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32
제 232화
‘그런데 같이 익히는 게 가능한가?’
그런 미친 짓을 해 본 놈이 무림사에 없으니 이걸 모르겠다.
“신병이기는 어떤 건가요?”
“천잠의. 천잠사로 만든 상의다. 얇아서 내의처럼 입는 옷이다만, 천잠사 특유의 공능 때문에 검기 정도는 무시하지.”
“오오.”
마침 사마현에게 장갑으로 쓸 천잠사 천도 하나 받았겠다, 꽤 좋아 보인다?
스승님이 말을 이었다.
“이 의복에 기를 불어넣으면 호신기를 만들어 내서 강기 역시 어느 정도는 막아 준단다. 지금은 멸문한 문파의 기보로, 어떤 방식으로 그런 호신기를 만들어 내는지 규명되지 않았지.”
“음……. 대단한 방어복 하나를 입는 셈이네요.”
“그렇지. 거기에 너는 외공까지 익혔으니. 이중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 게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러면 그걸로 하죠!”
“하하하, 그럴 줄 알았다.”
그리 말하며 침 하나를 더 꽂았다.
푹!
“윽……!”
“내일 시상식 가고 싶거든 참거라.”
* * *
다음 날 아침.
진천희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알리자 곧바로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시상식은 용봉지회 규모를 고려하면 생각보다 조촐한 법이다.
결승전이야 무위를 보기 위해 참관한다고 하나, 시상식은 남의 집 잔칫상 아닌가.
그래도 예를 다하기 위해 많은 무인들이 모이나 결승전만큼의 규모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이례적으로 많은 이들이 모였는데 그 이유는.
‘진천희라는 강호의 신예가 보여 준 무위가 상식 밖이었기 때문이겠지.’
마교의 사절이 강한 것도 예상치 못한 일.
심무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인들도 많다.
허나, 진짜배기는 눈에 띄는 법.
진천희와 여하륜이 보여 준 마지막 일격은 용봉지회에 모인 모든 무인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기 충분했다.
그러나…….
“아……. 또한 강호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첫째…….”
‘교장 선생님 훈화가 생각나는군.’
창왕께서 이렇게 연설을 길게 하실 줄은 몰랐다.
“물론 그것뿐이 아닙니다. 다가올 위협을 막기 위해 우리 강호인들은…….”
조는 사람도 보인다.
“……이상으로 마칩니다.”
드디어 폐회식의 훈화가 끝났다.
“우승자는 연단으로!”
둥둥!
북소리가 울리자 잠들었던 무인들이 하나둘 하품을 하며 눈을 뜨기 시작했다.
진천희는 연단에 올라가 예를 표했다.
한쪽 무릎을 꿇고 포권을 하는 진천희.
모두가 기다리는 그 질문이 창왕의 입에서 떨어졌다.
“비급, 신병이기, 영약. 그중 무엇을 원하는가?”
모든 무인들은 그제야 자세를 바로잡고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진천희는 준비했던 답을 내놓는다.
“신병이기를 원합니다.”
“신병이기를 건네라!”
그 말에 군사 독고선이 백색 나무 궤짝을 내려놓았다.
궤짝에는 무림맹을 상징하는 표식이 새겨져 있고, 우승자를 축하하는 붓글씨가 황금으로 적혀 있었다.
‘내용물이 비밀인 건 소설과 똑같군.’
도산검림의 강호에서는 어떤 비급인지, 어떤 신병이기를 주었는지 말하지 않는다.
받는 우승자도 무엇을 받았는지 말하지 않는다.
굳이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열어서 만인에게 보여 주면 될 터이나 목숨이 오가는 이곳에서 패는 한 장이라도 뒤집혀 있을수록 좋다.
‘물론 나중에 다 소문나긴 하지만.’
밖으로 꺼내고 다니다 보면 결국 목격자가 생기고, 소문이 돌기 마련.
거기까지는 어쩔 수 없다.
진천희는 궤짝을 받아 열지는 않고 크게 위로 치켜들었다.
“감사합니다!”
와아아아아아—!
무인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새로운 강호 신성의 탄생을 모두가 축하하는 가운데.
가장 앞줄에서 스승님이 행복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계셨다.
창백한 뺨에 생기까지 도는 것을 보니 저러다 너무 행복해서 등선하시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될 지경.
이제 진천희는 만인이 알아보는 금송아지가 되었다.
스승님이 그동안 입을 털었어도 내심 믿지 않았던 장문인들도 똑똑히 보았다.
스승님의 금송아지가 찐이라는 걸!
‘스승님 기뻐하십시오! 앞으로 십 년, 아니 삼십 년은 이걸로 자랑하셔도 됩니다!’
그것은 동시에 ‘스승 친구 제자’들의 재앙이 되었다.
* * *
용봉지회 폐회가 끝나고 연회가 열렸다.
여하륜, 진천우, 사마현.
이 셋이 진천희를 보고자 하는 것은 당연했다.
세 사람을 보자마자 진천희가 빠르게 말했다.
“일단 이 좋은 날에 싸우지 마라. 알았지?”
형으로서 무력도 보여 주었겠다 진천희는 가슴을 부풀리며 근엄하게 말했다.
그 말에 먼저 답한 건 여하륜이었다.
“……안 싸워.”
“뭐?”
주인공이자 마교, 여하륜은 새카만 눈동자를 굴려 진천희를 바라보았다.
“형 쓰러져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형은 모를 거다.”
사파인 사마현이 말했다.
“어찌 되었건 우리끼리 싸우면 형이 어떻게 되는지 잘 봤으니까~”
정파, 진천우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제가 중간에 나선 보람이 있는지 다행히 중재가 잘 되었네요, 형.”
이렇게 은근히 점수를 딴다.
정작 진천희는 약간 망치로 얻어맞은 표정으로 셋을 바라보았다.
‘아니… 이놈들은 형으로서의 무력에 감탄하기는커녕… 내가 피 토하고 쓰러진 것만 기억하는 건가.’
힘으로도 형은 최강! 형의 위엄! 아아, 역시 형은 굉장해!
형님! 의형제로서 형님만 따르겠습니다!
이런 반응을 은근히 원하긴 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셋이 바라볼 건 뭔가.
‘강호의 평화를 지키긴… 했… 했는데…….’
뭔가 슬퍼진다.
사마현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우애 다질 건 아니고……. 서로를 참을 정도 수준까지는 온 것 같아~”
여하륜이 말했다.
“형은 화경이 될 때까지 두 번 다시 그딴 기술을 써선 안 된다는 것만 기억해. 다 죽여 버리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여하륜의 새카만 머리카락이 스산하게 흔들렸다.
천우가 말했다.
“형. 형 쓰러져 있는 동안 저희도 제정신이 아니었다고요.”
그렇군. 동생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했지만 이런 교훈은 아니었기에.
진천희는 슬퍼졌다. 그때 사람들이 진천희를 불렀다.
진천희가 말했다.
“일단 끝나고 마저 이야기하자. 여하륜과 사마현, 둘에게 줄 게 있으니까. 천우에게는 이미 주었고.”
“?”
천우는 곧바로 눈치챈 모양이었다.
‘이제 슬슬 영단을 줘도 되겠지.’
생각한 것과는 다른 반응이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법.
연회가 끝나고 다시 한번 보기로.
그렇게 약조했다.
* * *
‘이야, 힘들다……. 이런 행사도 은근히 빡세구만. 그나저나 스승님은……?’
힐끗 보니 스승님은 맹주님과 어딘가로 향했다.
아마 다른 이들은 들어서는 안 되는 뒷이야기겠지.
진천희는 그 이후 알고 있던 많은 이들과 인사했다.
의외인 것은 공손가가 참석하지 않은 것.
‘개방주의 말을 듣고 공손가는 적당히 기권했지.’
어차피 이번 용봉지회에 참석하는 공손가의 무인은 그리 기대주는 아니다.
본선에 진출한 실력을 보인 이상, 적당한 선에서 기권한들 크게 상관은 없다. 그러나 용봉지회가 끝난 지금.
큰 환난의 조짐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고. 용봉지회에서 다치거나 지친 무인들은 각자 숙소에서 쉬고 있는 수준.
‘으음, 어쩌면 방주님의 경고는 그냥 기우였을지도 모르겠는걸. 아니면… 공손가의 무위가 용봉지회를 통해 퍼지는 걸 경계하는 걸지도.’
그거라면 확실히 경계할 만하긴 했다.
사마현도 그래서 우승보다는 본 실력을 감추는 쪽을 택했지 않나.
‘이것까지는 나도 모르겠군. 왕각연은 공손현의 청으로 용봉지회 출전을 포기했는데 내심 원망…… 아니, 그럴 녀석은 아니지.’
용봉지회에서 명예를 얻는 것보다 친우와의 만남을 통해 심득의 힌트를 얻는 게 더 우선인 녀석 아닌가.
그야말로 올곧은 무인.
그런 녀석이라면 별생각 없이, 지금쯤 수련이나 하고 있겠지.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계속해서 사람을 만나고 잔을 나누었다.
술을 좋아하진 않았으나 이런 상황이니 축배를 마실 일이 생긴다.
강호독보를 하는 무인이라면 모를까, 의원은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고, 도움을 줘야 하는 자.
진천희는 우승자로서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각주! 소각주가 될 줄 알았소!”
“소각주니이이임! 사랑합니다아아아아!”
“백린의각의 영우우우웅!”
백린의각 의원들은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잔을 들었다.
이제 응급실 일도 끝났겠다 모두 자유다!
거기다가 이번에는 과로로 쓰러지는 사람 없이 모두 끝까지 잘 살아남았지 않나.
“의각의 홍복이로다!”
그 꼿꼿한 침구당주님까지 얼큰하게 취해서 잔을 흔들었다.
이번 용봉지회는 백린의각 의원들의 한을 풀어 주는 그런 대회였다.
수없이 많은 무인들을 치료하고, 그렇게 치료한 무인들이 다시 나가서 다쳐오거나 새로운 환자를 만들어 오는 것을 보며 쌓여 왔던 울화들.
그 켜켜이 쌓인 울화들이 이렇게 풀릴 줄은!
“하하하하! 소각주님. 한잔 받으시죠.”
추나당주까지 진천희의 어깨를 한 팔로 끌어안고 술병을 흔들었다.
그녀는 백린의각에서 가장 주량이 세기로 유명하다.
그런 그녀가 취할 정도면 다들 거나하게 취한 터.
골골골-
뭐라고 답하기도 전에 진천희의 잔에 술이 가득 찼다.
어쩔 수 없다.
“백린의각의 승리를 축하하며 건배!”
쨍!
모두가 잔을 맞부딪쳤다.
하늘에는 술잔처럼 둥근 보름달이 함박웃음 짓고 있었다.
* * *
파장 분위기가 되자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하아, 연회 너무 힘들다.’
오행상극독을 돌려 주독을 해소하고는 숙소에 딸려 있는 뒷마당 작은 정자에 멍하니 누웠다.
별채인데도 정자까지 준비된 제법 괜찮은 숙소.
백린의각이 그만큼 고생하고 있기도 하고, 수틀리면 지난번처럼 스승님이 뛰쳐나갈 수도 있으니.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정자에서 보이는 달은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진천희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는 건 오랜만이네.’
상대가 사람이든 병마든 늘 무언가와 싸우거나 계산하는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누워 있는데 무력당 소속 무인이 진천희를 향해 다가왔다.
“소각주님, 방문자가 있습니다. 소각주님을 꼭 뵙고 싶다고 합니다만…….”
“누구죠?”
“삼절추호라고 합니다.”
그 말에 진천희가 몸을 바로 일으켰다.
“들어오라고 해요.”
무인은 진천희에게 예를 표하고 후원을 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의 걸음걸이가 느껴졌다.
묵직하나 가벼운, 모순적인 걸음걸이에 진천희는 곧바로 그 주인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오랜만이로군. 진 소협, 아니. 백룡신의라고 불러 드릴까?”
“낯간지럽네요. 그냥 진 동생이라고 불러주세요. 하하하.”
그렇게 웃고는 다시 물었다.
“승리를 축하하러 오신 건 아니죠?”
“……물론 그것도 있지. 허나 아직 밖이 찬데 안에서 대화하는 건 어떤가.”
밖에는 새어 나가면 안 되는 이야기일 터.
삼절추호가 은밀히 하는 이야기라면 단 하나.
그녀는 혈선교에 있는 동생을 추적하고 있다. 아마 그 이야기겠지.
진천희는 두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같이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