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91
제 191화
권제 어르신이 말했다.
“이리되었으니 당분간 내가 장문인의 대리로서 무당을 운영하게 되었구나. 뭐, 잘됐다. 이참에 본문을 정비하면 되겠지.”
“감사합니다. 사숙.”
장문인을 향해 어르신이 말했다.
“고마워하지 말거라. 원래 심마에는 수련이 제일이라고 했다. 맨손으로 내공도 없이 절벽을 오르다 보면 네놈도 다른 걸 생각할 정신이 없겠지.”
“네? 그게 무슨…….”
“장로도 네놈도 다 굴릴 것이란 뜻이다! 이대로 내가 우화등선하면 사형, 사숙 보기 부끄러워서 말이다! 이 정도면 두 번 다시 같은 일은 안 생기겠다 싶을 때까지 다 굴릴 거다. 젠장!”
그것은 사자의 포효와도 같았다.
“하지만 제 나이가…… 어린놈들과 같이 구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특별히 더 굴릴 테니 각오해라.”
진천희는 보았다.
권제 어르신의 뒤로 ‘스파르타!’를 외치는 정열의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을.
노사는 더는 다음 세대에 맡기지 않기로 했다.
뒷방에 가는 대신 자기 손으로 하나씩 굴리기로 했다.
“나도 반성했다. 암! 내가 그래도 항렬 생각해서 뒤에 있기로 했던 것이 잘못이었어. 그 또한 방관 아니겠느냐! 신뢰는 피와 땀과 눈물에서 나오는 법인데…… 쯧쯧… 명길아… 멀었구나. 멀었어.”
핼쑥해진 장문인을 무시한 채 권제는 자신의 새로운 사명을 떠올렸다.
“나 또한 백린을 가르칠 자격이 되질 못한다. 무당 역시 난초처럼 키웠으니까. 그래서는 안 됐어. 암! 사랑스러운 자식일수록 절벽에서 떨어뜨려야 하는 법.”
‘그거… 현대인이 보면 아동 학대…….’
트루 현대인 진천희는 차마 동의할 수 없었다.
권제 어르신은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는 진천희에게 목함과 서책을 내려놓았다.
탁.
“너는 이걸 받아라.”
“열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권제 어르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심스럽게 목함을 열었다.
달칵-
여는 순간 정순한 향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태청신단…… 그런데 두 개네?’
놀라운 일이었다. 단 한 알조차도 얻기 위해 혈사가 일어나지 않나. 그런 신단을 둘이나 받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다음은 서책.
서책에는 ‘태청산수’라고 쓰여 있었다.
“이건 무당에서 쓰시는 것이…….”
진천희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권제 어르신이 고개를 저었다.
“본문이 받기만 하고 은혜를 갚지 않는다면 뭐가 되겠느냐. 가져가거라. 태청신단은 네 녀석이 먹어도 좋고, 둘 다 네 친인에게 주어도 괜찮다. 그리고 태청산수는 외인에게 전수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진천희가 뭐라 말하기 전에 먼저 제갈린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진천희가 이번에도 사양할까 봐 은근히 압력을 준 것이었다.
스승이 먼저 감사를 했으니 진천희가 거절하면 그 또한 모양새가 이상했다.
‘아니, 나는 받을 생각이었다고.’
태청산수는 한번 거절했던 터라 예상 밖이었지만 태청신단은 다르다.
진천희 자신은 이미 이 갑자가 넘었다 보니 효율이 좀 떨어지긴 한다.
그래도 그 떨어지는 영약빨 아득바득 먹어서 삼 갑자를 노려 볼 수도 있고.
그냥 주변 사람들에게 먹여도 되는 일이고.
당장 의동생들만 해도 내공만 더 빵빵해져도 엄청난 일을 할 놈들이다.
‘다들 날 어떻게 보고 있는 거야?’
권제 어르신뿐만 아니라 제갈린도 진천희를 꼭 받아가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도 필요한 건 악착같이 챙기는데 좀 억울하네.’
억울함을 담아 답했다.
“감사합니다.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읍소하자 두 존장은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제갈린이 말했다.
“나는 이곳에서 오 일간 치료를 하고 돌아갈 터이니. 너는 따로 볼일이 있다면 보고 백린의각으로 돌아오면 된단다.”
“……?!”
그 말에 진천희가 눈을 홉떴다.
제갈린이 먼저 진천희에게 원한다면 다녀오라는 말을 할 줄 몰랐다.
‘지난번처럼 일이 년은 유폐당할 줄 알았는데…….’
진천희 자신도 랩실에서 연구에 매진하며 나름대로 즐거운 연구 라이프를 보내기는 했다.
방선균 농사를 지으며 어쩌면 자신은 전생에 농부가 아니었을까 하는 미친 생각을 하던 나날.
그러나 이 갑자에 영물 둘까지 가진 장성한 제자를 유폐하는 것이 상식적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긴 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몸조심하렴. 또한 태청산수는 반드시 익혀 두도록 하고.”
진천희는 깊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드르륵-
진천희가 닫고 나간 문을 제갈린이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권제 어르신이 장난스럽게 웃음을 흘렸다.
“클클클, 어떠냐. 스승의 길이라는 게 쉽지 않지? 어린놈아.”
제갈린의 고뇌를 알기에 지을 수 있는 웃음이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제갈린도 긍정했다.
“품에 가두는 것이 더 쉬운 일인데 참 어렵군요.”
“어렵지. 지켜본다는 것은.”
제갈린은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이상한 일입니다. 말 몇 마디면 다시 볼 수 있는데 그걸 못 해 벌써 그리워지니 말입니다.”
“스승이란 결국 그런 법이다. 그런 자리인 것이지.”
* * *
며칠 후 진천희는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무당파를 떠났다.
천우는 그런 진천희를 배웅하러 나왔다.
제갈린은 일이 바쁘다 하여 일부러 배웅을 피했다.
권제 어르신과의 대련 이후로 스승님의 심경에 무언가 변화가 생긴 것이 분명하였으나 진천희는 구태여 먼저 나서지는 않았다.
스승님의 마음만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승님 성격에 정말 큰 결심 하신 거지.’
이성은 장성한 초절정 제자임을 알지만 마음은 세 살 아들 심부름 보내는 심정일 터.
자식 둔 아비 마음이랑 똑같다.
진천희는 목갑을 꺼내 천우에게 건넸다.
“이게 뭐죠. 형?”
“나 가면 열어 봐. 나를 형이라고 생각한다면 꼭 그래야 한다. 알았지?”
천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윽고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모습에 진천희는 그제야 배시시 웃었다.
“착하다. 내 동생.”
천우의 머리를 한번 헝클어 주고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다음에 보자.”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진천희는 그대로 빠르게 산을 내려갔다.
형이 멀어지자 천우는 그제야 목갑을 열었다.
달칵-
청아한 향기의 그것은 무당에 들어온 도인이라면 누구라도 선망하는 환단이었다.
태청신단.
놀라서 천우가 소리쳤다.
“형!???”
그러나 진천희는 천우의 눈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작정하고 멀어진 형은 이제 떠나고 없다.
천우는 그저 갚을 길 없는 은혜에 어찌할 줄 모르고 흐트러지다가 결국 목갑을 꽉 쥐었다.
“형은 왜 언제나 또…….”
그 귀한 것을 자신 같은 놈에게 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천우의 머리로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 마음만은 따뜻해서 한참이나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벌써 형이 보고 싶어졌다.
025. 용봉지회
이름 모를 숲.
황구가 달려간다.
컹, 컹컹!
그때 호랑이 한 마리가 그런 황구를 덮치려는지 달려들었다.
콰르르릉!
뇌진의 푸른 번개가 호랑이의 머리에 꽂혔다.
“워어, 범이 많은 산이라고 들었는데 진짜 그대로네. 세상에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렇지, 황구를 잡아먹을 생각을 하냐.”
진천희는 전뇌 한 방에 사망한 범을 보더니 살짝 놀랐다.
“털이 좀 그슬렸긴 한데 생각보다 괜찮네. 가죽도 발톱도 쓸 수 있겠다.”
컹!
“알았어. 알았어. 거기 있다는 거지?”
진천희는 황구의 독촉에 바로 다시 움직였다.
이윽고 황구가 멈춘 곳은 눈이 깊게 쌓인 구덩이였다.
“그나저나 이 산 진짜 높다. 이거 만년설 같은데 말이야.”
진천희는 눈을 손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오행진기를 이용해 화생기로 손을 보호하고, 금생기로 눈을 네모지게 잘라서 위로 쌓아 올리는 모습이 흡사 인간 제빙기와 같았다.
그렇게 각 얼음. 아니 각 눈덩이를 쌓아 올리더니 어느 선에서 손을 멈춘다.
“아, 여기구나.”
거기서부터는 조심스럽게 다시 파 내려갔다.
이윽고 진천희 손에 들려 나온 것은 얼음처럼 투명한 영초였다.
“빙설한초! 심봤다!”
만년설 밑에서 자라며 만년설의 수분을 먹고 번식한다.
햇빛을 받으면 죽기 때문에 찾는 과정도, 찾아서 채취하는 과정도 무엇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진천희는 그런 빙설한초를 태양 아래에서 환하게 들고 있다.
신기하게도 빙설한초는 시드는 기색이 없이 생생했다.
한기와 목기를 동시에 주입해서 양생공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본래라면 사람에게 쓰는 의료용 양생공이나 진천희는 이것을 영초 캐는 데 쓰고 있다.
진기를 넣어서 보존시키고, 그다음 네모지게 잘라낸 눈 속에 다시 넣은 후 꾹꾹 눌러 담는다.
주기적으로 한기를 주입해야 하는 귀찮음이 따르지만 이렇게 보관하면 약효가 떨어질 일이 없었다.
“이걸로 처음 모으기로 했던 영약 4개도 다 모았나.”
혈선교가 차지하는 영물인 흑갑오공, 천뢰응은 이미 진천희의 손에 떨어졌다.
영약도 이제는 전부 모은 지 오래다.
컹!
“먹으라고? 하지만 이건 특성상 그것보다는 백린의각에 돌아가 정제해서 영약으로 만들어 먹는 게 나을 거야.”
혈선교와 전쟁을 치르고 나니 더 강해져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다행히 이번에 간부급은 금천군 하나밖에 파견되지 않았으나 만약 한 명이라도 더 왔으면 스승님은 제자의 송장을 치웠을 터.
‘생존의 문제구나.’
살고 싶었다.
혈사를 맞닥뜨리고 죽음을 대면하고 나서야 자신은 한낱 현대인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호인들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칼을 내지르는 짓은 할 수가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영약을 모두 모아야 한다.
배부른 돼지처럼 군 것도 옛말.
진천희는 이 기회에 효율이고 나발이고 아득바득 뭐든지 독하게 먹어서 삼 갑자까지 올려 보기로 결심했다.
‘거기다가 영약도 엄청 모아 버렸고.’
진천희가 가지고 있는 영약을 정리해 보면.
태청신단 한 개, 그것에 견줄 수 있는 자연 영약 네 개.
하나라도 밖에 유출되면 혈겁이 일어날 것들이다.
무당산에서 큰 깨달음으로 무학과 내공이 동시에 증진되었으니 이 중 두 개를 섭취하고 연공을 몇 달 하면 삼 갑자는 될 것 같았다.
그러면 세 개가 남는다.
‘세 개나 남을 줄은 몰랐네. 스승님 환골탈태시킬 때 쓸 수는 없으려나… 그건 운이니까 어려울까. 아니면 동생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는 쪽이 도박 없이 효율이 좋긴 한데.’
천우는 이미 줬으니 여하륜과 사마현에게 주면 두 개.
그래도 하나가 남는다.
‘행복한 고민이네.’
고생한 덕분이기도 했다.
삐삑-!
뇌진이 위에서 울음을 길게 내뱉었다.
“아, 왔나 보구나.”
진천희는 황구의 이마를 쓸었다.
“익숙한 냄새 나는 곳 있지? 안내해 줘.”
그리 말하며 육포를 던졌다.
텁-
황구는 공중제비를 돌아 육포를 입에 물고는 곧바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