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2
제 22화
의보(醫報)는 의각의 목소리다.
매달 정해진 날에 방의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산하 의방으로 날아가는데, 강호 의료에 대한 정세나 새로운 치료법 등이 소개되어 있다.
‘강호에서 손꼽히는 의각은 총 세 곳.’
백린의선이 하고 있는 백린의각.
화주약선이 잡고 있는 화주의각.
마지막으로 혈생노괴가 운영하고 있는 흑전의각이다.
이들 의각들을 천하 삼 대 의각이라고 불렀으며, 의각주들을 천하 삼 대 신의라고 칭했다.
그중에서도 백린의각은 침술에 두각을 보이고, 화주의각은 탕약에서 강세를 보인다. 특이한 것은 흑전의각으로, 강호에서도 드문 부술에서 강세를 보인다.
‘그나저나 스승님이라는 말은 어째 입에 잘 안 붙는단 말이지…….’
생각할수록 백린의선이 점점 더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대단한 사람이 맞기도 하고.
스승님, 제갈린 스승님.
‘선생님이나 교수님이라는 단어면 차라리 더 편할 텐데.’
현대인에게는 힘든 일이다.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자, 들어오거라.”
스승님의 인도에 방에 들어갔다.
‘멋있긴 한데 뭔가…… 휑하네.’
방 가운데에는 화로가 있다.
큰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화로 안에는 백탄이 타고 있는 게 보였다.
장식이나 도자기 하나 없는 단출한 방의 모습은 지나치게 삭막할 정도였다.
그래도 멋있었다. 선비의 기개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현대인 이었던 진천희의 눈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보였다.
‘이야. 이거 드라마에서나 보던 바로 그…… 근데, 보면 볼수록…….’
진천희는 방 안을 보고는 짠한 눈이 되었다. 너무나도 추운 방이다.
무협 배경의 시대극을 보면 겨울에 방 안에 있으면서도 입김이 나오고 손발이 차가운 것이 괜히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겨울에도 창문을 열고 산다니! 너무나도 경악스러운 일이다.
‘우리 스승님 집에 온돌 보일러 한 대 놔 드려야겠어요…….’
온돌.
한국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난방 방식.
‘저번에 스승님하고 대화할 적에는 이건 생각 못 했는데…… 잘됐다. 집도 좀 손봐야겠어. 온돌이라면 저 창문을 어떻게든 할 수 있을 테니…….’
진천희는 활짝 열린 창문을 힐끗 보았다.
‘일산화탄소 때문에 죽는 걸 방지하려고 창문을 열어 놓은 건 알겠는데, 한겨울에도 저러는 건 좀…… 이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하잖아. 아니. 최소한 밀폐식 청동 난로 같은 거라도 쓰라고!’
이 시대에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스승님이 비록 의술 천재이긴 하지만 신은 아니다.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릴 수는 있어도 미래의 발명품을 들고 오는 재주는 없다.
진천희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갈 길이 멀구나, 멀어…… 온돌은 대공사니까 지금 쓸 수 없어. 당장 필요한 건 난로겠네. 난로에다가, 채광이 좋게 하려면 유리 창문. 환기를 위해서는 열 교환기도 있으면 좋겠어. 근데 유리 창문은 어떻게 만들지?’
진천희는 혀를 찼다.
‘유리 공예 기술이 아예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유리창 쓰는 집은 오면서 한 곳도 못 봤어.’
두리번거리면서 진천희는 필요한 것들을 체크했고, 그 모습을 제갈린은 희미하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화로 앞에 앉은 제갈린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오래 생각하는구나. 그래. 무슨 생각을 그리 한 게냐?”
‘앗!’
그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진천희가 앞을 보았다.
“죄, 죄송해요 스승님. 생각에 빠지다 보니…….”
“그럴 수도 있는 게지. 그래서 방금 전에도 물었다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해 주겠니?”
‘말해도 되려나……가 아니라. 말해야지. 스승님은 환자인걸.’
“스승님의 절맥을 치료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궁리를 좀 했어요.”
“호오?”
제갈린의 눈이 흥미를 담아 살짝 커진다.
진천희는 스승의 맞은편으로 다가가 앉으며 말했다.
스승이 주전자를 화로 위로 올린다.
“구음절맥. 몸에 음기가 모여 맥이 가닥가닥 막히는 체질. 그렇죠?”
“그렇지.”
“음기……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적인 형태로 보면 몸에 열기가 사라지고 냉기가 서린다는 걸 뜻하잖아요. 단순하게 바라본다면, 몸에 모자란 열기를 보충해 주기만 해도 구음절맥 때문에 생기는 합병증은 완화시킬 수 있으니까요.”
“저번에 설명했던 것이로군. 그때도 생각했지만, 독특한 관점이야. 그래서?”
“우선 이 방이 문제입니다. 이 방에서 거주하신다면 스승님의 증세가 악화될 수밖에 없어요.”
진천희는 단언했다.
그 모습에 제갈린은 미소를 슬며시 지우고 진지한 표정이 된다.
“그럼 어떤 방도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여기서부터는 의학이 아니라 건축의 영역입니다. 의원이 아니라 미장이의 영역이죠. 하지만 환자에게는 둘 다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의사만큼 환경에 민감한 존재도 없다.
현대의 의사가 흰 옷을 입는 것도 그에 기인한다. 오물 같은 것이 묻었을 때 가장 빨리 티가 나는 것이 흰색이니까.
그뿐이 아니다. 늘 위생에 대해서 신경 써야 한다.
2차 감염은 질병 확산의 주범 중 하나이기 때문.
현대에서야 상식이지만 이 시대에는 그게 아니었다.
그런 관점에서 환경 개선 역시 의사로서 신경 쓰이는 영역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이 방은 너무 추워요. 이 화로 하나 가지고는 안 돼요.”
“그러면 화로를 늘려야 하는 게냐? 하지만, 화로를 늘릴 경우 급사할 수 있단다. 그 원인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지만…… 진단하기로는 익사와 일견 유사한 증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익사…… 비슷하긴 하네요. 정확히는 일산화탄소 중독입니다만.”
“호오?”
“우리는 숨을 쉬지만, 정확히는 산소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숨을 이어가게 하는 요소거든요. 하지만 이렇게 무언가를 태우면 산소가 아닌 일산화탄소라는 게 생겨요. 그리고 그것을 너무 많이 들이마시게 되면…….”
“익사한 것처럼 된다 이거로군. 물이 아닌 호흡으로 인해 죽는 것.”
기초적인 지식이 없는데도 그는 빠르게 추론했다.
그 모습에 진천희는 혀를 내둘렀다.
‘귀재(鬼才)는 귀재시구나.’
“네. 맞아요.”
진천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백린의선, 제갈린은 진지한 표정으로 눈을 빛냈다.
“그런 지식은 대체 어디서 배웠느냐? 본가 역시 오랜 세월 동안 지식을 추구해 온 곳이지만 네가 말한 것은 어디서도 들은 적이 없구나.”
“비밀입니다.”
“스승에게도?”
“예. 이것은…… 말씀드린다 하여도 믿지 못하실 것이고, 위험한 것이거든요.”
‘이런 부분에서는 거짓을 말하면 안 돼. 소설 속 백린의선, 아니. 스승님은 보통 사람은 아니니까. 천재. 그리고 선인. 하지만 마냥 호구 같은 사람은 아니야. 제갈세가의 복수를 했다는 문구를 보면 결단력과 잔혹성도 있는 분이시겠지.’
스승의 눈이 진천희를 꿰뚫는다. 하지만 이윽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보통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이해했단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답하지 않아도 괜찮다 하였다. 네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니까. 그러니…… 그래. 이 스승을 위해 그런 걸 말해 줘서 고맙단다.”
그렇게 말하며 스승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래서. 새롭게 집을 지으면 되는 게냐?”
그 신뢰가 가득한 눈빛에 진천희는 어쩐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사람은 내가 뭐라고 이렇게 믿어 주는 걸까.’
제대로 된 진실 하나 말하지 못하는 나를.
어째서 이렇게 믿어 주는 걸까.
스승이란 본래 그런 것일까?
어쩐지 어렸을 적 보육원의 원장 선생의 얼굴이 떠오른다.
갑자기 울컥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참아내며 진천희는 입을 열었다.
“우선…….”
진천희는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허락을 받아냈다.
* * *
진천희는 장인을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제갈린이 말했다.
“어지간한 일이라면 유호면 될 거란다.”
유호는 의각(醫閣)의 총관직을 하고 있다.
주요 업무는 백린의선의 일을 돕는 것.
때문에 이러한 일들도 처리하는 모양이었다.
진천희는 식은 숯을 깎아서 연필처럼 만들었다.
‘아, 이거라도 있으니 좀 낫네. 붓은 영 적응이 안 된단 말이지.’
진천희의 손이 제법 그럴 듯한 도면을 그려 나갔다.
한국식 온돌이다.
원래는 머릿속에 있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았다.
전달이 되는 게 중요했다.
과거 여러 가지 다큐멘터리를 다수 봤던 게 이때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온돌 제작이라든가, 난로의 역사 같은 것들.
‘하는 김에 이것저것 더 그려 볼까?’
흥이 생겼다. 진천희는 손톱이 새카매지도록 계속 그림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그걸 재빠르게 유호에게 가져갔다.
* * *
‘이거 정말로 만들 수 있는 건가……?’
유호는 혼란스러웠다. 아직 약관도 되지 못한 어린아이가 하는 말이었는데 허황되지 않고 논리적인 이야기였다.
이론상 가능한 것도 같았다. 동쪽 지방에 이런 방식으로 집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맞는 말 같긴 했다.
“이게 온돌……이라는 겁니까?”
“네.”
“그리고 이건 난로고요.”
유호가 가리키는 것은 진천희가 그린 그림들이었다. 그중 난로의 경우는 가스가 퍼지지 않는 밀폐형 난로다.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기 전, 옛날 국민학교 때 도시락 데워 두었던, 딱 그 모양 그 난로.
그렇다고 해서 만드는 게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난로의 핵심은 밀폐 기능에 있다. 가스가 새면 대참사가 일어날 터.
진천희는 잠깐 생각했다.
‘아. 요즘 국민학교는 히터 쓰나?’
이름도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예전에 교과서에 난로의 구조라고 짧게 나와서 공부한 기억은 난다.
당시 진천희는 학습지 같은 걸 구할 형편이 아니라서 교과서를 까맣게 만들 정도로 외우고 또 외웠다.
“이건…… 유리로 벽을 만드는 겁니까?”
“창문이에요.”
“창문이라…….”
“창문을 안 열고도 태양빛을 받을 수 있거든요.”
“태양빛이 그렇게 중요한 겁니까?”
쉽게 설명하기 위해 진천희는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빛은 곧 양기. 태양은 양기의 상징이죠. 지금 스승님의 침실은 한낮임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아서 양기가 채워지지 않잖아요? 구음절맥인 스승님께는 이런 태양빛이 잘 들어오는 집이 필요한 거죠. 그러기 위해서 유리를 특히 투명하게 만들어야 하고요. 하실 수 있겠어요?”
구음절맥은 언제나 몸이 냉하다.
그러니, 온돌의 열기에 더해서 태양빛을 받아 몸을 덥히는 쪽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열기와 함께 필요한 건 비타민 D.
심혈관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창문으로 생성할 수 있는 비타민 D는 그냥 맨몸으로 받는 것보다 훨씬 적은 데다가.
‘이런 것보다 적절한 야외 활동과 식이요법이 가장 효과가 좋다만…….’
하지만 아예 없는 것보다야 낫다. 유리창을 만들 수 있다면 무조건 만드는 게 좋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지존천마 세계관 특성상 음한기를 막으려면 빛이 비치는 밝은 곳에 있을수록 좋다는 구절이 있었지.’
이 세계는 진짜로 음양오행이 지배하는 세계다.
독자로서 지존천마의 세계관 지식들을 이용하는 게 중요했다.
진천희는 사실 유리 제조 과정까지 적어 줄까 생각 중이었다.
과거 본 여러 다큐멘터리 중에 유리의 역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진천희의 작은 도발에 유호가 피식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