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49
제 249화
“희야. 현실적인 이야기를 조금 해 보자꾸나.”
스승님의 말에 곧바로 허리를 세워 자세를 바로잡았다.
여기서부터는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가 아닌, 각주와 소각주의 이야기가 될 테니까.
“우리 백린의각의 수입은 천하에서 서른 번째 정도는 될 듯하단다. 대량생산되고 있는 백린신단, 아니 백린단까지 판매하기 시작한다면 그때는 어쩌면 천하 십 대 거부 중의 하나가 될 수도 있겠지.”
양산형 백린신단의 이름은 백린단으로 정했다.
약효가 원판에 비해 떨어지기에 신(神)이라는 글자는 빠지나 여전히 무림식으로 말하자면 내상에는 이것만 한 약이 없다.
과거에는 세가의 사람들만 독점하던 약이 이제는 평범한 양민들도 큰마음을 먹으면 살 수 있는 가격이 된 셈.
이 세계의 의료 단가를 생각하면 혁명이라 할 수 있었고.
화주의각에서 크게 반발하여 심각한 수준까지 견제를 하고 있다 들었다.
‘뭐, 스승님께서 알아서 잘 막아내고 계시는 모양이지만.’
백린단의 판매가 시작되는 순간 백린의각은 이제 엄청난 부를 거머쥐게 될 것이며, 화주약선과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터.
그것은 각오한 일.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 십 대 거부라니 엄청난 이야기네요. 위에는 누가 있는데요?”
“하하하, 돈이 가장 많은 것으로 치자면 아마 일월신교일 거란다. 하나의 단체지만 거의 국가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까. 제국 전체의 예산에 비할 바는 아니나 제국 주변의 변경국 정도 수준은 된단다.”
“우와…….”
지존천마 여하륜이 진짜 돈이 많았구나.
그동안 사람 대가리 깨는 장면만 묘사되어서 얘가 이렇게 돈이 많았는지 실감이 좀 안 났다.
당장 눈앞에서 만난 현 천마님도 무명옷에 장신구 하나 없이 계시지 않았나.
‘……아니, 돈이 그렇게 많은데 왜 마교는 이렇게 불행한 거지?’
현대인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사고가 튈 수밖에.
‘지존천마에서 여하륜은 왜 부자가 됐는데도 불행한 거고?’
강호의 은원이 세계 제일의 갑부 자리보다도 무거운 것인가.
‘돈 뿌려서 은원 정리를 하면 되지 않았나? 보상금, 위로금 뭐…… 그런 거 있잖아!’
무림인의 사고는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왜 그 돈을 가지고 있는데 여하륜의 동료들은 한 챕터를 못 넘기고 뻑뻑 죽어 나가는 거고.
왜 여하륜은 ‘천마란 결국 피로 이루어진 고독의 길. 나는 어찌하여 그것을 외면했던가.’ 하면서 뒤통수 깐 동료를 반 챕터 안에 죽이고 있는가.
원작에서 동료는 이름을 외울 만하면 죽어 버리고 차라리 여하륜이랑 죽네 사네 하던 악역들이 더 친근할 지경이었다.
‘그래. 알고 있어. 지존천마는 요즘 스타일 무협이 아니지. 내가 그래서 좋아했어.’
그건 어디까지는 소설을 읽는 독자의 마음이고,
이제 현실이 되니 드는 생각이라고는.
‘그래도 그 돈이 있었으면 좀 행복해도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
이것도 무협 주인공의 숙명…… 뭐 그런 건가?
“희야. 표정이 이상하구나.”
“……그저 강호의 부조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
제자가 다른 이들보다 다소 엉뚱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스승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제갈린이 그런 진천희를 두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 나가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
“그다음으로는 아무래도 황금왕과 만경상단이 있지. 만경상단은 경 씨의 것으로. 그 역사가 제국보다 길다고 알려져 있단다.”
“대단하네요.”
“합법적인 것들을 만경상단이 담당한다면 탈법과 불법 사이의 것은 황금왕이 담당하고 있지. 이를 두고 제국의 빛과 그림자라고 부른단다.”
“공식적으로는 황금왕은 합법적인 것만 다루고 있다고 하죠.”
“그래. 어디까지나 공식적으로는 말이지.”
스승님이 그리 말하며 진천희가 끼고 있는 백룡갑에 시선을 두셨다.
아마 합법적인 방법……만 사용했다면 천잠사를 그만큼 구하는 건 불가능했을 터.
“그 외에도 여러 문파와 가문들이 있단다. 본래라면 백린의각은 대략 쉰에서 예순 번째 정도의 재력을 가졌을 것이란다. 그동안은 그리 삶에 미련이 없었기에 많은 부분을 놓았던 탓이지.”
‘……관리를 안 했는데 그 정도시라고요. 스승님?’
진천희는 목구멍으로 말을 억지로 삼켰다.
“그으……렇군요.”
“네 덕분이란다. 그래도 미래를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은. 어찌 되었건 돈이라는 건 그냥 두어 봐야 쓸데가 없지. 이걸 잘 써야 세력이 불어나는 법이니. 궁귀단의 양성은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 할 수 있겠지.”
스승님은 진천희 눈에 보이는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많은 부분을 준비하고 계시다.
굳이 이번에 궁귀단 이야기를 꺼내신 것은.
제자의 성정이 그 많은 일을 겪었음에도 여전히 무림인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미리 언급하는 것이겠지.
‘나는 그냥 의원일 뿐. 망상가는 아니지.’
사람이 파리 목숨처럼 죽는 이 세계에서 무언가 대단한 이상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자신을 깎아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늘 그리해 왔다.
그러나 그렇게 해결되는 일은 극소수.
지금 이 순간에도 도산검림 속, 사람은 사람을 살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괜찮습니다. 스승님. 그리고 말해 주셔서 감사해요.”
진천희가 무슨 뜻으로 건넨 말인지 아시는 걸까.
스승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별것 아니란다. 다른 이들이 가지지 않은 것. 그것을 하나 가진 것만으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으니까.”
스승님의 목표는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진천희가 묻자 스승님이 담담히 답했다.
“적어도 구 대 문파 중 3개의 문파를 동시에 상대할 정도로 세력을 키워 두는 게 가장 큰 목표겠지. 거기에 합종연횡(合從連衡: 이해관계에 따라 여러 세력이 뭉치고 흩어지는 일)으로 동맹을 맺어 둔다면.”
“…….”
스승님의 부채가 천천히 바람을 만들어냈다.
“강호의 상당 부분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게다. 거기에 주왕께서 도와주신 덕에 관(官)과도 상당히 연을 맺지 않았느냐. 한결 편해지겠지.”
관과 무림이 상관하지 않는다는 법칙은 상단을 운영하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예외다.
현 황제 덕분에 많은 부정부패들이 척결되었다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큼직한 부분이 척결되었다는 뜻.
이 시대 관아의 투명성은 현대와는 개념이 많이 다르다.
여전히 상단을 운영하고 세력을 규합하기 위해서는 관(官)과 좋은 관계를 맺어 두어야 한다.
명절에 황궁에서 대대로 녹봉을 받는 명문가에서 무림세가에 선물을 보내거나 반대로 무림세가에서 명문가에 선물을 보내는 일은 꽤 당연한 풍경.
최근 황법이 지엄하여 어느 정도의 선은 지킨다고 해도 인맥과 혼맥으로 이어진 관계라는 게 쉽사리 없어지진 않는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세 살짜리 애도 아는 이야기지.’
그래서 화주의각에서 그토록 주왕 전하를 모시려고 안간힘을 썼던 거고.
주왕 전하가 떠난다는 것은 주왕 전하를 따르는 수많은 인맥들이 함께 등을 돌린다는 뜻이니까.
‘거기다 스승님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시는 분도 아니시지.’
조금 등이 오싹해졌다.
‘혹시 강호를 뒤에서 조종하는 흑막 하나 탄생하는 거 아니야?’
제자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걸까. 스승님이 딱 잘라 말했다.
“희야, 혈선교를 처리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단다.”
일개 문파로는 상대할 수 없는 집단. 거기다 스승님이 설령 일이 끝나고 흑막이 되신다고 한들 그 힘을 제자 지키는 데 쓰지 그 외 사리사욕에 쓰실 분도 아니었다.
애초에 주색잡기 하나 하는 것도 없이 남이 보면 지독하리만큼 금욕적으로 살던 분 아닌가.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어…… 스승님 계획에 첨언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제자의 망막에 푸른빛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스승님은 가만히 지켜본다.
이 정도로 또렷하게 현기가 보이는 수준이면 현원전단신공이 대성해가고 있다는 뜻.
유일한 이해자가 자신의 발자취를 따라오고 있다는 것은 무척 기쁜 일이다.
“그래. 너는 언제나 나를 놀라게 했지. 무엇을 더 하면 좋겠느냐?”
“흑도도 백도도 아닌 무소속의 무인들을 끌어들였으면 좋겠어요. 돈도 벌고요.”
무릇 강호란 흑도와 백도로 나누어 생각하기 마련이다.
대부분 강호의 큰일은 두 집단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그 두 집단이 충돌했을 때 혈겁이 일어나곤 했으니까.
하지만 현대인인 진천희가 보기에는 오히려 둘 모두에 발을 담고 있거나 둘 중 어느 곳도 가지 않은 애매한 회색분자들이 더 많아 보였다.
진천희가 만난 궁귀도 삼절추호도, 그리고 왕각연도 흑도도 백도도 아닌 가운데를 걷고 있었고.
이들 중에 고수까지 올라가는 이들은 극소수이고, 태반이 표국이나 상단의 호위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는 걸 업으로 살고 있다.
보수로 일반 농민들은 손에 쥘 수 없는 돈을 얻게 되나 그만큼 목숨도 덧없다.
또한 무림인들의 평균 소득을 생각한다면 하층을 담당한다고도 할 수 있었고.
진짜 큰돈을 벌려면 소수의 힘 있는 세가보다는 이런 다수의 회색분자들을 얻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들을 끌어들일 방법이 없을까?’
거기서 시작된 사고는 줄기줄기 이어 나가서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고.
“흐음? 방법을 말해 보거라.”
스승님은 제자의 계획이 궁금한지 오랜만에 장난스러운 눈이 되셨다.
“무소속 무인들…… 어, 그러니까 낭인을 비롯한 대다수의 강호인들은 사실 정보의 불균형에 빠져 있어요.”
“정보의 불균형이라? 재미있는 용어를 사용하는구나.”
“이를테면 수련법. 그들은 무공을 배웠지만 체계적이고 안전한 수련법을 몰라요.”
간단한 이야기다.
현대야 갓튜브만 켜도 3분 스트레칭 방법부터 10분 근력 운동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고 말고는 결국 내 의지에 달린 일이지만, 어찌 되었든 정보가 없어서 못 하는 일은 없고.
이건 단순히 운동의 영역을 넘어서 이제는 수능 입시나 고시 같은 것들도 인터넷 방송 강의로 듣는 수강생들이 수백만 명이 넘는 시대가 열렸다.
그러한 현대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강호는 정보 불균형의 집합체.
무공이라는 사기적인 것이 존재하는 세상임에도 제대로 된 스승의 도움 없이 올바르게 무공을 성취하는 것은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
거기다가 처음에는 모르고 익혔는데 대성 직전이 되고 나서야…… ‘이야, 이거 내가 처음부터 심공을 잘못 이해했었네. 내 단전……ㅋㅋㅋㅋㅋㅋㅋㅋ’ 하면서 주화입마에 빠져 칠공에서 피를 토하고 죽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어디 암굴 있는 산야에서 그러다 훅 가면 나중에 시체도 못 건진다.
산짐승들이 이런 소중한 단백질원을 놓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명문 문파가 있는 거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신공절학!
그것을 제대로 익힐 수 있는 수련 체계와 중원식 커리큘럼!
이것들에 대해 설명하자 스승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구나.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