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94
제 194화
“몇 주 후에는 무림맹으로 가자꾸나.”
“아, 용봉지회군요.”
무당파의 혈사로 평소보다 늦춰졌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용봉지회가 시작된다.
제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물론 이건 눈가림이기만…….”
“눈가림이요?”
진천희의 말에 제갈린은 잠시 뜸을 들였다.
두 사제가 차를 마시는 소리가 잠시 다실을 울렸다.
이윽고 제갈린이 입술을 열었다.
“일전 무당파에 혈사를 일으킨 이들이 마교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단다.”
진천희는 이 주장이 삼절추호 도백하와 관련이 있음을 깨달았다.
삼절추호는 유일하게 혈선교의 정체를 규명한 이다.
제갈린은 말을 이어 나갔다.
“마교였다면 마교 토벌을 해야만 하는 일이나, 마교가 아니라 제삼의 세력이라면 그것도 문제이니 조사가 필요하지. 그걸 위해 무림맹의 문파들 모두가 모여 회의를 할 예정이란다.”
그 말에 진천희의 두뇌는 곧바로 노림수를 파악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눈가림하기 위해 용봉지회를 이용하는 것이겠군요.”
“그래. 덕분에 너도 참전하게 될 것 같구나. 어차피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 되겠지만 말이다.”
그 말에 진천희가 살짝 놀란 눈으로 답했다.
“굳이 나가서 우승까지 해야 할까요? 저는 영약을 너무 먹어서 이제 후기지수에서는 적이 없을 텐데요.”
“다른 문파라고 영약을 안 먹는 줄 아느냐. 어쨌거나 다른 후기지수들의 요청이 너무 거세서 기권하기에는 모양새가 좋지 않게 판이 짜였더구나.”
엄마 친구 아들…… 아니, 스승 친구 제자.
진천희는 이 사태의 원인을 깨달았다.
백린의선의 팔불출짓에 고통받던 후기지수들이 저항의 깃발을 들었다.
거기에는 다른 스승들도 한몫했을 터였다.
‘그렇게 제자 자랑이 끝내주던데 어디 진짜인가 내 함 보고 만다!’의 심정.
‘허허허…… 그래. 제자 문제에 관해서는 칠순 먹은 어르신도 애가 되고 말지.’
강호에서 제자란 친자식과도 같은 법.
그리고 용봉지회는 정식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는 자리.
현대로 치면 아들 자랑만 입으로 실컷 하고 단 한 번도 시험 성적표를 보여 준 일이 없는 셈이다.
‘나 없을 때 스승님이 대체 얼마나 자랑을 하고 다니신 거지.’
천우가 했던 말도 그렇고 보통이 아니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걸려도 왜 저런 놈한테 걸렸냐며 진천희를 불쌍한 눈으로 바라본 무당파 장문인도 그렇고. 무당권제도 그러셨고…….
‘아니다. 우리 스승님은 제자가 뛰어나서 기쁜 마음을 표현한 것일 뿐! 못난 제자를 욕하고 다닌 것도 아니고 잘난 제자를 자랑 좀 한 게 뭐 어떻단 말인가.’
제갈린이 제자 팔불출이듯 진천희도 스승 팔불출이었다.
강호에 둘도 없는 미친 사제 관계가 그렇게 불탔다.
“스승님. 이 제자, 반드시 우승하고 오겠습니다.”
미안하다. 천우야.
진천희의 눈에서 열정이란 불꽃이 피어오르자 제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무공을 몇 가지 더 추가로 익혀 두는 것이 좋을 듯하구나.”
“무공을 추가로 익힌다고요?”
이건 예상치 못했다. 제갈린이 말을 이었다.
“그래. 일전 무당파에서의 싸움을 이 스승이 복기해 보니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있었을 것 같더구나. 예를 들면 하수 여러 명을 한꺼번에 쓰러트려야 한다거나 할 경우.”
정확했다.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랬어요.”
“냉정히 말해 태을단선검은 분명 신공절학이나 대성하기 전까지는 태극혜검에 비해 두 수는 아래에 있단다. 물론 현원전단신공과 오행신공과는 궁합이 아주 잘 맞긴 하나, 문제는 태을단선검 자체가 대성을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또한 그동안은 대인전 무공으로밖에 활용하기 어렵다는 것이지.”
의외였다.
보통은 덮어 놓고 본문의 무공은 무조건 천하제일이라 하지 않던가.
대성을 하기 전이라는 전제가 들어갔긴 하나, 이렇게 냉정히 말씀하실 줄은 몰랐던 터.
진천희는 고개만 끄덕였다.
“물론 이것은 어느 검법이나 마찬가지. 다인전에서는 검법보다는 다른 종류의 무공이 더 위력적이란다.”
“다른 종류의 무공이라고 하심은……?”
“이를테면 암기와 독이 있지.”
“암기와 독이라면 사천당가가 전문인 그것이군요. 그리고 혈생 님께 제가 배우고 있는.”
“그래. 하지만 암기를 피하고 막는 것에 집중되다 보니 이런 상황에서 네가 직접 쓰고 던지는 일은 거의 없었지.”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제자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제갈린.
“그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다. 편법(채찍), 이도류, 궁법…….”
일대일이 아닌 난전 속에서 하수들을 한 번에 제압하는 일.
확실히 스승님의 예시에 비하면 검은 비무에 특화된 병기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 이 스승이 네게 권하는 것은 암기공이다. 사실 암기라기보다는 지법(指法)이라고 볼 수 있지만. 네 수준이라면 조금만 익혀도 능히 사용할 수 있을 게다.”
지법.
욕심이 생겼다.
“어떤 무공인가요?”
“탄지천통(彈脂天通).”
처음 들어 본 무공.
제갈린이 크고 마디가 굵은 손가락을 하나씩 들어 까딱였다.
“이건 과거 전진교에서 유래한 무공이다. 지금은 사라진 전진교는 도가의 문파들 중에서도 독특하고 강력한 무공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 곳이지. 이들의 무학과 도경은 무당파와 화산파에도 큰 영향을 주었는데, 과거 어떤 이유에서인지 종적이 사라졌다.”
그 말에 진천희도 기억을 꺼낼 수 있었다.
전진교!
소설에서는 혈선교와 충돌해서 궤멸되었던 걸로 나오는 문파다.
‘그런 전진의 무공이라니…….’
그게 이런 식으로 연결될 줄이야.
“과거 이 스승이 전진교의 생존자를 구한 적이 있단다. 그는 지병과 심마가 악화되어 끝내 사망했지만 그래도 이 스승의 치료로 수년은 더 연명할 수 있었지.”
홀로 남은 생존자인가.
그가 느꼈을 절망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 시절 은혜를 갚는다며 한 가지 무공을 가르쳐 주었으니 그것이 바로 이 탄지천통. 지법이자 암기공인 이 무공의 위력은 신공절학이라고 할 만하지.”
다른 이도 아니고 제갈린의 입에서 신공절학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그만한 위력이 있다는 뜻.
“그걸 오늘부터 가르쳐 주겠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진천희는 두말하지 않고 받았다.
자고로 스승이 버스를 태워 주면 제자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올라타야 하는 법!
* * *
연무장.
제갈린은 우선 진천희가 알기 쉽게 시범을 보였다.
“처음은 이 쇠구슬로 연습을 하면 될 거란다.”
엄지 손톱만 한 쇠구슬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는 튕겨 냈다.
타탕!
그러자 십 장(약 30m) 밖에 있는 과녁이 너무나도 쉽게 관통되었다.
놀라운 것은 내공이 전혀 없이 그저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도 나무판에 구멍을 뚫었다는 것이었다.
‘권총이네. 무슨…….’
제갈린이 말했다.
“처음은 십 장으로 시작하자꾸나. 그 후, 백 장(약 300m)까지 해내면 첫 번째 과제가 끝난단다.”
진천희는 자못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제자가 흐뭇한 제갈린.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탄지천통은 극성에 이르면 하늘을 뚫는다고 하였단다. 그 기본은 이러하다. 두 손가락에 기운을 두르고, 손가락 사이에서 기운을 작게 폭발시키면서 철탄을 튕겨 내는 것이다.”
“스승님께서는 방금 기를 두르지 않고 쏘는 것을 보았는데요?”
그 말에 제갈린은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건 내가 심무절기에 다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란다. 순수하게 완력만으로 했다가는 십 장은커녕 오 장(약 15m)도 힘들 테니 그건 따라 하지 말렴.”
끄덕끄덕.
“제대로 격발한 탄지천통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가기 때문에 흡사 쇠뇌(석궁)와도 같단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기본.”
“그러면 그다음은요?”
“탄지, 즉 손가락으로 쏘는 순간 철탄 그 자체에도 기를 불어 넣게 된다면 관통력과 속도는 더욱 배가된다. 거기에 검사지경에 이른 자라면 검사(劍絲)를 철탄에 둘러 이런 일도 가능하단다.”
스승님은 두 번째 철탄을 가볍게 쥐었다.
그저 아침밥을 먹듯 편안한 자세로 손가락을 튕겼다.
타탕-!
철탄이 맑고 청아한 소리와 함께 두 번째 표적을 때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에 비해 다섯 배는 넘는 크기의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표적에서 백 미터는 뒤에 있는 나무가 갑자기 굉음을 내며 쓰러지고, 그 뒤의 나무도 쓰러지고, 그 뒤의 나무도 같이 쓰러졌다.
콰과과과광-
관통은 끝나지 않았다.
철탄은 계속해서 주변을 갈아 먹으며 전진했다.
“음, 힘 조절을 조금 잘못했구나. 네게 보여 주려는 건 더 약한 수준이었는데.”
“…….”
“여하간 철탄에 회전력이 생겨 주변을 갈아 버리며 전진하기 시작한단다. 관통력과 파괴력이 같이 증가하는 게지.”
……무시무시했다.
‘아니, 분명 스승님은 하수 여럿을 제압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준다 하셨는데…….’
진천희가 기대했던 것은 경량 매그넘 정도의 절세무공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하수 여럿을 제압하는 데 충분했으니까.
그런데 스승님이 들고 온 것은 알라의 요술봉.
대전차도 한 방에 신의 곁으로 보내준다는 로켓포를 들고 오셨다.
‘아니…… 시X…….’
격하게 흔들리는 제자의 동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제갈린은 한마디 덧붙였다.
“약하게 하면 원거리에서 점혈을 하기에도 좋단다.”
원거리 점혈이라는 말에 진천희의 동공 지진이 멈추었다.
“아, 그리고 좀 더 수련한다면……”
스승님이 명랑하게 탄지천통을 다시 쏘셨다.
콰과과광!
과녁이 폭발하며 사라졌다.
그리고, 그 뒤쪽에서 쓰러진 나무들도 일제히 폭발했다.
관통과 폭발이 계속 이어졌다.
진천희는 먼 무협 세계에서 알라의 분노를 영접했다.
“철탄 안에 내기를 불어넣되, 폭발하게 만드는 원리란다. 그 위력은 진천뢰(강호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폭탄. 위력은 강기가 터진 것과 비등하며 현대로 치면 TNT급)의 절반 정도지만. 그것만으로도 하수들을 쓸어버리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단다.”
그 말에 진천희는 스승님의 말에 숨겨진 뜻을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진천뢰는 관아에서 엄격히 관리하니 사용하면 관부가 군을 이끌고 토벌하러 오겠지만 내 손가락으로 진천뢰를 쓰는 건 괜찮겠구나.’
그러니까 스승님은 하수가 나타나면 고민하지 말고 알라의 요술봉을 쏘라고 말씀하고 계셨다.
‘내 손가락에 RPG-7이 깃드는 건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그냥 쓰는 것을 직탄, 회전의 묘리를 가미한 것을 회탄, 연속으로 쏘아내는 것을 연탄, 검사를 섞어 분쇄하는 것을 쇄탄, 그리고 이렇게 터트리는 것을 폭탄이라고 부른단다.”
진천희는 되뇌었다.
이 세계는 인간이 물 위를 달리고 도검으로 바위를 썰어 버리는 세계.
어쩌면 호신용으로 이런 것을 배우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고.
“다섯 초식이 전부인 건가요?”
“그래. 단순하고 강하지. 대성하게 되면 많은 응용을 할 수 있을 거란다.”
진천희는 잠시 자신의 스승님이 정말 제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절절이 깨달았다.
“이 스승이 걱정이 심해 너를 고생시키는 건 아닌가 모르겠구나. 희야.”
제자에게 경량 매그넘이 아닌 알라의 요술봉을 쥐여 주며 제갈린이 상냥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스승님. 열심히 배울게요!”
“그리 말하니 이 스승도 기쁘구나.”
제갈린이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가 너무 빛나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