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264
제 264화
“좀 더 물어볼 줄 알았는데 아쉽군.”
‘물어보면 그냥 놀려먹고 끝나면 다행이지, 자칫 기밀을 술술 불어놓고 알게 됐으니 황가로 가자고 끌고 들어가면 나도 사부님도 난리 나는 거지.’
그리고 은왕야는 주왕야와 마찬가지로 종잡을 수 없는 분이셔서.
“저 같은 강호 의원이 그런 것을 알아서 무엇 하겠습니까. 그저 왕야를 치료하는 것만으로도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지요.”
“참…… 말은 청산유수구나. 뭐, 됐다. 너는 안으로 들어갈 것 없이 이 정자 안에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더냐.”
“뭐…….”
“화주의각에서는 숨기는 모양이나, 원래도 진맥에 있어서만큼은 너를 따라올 자가 없다던데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겠지?”
그거야 그렇다.
의원들끼리도 가지고 있는 내공의 양과 운용의 섬세함이 제각각이고.
해부학을 알고 진맥을 하는 것과 그저 느껴지는 것으로 막연히 진맥하는 건 차원이 다르니까.
거기다 같은 해부학도 현대의 해부학을 아는 것과 이 시대의 의서로 보는 해부학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해 보겠습니다.”
“그래.”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은왕야는 손목을 내밀었다.
진천희는 은왕야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진기를 밀어 넣어 진맥을 시도했다.
진천희의 손에서 시작된 진기가 왕야의 손목을 타고 기경팔도를 휘돈다.
그러고 진천희는 잠시 갸우뚱하더니 ‘왕야, 실례 좀 하겠습니다.’ 하고 왕야의 배에 손을 얹는다.
“허락한다는 말도 없는데 절로 손이 가는구나.”
“아, 아니…… 그게 아니옵고.”
“크크큭, 농이다. 환자를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는 거겠지.”
“…….”
사람은 장난으로 돌을 던지지만 그거 맞는 개구리는 죽는다.
왕야의 작은 농에도 의원은 가슴이 철렁한다는 걸 전혀 모르시는 모양이다.
진맥을 끝낸 진천희가 천천히 눈을 떴다.
“아주 좋네요. 암, 아니 반위가 재발하지도 않았고요. 건강도 훨씬 좋아지시고. 거기다가 새로운 무공을 익히신 건지 내공의 성질이 변화하셨습니다.”
“좋은 일이구나. 재발하지 않았다니. 허나…… 그렇다 할지라도 벌모세수는 하는 게 좋겠지.”
어린아이가 무(武)의 길에 들어설 때 몸 안의 혼탁한 것들을 한꺼번에 배출하는 행위.
평생에 한 번 하는 게 벌모세수다.
내공을 익히기 좋은 몸을 만드는 거지, 이미 벌모세수를 받은 몸을 계속 벌모세수 한다고 한들 내공 증진에는 효과가 전혀 없다.
그야말로 생고생.
그러나 대장암을 앓고 난 은왕야는 주기적으로 받고 있다.
그것도 꽤나 비싸고 독한 약재들로.
“고통을 경감시켜 드리기 위해서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았는데 그리되면 효과가…….”
“걱정하지 말거라. 몸의 고통 같은 것은 마음의 고통에 비하면 별것 아니니까. 재료는 이미 황실 어의들이 준비해 놓았으니 언제든지 가능할 게다.”
그는 쓰게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진맥으로 상태를 봐가며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받고 나면 하루 이틀은 푹 쉬셔야 할 테니까요.”
그때 은왕야가 진천희를 붙잡았다.
“내가 왜 너를 부른지 아느냐?”
‘뭔가…… 귀찮은 일을 시키려고 부르시지 않으셨을까요~?’라고 답하기에는 상대가 황제니 차마 그런 소리를 할 수는 없고.
진천희는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며 최대한 좋은 답을 했다.
“단순히 휴양지나 즐기라고 부르신 건 아니라는 건 압니다.”
“네가 봐주었으면 하는 환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있나요?”
“그래. 정확히는 다두 왕국의 누군가가 네게 치료를 받기 위해 와 있지.”
“어…….”
“또 눈동자만 굴리는구나. 짐이 소개하는 이라면 보통 자가 아닐 터인데도.”
권력 욕심이 있다면야 그렇겠지만.
그런 건 어디까지나 제독태감 같은 분들이나 하는 거 아닌가.
“쯧. 됐다. 어찌 되었든 다두 왕국에 제법 큰 문제가 생겼단다. 너 역시 그 일에 연루되어 있지.”
진천희는 망막에 청빛이 섬전처럼 스쳐 지나갔다.
얼핏 보면 햇빛의 반사광을 잘못 보았나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
“…….”
허나 섣불리 대답하진 않는다.
역시 젊은 무인들과는 다른 신중함에 은왕야는 혀를 차며 말을 이어갔다.
“네 녀석은 어째 황실과 연루가 안 되기 위해 아주 기를 쓰는 구나.”
진천희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이렇게 기를 쓰지 않으면 망태할아버지처럼 쏙 담아가실 테니까요……?’
하고 싶은 말이야 많지만 황제한테 입 놀려서 뭐 하겠나.
빨리 치료하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거기다 다두 왕국.
제국과 국경이야 맞대고 있으나 종교, 문화, 언어, 문자, 그 모두가 사뭇 다른 곳이고.
화 제국에 비하면 그 크기야 무척 작으나 남만의 패자라고 부를 수 있겠지.
다두 왕국의 의서를 번역한 것을 읽어 본 적 있으나 번역가의 문제인 건지 아니면 이쪽의 의술과 완전히 다른 길을 가는 건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더랬다.
“다두 왕국은 문명과 야만이 함께하는 곳이지. 특히 병의 치료를 부술이나 침술이 아닌 주술에 의존하고 있으니까.”
수수께끼는 풀렸다.
‘이러니 읽어도 이해를 못 했지.’
진천희는 현대인으로서 원론적인 질문을 했다.
“그거. 효과는 있습니까?”
현대인에게 있어 주술 치료란 아프리카 샤먼이 닭을 잡으며 선창을 하고, 그 부족민들이 후창을 하면서 춤을 추는 그런 이미지다.
거기에 가운데 앉아있는 사람은 방언이 터져서 뭐라고 말하며 닭 피를 먹는다거나,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약초를 씹어 삼킨다거나.
‘한국에서 그러한 치료법은 의료법 위반이지.’
과거 즉시 수술하면 예후가 좋았을 암환자가 어딘가의 사이비 치료원에 갔다가 악화만 되어 온 일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기독교 계열인지 불교 계열인지, 아니면 저 어디 제3의 계열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정체 모를 물을 300만 원에 환자에게 팔았고, 환자는 그것을 사 드셨다.
성분을 분석한 결과 이상한 건 아니었고.
그냥 보리차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300만 원짜리 보리차라서 얼마나 가슴을 쓸었는지 모른다.
어설프게 이상한 쪽으로 효과를 넣었을 때가 문제다.
가끔 그렇게 사이비에서 이상한 것을 받아먹고 자칫 간이나 신장이 손상되어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정작 이제부터 치료해야 하는 암 치료가 무척 힘들어지니까.
그런 현대 의사에게 있어 ‘주술 치료’란 굉장히 미심쩍은 이미지다.
“듣기로는 나름대로 효과가 있다고 하더구나.”
“으음…….”
기가 만물을 구성하는 세계인데 주술 치료라고 효과가 없을 리가 없다.
허나.
‘안 좋은 기억이 너무 많은걸, 이거……?’
그래. 그건 어디까지나 편견일 뿐. 진짜로 효과가 있을 수 있지.
‘그리고 효과가 있다면 배울 수도 있을 거고.’
진천희는 억지로 마음의 빗장을 열기 위해 바동거렸다.
무공은 익힐 때 그리도 기뻤는데 주술 치료라니까 왜 이리 망설여지는지 모르겠다.
‘그래! 사람 목숨 살려야 하는데 뭐든 배워야지! 방사능도 없고, 현대 기기도 없는 이 세계에서 찬물, 더운물 가릴 때야?’
허나, 가리고 싶다.
“네가 진료를 해 주었으면 하는 이는 바로 다두 왕국의 셋째 아들이란다.”
“셋째라면……?”
“그래. 죽은 둘째 왕자 대신 태감의 둘째 손녀와 혼인하게 될 사람이지.”
‘둘째…… 벌써 죽은 거냐……?’
원래 결혼식까지 기다렸다가 돌연사할 예정 아니었나?
언니 한이정은 동생에게 3초 과부라는 가십거리조차 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은왕야가 말했다.
“혼담이 확정이 되고 날짜를 잡는 날, 안타깝게도 만취한 날 밤. 아침에 문을 여니 시신으로 발견되었단다.”
“호위병들은요?”
“호위병은 왕자의 저택을 단단히 지키고 있었고, 왕자의 방 역시 사실상 밀실이었다더구나.”
완전 밀실! 아침에 발견한 변사체!
‘그렇군.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지 않아도 이게 수상하다는 건 알겠어.’
아니, 사람 패는 망나니 새끼가 동생과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언니는 용납할 수가 없는 건가.
‘하긴, 그때 이후 우연히 뒷사정을 알게 되긴 했는데 사생아만 도성에 다섯 손가락이 넘는다고 하지…….’
술 마시면 개가 되는 건 물론이거니와 뻑하면 주위 사람을 패는 왕자라.
젊은 혈기에 못 이겨 저지른 실수라고는 하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죽은 양민들도 좀 된다고 했다.
폭력이라는 게 꼭 주먹을 들어야만 폭력적인 게 아니니까. 이 시대에는.
“암살 같은 타살 흔적은 없고요?”
“창문도 모두 잠겨 있었고, 외부에서 누군가가 침입한 흔적도, 열어준 흔적도 없었고. 시종들 역시 왕자가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한 이후로는 들어가지 않았으니 말이다. 독살의 흔적도 없는 걸 보니 정말로 신이 노하셨다고 생각하는 백성들도 있던 모양이더구나.”
“신이 노하셨다?”
“만취한 상태로 제단을 몇 번이나 부쉈으니 말이다.”
아니…… 신의 천벌은 아닐 것 같고.
이건 아무리 봐도 개망나니에게 동생을 줄 수 없다는 언니의 천벌 같은데?
머릿속에서는 이미 한 편의 추리 만화가 상영되어 있었으나 진천희의 얼굴은 차분하다.
“안타깝게 되었군요.”
“인명은 하늘이 정하는 법이니 어찌하겠느냐.”
주왕 전하랑 함께 형제자매들 목을 죄다 따고 올라가신 폐하께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은왕야가 말을 이었다.
“네가 관심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여기서부터는 정치의 영역이니라. 다두 왕국의 너머에는 세림 교국이라는 국가가 있다. 후후, 건방지게도 스스로를 ‘제국’이라고 칭하는 놈들이지.”
세림 교국.
‘아, 기억난다. 지존천마에 나오지. 술탄이 통지하는 제국. 모델이 대충 고대 이슬람 제국 삘이었지.’
지존천마에 보면 여하륜이 세림 교국에서 건너온 암살자들과 싸우는 에피소드가 있었더랬다.
그게 다두 왕국에서 펼쳐지는 음모를 분쇄한다나 어쩐다나 하는 내용이었고.
정작 다두 왕국 왕실 비중은 별로 안 컸다.
지존천마 자체가 여하륜에게 목 따인 놈이나 앞으로 따일 예정인 놈들 아니면 별로 분량이 없다.
이 에피소드가 왜 그리 기억에 남느냐면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혈선교가 적으로 나오질 않는다.
세림 교국이 적으로 온다.
세림 교국은 ‘세림’이라는 종교를 믿는 자칭 제국으로.
얘네들이 다두 왕국을 지배하고, 제국을 공격하려고 한다는 그런 내용이다.
그랬다. 문제가 생긴다.
일월신교도 종교 단체다.
세림 교국도 종교 국가다.
이 쉑키들이 뭔 생각인지 일월신교 신도들 있는 곳에다가 사이비 같은 마교 믿지 말고 세림 믿고 천국 가라는데 그걸 가만히 있으면 마교가 아니다.
천마 자체가 마교 교주 아닌가.
이 새끼들이 허가 없이 십만대산에 대고 포교를 계획한 순간부터 여하륜에게 이놈들 뚝배기를 깨야 하는 숙명이 생겼다.