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4
제 24화
진천희가 돌아간 후. 유호는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방으로 들어왔다.
“창문 잠시 열어 둘까요?”
“괜찮네. 방금 전에 하인이 하고 갔네.”
밀폐형 난로를 만들긴 해도 가끔씩 환기를 하기는 해야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제갈린은 침대에 누웠다.
“마치 온천 속에 있는 기분이군. 제자 덕에 오랜만에 편히 잘 수 있겠어.”
“기맥은 괜찮으십니까?”
“음.”
기맥(氣脈).
몸속의 기가 흐르는 통로를 뜻한다.
사람은 이 기맥을 통해 성장하고, 살아간다.
날 때부터 기맥이 막힌 상태로 살아야 하는 게 절맥이다.
그중에서 가장 악독하다는 구음절맥과 싸워 왔다. 원래라면 무공을 쓸 수 없는 몸이었다.
그런 그가 무공, 그것도 강호에서 손에 꼽히는 무공 경지까지 올라온 것도 기적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고자 치열하게 구음절맥을 연구하다 보니 성공한 일.
사람들은 경외를 담아 그를 ‘의선’이라 부른다.
신의를 넘어 신선이라 불리는 존재.
“영단이나 만들 줄 알았지 집에 대한 부분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구나. 나도 참 헛공부했어. 이리 따뜻한 것을.”
“의원의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거기다가 진천희가 그려 준 도면은 꽤나 정교했습니다. 여기서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었고요.”
“서대륙의 것에 가깝다고 들었네.”
“서대륙의 느낌이 나는 것뿐이지 엄연히 말해 서대륙의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것보다 좀 더 발전해 있는 형태더군요.”
제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 제자인데 당연하지.”
“아무렴요. 전서구마다 자랑하는 스승의 제자죠.”
의각은 전서구가 많이 다닌다. 그런데 제갈린은 그곳에 일일이 제자 자랑을 시작했다.
그 말에 제갈린이 헛기침을 했다.
“커흠…….”
“다음 주에 보내질 정기 전서구에다가 제자 자랑 써 놓으신 거 모를 줄 아십니까? 곧 강호에서 진천희가 대체 누구냐고 난리가 날 겁니다.”
그 전에 천하의 백린의선이 제자 하나 두었다가 팔불출 되었다고 소문이 먼저 퍼지게 될 거다.
유호는 그 이야기는 빼고 이야기하기로 했다.
제갈린이 말했다.
“나는 그리 자랑하지 않았네.”
-의선의 제자 진천희가 새로운 난로 제조법을 개발하였다. 이것은 스승을 위한 것으로, 그 마음이 하늘에 닿아 금방 쾌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이고, 쾌유는 무슨, 이제 겨우 시작인데.’
스승의 팔불출에 보는 유호도 얼굴이 붉어진다.
의각에서 보내는 정기 연락은 현대로 치면 학술지다.
새로운 치료법이나 새로운 질병들을 밝히고 전하는 게 목적이다.
지역 의원들이 이 전서구를 받아 보고 대체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뭐, 그동안 다들 너무 힘들긴 했지.’
이미 각주가 시한부 인생인데 의각이 편안할 리가.
숨조차 쉬기 힘들었던 이 분위기가 바뀐 건 무척이나 좋은 일이었다.
“거, 그래도 이렇게 사람이 바뀌는 건 해도 해도 너무하잖습니까.”
“됐으니까 문 닫고 나가게! 나 잘 테니까.”
“갈 겁니다.”
유호는 향초를 끄고는 밖으로 나갔다.
“좋은 밤 되십시오.”
“그래. 자네도. 아, 참, 내일은 곶감을 준비해 오게나. 우리 희가 같은 당과만 먹으니까 질린 것 같아.”
“…….”
그 말에 유호는 자신의 생각을 취소하기로 했다.
이건 그냥 팔불출이 아니다.
거대 팔불출이다.
“아주 그냥 주머니에 넣고 다니시지 그러십니까.”
“설마 애한테 질투하는 겐가?”
“누가 질투한다는 겁니까!”
유호는 투덜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편히 주무시길.”
“암. 오늘은 아픈 곳도 없고 정말 좋군.”
얼마 지나지도 않아 그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변해 갔다.
오랜만의 깊은 잠.
천금을 줘도 살 수 없었던 보물이었다.
유호는 문을 아주 조심히 닫았다. 그러고는 다른 시종들에게 오늘 밤은 더욱 조용히 움직일 것을 명했다.
* * *
다음 날.
“본가의 시조는 제갈량, 후대에는 공명 선생이라고도 불리신단다. 공명께서는 진법, 기관진식, 그리고 의법을 편찬하셨고, 후대에서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지금에 이르렀지.”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린이 말을 이었다.
“원래라면 너를 수양아들로 들여 후대를 이어야 하지만 부모가 물려주신 성을 바꾼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이제 와서는 그게 그리 중요할까 싶어 제자로 들였단다.”
스승인 제갈린과 진천희는 의각의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건물 안에 단둘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구도 없고, 바닥에는 나무로 된 장판을 깔았다.
창문도 아주 작은 것 하나뿐이고 구석에 화로가 하나 있다.
스승인 제갈린은 이곳이 운공실이라고 했다. 의각에 속한 무인들이 내공 수련을 하기 위해서 외부와 단절해 놓은 공간.
그런 곳에서 설명을 들으면서 진천희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아니, 제 진씨는 고아원 진씨인데…….’
진천희가 아니라 제갈천희가 되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리고 제갈이 앞에 붙으니 뭔가 더 있어 보인다?’
스승님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지금도 팔불출인데 양자로 들어오면 얼마나 더 끔찍해질 거냐고 유호가 난리더구나. 후일, 네가 원한다면 ‘제갈’이라는 이름을 써도 된단다. 유호와 의각의 가솔들이 모두 증인이 되어 줄 거니 걱정하지 말거라.”
진천희는 여기서 말하는 ‘후일’이란 단순히 자신이 성장하고 난 연후를 뜻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제갈린 자신의 사후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 말의 무게에 진천희는 짓눌릴 것만 같았다.
‘무겁다.’
스승님은 죽음을 미뤘으나 내심 완치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완전한 희망을 보여 주려면 그만한 실력을 갖추어야 할 터, 진천희는 결의를 담아 작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스승님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본 가문은 뇌를 활성화시키는 심법이 기초란다. 기억력을 증진시키고, 사고력을 빠르게 돌리지. 활성화된 뇌는 육신의 감각을 해방시키지. 이런 것도 가능하단다.”
스승님은 몸을 돌린 채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멀리 있던 목각인형의 혈도에서 타격음이 들렸다.
“거묘혈.”
퉁-
“천웅혈.”
퉁-
“옥당혈.”
신기했다. 보이지도 않는데 인체의 혈을 단순히 탄지공으로 친다는 게.
더욱 신기한 것은 이번에는 관통하지 않고, 정확하게 목각인형의 표면만 쳤다는 것이었다.
지난번에는 바위와 나무를 관통하더니, 이번에는 그 어떤 상처도 내지 않고 표면만 건드리고 있었다.
그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권총의 화력을 강하게 만드는 건 가능해도, 권총의 화력을 정확하게 조절하는 건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저게 돼?’
놀란 진천희를 보며 제갈린이 말했다.
“신기하구나. 보통 아이들이라면 왜 지난번처럼 인형을 관통하지 않냐고, 왜 이리 약하냐고 물을 터인데.”
“힘의 조절이 완벽하다는 거니까요. 목각인형에 그려진 염료에 상처 하나 내지 않으셨잖아요.”
“하하하, 예리하구나.”
제갈린은 말을 이어갔다.
“본문은 이렇듯이 뇌를 이용해 보통의 무인보다 더 많은 성취를 이루었었단다. 그렇기에 자만해 왔던 게 본문의 화근이었지. 너는 그리 배우지 않을 테니 걱정 말거라. 너는 그 어떤 제갈가의 전인들이 배운 것보다 더 나은 것을 배울 테니.”
제갈가의 멸망을 그는 두루뭉술하게 말하며 넘어갔다.
그 안에서 상처를 느꼈기에 진천희는 모르는 척 질문했다.
“제갈가의 무공은 탄지공이 중심인가요?”
“하하하, 이건 그저 놀이지. 쉽게 설명하자면 가장 강한 무력을 선보이는 것은 검, 그리고 부채를 이용한 무공이란다.”
“부채요?”
생각해 보니 드라마 같은 곳에서 제갈공명은 언제나 학우선을 사용했다.
“물론 이건 표면적인 것뿐, 깊이 들어가게 되면 만 가지 병기와 진법을 다룰 수 있지. 그게 본가의 무서운 점이란다.”
신기했다.
‘처음 보는 무기도 전부 다룰 수 있는 건가? 그게 가능해?’
하지만 눈앞의 저 스승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아 보였다.
진천희는 순진하게 말했다.
“저도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나요?”
“그래. 본가의 무공을 끝까지 배운다면 천하제일인이 가능하지.”
스승님은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 담담히 말씀하셨다.
그러고는 이렇게 물었다.
“너는 천하제일인이 되고 싶으냐?”
‘천하제일인이 되면 리틀 천마가 죽이러 올 것 같은데요…….’
마교 교주가 되려면 자신의 무공이 절세 제일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소교주 때부터 강호의 이놈 저놈에게 시비를 걸면서 목을 따러 다니는 것이 순서 아닌가.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여하륜은 천하제일의 목을 따러 간다. 내가 천하제일이 되면 그 새끼가 내 목을 따러 올 것이다. 천살성에 주인공 버프를 받은 새끼가…….’
진천희가 물었다.
“스승님, 천하제일인이 되면 뭐가 좋아요?”
“음. 글쎄다.”
막상 그렇게 물으니 스승님도 말문이 막혔다.
천하제일인이 뭐가 좋냐니, 그동안 숱한 강호인들이 뼈가 부서져라 수련하는 이유를 묻고 있다.
“뭔가 상장이나 상패가 오는 건 아니군요.”
“명예와 동경이 오겠지.”
“명예는 스승님도 높지 않아요?”
그것도 그렇다. 아무리 고매한 이유를 붙여도 검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거기까지 오르기 위해 필연적으로 시산혈해를 이루게 된다.
무(武)란 결국 동전의 양면과 같다.
말년까지 평안하게 살다가 조용히 금분세수하는 무인이 드문 이유다.
그에 비해 다른 한쪽은 천하제일 의원. 사람을 살리는 게 본업이다.
강호에서 평균 수명 70세의 직업군이라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환골탈태를 해서 젊어지는 일은 거의 없지만, 딱 의원으로서 필요할 만큼의 무공을 단련해 놨기에 잔병이 적고 말년에도 건강한 편이다.
죽을 때쯤 되면 가족, 손자, 제자, 친우들이 모여서 함께 임종을 지키는 게 일반적인 풍경.
강호의 의원 특성상 돈도 부족함이 없는 터라 부자는 아니더라도 궁핍하지는 않다.
“천하제일인이 되면 누구도 누리지 못할 권력도 생길 거란다.”
“스승님에게 잘못 보이면 빠르건 늦건 나중에 훅 갈 텐데 스승님한테도 다들 잘 보이려고 하시잖아요.”
그것도 그랬다.
제갈린이 물었다.
“그래서 넌 뭐가 되고 싶니. 희야?”
“천하제일인은 필요 없어요.”
“그러면?”
“천하제일 의원이 되고 싶어요. 스승님처럼요.”
쿠궁-
그것은 천하의 백린의선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제갈린은 이성을 날린 사람처럼 진천희의 머리를 격하게 쓰다듬었다.
“오구오구, 이쁜 녀석! 이렇게 이쁜 녀석이 다 있나! 말하는 것 하나하나 안 이쁜 곳이 없구나.”
제갈세가 내에서 그동안 천하제일인이 되고 싶다는 놈은 숱하게 봤어도 천하제일 의원이 되겠다는 놈은 진천희가 처음이었다.
이것은 운명이라고 제갈린은 생각했다.
‘이놈은 하늘이 내린 의원이다!’
반면 진천희는 생각했다.
‘그래. 오래 살려면 의원을 해야 해. 리틀 천마 놈이 마교 교주지만 그래도 주인공이라고 의원 죽이는 건 소설에서 본 적이 없다. 마교에 납치, 세뇌는 해도 말이지. 그리고…….’
천하제일인이 천하제일 의원이라면?
먼 이야기지만 왠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크으. 그래, 해 보자.’
쉽지는 않을 것이리라. 하지만 두 번째 삶이다.
자신의 한계가 어딘지 가 보고 싶었다. 해 볼 수 있는 것은 다 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스승님. 제가 꼭 치료해 드릴게요.’
처음으로 받은 따뜻함이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타인에게 이런 온기를 받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런 그를 허망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은혜를 갚고 싶었다.
그게 인간 진천희의 협(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