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25
제 225화
쿠그그그-
그저 한 걸음.
천마군림보가 만들어 낸 압력에 팽천식이 저항한다.
“크아아아악!”
그 모습을 보고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여하륜은 아직 불완전하군. 아직 화경의 경지의 힘을 쓰고 있다기에는 불완전해.’
천살성은 한 단계 벽 너머의 힘.
그곳에 있는 무학을 본능적으로 쓸 수 있게 한다.
‘나중에는 초절정으로 완전한 화경의 힘을 쓰고, 천살성이 현경의 경지까지 올라간다면 현경 다음의 경지인 조화경, 혹은 반선경이라는 경지의 힘을 휘두르게 된단 말이야…… 진짜 개쩌는 능력이야. 아직은…… 완전히 각성하지 않아서 불완전하지만.’
여하륜이 크나큰 대가를 치르면서도 최종 흑막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
양기가 숨 쉬듯 쌓인다는 극양지체나 이 세상 어떤 무학이든 체질과 상관없이 익힐 수 있다는 천무지체와는 궤를 달리하는 체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힘이 완전하지 않았다.
분명 천마군림보를 제대로 쓰려면 화경의 경지여야 하지만, 지금 보니 아직 미숙한 부분이 보였다.
불완전한 화경의 힘. 그렇다면, 천살성의 각성 역시 불완전하다는 의미이리라.
‘피를 보지 않고 제압하고 있는 건…… 참기 힘들어서겠지.’
지금 이 순간에도 살육의 충동이 이성을 간당간당하게 흔들고 있을 터, 만약 혈향이라도 맡게 되면 참는 것은 더 어려워지겠지.
‘저런 놈을 알면서 사절로 보낸 천마는 무슨 속셈이지?’
소설 내에서도 선대 천마는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인물로 나온다.
실로 마(魔)라는 말에 어울리는 자.
진천희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깊이 생각해 봐야 지금은 알 수 없어.’
판의 전체 윤곽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백날 고민해 봐야 의미 없는 일.
“크아아악!”
팽천식은 온몸의 기력을 단숨에 끌어올려 천마군림보를 깼다.
그러고는 오호단문도를 펼쳐 거세게 반격하기 시작했다.
“쯧.”
여하륜은 그 모습에 당황하기는커녕 혀를 한 번 차고는 고개를 옆으로 꺾어 도 끝을 종잇장 하나 차이로 피했다.
“죽어라. 마교 놈!”
“……일월신교다.”
여하륜이 가볍게 쥔 권에 새카만 마기가 뭉치는 게 보였다.
진천희는 다른 의미로 경악했다.
‘지도 형 앞에서는 마교라고 부른 주제에 사절이라고 단어 수정하는 거 봐!’
여하륜식 변형 오의.
천마파천권–!
그렇게 날린 권이 오호단문도와 부딪친다.
팽천식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오호단문도가 피부부터 찢고 뼈를 가르리라!
그러나 주먹은 조금의 흠집도 없이 멈추지 않는다.
날을 흡사 사기그릇 깨듯 부러뜨리며 그대로 전진하여 팽천식의 복부에, 아슬아슬하게 급소를 피해 직격했다.
퍼억!
팽천식의 몸이 비현실적으로 날아갔다.
경악 속에서 여하륜은 가볍게 손을 털었다. 흡사 더러운 것이라도 묻은 양 하는 태도가 많은 무인들의 속을 긁었으나.
“…….”
이번만큼은 그 누구도 여하륜을 향해 욕설을 내뱉지 않았다.
패도(霸道).
모두의 눈에 비친 것은 그 두 단어를 사람으로 빚은 것 같은 광경.
“스, 승자 일월신교 친선 사절……!”
심판은 떨리는 소리로 외쳤고.
그렇게 내려오는 여하륜을 향해 누구도 환호성을 지르지 못했다.
여하륜은 진천희 쪽을 한 번 보더니 이윽고 곧바로 뒤를 돌아 밖으로 향했다.
[오지 마라, 형. 괜히 친한 모습 보여 봐야 좋을 거 없으니.]‘전에 잠깐 대화했던 게 역시 마음에 걸렸던 걸까.’
마교인 자신이 형의 평판에 폐라도 끼칠까 싶은 건지.
여하륜은 일부러 차갑게 비무장을 나갔다.
* * *
용봉지회 본선 경기 관람은 과연 보람찼다.
동시에 동생들이 얼마나 더 강해졌는지도 볼 수 있었다.
천우 녀석은 태청신단을 먹었는지, 아니면 아직 아껴 두고 있는 건지 알 수는 없으나 확실히 초절정 고수가 되었고.
사마현 역시 초절정 고수의 경지에는 확실히 올랐다.
‘이야, 역시 사파라 성장이 빠르네.’
사파의 무공은 정파랑 달라서 서른 되면 슬슬 고생한다고 사마현이 본인 입으로 말한 적이 있었는데.
사마현 자신도 서른이 되면 고생하게 되는 걸까.
아니면 그에 맞는 대비도 해둔 것일까.
어느 쪽이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용봉지회 나올 연배의 초절정 고수라는 건, 나이가 차면 무리 없이 화경에 들어설 것이라는 것.’
그야말로 재능의 증명.
그렇게 본선 16강에서 살아남은 8명 중에 의동생 세 명이 다 살아 있다는 점이 이놈들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 준다.
‘여하륜이나 사마현은 원작 주인공과 빌런이니 그럴 수 있다 치는데 천우가 진짜 의외네.’
이름 한 줄 나오는 법 없이. 아니 이름조차 지어진 적 없이.
그저 죽어서 없어질 엑스트라.
엑스트라라는 말조차도 쓰기 어려울 정도로 천우는 단 한 줄, 단 한 글자도 없던 존재였다.
그런 존재였기에. 그런 존재를 살리고, 그 존재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의원으로서 남모를 감회가 밀려온 것은 당연했다.
‘헤헤헤…… 좋다. 천우야. 형은 엄청 기쁘다.’
절로 바보 같은 웃음이 나왔다.
원작 소설을 알고 있는, 그저 진천희만의 비밀이니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없겠지.
일순 고독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기쁜 것은.
진천희 자신만의 협(俠)을 이루었음을 알기 때문이리라.
‘이제 지금부터는 모두 나와 한 번은 싸워야겠군.’
진 교수는 무림 세계에서 금지된 주문을 걸었다.
이제 자기는 쫄리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저 세 놈, 아니 적어도 두 놈은 끝을 볼 터.
그 주문(?)의 대가는 진천희 자신이 질 몫이었다.
‘하나씩 다 떨어트려 주마.’
지금부터는 진천희도 살 떨릴 만한 싸움이 될 터.
‘그냥 이기면 안 된다. 큰 상처 없이 끝내야 해.’
내가 치고 내가 치료하는 짓은 제발 사양이다.
오늘 경기 승자들은 모두 빠르게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이번만큼은 사마현도 들어갔다.
내일부터는 만전의 상태에서 싸워야 하기에 자기 조절은 필수.
다만 다른 이들과 다르게, 진천희는 쉬는 대신 의원들이 있는 무림맹 ER점으로 향했다.
“희야, 네 손까지 필요 없단다. 이미 말했을 텐데? 환자를 줄인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걸 모르느냐.”
그리고 그곳에는 스승님이 버티고 계셨다.
침구당주님도 말했다.
“소각주님과 왠지 소각주님의 의형제를 자처하는 자들 덕분에 지금 저희도 살판났습니다. 소각주님이 무사하셔야 우리도 무사합니다!”
“일단 좀 돕고요!”
“안 됩니다!”
“돕고 간다니까요!”
“절대 안 됩니다!”
스승님이 말했다.
“뭣들 하느냐. 우리 희를 어서 숙소로 보내라!”
이 인간들아, 그만해!
* * *
결국 진천희는 지 성질대로 의각 일을 도왔다.
물론 의각원들도 지 성질대로 부술당주를 내쫓았다.
결국 진천희가 일을 반만 했다는 뜻이었다.
“닷새를 안 자고 일만 했다면서 왜 기어들어 오고 난리입니까!”
“소각주님 덕에 환자도 별로 없는 판국에 여기서 왜 몸을 가냐고요!”
“하하하. 희야, 내가 거친 방법을 쓰지 않는 건, 자칫 너의 내일 경기에 지장이 갈까 봐 그런 거란다. 네가 계속 이리한다면 꼭 수를 써야겠지만 말이다.”
스승님 뒤로 부술당 의료 기구들이 스산하게 떠올랐다.
보지도 않고 허공섭물만으로도 이걸 다 띄우다니! 과연 스승님!
박수를 세 번 치고 싶었으나 그 분노는 진심이셔서 결국 묶던 붕대만 마저 묶고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정말로 환자가 줄긴 했네.’
중상 환자와 경상 환자는 치료하는 데 드는 시간 자체가 차원이 다르다.
중상 환자가 줄어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의각원들의 표정이 한결 살아 있었고.
심지어 다들 눈에 승리에 대한 탐욕이 깃들어 진천희를 밖으로 떠밀었다.
그것은 썩 대단한 일이었다.
이렇게 강제로 휴식을 당하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보통 무인들은 경기 끝나고 상처를 치료하고 방금의 전투를 복기하겠지……?’
다친 곳도 없고 그렇다고 몸에 무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방금 전투를 복기하기에는 워낙 수준 차이가 커서 복기를 해도 별다른 심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고.
‘음… 역시 저번에 못 먹었던 게살탕수를 다시 먹을까…….’
지난번 객잔에서 싸움을 말려준 게 고마웠는지 이름을 대면 얼마든지 다시 해준다고 주인장이 나와서 말했다.
‘그래. 너무 아까웠다. 진심.’
그렇게 몸을 일으키며 밖으로 나갔다.
여하륜을 불러 식사나 한번 할까…… 고민했지만 역시 대외적으로 마교와 친하게 보이면 의각에 민폐가 되겠지 싶고.
천우는 용봉지회 겸 무당파 재건 문제 때문에 여기저기 무지막지하게 불려 다니는 모양이고.
사마현은… 이놈은 부르면 반드시 들러붙을 것이다.
그전에 이놈은 일도 많은데 형 때문에 일을 미루고만 있는 판국이라 이참에 일이나 하게 냅두는 게 좋으리라.
결국 혼자 먹는 게 정답.
‘전생에도 혼밥은 익숙했지.’
다른 동료 의사나 인턴들과 먹기도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식사 시간에 일이 없을 때뿐.
응급 콜이라도 오면 그 끼니는 다 먹었다고 봐야 한다.
결국 에너지 바나 컵라면, 삼각 김밥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거기에 물 대신 고카페인 음료를 들이켰고.
‘지금은 호사지, 호사.’
그렇게 지난번 객잔으로 향하니 점소이가 진천희의 얼굴을 알아보고 ‘대협, 오셨습니까!’ 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게살탕수를 시키고 이번에는 가장 구석진 곳. 2층 창가 탁자에 자리 잡았다.
“즉시 대령하겠습니다요!”
창 밖에는 구름이 흘러가고 행인들이 한가로이 용봉지회를 즐겼다.
무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이 보였는데 역시 용봉지회는 만인의 이벤트인 모양.
그때 누군가가 진천희의 앞좌석에 앉았다.
“미안한데 합석을 해도 되겠는가?”
“아, 예. 괜찮습니다.”
“고맙군.”
왜일까.
어째서인지 목소리에서 기도가 느껴졌다.
시선을 돌려 상대를 보니 도무지 연령을 짐작하기 어려운 여인이 앉아 있었다.
긴 머리카락을 묶지 않고 그대로 흘러내리게 내버려두었고, 눈매는 흡사 매와 같았다.
가지런한 이목구비도 그렇고 분위기가 묘하게 아는 사람과 닮아 있었다.
‘여하륜과 묘하게 인상이 비슷한걸……?’
뭐가 닮았는지 짚으라 하면 딱 고르기 어려우나 왜일까, 여하륜과 닮은 구석이 보이는 것은.
옷은 평범한 재질의 무복에 소속 문파의 자수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용봉지회에 구경 온 무인인가 보…… 음?’
그리 생각하는데 문득 등골이 서늘해지는 게 아닌가.
‘잠깐…… 사람? 내 앞에?’
시각과 청각은 분명 눈앞에 사람이 있음을 알려 준다. 그런데 다른 감각은 그렇지 않았다.
기감.
그것은 눈앞의 사람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유령을 보고 있는 그런 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