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3
제 23화
“서대륙식이군요. 특수한 인부들을 써야 하니 돈이 많이 들겠지만 어찌저찌 될 겁니다. 아니면 제가 만들어도 되고요.”
‘직접? 유리창을?’
진천희는 의문 어린 눈으로 유호를 보았다. 진천희가 그린 도면은 집의 벽 한쪽에 아주 큰 통유리로 된 벽이 있어야 했다.
직사각형의 통유리는 채광을 어마어마하게 끌어올려 줄 것이다.
‘이 녀석 정말 수상하단 말이야. 아니, 됐다. 어차피 그런 것보다 스승님 몸이 낫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니겠어?’
진천희가 고안한 것이 바로 3중 유리창. 아예 열고 닫는 기능을 뺐다.
창문이라기보다는 유리로 된 벽이나 마찬가지다. 당연히 편의를 위해서 커튼도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환기용 창문은 따로 그려 넣었다. 이것도 유리다.
이 정도면 건축에서 연필 좀 굴려 본 느낌 정도는 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
과연 이것들을 유호는 다 만들 수 있을까?
유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쓱쓱 문지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쓸데없는 이야기라면 한바탕 면박이라도 줄 생각이었는데 이건 상상 이상의 물건이군요. 그리고 확실히 효과가 있을 것 같고요. 되든 안 되든 시도해 볼 가치가 있겠습니다.”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오판을 고백했다.
그만큼 진천희에 대한 신뢰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진천희는 조금 기뻐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거겠죠?”
“스승님의 병세를 생각하면 당연하죠.”
“좋습니다. 난로와 유리창은 하루 안에 만들어 달도록 하죠. 온돌은 장인을 따로 불러서 시공 단계부터 다시 해야겠습니다.”
그는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주인님의 처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면 작업이 추가로 더 들어가겠지만…… 적어도 열흘이 넘지 않도록 해야겠죠.”
‘좋았어! 이거면 스승님의 병세를 크게 완화시킬 수 있다.’
온돌. 그것은 무협 소설, 그것도 이른바 퓨전 무협 소설 고인물이라면 한 번쯤 인터넷에 검색해 보는 것 중의 하나.
주인공이 이계에 넘어가면 괜히 온돌부터 만드는 게 아니다.
‘크으, 그때 다큐멘터리를 끝까지 다 본 나 새끼 매우 칭찬해!’
설계는 어찌저찌 한다고 해도 만드는 건 전문가가 필요하다. 문득, 진천희는 유호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잠시만요, 난로와 유리창을 하루 만에 만든다고요?”
“네, 뭔가 문제라도?”
유호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니 이놈도 뭔가 무공을 익히고 있었지. 가능하다고 하면 가능한 거겠지. 하지만 어떻게?’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떻게요?”
“하하하, 비밀은 도련님만 갖고 계신 줄 아십니까?”
“윽.”
정곡을 찔렸다. 유호는 이렇게 말했다.
“제 비밀은 도련님의 것에 비하면 별것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뭐, 그래도. 이번에 도련님께 크게 한 방 먹었으니…….”
“가르쳐 준다고요?”
“아뇨. 저는 쪼잔하니까요. 이렇게라도 도련님을 궁금하게 해야죠.”
그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처음에는 무섭고 속 모를 새끼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면도 있구나, 진천희는 생각했다. 유호가 말했다.
“잘되면 도련님 방에도 달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도련님 공이니까요.”
무신경한 척 말하는 목소리에 꽤 깊은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 * *
하루 후.
새벽부터 일어나서 나오니 유호가 기존에 있던 나무 창문을 떼어내고 유리문을 넣고 있었다.
‘진짜 만들었네. 저걸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만들었지? 시간상으로 10시간도 안 지났잖아? 현대의 도구나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진천희의 얼굴에 진득한 의문이 떠오른다. 그래도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유리창이 달렸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겠나!
게다가 바로 그 옆에는 새롭게 집을 짓고 있다.
온돌부터 깔고 있는 것을 보니 엄청나게 빠른 실행력이었다.
‘하루 만에 장인들을 불러와서 바로 일을 시키네. 엄청 빠른데?’
지구에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형태지만 유리가 달리 유리가 아니었다.
거기다가 삼 중 창문으로 되어 있어서 나무보다 훨씬 밀폐가 되었다.
“달고 나니 집이 훨씬 밝아 보이는군요. 도련님.”
“네. 햇빛이 많이 들어올 거예요.”
예전에는 햇빛을 받기 위해 창문을 열어야 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실, 온돌보다 유리창이 더 만들기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그걸 이렇게 빨리 해내네.’
그렇다고 이 세계가 유리가 흔한 것도 아니다.
운룡표국도 창호지를 붙인 나무창을 사용했었다. 인류 역사에서도 유리창이 대중적으로 보급되는 건 좀 더 미래니까.
‘뭐, 실제 지구와는 많은 부분이 다르긴 하지만.’
진천희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유호가 말했다.
“아, 난로 설치도 끝났습니다. 주인님은 안에 계세요.”
“그래요?”
진천희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진천희의 스승 제갈린은 긴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책을 읽고 있었다.
제법 큰 유리 창문에서부터 쏟아진 따사로운 태양빛이 스승에게 내리쬐고 있었다.
영화 촬영을 해도 될 정도로 눈부신 자태였다.
‘겨울에 창문 닫고 난로만 피워도 이렇게 따듯한 것을…… 거기에 유리창으로 채광도 개선했으니 시간을 많이 벌었을 거야.’
진천희는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방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제갈린이 일광욕을 하면서 책을 읽는 모습이 너무 평화로웠다.
“앗, 희구나.”
제갈린이 진천희의 기척을 느끼고는 입을 연다.
그가 애칭으로 부르자 진천희의 얼굴이 붉어졌다. 이 나이에 그런 이름으로 불리니 적응이 쉽지 않다.
‘친부모님이 계시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백린의선, 제갈린은 진천희에게 말했다.
“어서 들어오거라. 창문을 닫고 난로를 쓸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단다. 정말로 몸이 따스해졌어. 마치 온천 속에 몸을 담근 듯한 기분이구나.”
“몸은 좀 어떠세요?”
“어제까지만 해도 하루 종일 기침을 해서 목이 아팠는데 지금은 많이 멎었단다. 난로라는 게 이렇게 좋은 것이라니…… 희야. 네가 만든 게 정말 대단한 물건이라는 걸 써 보니 바로 알겠구나.”
제갈린이 자신의 옆자리로 앉으라고 재촉했다.
‘어리니까 의자도 커 보이네.’
진천희의 작은 몸이 꼬물거리며 의자에 올라갔다.
제갈린은 그런 진천희가 귀여운지 배시시 웃었다.
“우리 희는 어쩜 이렇게 똑똑하고 귀여울꼬. 햇빛을 들이고 실내 온도를 높이기 위해 유리로 창을 단다는 생각은 누구도 한 적이 없단다. 남궁가의 가주가 그렇게 자기 후계자가 대단하다고 자랑을 하는데 아마 그놈들은 네 발끝도 못 따라갈 게다.”
“에헤헷!”
“게다가 이 난로는 또 어떻고? 벽난로나 화로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따뜻하니, 왜 이런 것을 이제야 알았을까 싶구나.”
‘아니. 유리창을 달지 않은 건 이 시대에는 유리가 엄청 비싸고, 거기다 이렇게 큰 유리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없으니까 그런 거겠죠, 스승님.’
애초에 유호 저 엑스트라가 어떻게 유리창을 하루 만에 뚝딱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거기다가 유리창 만들면서 난로는 언제 또 만든 거야? 연금술이라도 쓰는 거야, 이거?’
진천희는 속으로 유호의 정체를 의심했다.
현실적으로 저런 유리창을 하루 만에 만들어 온다는 건 절대로 보통 일이 아니었다.
‘유호…… 나중에 알아봐야겠어. 스승님에 대한 충성심이 남다르다고는 하지만 뭔가 수상쩍단 말이야. 그래도 스승님이 저리 좋아하시니. 나도 기분은 좋네.’
진천희가 제갈린을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상상 이상으로 제갈린은 제자 사랑이 지극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보라.
저 팔불출 같은 발언에 닭살이 돋아날 지경이다.
“나는 그동안 의술밖에 몰랐단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게지. 네가 내 눈에서 비늘을 벗겨 주었구나.”
그래서 팔불출 같은 발언에 참지 못한 진천희가 말했다.
“으아아, 스승님 제발!”
“왜 그러니?”
스승님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시중을 들던 하인에게 말했다.
“아, 당과를 가져오너라. 우리 희가 입이 심심하겠구나. 아직 어린데 많이 먹어야지.”
스승님의 독촉에 하인이 헐레벌떡 주방으로 달려갔다.
* * *
유호는 진천희를 따라 들어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떠난 것도 아니었다.
문 안쪽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유심히 들으며 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 봤을 때부터 진천희를 어여삐 여기시더니, 이젠 아주 그냥 팔불출이 되셨군.’
백린의선이 누군가. 절세의 명의이자 제갈가의 마지막 후계가 아닌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영업용 미소 외에 개인적으로 웃는 일은 거의 없는 사람이다.
거기다 나날이 건강이 악화되어서인지 의각은 정적 속 침음성만이 가득했다.
그런데 진천희와 만나고 나서는 웃을 일이 끊이질 않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애를 키우는 거구나.’
그냥 애도 아니다. 비밀이 많은 아이었다.
아이는 오자마자 한기가 도는 의각의 분위기부터 바꾸기 시작했다.
유호에게 있어 그건 작지만 큰 변화였다.
또한 실제적인 변화 역시 있었다.
제갈린의 혈색이 좋아진 것.
구음절맥으로 몸의 열기를 빠르게 잃어버리는 제갈린이다.
그런 제갈린에게 저 밀폐된 집 안의 열기는 생명 연장을 위해서 꼭 필요한 소중한 것이었다.
유리로 된 창. 그리고 연기가 새지 않은 채 외부로 배출되게 만들어진 청동 난로.
이 두 가지만으로도 제갈린의 건강을 상당히 지탱해 줄 터였다.
거기에 지금 공사 중인 온돌이라고 하는 난방 방식까지 합쳐지면 얼마나 더 뛰어날 것인가?
그것은 유호에게 몹시 귀중한 것이었다.
‘빈말은 아니었다는 거겠지. 하지만 저런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의심스러워. 주인님께서는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생이라면서 신경 쓰지 않으시겠지만……’
생각에 잠기던 유호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
‘진천희. 네가 정녕 주인님의 생을 구해낸다면 내 너를 위해서 무엇이든 주마. 설령 이 목숨이라도.’
가느다란 실눈 사이로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는 독기가 흘러나온다. 그러다가 문득 표정을 풀었다.
안쪽에서 제갈린이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유호의 눈가에서 독기가 스르륵 사라졌다.
‘주인님이 웃으시는 것도 몇 년 만인지…….’
유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