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17
제 217화
장로급 연배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금의 제갈린이 적응이 안 되기는 이쪽도 매한가지.
‘그래도 이제는 사람 같아 보이는 면도 있긴 한…….’
“그래서 맹주.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갈린의 눈동자에서 스산한 빛이 떠오른다. 발음을 내뱉는 음색이 마치 강철이 얼음에 부딪치는 소리와도 같았기에.
‘……사람이 아닌 건 여전하군.’
창왕은 그리 결론을 내릴 수밖에.
“혈선교의 꼬리가 조금 잡혔다고 하더이다. 그들을 끌어들여 일망타진하고 싶은데…… 혈선교의 전력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으니…….”
창왕은 그리 말하며 말꼬리를 흘렸다.
제갈린은 얼음 같은 눈동자를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서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고 답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으나.
“그래서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백린의선은 자격이 있는 이 중 하나였다.
“권제와 막상막하였다는 이가 스스로 소개하기를 혈선십천군, 즉 금천군이라고 했다면, 권제와 같은 이제(二帝) 수준의 무인이 최소 열은 있다는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네.”
만약 정말 그 수가 열이라면.
어쩌면 그 위에 무언가가 더 있는 상황이라면…….
맹주는 침음을 삼켰다. 손에 수없이 많은 피와 진흙을 묻혀 온 자였다.
수단은 더럽다 할지라도 그 목표는 언제나 선명했던 이였다.
흡사 그의 창처럼.
그러나 이번만큼은 창은 어디도 찌르지 못하고.
어디를 찔러야 할지조차도 갈피를 잡지 못하여.
“책사들의 계산에 의하면 그들이 직접 나선다면 무림맹과 사도련이 힘을 합한다 하여도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라 합니다. 우선 나오고 있는 정황들이 모두 진실이라는 전제하에서의 말입니다만.”
“…….”
제갈린은 답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제갈린은 부채를 탁, 접었다.
“그 정황 증거들이 사실이라면 어째서 그들이 나서지 않는다고 보십니까.”
이것은 시험이다. 창왕은 오랜만에 그것을 느꼈다.
제갈가는 사람을 고른다.
공명이 유비를 골랐듯, 이자들은 자신의 두뇌를 나누어 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의 자격을 나눈다.
빌어먹게도 오만한 놈들.
그로 인해 어떤 파국이 밀려온다 할지라도 그 오만함은 변함이 없으니.
“제국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 짚고 있지요. 황족들의 이능 역시 강력하지만 제국에 충성하는 무인들의 수는 사실 무림맹과 사도련을 합친 것보다 많기 때문이라 보고 있습니다.”
……굴욕적이나 생각하고 있는 패를 내려놓을 수밖에.
제갈린이 순순히 대답했다.
“절대 고수의 수는 적으나 중간층 무인들의 숫자는 모래알처럼 많으니까요. 또한 진천뢰부터 수많은 화기들까지 포진하고 있으니 제아무리 ‘그들’이라 하더라도 제국의 심기를 거스르기는 어려운 법이지요.”
첫 번째 시험은 통과한 것인가. 처음 놓은 포석에 응답을 하듯 제갈린은 자신의 수 하나를 꺼내주었다.
“그래서 맹에 무슨 도움이 필요한 겁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이 맞다면 황궁도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관과 무림은 간섭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죽은 양민의 수를 보십시오.”
창왕이 내놓은 수는 난전.
아예 판 자체를 진흙탕으로 만든 후, 사람들을 살리겠다는 수였다.
제갈린은 생각했다.
‘책사 독고선의 냄새가 나는군.’
관이 나선다면 조금 더 쉬워질 수도 있다.
관아는 양민들을 관리할 책임이 있고, 조세제도를 통해 실종된 양민이 많은 지역을 자연히 알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한번 관이 끼어들게 된다면.
그들이 과연 왔던 대로 돌아가게 될 것인가.
아니면 온 김에 무림에도 고삐를 채울 것인가.
빠져나갈 자신이 있기에 독고선이 그리 작전을 짰겠지마는.
제갈린의 눈은 여전히 차갑게 침잠해 있어 속을 알기 어려웠다.
“판에 한 명이라도 더 끼어들게 하겠다는 것이로군요. 나쁘지 않은 수입니다만…… 저라면 좀 다른 수를 놓을 것 같습니다.”
맹주 뒤에 서 있던 독고선은 손에 힘이 들어간 상태로 제갈린을 바라보았다.
무림맹 군사직을 하며 가장 긴장되는 상대가 바로 백린의선, 제갈린.
제갈린은 계획을 수정시키기 전 나른한 눈으로 전각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자신의 소중한 제자와 그의 형제라 자칭하고 있는 부스러기들이 있었다.
그는 제자를 향해 작게 미소 짓고는 이윽고 시선을 돌려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온다.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牛刀割鷄).”
* * *
진천희는 기를 쓰고 막았다.
“일단 들어 봐 봐. 너도 위로 올라갈 거잖아. 그리고 사마현도 위로 올라갈 거고. 어차피 둘은 만나게 되어 있어!”
사마현이 잽싸게 말했다.
“형, ‘토너먼트’ 말하는 거지~?”
“……토너먼트? 그건 무슨 뜻이지. 형.”
대체 그 외래어는 또 어디서 주워들었을까.
사마현은 진천희가 하는 말, 단어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하는 모양이다.
여하륜이 자신의 가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형. 아무래도 저 종자랑 있던 시간이 길었나 보군.”
진천희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강호 놈들은 일단 열 받으면 칼질부터 하고 보는 종자들이었다.
대화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일단 누가 더 강한지 대 보고 결정할 때가 많았고.
덕분에 지금 이 순간도 이 용봉지회 ER 분점은 불타고 있지 않나!
“하륜아. 사마현은 내가 사마현의 동생을 치료해 주면서 생긴 인연이야. 사파에서 만난 동생이지. 많은 것을 도와주고 있단다. 그리고 사마현! 하륜이는 내 첫 의동생으로 내 목숨을 구해 주었다. 하륜이가 다치면 난 은혜를 갚을 길이 없어져!”
물론 진천희 본인도 여하륜을 세 번 구해 주었으나 그 이야기는 평화와 사랑, 그리고 응급실의 수호자 진 교수가 누락시켰다.
우선 여하륜은 검집에 손을 얹은 것이 당장에 발검(拔劍)할 기세이고, 사마현은 비록 웃는 낯이긴 하지만.
손마디를 우득거리는 것이 당장이라도 얼굴 가죽을 뜯을 것 같았다.
‘이야아…… 이렇게까지 사이 나쁠 일인가.’
평화롭고 사이좋고, 우애가 넘치는 무협지 강호 사형제 같은 건 동화 속에만 있는 것인가.
아니면 고르고 나니 다들 한성격 하는 새끼들만 모집이 되어 이렇게 된 것인가.
알 수는 없다. 진천희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둘 모두에게 너희들은 모두 소중한 사람이고, 필요한 존재고, ‘천하제일 의동생 선발 비무’는 차라리 연무장에서 하라는 메시지를 피력할 필요가 있다.
‘내가 이 짓까지는 안 하려 했건만…… 후, 어쩔 수 없나. 봉인을 풀 수밖에……!’
이러다가 진짜 둘 중 하나는 여기서 죽는다!
진 교수는 결국 무림 세계 마법의 단어를 꺼내 뾰로롱 흔들었다.
“설마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건 무서운 거야? 비겁하네. 둘 다.”
“…….”
3초간의 정적이 밀려왔다.
그리고 조용한 살기가 양쪽에서 동시에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 순간만큼은 둘 다 말문이 막혔다.
당연했다.
정정당당, 무서운 거임? 비겁함.
해X포터의 아브라X다브라에 필적하는 무림 세계 즉살 주문 세 개를 영창했으니 무인의 자아에 지진이 날 수밖에.
칼밥과 유교가 합쳐진 이 기묘한 무협 월드에서 이 주문은 매우 절대적이어서.
여기서 개싸움을 했다가는 쫄린 새끼가 되어 버린다.
쫄리지 않은 새끼가 되려면 절차를 밟아 비무장 위에서 싸워야 한다.
허나 판타지, 무협, 기타 신화 등등을 총망라해서 통하는 법칙이 있다.
이 세상에는 인과율 머시기가 있어 강력한 주문을 쓰면 그게 죄다 술자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알았어, 형. 형이 많이 곤란한 것 같네. 나는 착한 동생이니까 참아야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연무장에서 정정당당하게 비무하자~”
사마현의 말에 여하륜이 답했다. 낮은 목소리가 살기를 긁고 짐승이 되어 지나갔다.
“……둘.”
‘차라리 다음에 보면 죽인다고 해라. 그냥!’
진천희는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천우. 그래도 일단 천우는 여기 안 껴서 다행이다.’
문득 멀리 있는 무당파 쪽을 보는데 누군가가 이쪽을 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안력을 돋구니 그곳에는 천우가 있었다.
‘그래. 눈 좋은 아이가 이걸 못 봤을 리가 없지.’
눈 좋고, 속 깊고, 선한 녀석.
그 녀석이 진천희가 경기를 하는데 보지 않았을 리가 없고, 비무장을 내려가는데 그것을 못 봤을 리도 없다.
그저 자신이 이곳에 끼게 되면 형에게 부담이 가게 되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
그렇기에 인사도 참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미안하다.’
진천희의 눈짓에 천우는 가볍게 고개만 까딱였다.
자신은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뜻.
그래서 더 미안해졌다.
* * *
여하륜과 사마현은 무림판 ‘토너먼트’를 타고 올라가 끝을 보기로 했다.
여기서 끝이란 형이 응급실을 운영하며 수술적 요법을 사용해 철야로 살려야 하는 처치가 필요 없는! …즉살(卽殺)을 의미했다.
중간에 탈락하게 되면 그놈은 약한 새끼로 형제의 자격이 없는 셈 칠 것이다.
그리고 이놈들은 다행히 모르는 게 있다.
‘나도 안 떨어질 거야. 이놈들아.’
그랬다. 이놈들이 죽네 사네 할 동안 진천희는 미친 듯이 현원전단신공을 돌렸다.
지금 조가 짜인 상황을 보아하니 이놈들이 만나려면 그 전에 먼저 진천희를 만나게 되어 있다.
비록 진천희의 아바다X다브라가 그 인과율 머시기의 영향으로 큰 횡액으로 돌아올 예정이지만, 그것은 진천희의 것.
동생 놈들의 뚝배기를 사랑과 평화의 마취총(탄지천통)으로 한 번씩 쏴서 잠재워야 했다.
‘후, 얘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가 문제군.’
영약은 아직 안 줘서 다행이다…….
진천희는 자신의 판단에 건배를 날렸다.
‘이놈들이 대진표는 안 외운 모양이네.’
당연했다. 한번 본 것을 전부 외울 인간이 몇이나 되겠나.
거기다 강한 놈은 어차피 대진표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위로 올라가며 보이는 족족 뚝배기를 깨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대진표를 뇌 내 검색하여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미친 인간이 여기 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진 교수는 그것을 해냈다.
진천희는 성부성자성령 대신 공명 선생과 스승님, 영약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기적 같은 휴전.
우선 여하륜은 마교의 사절로서 온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일행에게 돌아갔고, 사마현은 금혈방의 물밑 작업을 위해 돌아갔다.
물론 말만 이렇게 말하고는 즉살을 위해 각자 숙소에서 수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