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53
제 253화
“음…… 가끔씩 갑자기 한쪽 귀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고, 요즘 들어서는 부쩍 어지럼증이 늘었다는 거죠? 그리고 증상이 하나 더 추가되었네요. 안면 마비.”
물을 마실 때마다 가끔씩 흘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환자의 이름은 한이정.
특이하게도 동생인 한소정과 함께 왔다.
한이정은 이목구비가 반듯한 인상에 환자임에도 눈에는 총기가 가득했다.
다만 눈가가 붉었는데 어디선가 울고 온 듯해 보였다.
그것도 방금 전까지 계속.
‘……모르는 척하는 게 좋겠지.’
어른의 배려다.
비록 관인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기본적인 무공은 익힌 건지 몸의 균형이 잘 잡혀 있었고.
동시에 붓도 자주 잡는지 손톱 밑에 먹 자국이 남아 있었다.
진천희는 최대한 건조하게 말하며 증세를 빠르게 적어 나갔다.
몇 가지 더 물어본 후, 본격적으로 진맥을 해야 할 차례가 왔다.
그때 한이정이 말했다.
“지금부터는 혼자 진맥을 하고자 합니다. 잠시 자리를 비켜줄 수 있겠습니까?”
동생에게 하는 말치고는 굉장히 딱딱한 말투라고 할 수 있었고.
동생 한소정은 그 말을 이상함 없이 받았다.
“알겠습니다. 나가 있을 터이니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이쪽은 친자매임에도 서로에게 존대를 쓰는 모양이다.
‘공손가와는 또 분위기가 다르군.’
언니인 한이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말투는 거리감이 느껴졌으나 동생의 걱정하고 있는 마음은 진천희에게도 전해졌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고 문이 드르륵 닫혔다.
진맥실 안에는 이제 한이정과 진천희 단둘만이 남았다.
“우선 진맥을 하고자 합니다. 손을…….”
“죄송합니다. 진맥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군요.”
대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치료를 받지 않으셨으면 하는 겁니까?”
“화주의각 쪽에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만…… 저는 이대로가 좋습니다.”
“그러면 제독태감께 전갈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것도 안 됩……!”
다급하게 한이정이 진천희를 붙잡았다.
그 순간, 안면 마비가 온 것일까.
발음이 새는 것과 동시에 현기증으로 옆으로 쓰러진다.
쓰러지려는 그녀의 팔을 다급히 붙잡았다.
탁-
이래서야 난처하다.
“그러면 저보고 제독태감님을 상대로 거짓말이라도 하라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거절할 참이었다.
황궁 윗분의 세계는 어떤지 알 수가 없고, 상관하고 싶지도 않다.
권력의 중추 아닌가.
진천희도 환자가 원하지 않는데 억지로 진료할 생각은 없다.
허나 이런 경우에는 제대로 말하는 게 맞았고, 그래야 뒤탈도 없으니까.
그 말에 한이정이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제가 아파야 동생에게 기회가 옵니다.”
“기회라면……?”
“관직에 올라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라 소정이니까요.”
여기서 토막 상식.
지구의 역사와는 다르게 이 세계는 이능과 무공이 실존하는 세계.
지구와 비슷한 부분도 있으나 실제 인류의 역사와 다른 부분도 굉장히 많았다.
특히 그중 하나가 지구의 인류사와 다르게 이 세계는 여성들도 다수가 관직에 진출해 있는 점.
애초에 복희씨의 피를 받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죽창 하나씩 꼬나 쥐고 서로 찌르고 보는 이 피 말리는 황위 다툼 속에서 초대 건국 황제가 여성이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능력만 있으면 남녀 가리지 않고 일을 시켰다.
거기다 기본 신체 근력은 비록 여성이 약하다고는 하나 결국 무공을 익히면 남자든 여자든 다 인간을 초월하는 세계.
칼빵에는 남녀노소가 없는 법이다.
‘당장 천마님께서도 여성분이시고 말이지.’
그것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는 이는 없다.
제국태감의 손녀인 그녀는 차기 육부상서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배경과 재능.
그리고 그 능력도 전부 다 갖추고 있는 존재라 할 수 있었다.
허나, 최근 난청이 시작되고, 어지럼증, 안면 근육 마비가 왔기에 치료가 필요해졌다고.
반색을 하며 먼저 손을 뻗은 건 화주의각이었으나 그녀는 그것을 거절했다.
제독태감은 그것을 화주의각을 통해 들은 건지, 아니면 어찌 다르게 짐작한 건지, 이번에는 백린의각으로 그녀를 보냈다고 한다.
‘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라는 눈으로 그녀를 한번 보자 그녀도 한숨을 쉬었다.
“조부님께서 원하시니까요. 제 의지대로 온 게 아닙니다.”
“저는 불똥이 튀게 생겼습니다.”
그 말에 한이정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습니다. 폐하께서 총애하시는 의원 아니십니까. 재인(才人)이라며 공석에서 극찬하시는 것도 들었습니다. 저희보다 폐하를 더 중히 여기시는 조부님께서 백린의각을 탓할 리 없을뿐더러 그럴 수도 없습니다.”
‘고, 공석에서 극찬까지 하셨어?’
물론 대장암을 고쳤으니 기쁘신 건 이해한다만. 그 정도로 말하고 다니셨을 줄 누가 알았나.
한이정은 다시 안면 마비 증상이 온 건지 뺨을 꾹꾹 눌렀다.
“뺨이… 저리다고 해야 하나…… 안면 마비는 최근에 생긴 증상이지만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건 어릴 때부터 종종 있었으니. 그러니 큰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상당히 발음이 정확하십니다.”
“그 정도는… 아이 때부터 연습해 왔으니까요.”
무가의 아이는 걸음마를 뗄 때부터 구결을 듣듯이, 세도가의 아이들도 태어날 때부터 나름의 교육을 받는 모양이다.
“아무튼 할아버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이건 저와 제 가문을 걸고 약조라도 해 드리죠.”
어쨌든 폐가 되지 않게 뒷일을 처리하겠다는 뜻인가.
허나, 진천희는 차분히 반박했다.
“하지만 돌아가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왜죠?”
“쓰러지실 때 붙잡으면서 조금이나마 살펴보았습니다만. 만약…… 죽을병이면 어쩌시겠습니까?”
“네?”
한이정의 눈이 커진다.
“절 믿고 조금만 팔을…….”
죽을병일 수도 있다는 의원의 말에 평정심을 유지할 사람은 없다.
특히나 상대는 폐하가 극찬한 재인(才人)이자 조만간 신의의 이름을 가질 자.
망설이던 한이정이 손목을 내준다.
“움직이지 마시고 호흡을 천천히 들이쉬었다가…… 내쉬어 주십시오.”
진천희는 한참 동안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진기진맥을 했다.
“…….”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듯했다.
진천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녀의 뒷목에 손을 얹고 몇 번 더 진맥을 했다.
그렇게 한참 후. 손을 뗀 진천희가 미간을 오랫동안 찌푸리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역시 이대로 돌아가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 * *
진맥을 마친 직후.
진천희는 곧바로 사 대 당주 중 하나인 침구당주와 휘하 부술 상의원들을 소집했다.
급한 소집에 모두가 당황하며 달려오는 것도 잠시.
모두가 자리가 앉기 무섭게 스승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진맥 결과가 나쁜 모양이구나.”
“네.”
진천희는 곧바로 의서들을 모두의 앞에 밀어준다.
드르륵-
“이미 공부하셨겠지만 책 들고 오기에는 시간이 없으니까요.”
제갈린이 자리를 잡았다.
침구당주 사마병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기에 이리 급히 비상소집을 한 겁니까. 소각주님.”
“지금 침구당이 바쁜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혼자로는 해결이 되지 않아서 이렇게 모셨습니다.”
진천희는 그리 말하고는 책을 빠르게 파르륵 넘겨 원하는 장에 탁, 하고 멈췄다.
그곳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뇌종양]굳이 그 편에서 멈춘 이유는 한 가지뿐이었다. 사마병이 물었다.
“설마……?”
“네. 환자는 뇌종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12권 11쪽이군요.”
차분한 목소리. 그러나 치명적인 병임에는 틀림이 없다.
상의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고칠 수는 있는 겁니까?”
그 말에 진천희가 답했다.
“고치지 못하면 돌아가시겠죠. 정확히는 내이도 종양. 청신경종이라고 진단할 수 있겠군요.”
전정신경종(Vestibular Schwannoma)이라고도 부른다.
우리 귀 속 달팽이관, 내이도에는 여러 가지 신경 회로가 존재한다.
듣는 청신경, 얼굴 근육을 움직이는 안면 신경, 그리고 몸의 흔들림을 감지하고 통제하는 전정신경 등이 존재하는데, 이중 내이도를 감싸고 있는 막이 종양으로 자라면서 다른 신경을 누르게 된다.
보통은 95%가 양성 종양.
악성인 경우는 흔치 않다.
성비로 보면 여성, 그리고 30대에서 60대 사이에 많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얼핏 들으면 양성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양성 종양도 느리지만 꾸준히 자란다는 거다.
단순 수학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크기가 1이면 부피도 1이다.
허나, 크기가 2가 되는 순간 2의 세제곱이니 부피가 8이 된다.
8의 부피로 다른 신경들을 누르기 시작한다.
종양의 크기가 2cm를 넘어서 3cm, 4cm가 넘어가면 뇌를 누르기 시작하는데 하필 그 위치가 중뇌.
‘호흡과 맥박을 담당하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곳이다.’
지금은 가끔 현기증으로 휘청거리는 수준이나 여기서 더 자라게 되면 걷는 것이 불가능해질 거고, 뇌압이 증가되겠지.
결국 환자는 사망하게 된다.
현재 종양의 위치와 크기를 봤을 때는 수술이 적극 권장된다.
‘나이가 젊기도 하고.’
환자가 고령이라면 그때부터는 방사선 치료를 통한 관리를 우선으로 한다.
이미 노환으로 수명이 많이 남지 않은 데다 머리를 여는 행위 자체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분히 수술을 이겨 낼 수 있는 나이.
거기다 다른 뇌종양 수술에 비해 (물론 전정신경종도 중증 질환이나) 비교적 예후가 좋은 편이다.
관련 수술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종양의 크기와 위치, 청력 상태에 따라 다르기에 어느 수술법이 더 낫다는 결론은 없다.
그저 그 환자에게 맞는 방법이 있을 뿐.
‘내가 추천할 수술법은 후횡정맥수술법(retrosigmoid approach)’
이비인후과보다는 신경외과의 방식에 가깝다.
두개골을 열어서 적출하는 방식으로, 아무래도 환자에게 부담이 있긴 있으나 현재 환자의 나이로 봤을 때 가장 적합한 방식이라고 진천희는 생각했다.
특히 이 수술법을 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종양의 위치와 크기가 이 수술에 적합하기 때문이었고.
또한 이 방법을 사용하면 다른 수술에 비해 청력을 보존할 수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상의원 하나가 손을 들었다.
“귓구멍을 통해 최대한 돌아서 들어가는 방식은 어떻습니까? 이리한다면 머리를 열 필요는 없을 텐데요. 환자의 부담이 줄지 않을까요?”
그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질문입니다만 그렇게 접근하면 청각 신경이 손상을 입어 청력을 보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군요. 최대한 덜 손상을 입히는 것이 좋을 텐데…….”
그 말에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천희가 키워 낸 상의원들이 저마다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두개골이 여러 가지 조각으로 나뉘어 있잖습니까? 그 조각 중 종양이랑 제일 가깝고 제일 작은 조각 쪽에 구멍을 뚫어 들어가면 어떻겠습니까. 두개골을 아예 여는 것보다는 부담이 덜하지 않겠습니까?”
경미로 수술법(translabyrinthine apporach)이 바로 그와 유사한 방식이다.
현대 이비인후과에서 흔히들 하는 수술 방식으로, 귀 뒷뼈(유양돌기)를 통해 들어가 두개골 속의 종양을 제거하는 방식.
환자의 청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경우에 선택한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환자의 귀는 영원히 소리를 듣지 못하나 안면 근육은 보존하기 좋았다.
“그 또한 고려했었습니다. 다만…….”
논의는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