서로를 견제했기 때문이다.
괜히 두 명의 절대 고수가 일기토처럼 일대일로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금천군의 명이 떨어지자, 혈선교의 무리들 중 금천군 바로 아래에 있는 이들이 수하들과 함께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