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20
제 220화
마지막으로 무림 ER에 가니 상의원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제법 손이 빨라진 상의원들을 보며 가슴이 충만해졌다.
“소각주님이 오셨다!”
“와아아아! 우리의 희마아아아앙!”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부술당의 상의원들이 진천희를 얼싸안았다.
“소각주님 덕분에 환자가 크게 줄었습니다!”
심지어 침술당주님도 보이지 않게 고개를 돌려 눈물을 훔쳤다.
추나당주님도 진천희의 어깨를 탁탁 쳤다.
“잘했습니다. 정말 잘했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쭉쭉 올라가서 기절시키는 겁니다!”
“제가 도울 환자는 없나요?”
“다행히 오늘 예선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소각주님만 치료할 수 있는 급환이면 중앙당에서 종을 쳐서 알리기로 했으니까요.”
일종의 중원식 삐삐다.
모두가 알람을 듣게 된다는 것이 문제이나 어쨌든 종이 울리자마자 진천희가 강호 ER로 즉시 달려갈 터.
“중상도 없고 경상은 고작해야 셋! 기적입니다!”
여하륜도 힘 조절을 해서 쥐어 패느라고 힘냈다.
밖에서는 사람과 벌레를 (두 번 참고) 똑같이 죽이는 마교 천살성이 여기 와서 형 치료하느라 힘들다고 참는다는 것 자체가 기적의 결과물 아닌가!
‘심지어 사마현을 상대로 둘까지 해줬지.’
진천희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제가 도울 건 없나요?”
그 말에 상의원, 중의원, 그리고 침구당주와 부술당주 할 것 없이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쉬십시오.”
“네?”
“아시다시피 소각주님 필요하면 종을 칠 테니 쉬십시오.”
“푹 쉬셔서 위로 올라가십시오! 망할 후기지수 놈들을 패 버리는…… 아, 아니 제압하는 겁니다!”
……다들 한이 쌓였군.
진천희는 아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무림ER을 대표하는 진천희는 모두의 희망이 되었고.
진천희는 그들을 과로에서 지키기 위해 결심했다.
‘나의 선택은 옳았다.’
진천희가 팔을 치켜들었다.
“제가 반드시 결승까지 가면서 모조리 큰 부상 없이 생포하여 집으로 보내겠습니다!”
와아아아!
모든 의원들이 감격으로 진천희를 끌어안았다.
월드컵 결승도 이렇지는 않으리라.
* * *
숙소에 돌아오니 스승님이 반가이 맞아주었다.
“비무가 끝난 지는 좀 되었던데 인사하고 돌아온 거니?”
“네. 연이 있는 분들을 뵙고 왔어요.”
스승님의 부채가 흥겹게 펄럭였다. 이 리듬을 알고 있다.
‘아, 팔불출 폭발하셨구나.’
용봉지회 예선, 압도적인 승리.
그냥 승리도 아니고 그저 압살했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대승이었다.
그것을 모든 문파의 장로급, 문주급 앞에서 실력을 선보인 셈이다.
스승님은 제자 뽕이 찼다!
그 어떤 마약보다 달콤한 승리에 스승님의 콧대가 하늘처럼 치솟았다.
“허 참, 다들 네 실력을 보고 정색을 하더구나. 하여간…… 쯧쯧쯧 이 정도로 그리 기함하다니. 다른 분들 제자 수준이 걱정이더구나.”
일견 다른 사문의 제자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나 이것은 자랑!
내 제자가 개쩐다!
네놈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중원 무림을 향해 확성기로 외치고 싶은 그 마음을 수줍게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쪽 제자분들도 잘하실 거예요.”
“그러게 말이다. 후, 우리 희는 의술도 하고 무공도 갈고닦아야 하는 아이라 늘 불안한데 말이다.”
내 제자는 두 우물 파는데 대성했다!
너희는 한 우물도 못 파더라!
현원전단신공을 펼치지도 않았는데 스승어(語)가 뇌에서 자동 번역 되었다.
진천희는 스승님의 팔불출에 귀까지 피가 몰렸다.
‘대체 얼마나 자랑을 하신 거지…… 우리 스승님?’
그동안은 내 집에 금송아지 있다고 자랑을 해봐도 그 금송아지를 직접 보여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바로, 지금, 여기, 그 금송아지를 쳐들고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
“대진운이 좋았죠.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희는 나이에 비해 정말 겸손하구나. 그래서 이 스승은 걱정이란다.”
내 제자는 이렇게 쩌는데 인성도 올바르다! 질풍노도도 안 겪는다!
다시금 내면의 사자후가 들렸고.
“그나저나 스승님.”
진천희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무슨 일이니?”
“창선문에 대해 한번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창선문이라면 네가 싸웠던 천이문의 문파 말이구나. 그 나이에 검사(劍絲)를 사용하다니. 아마 네가 없었다면 예선은 천이문이 통과했을 테지.”
알려지지 않은 신공절학은 어디에나 있다.
허나, 제자가 이리 말한다는 것은 검을 맞댔을 때 뭔가 걸리는 것이 있다는 뜻일 터.
“개방과 하오문 양측에 말해두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스승님.”
제갈린은 부채를 흔들었다.
“그나저나. 그런 것보다 오늘은 제자의 공식적인 비무 첫 승리이지 않느냐. 더 기뻐해도 좋을 텐데 내 제자는 너무 침착하구나.”
“그러고 보니 이렇게 대회 형식으로 싸워본 건 처음이네요.”
“이런 대회가 공신력을 가지는 건 사실이지. 같은 무명이라 하더라도 야산에서 싸우는 것과 이런 비무장에서 싸우는 건 차원이 다르니 말이다.”
제자의 승리가 엄청 기쁘신 모양이다.
‘이렇게 기뻐하실 줄 알았으면 진작에 출전할 걸 그랬다. 그랬다면 좀 더 환자 수를 줄이고 의각원들의 피로도 줄일 수 있었을 텐데.’
진 교수는 미친 생각을 차분한 눈빛으로 했다.
이윽고 방금 전까지 들떠있던 스승님의 목소리가 조금 변했다.
“……혈선교의 꼬리를 잡았다고 하더구나.”
진천희의 눈이 살짝 커졌다.
“무림맹에서 잡은 건가요?”
그 말에 제갈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 그 난리를 쳤으니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지. 맹주는 혈선십천군을 크게 경계하더구나. 권제 어르신과 같은 수준의 무인이 열 명. 혹은 그 이상일 수 있다면 큰일이지.”
“맹주께서는 계획이 있나요?”
그 말에 제갈린이 부챗살을 하나씩 다각다각 펼쳤다.
“정확히는 군사, 그것도 독고선의 계책이지. 처음 그는 황군을 끌어들이자고 제안하더구나.”
제갈린이 바둑알을 꺼내 판 위에 펼쳤다.
“백은 우리 쪽 진영, 흑은 혈선교라고 하자꾸나. 혈선교의 위치와 그 규모는 결국 추측에 의거해야겠지만…… 음…… 이 정도가 좋겠구나.”
그리 말하며 바둑판 위로 흑돌이 개미 떼처럼 흩어졌다.
“희야. 너라면 어찌하겠니. 황군을 끌어들인다면 이 백돌을 더 많이 늘릴 수 있을 텐데. 늘릴 수 있겠니?”
어지러이 흩어지는 행마들을 살핀다.
스승님의 푸른 안광이 제자의 두뇌를 시험했다.
진천희는 백돌을 쥐었다.
자개로 만든 최고급 백돌은 몹시 빛나고 연약해 보였다.
흡사 사람의 목숨처럼.
“만약 그리한다면, 판이 끝나면 빌려 온 백돌은 어찌 되나요? 색도 모양도 똑같이 생겨서 구분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제대로 못 돌려주면 주인이 화를 내지 않을까요?”
바둑돌의 총 개수를 새는 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오래 쓰다 보면 꼭 하나씩 잃어버리기 마련.
거기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유일 뿐, 시행하는 것은 사람.
많은 이들이 죽게 될 것이고, 또 많은 이들이 변하게 될 것이었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니?”
“이 난전 속에 새 백돌을 추가해서 놓는다고 한들 결국에는 어느 게 본래의 우리 것이고, 어느 게 남의 것인지 모르게 되겠죠. 그렇게 된다면 판이 끝난 후, 결국 우리 쪽 돌을 하나하나 골라서 도로 집어넣어야 한다는 건데…….”
그리고 그 돌 주인은 다른 이도 아니고 황제다.
“비유가 제법이구나.”
“네. 결국 황군은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무림인이 황궁으로 들어가는 일도 생기게 되겠지요. 그리된다면 결국 계산이 엉망이 되지 않을까요?”
“그래. 이기고도 지는 싸움이지. 독고선의 책략은 그것이 문제란다. 바둑은 어차피 비유일 뿐. 본질은 규칙이 없는 전쟁. 여기서 한 사람이 더 가세해서 자신의 돌을 빌려준다고 한다면.”
“…….”
“일견 유리해질 수 있으나, 판이 끝나고 분명 황궁은 그 값을 물을 것이다. 황제께서는 계산에 능하시기로 소문이 나지 않았니?”
두 황제를 문득 떠올렸다.
그들은 한 몸처럼 움직이며, 한 몸처럼 제국을 통치해나갈 것이다.
그들 역시 기본적으로 의인이다. 그러나 무릇 통치자의 의(義)란 강호인의 의(義)와 다른 것.
둘 중의 하나는 필시 부서지고 말 것이었기에.
“저는 반대합니다.”
“같은 생각이란다. 나 역시 반대했지.”
정답이었구나.
스승은 제자가 옳은 답을 내놓았다는 것에 기뻤다.
이 세상에 누구도 모르는 의술을 가지고도 가끔은 세상 물정을 모르고 순진무구할 때가 있는 제자.
왜 그러는지는 짐작되는 바는 많았으나 제갈린이 구태여 먼저 입 밖으로 내놓을 일은 없겠지.
그런 제자가 지금 스승과 같은 곳에서 같은 수를 내다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스승으로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
“자, 그러면 이 스승이 반대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단다, 짐작해 보렴.”
“황군은 외세와 싸우고 있는 중 아닌가요?”
“그래. 일견 평화롭게 지내고 있지만 여전히 국경에서는 크고 작은 전투가 일어나는 중이지. 바다 건너 서대륙이 존재하고, 이 화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자들도 하나같이 강하니까 말이다.”
스승님은 차를 한 모금 삼키고 말을 이어 나갔다.
“서대륙은 거리가 멀고 대양이 가로막고 있으니 큰 문제는 되지 않으나 국경은 늘 문제지.”
화 제국 사람들은 이 대륙이 자신의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실제로도 제국이라는 말에 부족함이 없는 국력과 영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화 제국의 시선일 뿐.
“단순히 민란을 잠재울 정도의 황군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요.”
“그래. 거기다가 그들은 산개되어 있고. 황제가 만약 무림맹의 요청을 듣고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그쪽도 상당한 부담이겠지. 그러니 알차게 거두어 가실 거란다. 이 땅에서 무공 하나 믿고 돈을 버는 집단이라니. 얼마나 성가시겠니.”
관과 무림은 서로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떠한 사상이나 낭만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인간은 살아가는 한 끊임없이 욕망하는 존재, 탯줄이 잘린 순간부터 인간은 욕망한다.
먹을 것을, 걸을 것을, 가질 것을.
그 본능을 억누르기 위해서는 단 하나밖에 없다.
힘의 균형이 만들어낸 교착.
“그래서 이 스승이 계책을 내었단다.”
“음……?”
제갈린은 손을 뻗어 백돌 하나를 옮겼다. 그러자 그곳은 흑돌 입장에서 상당히 먹음직스러운 집이 되었고.
세 수, 아니 기사(棋士)가 무능하면 두 수 정도면 판을 집어삼킬 수 있을 것 같다.
“미끼군요.”
“바로 그렇다. 포전인옥(抛塼引玉)이지.”
병법 삼십육계 중, 제17계. 벽돌을 던져 옥을 얻어낸다.
당나라 때 일화에서 비롯된 고사이나, 현대식으로 최대한 짧게 병법의 시선으로만 축약하자면 미끼를 던진 후, 거기에 달려든 적의 뒤를 치는 수다.
“포전인옥계라. 그렇다면 상대에게 자신의 약점 역시 보여야 함을 뜻할 텐데요.”
“음. 그래야 하지. 허나 우선 녀석들이 원하는 것을 먼저 흘리는 것이 좋겠더구나.”
“……?”
스승님의 안광이 차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