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22
제 222화
“형, 이번에 망한 문파에서 끝내주게 멋있는 도자기 하나 얻어 왔는데 형 가져.”
“그걸 왜 주는 거야?”
“남의 집에 올 때는 선물 챙겨오는 게 예의잖아.”
현대로 치면 기껏해야 과일 바구니 정도 아닌가.
사마현이 내려놓은 도자기는 단순 도자기가 아니었다.
유약을 어떻게 발라놨는지 빛에 따라서 푸른빛으로도 흰빛으로도 보이는, 그야말로 기물(奇物)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물건이었다.
“개파 조사께서 심공의 요지를 이 안에 담았다는데 후인도 그게 뭔 뜻인지 모르더라. 전수도 끊긴 모양이고. 목구멍에 풀칠은 하고 싶은지 팔길래 잽싸게 경매로 업어 왔어.”
“이걸 나한테 주면 어떻게 쓰라고……?”
“화분으로 써. 난초 키우면 좋겠다.”
‘초롱초롱 비글 같은 눈으로 바라보면 마음이 흔들릴 줄 알았냐!’
아무리 진천희가 가끔 속세에 어둡다고는 해도 여기에 난초 재배를 할 만큼 미치지는 않았다.
“형이 거절하면 내가 이거 화분으로 삼을게. 물 빠지게 아래에 구멍 좀 뚫어야겠네.”
“……주십시오. 잘 쓰겠습니다.”
문파의 심공이 담겼다는 도자기를 그렇게 진천희는 받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진천희의 의사가 아니라 화분 만들게 밑바닥에 물구멍을 뚫겠다는 미친 갑부 동생에게서 구출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황금왕은 너 이러고 사는 거 아시니……?”
“스승님이랑 나랑 잘 맞아. 누님께서는 눈앞의 재보(財寶) 따위 다 언젠가 사라질 허망한 것들. 돈에 휘둘리지 말고 돈을 쥐고 흔들라고 했어.”
……맞는 말이긴 한데 이게 황금왕이 할 소리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그런데 하늘 같은 스승님을 누님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
왜 정파가 사파를 싫어하는지 알 것 같았다.
유교 이념하에 뒤에서는 같이 놀아도 앞에서는 상종할 놈들이 아닌 것이다.
“그나저나 형, 돈 있어?”
“당장 가지고 있는 전냥을 의미하는 거라면…… 있지. 왜?”
“빌려줘 봐. 내가 불려올게.”
“뭘로 불리게?”
“도박.”
“도박……? 도바아아악? 현아. 내가 형으로서 조언을 하는데…….”
“아니. 그게 아니고, 형한테 걸려고.”
“응?”
“이 용봉지회는 거대한 투기판이라고? 그리고 투기는 합법이야.”
그랬다. 이 시대에 투기장은 ‘심하지 않은 선’에서 합법이다.
이 ‘심하지 않은 선’이 어느 정도의 수준이냐는 또 지방마다, 법령마다, 달려온 포두가 얼마나 받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용봉지회는 누가 봐도 ‘심하지 않는 선’의 투기다.
현대로 치면 경마장 마권 팔이와 다를 바가 없으니까.
“그래서 나한테 건다고?”
“응. 형은 무조건 이길 거잖아. 그런데 형의 실력을 얕잡아보는 멍청한 인간들이 많더라고. 돈 놓고 돈 먹기인데 이걸 왜 놓치겠어?”
사마현이 손을 비빈다. 돈 만질 생각에 벌써 들뜬 모양.
“형, 오늘 상대가 누군지 알아?”
대진표는 봤으나 누가 승리해서 상대로 올라왔는지까지는 전해 듣지 않았다. 그러나 유력 세가의 사람이 올라왔다고 친다면…….
“언정무?”
“역시 아네. 아니, 짐작한 건가?”
“아무튼 언정무라면 술잔 던졌던 그 소협 맞던가?”
“응. 내가 밑작업 착수한 놈.”
‘언가 가주님, 재산 단디 간수하십시오. 조만간 누가 빨대 꽂을 겁니다.’
사마현은 사악하게 웃었다.
“도박 당사자가 자기 이름으로 넣는 건 금지되어 있지만 내가 대신 불려 주면 되는 거니까. 형, 줘 봐. 불린 다음 출처 깨끗하게 세탁해서 돌려줄게.”
거기까지 생각했구나.
허나, 들어올 돈 마다할 진천희가 아니다.
진천희는 소매에서 가진 전냥을 모두 꺼내서 사마현에게 얹어줬다.
짜르릉!
“다 넣으렴. 기왕 하는 김에 내가 보기보다 약하다는 소문 좀 내줘 봐. 아니면 언정무가 엄청 강하다는 소문을 내주든가. 배당 좀 높여보자.”
“내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이미 언정무에 대한 평가는 높아. 이놈, 저놈 시비 걸고 다녀서 이긴 전적이 꽤 되거든. 지난 번 용봉지회에서도 꽤 강자였고. 그래서 많이들 그쪽에 걸더라고.”
그런 일이 있었군.
진천희는 맑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돈은 다다익선이지.”
“그래. 형. 백환후 애들 늘릴 때도 되었지. 요즘 예산 때문에 고생 많던데.”
자선사업이라는 게 그렇다. 돈을 부어도 부어도 모자라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써야지.”
사마현은 일순 그런 형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윽고 시선을 거둔다.
“……형은 변한 게 없구나.”
“?”
“아니, 그런 형이 신기하다고. 보통은 가진 게 늘어날수록 더 갖고 싶은 게 사람일 텐데 말이야.”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사마현은 입을 다물었다.
진천희는 무복을 갈아입고는 그렇게 용봉지회로 향했다.
진천희가 물었다.
“너는 몇 번째인데?”
“나는 열한 번째. 형은 세 번째지?”
“응. 내 앞에 두 번의 비무가 있는 거네.”
“지금이면 첫 번째 비무부터 볼 수 있을걸? 그러려고 일찍 나오는 거니까.”
현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체계적으로 놀아버릴 계획이.
“형. 매죽반점 닭꼬치가 일미(一味)야.”
그리 말하며 구경하면서 먹을 것도 이미 다 찾아 놨다.
“내가 형 제대로 모셔 줄게~”
‘너 정말로 이렇게 백수처럼 막 놀아도 되는 거니. 현아…… 황금왕이 보냈다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네 앞에 할 일이 산처럼 쌓여 있…….’
“형, 저거. 저 떡꼬치도 사야 해. 저거 조청 비싼 거다.”
사마현은 뒤를 생각하지 않았다.
* * *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도 용봉지회는 충분히 즐겨주었으면 좋겠구나. 다른 무공을 견식할 기회니까.
……라고.
도산검림 속에서 타인의 무공을 견식할 기회란 보통은 사지(四肢) 중의 하나를 걸어야 할 때가 많다.
사지만 걸면 다행. 보통은 목숨도 함께 딸려 온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하게 앉아서 남의 비무만 견식하면 된다는 건 무인으로서 좋은 기회라 할 수 있다.
“용봉지회 본선 16강전! 그 첫 번째 비무! 공동파와 모용세가의 싸움! 후기지수의 싸움에 걸어 보십시오!”
벌써부터 도박판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판돈을 걸며 저마다 자신이 건 쪽을 응원했다.
“공동파면 크고 거친 검법이 아닌가. 빈틈을 찌르는 모용세가의 검이 유리할 텐데?”
“그렇게 생각하는 건 하수지. 공동파가 비록 크고 거칠어 보일지라도 그 기괴한 움직임 속에 현묘함이 있지 않나. 막상 검을 맞대고 나면 괴이하다는 평이 많지.”
“그런 걸로 치면 모용세가의 검은 절도 있으며 검 하나하나가 위력적인 것으로 유명하지 않나? 당연히 모용세가가 이기겠지!”
역시 인간은 돈을 걸면 눈빛이 바뀌는 법.
서로 누가 이기니 지니 아옹다옹 싸웠다.
그리고 경기는 모용세가의 승리였다.
와아아아아!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천희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남은 돈이 있으면 재미 삼아 조금 걸어 볼까 싶을 지경. 그러나 진천희의 전 재산은 이미 진천희 자신한테 건 후였다.
‘생각보다 대단한걸?’
동시에 두 사람이 입은 검상을 찬찬히 분석했다.
“형. 응급실에서 부를지 말지 걱정하는 거지?”
“하하하. 눈치챘니?”
“형, 필요하면 타종하겠지. 그리고 결국 장외 기권패라 이 정도면 백린의각 상의원이 해결할 수 있어.”
“…….”
“형이 키운 사람들이야. 좀 믿어.”
진천희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다음 경기가 시작되었다.
“오독문과 황보세가! 돈 놓고 돈 먹기! 배율은 황보세가가 더 낮습니다! 오독문이 이길 거라 생각하시면 지금 기회를 놓치시면 안 됩니다아아!”
“오독문은 당가에도 견주는 독공의 대가 아닌가! 지금 걸면 더 벌 것 같은데?”
“하지만 희한하게도 암기가 아니라 창과 검. 그리고 비도를 사용하지 않나. 당가와 같은 선상에서 파악해도 될지 모르겠네.”
역시 돈이 걸리니 인간은 갑자기 응원단에서 전문가로 진화했다.
“너는 누가 이길 것 같니?”
그 말에 사마현이 답했다.
“음…… 약간의 변수가 있긴 할 것 같은데 나도 황보세가에 걸겠어.”
“이변은 없을 것이다?”
“응. 오독문은 당가에 비해 무공이 어렵고 자질을 많이 타. 독공이 가능하면서도 결국 본신의 무력도 요구되지. 그만한 후기지수를 배출하기는 힘들 거야. 아마……도?”
잘 말해 놓고 뒤의 아마도는 뭐란 말인가.
“경기 시작!”
경기 과정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오독문이 들고 온 것은 비도.
그것도 비도에 실을 연결해 조종하며 공격했다.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황보세가에 패배했다.
‘황보무아, 강한걸?’
진천희가 일전에 했던 조언으로 약간의 심득을 얻은 건가.
우와아아아아!
‘해독약은 미리 응급실에 보냈겠지? 그게 경기 규칙이니까.’
안 그러면 사람이 죽는다.
의원으로서의 사고가 우선 튀었고. 그다음은.
‘실도 보통의 실은 아닌 것 같은데…… 백잠사 같은 건가? 실에 진기를 불어 넣으면 저렇게 조종이 자유로울 수 있구나. 나중에 나도 연구해 볼까? 만약 그게 가능하면 봉합을 할 때 편할 것 같은데.’
응급실에서는 때로는 봉합을 위해 본드나 스테이플러도 사용한다.
한마디로 환자를 살릴 수 있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바로 의학의 기본 이념.
이 세상에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 진천희의 사고가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결국 두 번째 생각 역시 고스란히 의료로 쏠렸다.
진천희는 몸을 일으켰다.
“이제 내 차래네.”
“잘 다녀와, 형!”
닭꼬치를 흔들며 사마현이 응원했다.
그런 사마현의 뒤로 판돈이 걸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기는 어렵지.”
“언정무는 작년에도 강호였지 않나. 아무리 신성(新星)인 소백룡이라 하더라도 기존의 강호를 밀어내기는 힘들지.”
그만한 무위를 보여 주었건만, 역시나 사람의 고정관념을 깨기는 어려운 모양이었다.
언정무의 배율이 높았다.
그러나 사마현은 형의 승리를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 믿음은 판돈이 되어 깔렸다.
비무장 앞에서 진천희는 천천히 몸을 풀었다.
“비무장이 다 정리되었소. 양측 모두 준비가 되었소?”
그 말에 가장 먼저 답한 건 언정무였다.
“얼마든지 덤비시오! 소백룡!”
술을 뒤집어쓴 원한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망신도 그런 개망신이 없었으니…….’
거기다가 주먹을 날리고 싶어도 창룡검이 보고 있는 판이라 결국 쭈구리가 되어 돌아갔다.
이단 망신!
망신으로 2콤보를 처맞은 언정무는 그렇게 오늘의 비무만을 고대해왔다.
“저도 준비되었습니다.”
반면 진천희는 그런 언정무를 향해 이렇게 생각했다.
‘음…… 한번 띄운 후, 공콤을 날리면 되나?’
골절 없이 타박상 정도에서 끝내야 할 테니 좀 더 신중하게 손을 쓰는 게 좋겠지.
응급실 일을 늘리지 않는 것.
모두 무사히 기절시켜서 각자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
그것이 진 교수의 목적이다.
승패는 결국 부수적인 것.
물론 보너스 목표로 ‘이겨서 판돈 따기’가 있긴 하나 그래도 앞의 두 목적에 비할 바는 아니다.
두 사람은 비무장 끝에서 마주 보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