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5
제 25화
시간이 흘렀다.
뼈를 깎는 수련 덕분일까.
진천희는 예상보다 일찍 내공 수련을 시작했다.
“나는 괜찮지만 너는 절대 말을 해서도, 움직여도 안 된다. 알겠느냐?”
가부좌를 튼 진천희 뒤로 스승님이 앉았다.
그는 진천희의 등에 손을 대고는 자신의 기를 불어넣었다.
대주천.
기가 기맥을 타고 몸에서 한 바퀴 도는 것을 뜻한다.
진천희는 몸 안에 뭔가 들어와 휘도는 것을 느꼈다.
‘이게 사부님의 기운이구나.’
지난번처럼 몸 안을 살피는 게 아닌 본격적인 대주천이다.
몸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사부님의 기를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구음절맥의 영향인 걸까?
제대로 느껴 보니 차갑고 무거웠다.
등에서 시작한 것은 진천희의 몸 구석구석을 휘돌았다.
‘이게 스승님의 내공…….’
과거 진맥 목적으로 살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윽고 제갈린의 내공은 진천희의 어딘가에 가서 닿았다.
단전이다.
단전 안에는 무언가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는데, 진천희는 뒤늦게 그게 백송단에 들어 있던 내공인 것을 깨달았다.
유연하게, 하지만 강하게.
제갈린의 내공은 영단의 내공을 깨워 휘돌리기 시작했다.
스승님이 말했다.
“벌모세수가 잘되었구나. 영단으로 섭취한 내공은 모두 다 네 것이란다. 이 정도면 단전에 내기가 자리 잡아 적어도 오 년의 공력은 될 테지.”
깨어난 내공은 스승님의 인도에 따라 대주천을 했다. 백송단은 그렇게 한 바퀴 돌고는 진천희의 단전에 와서 정착했다.
전처럼 단단하게 굳어진 형태가 아니었다.
끈끈한. 생명력이 강한 송진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수신공을 부지런히 수련했기에 영단 본연의 성질 자체도 잘 유지되어 있구나. 백송단은 이 정도로 하고, 천송단은 나중에 섭취하도록 하자꾸나.”
역시 한꺼번에 많이 먹는다고 좋은 건 아닌 모양이다. 그때 스승님이 한마디 덧붙였다.
“우선 기초를 다진 이후. 내가 따로 만든 영약이 몇 개 있으니 그것부터.”
방금 이야기는 취소다. 초보자용이 있는 모양이다.
스승님은 기운을 거두고 손을 뗐다.
“이제 눈을 뜨거라. 이제 기초심법을 배울 때란다.”
그는 제갈가의 기초 심법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행심법.
화, 수, 목, 금, 토.
세상을 이루는 다섯 가지의 기운을 뜻한다.
진천희는 스승님이 가르쳐준 대로 호흡을 시작했다.
이제 스승님의 힘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내공을 움직여야 할 때다.
‘이거 의외로…… 재미있네?’
물은 나무를 흥하게 하고, 나무는 불을 흥하게 한다.
불은 흙을 만들어내고, 흙은 금속이 된다. 그리고 금속은 물을 맑게 만든다.
“기본은 상생이란다. 제갈가의 오행심법이 의술에 적합한 이유가 다른 모든 내공과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지. 내상을 치료하고 활력을 북돋아 주는 데 이만한 내공이 없지.”
“반대로 운공하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상극이라 부르지. 물이 불과 부딪쳐 불을 꺼 버리고, 불은 금속과 부딪쳐 금속을 녹여 버리겠지. 금속은 나무를 벨 것이고, 나무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란다.”
“그게 나쁜 건가요?”
그 말에 스승님은 고개를 저었다.
“그 또한 필요할 때가 있지. 주화입마 같이 내력이 폭주할 때 그 기를 잠재울 때 사용한단다.”
상생과 상극.
‘어떻게 보면 약과 독의 경계 같기도 하네.’
현대 의학도 그렇다.
모든 약에는 부작용(side effect)이라는 게 있다.
여기서 부작용이란 정해진 효능 외에 다른 역할을 하는 걸 뜻한다.
약이란 생물학의 영역이면서 동시에 화학의 영역이기도 했다.
원하는 작용만 뽑아낼 수가 없다.
시트르산 실데나필(sildenafil citrate).
사람들에게는 비아그라(Viagra)로 알려져 있다. 이 약이 원래는 심장병 치료제로 만들어졌다.
문제는 임상 단계에서 부작용이 밝혀진 것. 그 부작용이란 남성의 발기를 돕는 것.
그래서 결국 발기부전 치료제가 되었다.
대체할 심장약은 많았지만 발기부전 약은 당시 대체할 게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뇨 치료제가 비만 치료제가 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원래는 먹어서는 안 되는 독약인데 특정 환자에게는 약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고.’
진천희는 현대 사례와 비교하면서 빠르게 흡수했다.
‘부작용이 꼭 나쁜 건 아니야. 그건 상극도 마찬가지인 거고. 약에 선악은 없지. 그것을 어떻게 쓰냐에 달린 거니까. 그건 이 세계를 구성하는 오행에도 마찬가지인 거고.’
나름대로 해석하고 거기까지 깨닫고 나니 진천희의 단전이 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내가 받은 백송단은 목(木)에 포함된 내력이겠구나. 훗날 공손가의 내상을 치료할 일이 있다면 수(水)의 특성을 이용해 상생을 시키거나, 토(土)의 특성을 이용해 상극을 쓰겠네?’
깨달음은 다음 깨달음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몰입하는 진천희를 제갈린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성이 뛰어난 건 알고 있었지만, 하나를 가르치니 열을 아는구나.’
제갈린은 그런 제자를 바라보며 호법을 서 주었다.
‘암. 누구 제자인데 당연하지.’
제갈린은 생각했다.
중원에 기재가 태어났으니 어서 이 사실을 강호의 모든 의원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이보다 중한 일이 어디에 있겠냐고.
진천희의 명상은 꽤나 오랫동안 이어졌다.
* * *
진천희는 단전에서 나무의 기운을 느꼈다.
그것은 생명을 상징했다. 변화하나 변화하지 않으며, 물에 순응해 자라며, 불에 모든 것을 내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멸하지 않았다.
불탄 숲에서 더욱 빠르게 피어나는 싹처럼.
운공을 끝낸 진천희가 운공실에서 눈을 떴을 때는 새벽이었다.
갈무리된 내공의 양이 백송단을 모두 소화했을 때보다 적어도 50%는 증가한 듯했다.
‘이 정도면 칠 년 공력이려나? 남들이 칠 년을 꾸준히 수련해야 얻을 것을 벌써 얻었네. 내공이 늘었다고 기초 수련을 등한시하면 안 되겠는걸.’
진천희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첫 운공부터 요란하십니다. 아주.”
유호다.
“앗, 스승님은요?”
“호법을 끝까지 서시려는 것을 제가 대신하겠다고 하고 침소에 드시게 했습니다. 첫 운공부터 깨달음이라니. 보통은 처음 심법을 가르쳐줘도 무슨 뜻인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실감하게 되는데, 역시 우리 희는 천재라며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릅니다.”
유호가 본 제갈린은 입이 아주 귀까지 걸리셨다.
침소에 들어가시면서도 히죽히죽 웃으시는 것이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갑작스럽게 행복 풀충전하는 각주님의 얼굴을 보고 딸꾹질까지 하는 가솔도 있었다.
‘자기 잘되는 것보다 제자 잘되는 걸 더 기뻐하시다니.’
다음 주 의보(醫報)에 무슨 말이 적힐지 벌써부터 두려워진 유호였다.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제자가 생겼어도 그렇지,’
유호가 말했다.
“여기 다음에 먹을 영단을 가져왔습니다.”
유호가 상자를 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 영단이라면 상자를 여는 순간 청량한 향이 날 텐데 아무런 향도 나지 않았다.
다섯 알의 영단이다.
“화생단, 수해단, 목하단, 토유단, 금향단. 다섯 가지입니다.”
“한꺼번에 먹나요?”
“아뇨, 이 중에 도련님께서 드시고 싶으신 것을 드시면 됩니다.”
뭘 고를지 선택하라는 뜻이었다.
‘시험이구나. 제대로 깨달았는지 보는 시험.’
역시 제갈린이었다. 제자를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가르침에는 빈틈이 없었다.
‘처음 먹은 것은 백송단. 나무에 속하는 영단이다. 보통이라면 같은 속성의 영단을 먹는 거겠지. 그게 기본적인 내공심법의 원리니까.’
하나를 정하여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이 그 원리라 할 수 있었다.
진천희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대로 간다면 오행심법을 배운 의미가 없어. 상생이니까.’
진천희가 말했다.
“화생단을 주세요.”
나무의 기운으로 불을 성하게 만든다.
처음 먹은 것이 나무이니, 이제 불을 먹을 차례다.
유호가 말했다.
“그리 선택하셨군요.”
유호는 진천희에게 화생단을 건넸다.
진천희는 그것을 받고 깨달았다.
‘톡 쏘는 향이 나는걸? 이상하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향기도…….’
그 순간, 진천희는 퍼뜩 깨달았다.
“……남은 네 개도 순서대로 받을게요.”
“전부요?”
“네. 전부 필요하잖아요.”
오행단은 다섯 알이 바로 한 알의 영단 구실을 한다.
영단 하나하나가 줄 수 있는 내공은 많지 않다.
다섯 개의 영단을 순서에 맞게 전부 섭취했을 때. 그 상생으로 하나의 원을 그리게 된다.
많은 내공일 필요는 없다.
가장 정순한 다섯 요소들로 기틀을 잡는 게 중요하다.
유호가 답했다.
“역시 쉽게 속지 않으시는군요.”
“하나만 줄 것처럼 교묘하게 말씀하신 게 누군데요.”
나무에서 시작한 것은 한 바퀴 돌아 다시 나무에서 끝나야 한다.
유호는 진천희의 깨달음이 자신이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심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악의는 없었습니다. 다만, 시험을 해 보라고 말씀하셔서요.”
그건 진천희도 예상했다.
유호가 말했다.
“원래 화생단 한 알만 선택하신 것만으로도 주인님은 정답으로 치셨을 겁니다. 대체 어떻게 거기까지 생각하신 겁니까?”
“향기요.”
화생단의 향.
처음 영단들을 보았을 때 아무런 향이 나지 않아 기이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각 영단에는 서로 고유의 향이 들어 있었다.
다섯 개의 향기가 조화롭게 합쳐지면 그것은 한없이 무향(無香)에 가까워진다.
진천희는 그 안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봐도 대형 마트에서 파는 5개들이 한 세트 같잖아?’
물론 그것은 그가 살던 현대 지구에서 기인한 깨달음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튀니, 스승님이 말씀하신 오행의 기본 원리를 다시 고민하게 되고,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유호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참으로 영민하십니다. 도련님.”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천하의 백린각주를 밤새 호법 시킬 만하네요.”
“……제가 부탁드린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 답, 스승님한테 그대로 다 말해 줄 거예요?”
슬슬 진천희도 깨달았다.
스승님의 팔불출에 제자는 괴롭다.
“말해야죠. 그러라고 저 시켰잖습니까.”
“크으…….”
진천희는 침음을 삼키며 화생단을 집어 까드득 씹었다.
과연 화생단답게 뒷맛이 맵다. 그리고 속에서 불길이 일어나는 느낌이 났다.
말 그대로 화기가 담긴 영단이었다.
진천희는 급히 자신의 안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목기로 화기를 생하고, 화기로 토기를 생하게 해야 한다. 이 기운을 키운 다음 바로 토유단을 먹어야 해.’
기운이 안에서 휘몰아친다.
진천희는 영단을 하나씩 먹기 시작했다.
다섯 기운이 하나씩 커진다.
눈을 감았으나, 진천희는 자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감각에 도취되었다.
‘세계…….’
자신의 안에서 세계가 생겨나 자라난다. 오행이라는 이름의 세계가 탄생해서 춤을 추었다.
그러면서 주변의 기운을 무서운 기세로 빨아 당기기 시작한다.
영약 자체의 기운보다 그 기운이 더욱 강렬했다.
그 감각에 진천희는 무아지경 속에서도 기쁨과 즐거움을 느꼈다.
생전 처음 느끼는 감각임에도, 혼란스러움이 없었다.
‘이게 내 안의 세계.’
즐거운 감각 속에서 오행심법의 오행진기가 제대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오 년의 공력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그 사이에서 진천희는 정신을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