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34
제 234화
공손세가에 도착하니 왕각연이 심각한 표정으로 진천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 말대로 정말로 왔네.”
삼절추호가 곧바로 포권을 했다.
“삼절추호가 소궁왕을 뵙소.”
소궁왕? 그게 왕각연의 별호였어?
진천희가 놀라서 바라보자 왕각연이 붉어진 얼굴로 답했다.
“몇몇이 추켜세울 뿐 아직 별호에 걸맞은 실력은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백 장 밖에서 수적 놈들을 쏴서 장강에 담가 버린 일은 유명하던데…….”
“그, 그 이야기는 그만하죠. 아무튼 세가에 들를 것이라는 말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칭찬이 많이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그것을 눈치챘는지 삼절추호가 바로 말을 바꿨다.
“오오, 과연 흑빙독룡이구려. 아, 혹시 흑빙독룡이라는 별호는 꺼리시오?”
“그렇진 않습니다. 언니는 오히려 악명을 즐기시기도 하고…….”
그렇게 말을 흐리더니 진천희를 향해 왕각연이 말했다.
“너 아직 다 안 나았을 텐데 더 쉬지. 이 시간에 와도 돼?”
“어쩔 수 없지. 뭐.”
진천희의 말에 왕각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따라오시지요.”
왕각연의 인도에 따라 별채로 들어가니 공손현이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묵빛 옷으로 입고 있었는데,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주변으로는 수많은 전서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었으나 모두 암호로 되어 있어 단 한 자도 읽을 수 없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시가 급한 일이니 예를 표하실 건 없습니다.”
그 말에 삼절추호는 포권만 하고는 빠르게 용무부터 말했다.
“공손세가는 없어진 물건이 없다 들었습니다. 혹시 뭔가 특이한 것을 발견하진 않았습니까?”
“……없습니다. 수상한 사람도 없었고 발자국이라고 할 것도 없었지요.”
“…….”
그때 공손현이 작게 한마디 덧붙였다.
“아, 생각해 보니 한 가지 있긴 했습니다. 이것을 수상하다고 말하기는 기이하긴 합니다만.”
“무엇이죠?”
“쥐가 한 마리 보였습니다.”
“?”
삼절추호가 그게 뭐가 이상하냐는 듯 바라보았다.
방역 회사나 콘크리트 건물, 잘 설비된 상하수도 시설이 있는 세계도 아니고 무림에서 쥐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어찌 보면 바퀴보다 쥐가 더 많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
공손현이 창백한 표정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저는 쥐를 무척이나 싫어하여 숙소에 짐을 풀기 전에 보이는 모든 구멍을 막고 남김없이 섬멸해 왔습니다만 대들보에 한 마리 남아 있더군요. 각연이가 잡아 주어 얼마나 다행인지…….”
“……어… 다행이군요. 알겠습니다.”
편집증이 있는 삼절추호조차도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하는 표정을 짓는다.
쥐는 공기처럼 있는 존재 아닌가.
그때 진천희가 물었다.
“혹시 뱀은 발견되었나요?”
공손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잘……. 아, 뱀이 한두 마리 있었다고는 들었어. 내쫓으면 안 되니까 집 안에 들어오지 않게만 주의했단다.”
오랜 미신이다.
집 밑에는 뱀이 살아서 그 뱀이 집안의 액운을 쫓아준다는 미신.
실제로 지구, 오래된 시골집 밑에는 뱀이 살곤 했다.
그 뱀이 떠나면 집안의 가세가 기운다는 미신이 존재하여 어르신들은 그것을 구태여 쫓지는 않았다.
밑에서 쥐나 해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도움이 되는 면도 있었고.
“그건 왜 묻는 거지?”
“그냥요.”
현원전단신공이 가설 몇 개를 추가로 물고 왔다.
그러나 그중 어느 쪽도 입 밖으로 말하고 싶진 않았다.
목구멍 깊은 곳에서 섬뜩한 예감이 밀려왔기 때문.
그렇게 몇 가지를 더 묻고는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문득 시끄러운 소리가 사방으로 번져 울리기 시작했다.
와장창!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였다.
* * *
언정무.
그는 객잔에서 쓰린 패배에 대해 곱씹었다.
소백룡은 강했다.
아니, 이제는 백의신룡이라고 별호가 바뀌어 가고 있으나 거기까지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진천희는 여전히 그에게 소백룡이다.
그의 앞에는 같은 패배의 잔을 나눴던 팽천식이 함께 술을 마셨다.
“젠장……. 그놈은 나를 상대로 칼도 뽑지 않았소. 무인으로서 모멸감을 주고자 하는 것이겠지.”
사지 온전히 안전하게 기절시키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듣고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천지에 고작 그런 목적으로 용봉지회에 참가하는 미친 인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꿀꺽꿀꺽-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며 머리가 홧홧하다.
술이라도 함께하지 않으면 이 질투심을 억누르기가 어려웠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천한 의원 새끼에게 져서 좋아?
카각-
그 순간, 들고 있던 술잔이 힘을 이겨 내지 못하고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람의 목소리로 들리는 게 아닌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 같은 소리.
그러나 언정무는 그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그저 부들부들 온몸에 질투심과 모멸감만 밀려올 뿐이다.
그 속을 모르는 팽천식이 말했다.
“그… 차라리 우승까지 갔으니 다행이지 않소, 형님. 기왕 이렇게 된 거 형님한테도 별호가 생길 수도 있고.”
“팽 아우는 지금 나한테 시비를 거는 건가?”
“아니, 그게 아니고…….”
그 순간, 언정무가 분을 참지 못하고 팽천식을 향해 술잔을 집어 던졌다.
콰창!
팽천식이 놀라서 말했다.
“언 형, 너무 주사(酒邪)가 심하지 않소?”
“죽이겠다.”
“네?”
“내 패배를 모욕하는 놈은 싹 다 죽여 버리겠다!”
그 순간, 언정무가 주먹을 날렸다.
살의가 담긴 주먹이 팽천식에게 격중했다.
빠악!
* * *
객잔 안에서 소리가 요란하다.
문 밖으로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어 굴러 나왔다.
안면이 크게 상해 있어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웠으나 진천희는 차림새를 보고 누구인지 눈치챘다.
“어라……. 팽 소협 아닙니까? 안면 외상이 심각하군요. 주먹으로 구타를 당한 것으로 보아 뇌진탕 증상도 걱정되고요.”
그리 말하며 기계적으로 응급처치 자세로 들어가자 삼절추호가 답했다.
“……진단 그만하게, 동생.”
“뇌진탕 증세가 이미 있습니다.”
그사이에 거기까지 알아냈구나. 삼절추호가 감탄하는 사이에 진천희는 곧바로 처치를 시작했다.
대단할 것은 없었다.
점혈로 지혈하고 정신이 들게 하는 맥을 눌러 줬을 뿐.
당장 외과적 처치를 하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누워 있던 팽천식이 몇 번 신음을 내뱉다가 진천희의 처치에 정신이 돌아왔다.
그는 힘겹게 말했다.
“진… 진 소협이십니까……. 혀… 형님을 막아 주십시오.”
“음?”
고개를 들어 객간을 보니 진주언가의 언정무가 닥치는 대로 물건을 부수고 사람을 패고 있었다.
“감히 나를 무시하는 거냐! 근본도 없는 의원 나부랭이에게 졌다고 나를 비웃는 거냔 말이다!”
그 말에 진천희는 생각했다.
‘화난 건 알겠는데…….’
진 입장에서 속이야 상할 수 있으니 자신을 욕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허나 스승님이 버젓이 계시는데 근본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사문을 욕하는 것인가 아닌가.
‘무림의 법도상 사문을 욕하면 죽여 버리거나 거기에 준하는 고통을 주지, 아마? 부모 욕이랑 똑같으니까. 나는 차마 거기까지는 안 하더라도 시늉은 해야겠다.’
의원으로서 영구적 장애를 남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남의 부모 욕을 하면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는 교훈은 줘야 하지 않나?
‘한동안 꿈에 나올 정도로만 쥐어 패면 되겠지.’
현대인은 제정신이 아닌 결론을 내리고는 고개를 들었다.
언정무는 마침 점소이의 멱살을 붙잡아 올리고 있었다.
‘아, 양민 건드리는 건 선 넘었지.’
점소이를 후려치려는 찰나. 쇠구슬이 언정무의 손등을 정확히 후려쳤다.
타앙!
언정무는 점소이를 잡은 손을 놓쳤고.
점소이는 ‘으아악! 대협! 대협!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며 객잔 밖으로 도망쳤다.
언정무는 쇠구슬을 한 번 보더니 날아온 곳을 한 번 더 보았다.
그곳에는 진천희가 서 있었다.
“네놈! 천한 의원 노오오옴!”
“진 동생, 도와줄까?”
“음, 누님께서는 다친 환자분들을 객잔 밖으로 옮겨 주십시오.”
“그거면 되겠나?”
“저보고 근본이 없다고 욕했으니까요.”
그 말에 삼절추호가 곧바로 납득했다.
“곤죽으로 만들어 버리게!”
역시 사문 욕이 맞았군.
‘이렇게 된 거 그렇게 많이는 안 봐줄 테니 깁스는 하시오.’
진천희의 손에서 쇠구슬이 자르륵 울렸다.
“으아악, 죽어! 죽어 버렷!”
언정무는 진천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권기가 실처럼 출렁이는 것이 권사까지 담겨 있는 주먹이었다.
그 주먹을 향해 비스듬히 철탄을 날렸다.
탄지천통.
진천희식 연계 폭탄(爆彈).
약화유탄(弱化誘彈)!
전에는 그냥 직탄이나 연탄만 쏘았다면 이번에는 폭탄.
원래라면 기절이나 시키고 끝냈어야 하나 사문을 욕하고 힘없는 양민에게 폭력을 쓰려 한 건 용서할 수 없었다.
‘같은 주먹도 무림인은 살고, 양민은 죽어. 내가 이렇게 말한들 들을 상태가 아니지만.’
폭탄이 손목 아래에 부딪치며 폭발했다.
파앙!
최대한 위력을 약화시켰다고는 해도 폭(爆)이 들어간 이상 폭발한다.
언정무의 외공이 견디지 못한다.
손목이 반대 방향으로 꺾였다.
“크아아악!”
그런 언정무를 향해 진천희가 차분히 말했다.
“선을 넘었으니 골절하겠습니다. 깁스를 한 동안에는 제아무리 미친 무인이라도 좀 침착해지거든요.”
그 말에 부상자를 옮기던 삼절추호가 ‘미친놈!’ 하는 눈으로 진천희를 돌아본다.
언정무가 소리 질렀다.
“개소리! 개소리이이이!”
술 때문인가?
주사(酒邪) 때문에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것은…… 흔한 일. 그러나 뭔가 눈빛이 이상했다.
언정무의 몸이 부풀어 오른다.
‘이것도 진주언가 무공……인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언정무가 진천희를 향해 다른 쪽 주먹으로 권풍을 날렸다.
현원전단신공은 권풍의 시작부터 발출까지 그 과정을 모두 놓치지 않는다.
‘피할까? 음……. 아니다. 내가 피하면 부상자가 늘겠군.’
쇠구슬 하나를 발출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회전하되 몹시 느렸다.
그랬다. 과거 언정무에게 답했던 술잔처럼.
탄지천통.
진천희식 약화.
답보회탄(踏步回彈)—-!
내력을 담아 던졌음에도 느리고 느린 회탄은 권풍을 정면에서 찢었다.
크과과곽!
그럼에도 앞으로 전진했다.
“감히 내게 또다시 벌주(罰酒)를 던지는 거냐아아!”
과거 그가 진천희에게 시비를 걸었을 때, 진천희가 답으로 날렸던 술잔. 그 술잔의 묘리가 철탄에 들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모양이다.
‘오, 취했는데 알아보네.’
언정무는 회탄을 향해 분노하며 주먹을 날린다.
콰앙!
그러나 놀랍게도 부러지는 것은 언정무의 다른 쪽 주먹이었다.
“크아아아악!”
‘엿 같군. 내가 저걸 다시 붙일 생각을 하니 엿 같아.’
허나, 사문을 욕하고 양민을 괴롭혔으니 그에 따른 답은 줘야 했다.
그리고…….
‘단순히 술버릇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이상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