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01
제 201화
어느덧 일행은 갈림길에서 황보세가와 잠시 갈라졌다.
그쪽은 조금 떨어져 있는 별채에서 쉬는 모양.
그리고 좀 더 길을 따라 걸으니 그곳에 일행들이 쉴 별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추나당주 주단하가 말했다.
“호오, 지난번보다 넓은 곳이군요.”
상당히 넓고 화려한 별채.
침구당주 사마병이 답했다.
“그만큼 잘 부탁한다는 의미 같은데… 이 촌부는 벌써부터 걱정이 되오. 작년 같은 사태를 다시 겪을지…….”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도망치고 싶소.”
그 말에 의각원들 모두가 심해보다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진천희는 생각했다.
‘이제는 그 맷돌에 나도 갈리게 되었구나.’
그것도 잠시, 머리를 쥐어뜯으며 다시 생각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어차피 빠르든 늦든 닥칠 일! 그, 그래. 무림맹의 멋진 천장을 다시 떠올리는 거야. 나는 무협 세계에 왔다! 무림맹에 왔다!’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ER(Emergency Room : 응급실)을 하고 있다!
어느 나라든 ER은 지옥이다.
한국의 ER도 지옥이다.
무림의 ER은 과연 어떨까.
‘허허허, 후기지수라 젊은 애들이 주로 실려 오겠네.’
진천희는 잠시 다시 나는 무협 세계에 왔고 여기는 무림맹이고 지금 로망을 즐기고 있다고 자기 최면을 걸었으나 하는 짓은 똑같다는 현실에 3초간 좌절했다.
그렇게 안에서 짐을 풀고 있는데 백린의각 소속 무인이 들어왔다.
“소각주님, 누가 찾아왔는데요?”
무슨 일인가 싶어 밖으로 나오니 낯선 소저가 서 있었다.
‘어라?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이다.
소저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가가! 오랜만에 뵈어요. 만나지 않았던 동안에도 여기저기에서 다치고 돌아다녔다고 하더군요. 저로서는 어찌나 걱정이 되던지.”
흡사 정인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말투.
‘뭐, 뭐야?’
다급하게 현원전단신공까지 돌려 가며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기억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진천희에게 다가오더니 팔짱을 끼는 게 아닌가.
화급히 팔을 치우려는데 손아귀 힘이 어찌나 강한지 꿈쩍을 하지 않는다.
내공이라도 써야 하나 망설이는데 상대가 배를 잡고 웃었다.
“하하하, 얼어 있는 거 봐~”
“누, 누구십니까?”
상대는 진천희에게 팔짱을 낀 채로 수줍은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다른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찰나의 순간.
소녀의 얼굴이 사라지더니 미청년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혹적이고 장난기 서린 눈매, 화려한 이목구비가 흡사 귀공자와 같았다.
새빨간 입술은 피라도 삼킨 것처럼 붉었고. 마디마디가 굵은 단단한 손아귀는 여전했다.
“사마현……?”
“표정 걸작이다. 형~ 와, 이렇게 놀랄 줄은 몰랐네~”
어릴 때의 얼굴이 남아 있어 다행히 알아볼 수 있었다.
“방금 그거 뭐야?”
“근골역용변형술. 근육과 뼈의 위치를 바꾸는 무공이야. 이걸 이용하면…….”
사마현이 변검을 하듯 소매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것도 찰나.
그 사이에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났다. 이번에도 선이 가는 소녀의 얼굴.
그러나 아까의 그 얼굴과는 또 다른 사람의 얼굴이었다.
“짠! 이렇게 바로 외모를 어느 정도 바꿀 수 있지~”
‘헐, 이거 소설에서나 보던 거잖아. 대단하네…….’
산 사람 얼굴 가죽을 뜯어서 가면으로 쓰는 건 다행히 안 하지만 원하는 모습으로 언제든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은 똑같았다.
거기다 이건 재료도 없이 그저 골격과 근육을 바꿔서 만드는 거니 더욱 고난이도 기술이라 할 수 있었다.
그때 침구당주님이 무슨 일인가 싶어 얼굴을 내미신다.
아니나 다를까.
사마현이 소녀의 얼굴로 ‘가가~ 소녀 보고 싶었습니다~’라며 아양을 떤다.
순식간에 침구당주님의 낯빛이 허옇게 질렸고.
진천희는 그런 사마현의 뒷덜미를 잡을까 하다가 이놈이 팔짱을 끼고 안 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미친 악력…….’
안 되겠다.
“저 잠시 바람만 쐬고 오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후다닥 한 팔에 사마현을 낀 채로 달렸다.
“조…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소각주님…….”
‘망할.’
이제 오해는 더 커지리라.
그렇지 않아도 놀라서 수군대는 의각원들 몇을 곁눈질로 보았다.
하지만 어쨌든 이 망할 동생 놈과 회포(?)는 풀어야 했다.
* * *
진천희는 최대한 인적이 적은 곳에 도착해 사마현과 단둘이 되었다.
“현아. 얼굴 바꾸자.”
“형이 불편하다면야~”
버틸 줄 알았는데 그제야 순순히 원래 얼굴로 돌아오는 게 아닌가.
“형, 화났어? 미안해. 응?”
마치 죄지은 어린아이처럼 진지하게 손을 모으고 사과를 하는 게 아닌가.
‘에효. 장난이 과하긴 해도 아직 그래도 어린애인데.’
진천희가 말했다.
“다시는 그런 장난 안 치는 거다.”
“어! 절대 안 칠게~ 그리고 반응을 보니까 형 정인은 아직 없나 보다.”
“왜?”
“있었으면 이 정도로는 안 넘어갔겠지~”
여우다.
“누가 사파 아니랄까 봐. 하여간.”
그 말에 사마현이 엄숙하게 말했다.
“정파는 돈 못 벌어, 형. 돈 제대로 벌려면 사파가 최고야.”
“뭐?”
“나 밀수 쪽 들어갔어.”
쿨럭.
진천희는 그만 기침을 내뱉고 말했다.
“밀수?”
“응. 힘이야 내가 갈고닦으면 되는 거고, 그다음은 이게 최고지.”
그리 말하며 엄지와 검지를 구부려 돈을 만들어냈다.
“일단 성도로 가서 차나 한잔 하자.”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겨 다실로 향했다.
무림맹은 문파가 모이는 곳. 자연히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할 일도 많다.
무림맹의 다실은 모두 작은 방으로 만들어져 있고 말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일종의 진식 형태로 만들어졌다.
둘은 용정차를 시키고 다과 몇 점을 더 주문했다.
사마현과 대화하며 진천희는 용정차가 무슨 맛인지 느껴지질 않았다.
‘원작에서 사마현은 오살지파에서 자객의 일을 했었는데…….’
그것을 진천희가 막아 냈고.
사마현은 원하는 곳을 골라 갈 수 있는 특혜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밀수, 밀매.
흑점을 가지고 있는 금혈방.
황금왕이 수장으로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 소문대로 사람 고기도 파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안 팔더라. 보고 싶었는데 아쉬워~”
원작처럼 모든 것을 태운 허무주의는 사라졌으나 맛이 좀 가 있는 건 여전하다.
‘금혈방은 피에 금이 흐른다는 지독한 곳이지.’
그야말로 돈에 환장한 사파들이 모인 곳으로 단순 밀수업뿐만 아니라 고리대금이나 도박.
심지어는 좀 이상한 개념이지만 은행의 일도 일부 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검은 돈이 모이는 곳으로, 추측하건대 무림맹의 일 년 예산에 맞먹는 돈이 금혈방을 통해 고작 한 계절 안에 흐르고 있다는 풍문도 있다.
금혈방의 수장인 황금왕은 겉으로 나서는 일은 극히 드무나 그가 움직이면 강호의 물가가 휘청인다는 소문이 돌 정도.
‘원작에서도 앞으로 나서는 일은 없었지.’
돈이 모인다 싶은 곳이면 언제나 흑점이 있다.
흑점은 통상적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팔며, 그중에는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정보도 있을 뿐더러.
심지어 강호에서 소실되었다 알려진 비급도 돈만 주면 팔기도 했다.
‘사마현과 여하륜이 싸울 때도 흑점은 중립이었어.’
하오문은 여러 사파의 공동체.
여기서 황금왕은 중립을 선언했고.
단, 사마현을 상대로 할 때는 3할을 저렴하게 할인해 주기로 했다.
원작 사마현의 돌아 버린 상태를 생각했을 때 이게 무슨 미친 소리냐 싶겠으나 하오문주였던 사마현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금혈방은 하오문의 자금줄이기도 했기 때문.
어떤 일이든 돈이 필요했고.
금혈방은 여러 사파도들에게 돈을 대출하거나 사업체에 일부 지분이 있거나, 또는 관리를 매수하는 자금을 대주기도 했다.
원작 사마현이라면 어쩌면 뒤에서 황금왕을 죽이기 위해 계획을 짰을지도 모르겠으나 그가 사라지면 하오문을 넘어 사파 전체가 흔들리는 것은 기정사실.
천마 여하륜도 이 흑점을 여러 번 이용했다.
여하륜은 하오문주의 대적자이기 때문에 5할 비싼 가격으로 사야 했다.
황금왕은 미친 새끼다.
당시 수많은 사파와 마교도들이 입 모아 말했다.
원작을 읽어본바 사파 VS 마교 싸움의 승자는 금혈방.
잃은 수뇌부 하나 없이 돈만 뜯어 갔다.
그랬다. 자본주의는 강호에도 있었다.
심지어 이 동네는 인권이 없는 곳이니 더욱 철저하다 할 수 있었다.
‘그 금혈방에 어린 사마현이 들어가네.’
누구의 조언도 없이 어린아이가 금혈방을 골랐다?
‘잔머리 하나는 정말 오지게 좋아.’
보통 강호 밭을 험하게 굴러 온 아이라면 그런 곳보다 무력을 앞세우는 지파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건 당연지사.
심지어 이미 무공을 익혔다면 조금이라도 더 강한 곳에 들어가 고수가 되고자 하는 건 마치 본능과도 같다.
그런 상황에서 부득불 금혈방에 돈 벌러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보통 놈이 아니다.
“누구에게 사사받고 있어?”
진천희의 말에 사마현이 눈꺼풀을 내리깔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황금왕~”
쿨럭!
진천희는 먹던 차를 뱉었다.
“화, 황금왕? 내가 아는 그……?”
“응. 왜인지 나보고 마음에 든다고 하시더라. 어릴 때 자기 같다고 귀엽대~”
“…….”
“형? 애고. 사레 들렸나 보다.”
그리 말하며 손수건을 꺼냈다.
‘최고급 비단에 자수가… 잠깐만 황금… 실이냐? 이거?’
윤이 나는 비단은 과거 주왕께서 입으신, 황족이나 입는다는 비단 장포의 그 광택과 똑같다.
거기다 그 위를 덮은 자수는 진짜 금실로 놓아져 있다.
“아니, 이걸로 어떻게 입을 닦아?”
이 기분. 전생에 모 명품 손수건 가격을 들었을 때와 같았다.
손수건이 아니라 손수건 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분으로 어떻게 더러운 타액을 닦는답니까.
진천희는 소매로 입을 쓱 닦았다.
“에이, 형. 더럽게. 이런 건 많아.”
“그래도 이걸 어떻게 쓰냐?”
“형은 내 은인인데 아까울 게 뭐 있어. 필요하면 가져.”
어쩐지 사마현이 그동안 선물로 보낸 것들이 하나같이 비싸고 출처를 알 수 없더니만…….
“형, 이거 안 받으면 나 이걸로 탁자 닦는다.”
그리 말하며 사마현은 진천희가 뱉은 찻물을 진짜로 닦으려고 했다.
“미친, 알았으니까 줘!”
“진작 말하지~”
떨리는 손으로 손수건을 받았다.
가까이 보니 더 비싸 보였다.
‘아니, 고작 더러운 거 닦는 천조가리를 이렇게, 이렇게 호사스럽게 만들 필요가 있나……? 차라리 저렴한 것을 여러 장 들고 다니면서 자주 빠는 것이…….’
생각해 보니 사마현은 이런 손수건도 많이 가지고 있을 것 같긴 했다.
황금왕의 제자 아닌가.
“이거 손수건에 내 이름이 적혀 있……다?”
“응. 사실 형 주려고 준비한 거야. 백잠사로 만들었으니까.”
“뭐?”
“백잠사로 만들었다고.”
“뭐라……고?”
“거 천잠사도 아닌데 대체 왜 그래?”
백잠(百蠶)은 일단 특별한 누에이긴 해도 천잠(天蠶)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키우는 것 자체가 극히 어려운 데다가 재료에 준영약이 들어 있다 보니 돈이 엄청나게 깨진다.
이 녀석이 뱉은 실은 도검불침으로.
검기가 실린 공격까지는 막아내지는 못해도 일반적인 칼로는 절대 자를 수가 없었다.
무게는 깃털처럼 가볍고, 얼마나 얇은지 손 반대편 촉감까지 느껴질 정도.
“왜……. 대체 이런 걸로 고작 손수건을 만드는 이유가 뭐니.”
진천희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재미있잖아~?”
갑부 놈들의 심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