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08
제 208화
이렇게 된 거 진천희는 행색을 가볍게 하고 삿갓을 써서 얼굴을 가렸다.
사마현이 소개한 맛집은 무림맹답게 정파 소속 맛집…… 같아 보이나 사마현에게 살갑게 인사하는 것을 보아하니 가게 주인과 어떤 식으로든 연이 있어 보였다.
“여기는 게살 탕수가 맛있어. 형.”
“게살 탕수? 그런 건 안 파는 것 같은데?”
벽에는 무슨 음식을 파는지 걸려 있었으나 게살 탕수라는 음식은 전혀 적혀 있지 않았고.
“점소이, 게살 탕수 큰 접시!”
사마현은 태연히 점소이를 불러 게살 탕수를 시켰다.
“아! 알겠습니다요! 그렇지 않아도 대협께서 원하시면 얼마든지 대접해 드리라고 주인께서 언질을 주셨습지요.”
점소이는 익숙한 듯 포권을 하고 주문을 받았다.
“소수의 단골은 먹을 수 있어.”
“자주 오나 봐?”
“아니. 무림맹인데 내가 어떻게 자주 오겠어~”
그러면 대체 어떻게 시킨 걸까. 진천희의 질문에 사마현이 답했다.
“별거 아니야. 말했잖아. 금혈방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고 있다고. 가족들과 함께 염전에 끌려갈 처지였는데 살아나셨거든. 실력이 좋아서 금방 갚더라~ 금혈방도 이쪽이 채산이 좋으니 아주 행복하지.”
“잘됐다.”
“빚 다 갚고 다시 금혈방에 돈을 빌려서 지금의 객잔을 차린 거야. 차린 지 얼마 안 되어서 입소문이 퍼지지 않았지만 뭐, 손님 붐비는 건 금방이겠지.”
그렇게 갚고도 또 빌릴 생각을 다 했다 싶었다.
사마현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답했다.
“형. 별세계라도 살다 온 거야? 빚쟁이를 안 때리고, 납치 안 하고, 염전에 안 팔고 돈 갚게 해주는 곳이 우리 말고 어디 있다고 그래.”
아차차, 여기는 무림이지.
진천희는 바로 차를 들이켰다.
“이자는 그대로?”
“1할 정도 깎아 줬어. 우수한 고객님이시고 원금을 꽤 크게 불렀거든. 그래. 큰 사업에는 큰 모험이 필요한 법이지. 우리 고객님 응원해~”
……사마현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게 아닐까.
현대 지구에 태어날 애가 이런 무협 세계에 태어나서 시산혈해☆결코지옥 같은 사태를 일으켰던 게 아닐까.
어쩌면 지구에 태어났으면 타고난 끼를 이용해 어딘가의 아이돌이나 배우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적당한 때에 은퇴해서 사이비 종교나 아님 다단계를 창시하여…….
‘그건 그거대로 문제로군.’
어쨌든 남들처럼 살 놈은 아니다.
“게살 탕수 나왔습지요! 덤으로 소룡포도 곁들였습니다. 대협!”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점소이가 음식을 내려놓았다.
생각 이상으로 맛있는 향이 나서 눈이 휘둥그레질 지경.
“이거 게살 일일이 다 까서 탕수육으로 만든 거야?”
“손이 많이 가. 그래서 정식으로는 안 파는 거고.”
바삭-
입에 넣으니 고소하고 바삭한 외피가 느껴졌다.
한번 씹으니 대게 다리살과 육즙이 한꺼번에 폭발하듯 흘러나왔다.
탕수 특유의 달콤한 소스도 한몫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
진천희는 그 순간 더는 말이 없었다. 한 점이라도 더 먹기 위해 용맹하게 젓가락을 놀릴 뿐.
형이 만족하니 사마현도 만족스러웠다.
“형 입맛에 맞을 줄 알았어.”
그리 말하고는 점소이에게 두 접시 더 달라고 주문했다.
진천희가 먹는 속도를 보니 두 접시도 모자랄 것 같았지만 그 정도 먹으면 다른 것도 먹고 싶을 테니 그때 또 다른 가게로 데려가면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때 우당탕! 큰 소리가 울렸다.
“음?”
진천희가 게살 탕수를 입에 문 채로 시선을 돌리니 사람의 몸뚱이가 식탁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게 아닌가?
현원전단신공 사고 가속!
밥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하에 뇌를 활성화시켰다.
평소보다 과한 감이 없지 않았으나 어쨌거나 밥을, 밥을 지켜야 하니!
사고가 활성화되는 것과 동시에 날아오는 사람이 한없이 느리게 느껴졌다.
진천희는 사람의 뒤통수를 붙잡아 태청산수의 초식으로 한 번 회전시켰다.
게살에 대한 집념이 담긴 태극의 묘리.
그리고 그렇게 한 차례 회전시킨 인간을 옆으로 처박았다.
콰왕!
“아니,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이게 무슨……!”
식사 중에 방해받은 것만 벌써 세 번.
이쯤 되니 무림맹에는 밥 먹을 때 시비 털리는 수맥이라도 흐르는 게 아닌가 화가 날 지경이다.
그런데 누구도 진천희에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문파의 원수들이다! 쓰러뜨려라!”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아주 잘 만났구나! 적월파!”
두 패거리의 후기지수들이 난투극을 벌이고 있었다.
각자 서로 칼과 도, 심지어 도끼도 꺼내서 싸우고 있는 게 아닌가.
‘무림의 은원…인가.’
이런 오픈한 지도 얼마 안 된 작은 객잔에서도 은원이 터질 일인가.
심지어 살수도 섞어서 날리는 폼이 서로에게 진심이었다.
점소이는 식탁 밑에 쭈그려서 ‘아이고, 대협들. 살려주십시오!’를 외치고, 다른 이들은 슬금슬금 물러났다.
객잔 주인은 나오지도 않는다.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니고 잘못 나왔다가 괜히 눈먼 칼에 휩쓸리면 아무도 책임지지 못하기 때문.
‘그치, 무협 영화 보면 꼭 객잔이 이렇게 박살이 나더라.’
고수들의 일격에 빨간 탁자가 터지듯 박살 나는 게 참 멋있었다.
“하, 현아. 내가 무림은 좋아하는데 무림인은 안 좋아해.”
“오~ 그게 무슨 소리야. 형?”
“잘 생각해 봐. 쟤들이 저렇게 싸우고 다치면 어디로 달려올 것 같니. 아니…… 보니까 이미 많이들 다쳤네.”
치료해야 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었다면 좀 더 낭만적으로 보였을까.
사마현은 일순 안타까운 표정으로 진천희를 보더니 이윽고 크고 단단한 손을 꺼내며 히죽 웃었다.
“죽으면 치료할 필요 없지, 형?”
형의 과로를 막기 위해 다 죽인다는 뜻인가.
‘아무리 신의라고 해도 죽은 놈은 못 살리지. 맞긴 맞는데…….’
인간의 도리를 아주 좀 많이 넘은 게 문제다.
“그냥 넌 가만히 있어라. 제발.”
그 순간, 어떤 칼 하나가 원수의 미간을 향해 내리꽂힌다.
이대로 못 피하면 죽고, 피하더라도 어깨에 큰 부상을 당해 팔을 못 쓰는 기로!
“……!”
놀라서 모두가 눈을 홉뜨는 것과 동시에 진천희는 곧바로 손가락에 기를 담아 가볍게 튕겼다.
탄지천통.
진천희식 변형 직탄(直彈).
유유기탄(愉愉氣彈)–!
풍한기를 담은 기탄이 그대로 손끝에서 폭발하듯 날아가 칼을 정확히 맞췄다.
타탕-!
흡사 총이라도 맞은 듯 철로 만든 칼이 부러졌다.
칼이 부러지는 소리가 무척 커서 모두의 움직임이 일순 멈춘다.
사마현의 눈이 빛났다.
“와…… 형, 쩌는데? 그거 무슨 무공이야?”
“전진교의 탄지천통.”
진천희는 그렇게만 짧게 답하고는 상대를 주시했다.
이 게살 탕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 객잔에 있는 모든 칼을 부러뜨릴 생각이었으니까.
칼이 부러진 무인은 흥분하는 대신 부러진 칼을 칼집에 넣었다.
그러고는 진천희를 향해 포권을 해 보였다.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저는 적월파의 하영청이라고 합니다. 어느 고인께서 이곳에 오셨습니까?”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대충 아무 이름이나 대고 빠져나올까.
아니면 상관하지 말라고 말하고 남은 게살 탕수를 마저 먹을까.
그러나 이미 다친 자들이 눈에 들어온 게 문제였다.
‘쯧. 어쩔 수 없나.’
진천희는 삿갓을 벗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했습니다. 살수까지 날리시는 건 과한 것 같더군요. 거기다 여기는 객잔, 공공장소입니다. 다른 분들도 있고, 식사하는데 이렇게 하시는 건 옳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게살 탕수.
내 게살 탕수…….
의원의 사명이 뭐라고 진천희는 그 말을 삼키며 말했다.
적월파의 하영청은 흠칫 놀랐다.
‘멈춰 달라.’, ‘그만해라.’, ‘이게 무슨 짓이냐.’, 이런 말도 없이 그냥 냅다 칼을 부러뜨리기에 성격 더러운 괴짜 고수인 줄 알았더니 웬 젊은 미청년이 이런 상식적인 말을 할 줄이야!
상대의 성격을 도무지 짐작하기가 어려웠으나 아무튼 상대는 고수.
최대한 공손히 답하는 게 맞겠다 싶었다.
“실례를 끼쳐 송구합니다. 귀하의 존성대명을 가르쳐주실 수 있으신지…….”
“백린의각의 진천희라고 합니다.”
그 말에 양쪽 모두 놀라서 소리쳤다.
“소백룡 진천희!”
“백린의각의 소각주?”
“그런데 개랑 매는 어디 갔대?”
그러게. 어디 갔을까…….
특식까지 팔아서 걔들 두고 온 보람은 어디 갔을까.
눈앞의 미청년은 왜인지 약간 영혼을 놓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흡사 세상풍파를 다 겪은 노인과도 같은 모습.
진천희는 한숨을 한 번 쉬었다. 그러고는 모든 것을 잊기로 했는지 싸움의 현장으로 다가갔다.
“이왕 끼어든 김에 잠시 환자들을 좀 보겠습니다.”
“환자? 그게 무슨…….”
진천희는 답하기 전에 우선 배에 창상이 난 환자를 살폈다.
점혈로 재빨리 지혈하고는 오행진기로 진기진맥을 했다.
‘이 정도면…… 괜찮군.’
“오오!”
진천희의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에 모두가 놀랐다.
“과연 백린의각의 후계자!”
거기다가 놀랄 건 하나 더 있었다.
환자를 포함한 무인들은 동시에 생각했다.
‘왜일까. 어째서 의원의 점혈에서 기백이 느껴지는 것인가.’
이걸로 환자가 아니라 원수의 급소라도 찍어 누를 것 같은 기묘한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진천희는 곧바로 백린의각에서 지어 놓은 임시 응급실로 향하라고 했다.
용봉지회 전이라 아직 정식으로 환자를 받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 경상이면 그리 처치가 어렵지 않은 데다 중의원 실습용으로도 쓸 만했다.
‘하…… 서로 칼질하지 말고 곱게 살아 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이다음 사람은… 골절인가.’
골절. 다행히 깔끔하게 한 번에 부러진 상태.
“움직이지 마세요. 괜히 움직이다가 잘못되면 더 고생하니까.”
곧바로 도수정복을 하고 부러진 책상 다리를 이용해 부목을 댔다.
“아악!”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응급처치가 마무리도 안 됐는데 벌떡 일어나 칼부터 챙기려고 하다니.
‘과연 대단하다. 천상 무인이야. 용봉지회 시작도 전인데 의원 말을 전혀 안 듣는구나……?’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건 게임으로 치면 선공개 데모 버전이라 할 수 있고.
본 게임에 들어가면 어찌 될 것인지 벌써부터 살이 떨려 온다.
그때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당장 싸움을 그만두시오!”
무림맹의 무사들이었다.
신고를 받고 이제야 달려온 모양이었다.
“헛……?”
한창 격하게 싸우고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깔끔한 객잔 내부와 응급처치를 한 환자 둘.
왜인지 숙연해져 있는 분위기까지.
무사들은 당황하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