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54
제 254화
몇 시진의 논의 끝. 이윽고 잠자코 듣고 있던 스승님이 말했다.
“본 제갈 모는 후횡정맥수술법이 좀 더 환자에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종양의 크기와 위치가 그쪽에 더 적합한 데다가, 관직에 진출하게 되면 청력 손상은 언젠가 큰 기로에 섰을 때 걸림돌이 될 겁니다. 그것이 비록 한쪽 청력일 뿐일지라도 말이죠.”
“…….”
그 말에 모두가 말을 삼켰다.
그녀가 가게 될 곳은 황궁.
작은 귓속말 하나를 듣지 못해 사망한 관리들이 피의 강을 이룬다.
그때 듣고 있던 진천희가 물었다.
“만약 관직에 뜻이 없다면요?”
그때 그녀는 분명 말했다.
자기 대신 동생이 올라가기 위해서라도 치료받고 싶지 않다고.
그러나 스승님은 냉정하게 답했다.
“그것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제독태감께서는 폐하께 도움이 된다 생각이 된다면 언제든 자신의 손주를 바치실 분이니까.”
명백한 선이 느껴졌다.
그토록 애지중지한다고 알려졌으나, 그것과 그것은 다르다고 스승님은 말하고 계셨다.
“물론 한쪽 귀가 들리지 않기에 그 부분이 어쩌면 폐하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고 참작할 수도 있겠지. 허나, 권력이란 그런 것이란다. 만약 그런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폐하께 도움이 된다 생각된다면…….”
“……버리는 패로 자신의 가족을 바칠 수 있다는 건가요?”
스승님은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한이정은 순진했던 걸지도 모른다.
자신이 쓸모없고 가치가 없어지면 할아버지가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 쓸모는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진천희는 속눈썹을 내리깔고는 천천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어찌 되었건 저는 환자를 치료할 뿐입니다. 가장 나은 치료법이 있다면 그것을 따를 뿐이지요.”
* * *
회의가 끝나고 의원들이 모두 다 나간 후.
의각회의실에는 침구당주님과 진천희, 그리고 제갈린 셋만이 남았다.
제갈린은 차를 한 모금 깊게 마셨다.
길었던 회의, 우러날 대로 우러난 차는 떫은맛이 났다. 그러나 그것을 제갈린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셨다.
흡사 미각을 잃은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환자는 진맥에 이어 치료도 거부한 것이냐?”
그 말에 진천희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미 스승님은 알고 계셨구나.’
상황이 이상하긴 했다.
대뜸 화주의각과 백린의각을 경쟁시킨다는 명분으로 백린의각에 손녀를 보내질 않나.
그렇다고 화주의각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은 것도 아닌 모양.
병증에 대한 이야기도 없으니 진맥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데, 화주의각이 간이 배 밖에 나온 것도 아니고 제독태감의 손녀 진맥을 거부했을 리도 없고.
결론은 손녀 자신이 거부한 거겠지.
거기다가 오늘 회의에서 있었던 진천희의 질문까지 더해지자 완전히 눈치채신 모양이었다.
“예…… 목숨이 위험하다는 부분까지 충분히 설명했는데도 받지 않겠다 하시네요.”
“뇌에 종양이 있는데도 그런단 말이지…….”
“동생에게 벼슬길을 열어 주려고 그런다고 하시는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습니다. 뭔가 숨기는 게 더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겠지. 어찌 보면 젊으니 할 수 있는 결정이구나. 젊어.”
스승님은 반개한 눈으로 생각에 잠겼다.
외모는 무공으로 어지간한 20대보다도 젊으시나, 그 눈은 노회한 자의 것.
아무리 외모로 세월을 숨긴다 한들 그 깊은 눈빛마저 숨길 수 없었다.
스승님이 말을 이어 나갔다.
“제독태감의 권세가 막강하긴 해도. 한 가문에 두 명이나 육부상서가 나올 수는 없는 법이지. 균형과 견제가 맞지 않아.”
튀어나온 못을 박는 건 권력의 본능이다.
남보다 조금 더 높이 올라갈 수는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탱해 주는 자들이 용납하는 선에서.
그리고 망치를 든 폐하께서 용납하는 선에서 가능할 터.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적당한 한직을 맡을 수밖에 없겠군요. 둘의 재능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그만한 인재가 다른 권문세가, 혹은 과거를 통과한 이들 중에 없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 게지.”
탁, 탁-
스승님이 손가락으로 탁자를 천천히 두드렸다.
그렇게 만들어낸 리듬감이 흡사 메트로놈처럼 정확하다.
“왜 굳이 동생에게 권력을 몰아주려고 하는 걸까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
스승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윽고 조금 장난기가 묻어나는 얼굴로 이리 말하셨다.
“글쎄다. 이유는 짐작이 간다만 네가 직접 알아보거라.”
“네?”
그 말에 같이 있던 침구당주 사마병도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이런 부분에서는 소각주께 좋은 경험이 될 듯하군요. 의각주가 되기 위해서 해야 할 공부니까요.”
“그냥 두 분께서 아시면 가르쳐 주시면 안 됩니까?”
스승님은 단호했다.
“네가 알아보렴.”
아니, 대체 이런 걸 어떻게 알아 내냐고. 사마병도 함께 답했다.
“소각주께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이것도 의각주 수련의 일환인가.
‘스승님도 이제 건강하신데 이런 수련은 좀 느긋하게 해도 되지 않나?’
하여간 인정사정도 없는 분들이다.
사마병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야말로 이런 회의에 왜 왔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진천희가 답했다.
“그거야 침구당주님께서는 마취를 맡아 주셔야 하니까요.”
“네?”
백린의각을 지탱하는 당주들.
그중 무력 당주를 제외한 다른 당주들은 모두 부술당의 부술을 심도 있게 공부했다.
당연했다.
인체는 하나의 유기체로, 모든 의술을 동원해야 하며 때에 따라 서로 각기 다른 영향을 주게 된다.
부술당과 교류하여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 명령을 내릴 우두머리들도 자연히 공부해야 한다.
의원이란 끝없이 공부해야 하는 직책.
자연히 침구당주 사마병도 부술 공부를 어느 정도는 해 두었다.
진천희가 피식 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취와 회복에 있어서 침구당주님만 한 인재가 지금 없거든요.”
그리 말하며 씨익 웃는 모습이 ‘방금 놀려먹은 대가를 톡톡히 치르시죠?’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침구당주 사마병은 진 교수에게 납치당했다.
* * *
‘아니, 자기 목숨이 위험한데 동생 관직 보내겠다고 이러는 이유가 대체 뭐지?’
무림이라면 기밀을 누설할 수 없거나 은원이 있거나, 뭔가의 금제를 걸었거나 하는 이유로 죽음을 선택하고자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물론 의원으로서 자살하겠다는 사람 최대한 말려서 살려야 하는 게 맞는 일이다 보니 최대한 설득을 해 보고.
그러다 도저히 안 되면 보호자 가족들에게 사정을 알려 함께 말린다.
현대라면 환자 기밀 조항을 어기는 거 아니냐 싶다만.
이 칼 밥 먹는 유교 사회에서는 환자가 아프면 가족이 알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 도덕관으로는 오히려 그걸 숨기는 의원이 이상한 놈 되어서 칼침 맞기 딱 좋다.
제독태감의 손녀딸이니 그나마 화주의각도 넘어간 거지, 원래라면 진료 거부도 말해야 한다.
일단 불효 아닌가.
아니, 어쩌면 높은 확률로 이미 전서를 보내 놨을 수도 있고.
‘아니, 그런데 동생 벼슬 보내겠다고 죽겠다……?’
다른 쪽은 한직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어디 제독태감의 손녀를 막 대하겠나.
아무리 한직이라고 해도, 다소 족보가 꼬일 걸 각오하더라도 지방 수령이 버선발로 달려와 모실 거다.
‘뇌에 시한폭탄이 있는데 동생 한직 안 보내겠다고 죽겠다……?’
역시 모르겠다.
‘전서라도 보내 보면…… 아니다. 그랬다가는 일이 더 꼬이겠지.’
제독태감이 직접 나서서 억지로 수술시키는 방법이 있기야 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환자는 믿을 곳이 없어진다.
거기다 그렇게 수술해서 나은들 결국 제독태감과 손녀 사이에서 백린의각만 등 터지는 꼴이니.
‘에라, 직접 물어보자. 환자한테 욕 좀 먹지, 뭐.’
한국인은 직진하기로 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보호자이자 당사자.
동생에게 들이박기로.
어차피 여기서 배배 꼬아 봐야 좋은 결과도 안 나올 거고, 무인들 자결 막을 때는 가족이 최고 보약이었다.
다만 제독태감께서는 가족……이라고는 할 수 있으나 스승님 말대로 손녀의 의견보다 황제를 보필하는 게 우선인 분이시니 동생밖에 없다.
당장 얼굴 맞댈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그렇지 않아도 동생 한소정이 의각 본당 바로 앞에서 하인들과 함께 초조하게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뭔가 그녀도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내심 느끼고 있었던 모양.
진천희를 보자마자 걸어오는 것을 보니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 보였다.
동생 한소정이 입을 열었다.
“저어, 잠시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질문. 그러나 절박함이 배어 나와서 안쓰러울 지경이다.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각의 대나무 숲이 참 풍광이 좋습니다. 한번 구경해 보시겠습니까?”
외부에 알려지면 안 되는 이야기가 있다는 뜻.
과연 세도가의 자제답게 한소정은 진천희의 말뜻을 곧바로 눈치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하인들을 물렸다.
* * *
쏴아아아-
대나무 숲을 조용히 걸으며 진천희는 진맥의 결과나 그 내용. 그리고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대로 거부하면 죽는다는 것도.
한참 이야기를 듣던 동생 한소정의 걸음이 멈춘다.
“그랬군요. 아… 그랬어. 이 바보 언니가…… 진짜.”
언니만큼이나 예의 바르던 동생은 그만 작게 욕을 한다.
그러나 거친 말을 해 본 적 없는 입이 할 수 있는 욕이란 ‘바보’가 전부였고.
결국 표현되지 않은 말이 눈물이 되어 흘러나왔다.
그것을 소매로 슥슥 닦더니 갑자기 몸을 돌려 달려가기 시작했다.
‘잠시 실례하겠다’는 말조차 없다는 것은 그만큼 한소정의 충격이 컸다는 뜻.
그녀가 향한 곳은 언니가 머물고 있는 입원실이었다.
드르륵-
간단한 기척도, 들어가도 되겠냐는 동의도 없이 문이 열렸다.
마침 책을 읽고 있던 한이정이 눈을 들었다. 그 순간,
짝-!
뺨에 별이 튄다.
“죽으면 갚을 수 있을 줄 알았습니까.”
“그게 무슨…….”
그 순간 한소정이 언니 한이정의 멱살을 붙잡았다.
“죽어서 도망가면 될 줄 알았냐고요!”
“…….”
언니 한이정은 진천희를 한 번 바라보더니 다시 동생을 바라본다.
일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눈치챈 모양.
“소아야…….”
소아는 한소정의 애칭인 모양이었다.
“내 혼인이 뭐라고! 고작 이민족한테 시집가는 동생이 그리 불쌍해 보였습니까!”
“나는…….”
“제 일입니다. 조부님께서 원하시면 가는 것이지요. 어차피 우리 집안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가면…… 가면 못 돌아오잖느냐. 네가 그리 떠나면 두 번 다시 못 돌아오잖아!”
결국 참지 못하고 언니 한이정은 동생에게 소리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